[강일홍의 스페셜인터뷰62-나진기] "나훈아 형 그늘 벗고 내 길 가겠다!"
입력: 2019.11.04 05:00 / 수정: 2019.11.04 11:51
가수 나진기는 가요계 수많은 선배 가수들처럼 대한민국 가요계 자존심이자 사촌 형님인 나훈아의 노래를 가장 많이 애창했다. 녹슬은 기찻길은 가요무대에서만 3번이나 불렀다. /이새롬 기자
가수 나진기는 가요계 수많은 선배 가수들처럼 '대한민국 가요계 자존심'이자 사촌 형님인 나훈아의 노래를 가장 많이 애창했다. '녹슬은 기찻길'은 '가요무대'에서만 3번이나 불렀다. /이새롬 기자

"그래도 형님 충고는 금과옥조", '상상하고 꿈을 꾸면 현실이 된다'

[더팩트|강일홍 기자] 가수 나진기(49 본명 최진기)는 학창시절부터 '스타가수' 나훈아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나훈아가 바로 친 사촌 형이기 때문이다. 대학에서 건축학을 전공하고 건설회사(동양화학)에서 평범한 직장생활을 했지만 마음은 늘 '콩밭'에 가 있었다. 바로 음악이었다. 결국은 노래에 대한 미련을 포기하지 못해 박차고 나왔다.

"가수 꿈을 억누르며 6년간 직장생활을 했어요. 생각이 딴 데 있다보니 결국엔 사표를 낼 수밖에 없더라고요. 카바레나 나이트클럽 등 야간업소에서 노래를 불렀는데 하룻밤 무대 출연료가 당시 회사에서 받는 제 한달 월급의 두배였어요."

실제로 그는 KBS1 '가요무대'에 출연하면 '영영' '님그리워' '사랑' '아담과 이브처럼' '아리랑' 등 주로 나훈아 노래를 자주 부른다. '녹슬은 기찻길'은 '가요무대'에서만 3번이나 불렀다. 흉내만 제대로 내도 주목을 받는 마당에 그는 외모부터 창법, 구강구조(치열)까지 친 사촌 형인 나훈아를 쏙 빼닮았다.

무명시절부터 나훈아 노래를 많이 부른 설운도 강진 진성 등 가요계 수많은 선배가수들처럼 그도 '나훈아 형님'의 노래를 가장 많이 불렀다. 일정 부분 DNA를 공유해서일까. 그가 부르면 흉내를 넘어 너무 흡사했다. 가수로서는 당당히 실력을 인정받은 셈이지만 또다른 벽이 됐다. 알고 보면 그게 바로 그에겐 남모르는 딜레마다.

"솔직히 말씀 드리면 인터뷰를 하는 지금도 저는 나훈아 형님 명성에 행여 누가 되지는 않을까, 그게 가장 걱정입니다." 나진기는 여러차례 망설임 끝에 인터뷰에 응했다. 최근 신곡 '그럽디다'를 낸 그는 "이제는 저만의 색깔로, 제 길을 가겠다"고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스페셜인터뷰는 지난달 31일 서울 상암동 <더팩트> 사옥에서 2시간 동안 진행됐다.

나훈아 형님 명성에 행여 누가 되지는 않을까, 그게 가장 걱정입니다. 나진기는 여러차례 망설임 끝에 인터뷰에 응했다. 스페셜인터뷰는 지난달 31일 서울 상암동 <더팩트> 사옥에서 2시간동안 진행됐다. /이새롬 기자
"나훈아 형님 명성에 행여 누가 되지는 않을까, 그게 가장 걱정입니다." 나진기는 여러차례 망설임 끝에 인터뷰에 응했다. 스페셜인터뷰는 지난달 31일 서울 상암동 <더팩트> 사옥에서 2시간동안 진행됐다. /이새롬 기자

-데뷔한 이후 미사리 라이브 카페를 중심으로 조용한 활동을 해온 것으로 안다.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

사람들은 툭하면 '나훈아 씨가 대한민국 최고 가수인데 그만한 실력을 갖고 왜 가만히 있느냐, 가서 노래 몇 곡만 달라고 해라' 이럽니다. 톱 스타 가수의 후광을 받으라는 건데요. 속 모르는 얘기예요. 저는 밤무대 시절 형님 노래를 주로 불렀고, 어떤 이미테이션 가수보다 잘 부를 자신이 있었어요. 사회자가 주목을 끌기 위해 늘 '나훈아의 동생'이라고 저를 소개를 하곤 했죠. 형님 흉내를 내다 점점 더 닮아갔고, 그게 독(毒)이 돼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제 본연의 모습이나 색깔을 내세울 수 없었어요. 지금은 어떤 무대에서도 '그렇게 소개하지 말아달라'고 오히려 부탁을 해요.

대기만성형 가수를 꿈꾸는 나진기는 10여년 전부터 방송 대신 언더 활동을 주로 하며, 착실히 자신만의 영역을 개척하고 있다. 현재는 가수 윤시내가 운영하는 '열애'에서만 8년째 고정출연 중이다. 그는 '최 씨 집안에서 가수는 나훈아(최홍기) 하나면 충분하다'는 무언의 분위기 때문에 그늘로 숨어야 했다. 그 스스로 '나훈아라는 가요계 거목을 넘어설 실력이 아니라면 절대 나서지 말아야 한다'는 말에는 지금도 동의한다고 한다.

-누구나 각자의 개성이 있고, 고유한 특성과 색깔이 있다. 자신이 있다면 자기 인생은 스스로 개척해가야하는게 아닌가.

당연히 그게 정답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다만 '나훈아'라는 이름 석자에 누가 되지 않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늘 저를 짓누릅니다. 형님의 존재만으로 자랑스럽고 행복한 일인데 제가 무대에 서는 순간 위축이 됩니다. 어딜 가더라도 노래와 연관되는 일이면 으레 형님으로 귀결되거든요. 어쩌면 저 혼자만의 홀로서기를 위해 힘든 길을 돌아가고 있는 셈이고요. 단지 생존하는 것만도 쉽지 않은 곳이 가요계잖아요. 형님과는 단 '1'도 비교되지 않고, 전혀 다른 '나진기'로 거듭 태어나고 싶습니다.

한때 그는 밤무대에서 다른 가수보다 나훈아의 노래를 더 많이 불렀다. 당대 최고 유명 스타가수의 히트곡을 멋들어지게 잘 부르면 객석의 반응이 더 뜨거웠기 때문이다. 나진기는 "당시 저는 가수의 큰 꿈을 가슴에 품었다고 말하면서도 멀리 내다보지 못한 근시안적 생각에 안주했다"면서 "그 가수가 하필 제 친 사촌형님이어서 더 닮고 싶어했고, 어떻게든 노래만 똑같이 하면 인기가수가 되는 지름길로 착각했다"고 말했다. 늦었지만 그가 자기 길을 걷기로 다짐한 이유이기도 하다.

나진기는 트로트계의 숨은 보석으로 불릴만큼 태생적으로 뼛속깊은 트로트 가수다. 정통 트로트를 표방하는 그는 최근 신곡 그럽디다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더팩트 DB
나진기는 트로트계의 '숨은 보석'으로 불릴만큼 태생적으로 뼛속깊은 트로트 가수다. 정통 트로트를 표방하는 그는 최근 신곡 '그럽디다'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더팩트 DB

-'나훈아의 아바타'로 생활한 적이 있다고 들었다. 흉내만 낸 게 아니라 아예 그림자처럼 움직였다는 건가.

형님은 예나 지금이나 사전 리허설을 매우 중요시 해요. 누군가 콘서트 전날 미리 내려가서 악단과 반복해서 연습하고 조율을 하죠. 제가 한 4~5년 가량 '그 역할'을 했어요. 악단 멤버들도 노래는 물론이고 표정이나 제스처, 시선처리까지 비슷하게 해내는 저를 좋아했거든요. 이제 와서 생각하면 그때가 가수로 발돋움할 절호의 기회였는데 제가 붙들지 못한 것같아요. 형님은 제가 밑바닥부터 힘든 과정을 거치면서 무대경험도 쌓고 스스로 실력을 키워가기를 바랐던 거죠.

나훈아는 무대에 서기 전 거의 모든 장면을 사전에 꼼꼼히 챙기는 것으로 유명하다. 특히 악단과 호흡을 맞추는 리허설은 필수다. 과거 지방업소에 출연할 당시에도 그는 이 과정만은 반드시 지켰다고 한다. 그만큼 대중 앞에 비치는 자신의 노래에 애착이 크다. 나진기는 10여년 전까지 나훈아 무대의 사전 리허설 대역으로 활동했다. 그만큼 스타일과 느낌이 비슷했기 때문이다. 물론 이 역할마저 믿을 만한 측근이 아니면 맡기지 않는다. 이보다 훨씬 이전에는 나훈아의 매니저 겸 가수 故 하중하 씨가 대역을 했다고 한다.

-'가수 나훈아'를 떠나 인간적 측면에서 동생한테 특별한 애정을 갖고 있었던 건 아닌가. 직접 작사 작곡한 노래를 준 것으로 안다.

물론 그 부분까지 부인할 수는 없겠죠. 다만 그런 마음을 가지셨더라도 저한테는 속내를 감추고 더 엄격하게 대했어요. 노래에 관해서는 워낙 철저하신 분이시잖아요. 제가 직장을 때려치고 노래 부르겠다고 형님을 찾아갔는데 처음엔 가수가 되는 걸 적극 만류하시더라고요. 그래도 고집을 피우자 노래 한번 불러보라고 시키시더니 '너는 지금 노래를 하는 게 아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노래를 잘하려고 애를 쓰는데 그건 노래가 아니다, 노래는 어느 한 소절만 임팩트 있게 잘 불러내면 된다'고 빙그레 웃더라고요. 처음엔 무슨 뜻인 줄도 몰랐는데 이젠 그 의미를 알 것 같아요.

나훈아는 자신의 기획사인 아라기획을 통해 나진기의 1집 '나를 믿지마'(원제 '사랑의 불새')를 제작했다. 이렇다할 반응이 없자 2집은 그가 직접 작사 작곡한 '무'(無)를 줬다. 이 노래는 나진기가 워낙 '나훈아 스타일'로 정교하게 불러 지금도 나훈아가 직접 부른 것으로 알고 있을 정도다. 이 곡이 대중에 알려지지 못한 이유에 대해 그는 "같은 노래라도 누가 부르느냐에 따라 반응은 달라진다"면서 "형님이 심혈을 기울여 작사 작곡한 노래를 제가 흉내만 냈지 제대로 소화하지 못한 결과가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뒤늦게 홀로서기에 나선 나진기는 무조건 형님만 똑같이 따라하면 스타가 되는줄 알았다고 했다. 그는 외모부터 창법, 구강구조(치열)까지 친 사촌형인 나훈아를 쏙 빼닮았다. /더팩트 DB
뒤늦게 홀로서기에 나선 나진기는 "무조건 형님만 똑같이 따라하면 스타가 되는줄 알았다"고 했다. 그는 외모부터 창법, 구강구조(치열)까지 친 사촌형인 나훈아를 쏙 빼닮았다. /더팩트 DB

-태진아 씨가 부른 유명 트로트 곡 중에 '옥경이'라는 노래가 있다. 이 노래를 먼저 부를 뻔한 사연이 있다고 들었다.

인생도 노래도 종착점은 알 수 없다고 하잖아요. 아무리 좋은 노래라도 주인은 따로 있다고 해요. 제 경우만 봐도 너무 실감나거든요. '옥경이'는 태진아 선배가 불러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곡이지만 사실은 저한테 먼저 기회가 왔어요. (나훈아) 형님이 작곡가로부터 이 노래를 받아 저한테 주려고 했거든요. 그런데 인연이 닿지 않으려고 그랬는지, 도중에 제목도 바뀌고 가수도 바뀌었어요. '어머나'도 여러 가수들이 퇴짜를 놓은 뒤 돌고돌아 장윤정 씨가 불렀잖아요. 노래는 누가 마지막으로 불러 히트할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 같아요.

가수 태진아가 부른 '옥경이'는 1989년에 만들어진 곡으로 임종수가 작곡하고 조운파가 작사했다. 오랜 무명시절을 보낸 후에 뒤늦게 전성기를 누리게 한 태진아의 인생역전의 곡이기도 하다. 임종수 작곡가는 이 노래를 나훈아가 불러주길 기대하며 만들었고, 원래 제목도 '본듯한 얼굴'이었다. 하지만 나훈아가 자신이 부르는 대신 사촌동생 나진기에게 주려고 하자 '무명가수한테 주기는 좀 그렇다'며 꺼려하면서 옥신각신하게 됐고, 우여곡절 끝에 태진아한테 간 뒤 결국 그의 인생곡이 됐다.

-최근 내놓은 신곡 '그럽디다'의 반응이 꽤 좋은데 어떤 노래인가.

기본적으로 정통 트로트를 표방하고 있어요. 다만 이전의 '최고의 여자'(설운도 작사)에 비하면 다소 빠른 세미트로트에 가깝죠. 작곡가 겸 가수 정의송이 직접 작사와 작곡을 했는데 그분의 독특한 스타일과 곡 취향이 저와 잘 어울렸다는 얘길 많이 들어요. 곡은 이번에 처음 받았지만 훨씬 오래 전부터 인연이 있었어요. 나훈아 형님한테 귀에 못이 박히게 들은 얘기가 '가수의 첫번째 덕목은 노래를 잘하는 것'이었는데, 곡을 쓰면서 그 부분을 인정해준 것같아 더욱 자신감을 갖고 음반을 내게 됐어요.

나진기는 트로트계의 '숨은 보석'으로 불릴만큼 태생적으로 뼛속깊은 트로트 가수다. 그가 새로 선보인 '그럽디다'는 싱어송라이터 정의송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세상살이 이야기다. 정의송 특유의 서정과 감성이 담긴 유려한 멜로디로 풀어냈다. '다 그렇고 그럽디다/ 산다는 게 뭐 다 그럽디다/ 잘난 사람이나 못난 사람이나/ 다 거기서 거깁디다'. 가사에서부터 '세상의 욕심은 모두 다 부질없으니 더불어 살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다.

홀로서기는 본인 몫이다. 스스로 껍질을 깨지 못하면 알에서 나올 수 없다. 나진기는 자력으로 실력을 키워 대중의 사랑을 받으면 언젠가는 형님도 저를 인정해줄 것이란 희망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이새롬 기자
'홀로서기는 본인 몫이다. 스스로 껍질을 깨지 못하면 알에서 나올 수 없다.' 나진기는 "자력으로 실력을 키워 대중의 사랑을 받으면 언젠가는 형님도 저를 인정해줄 것이란 희망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이새롬 기자

-본명이 최진기이고, 가수활동을 하며 알려진 이름은 나진기이다. 그런데 이름을 다시 개명할 생각이라는데 무슨 얘기인가.

나훈아 형님 위로 큰형이 계세요. 큰댁에 두분과 저까지 성기-홍기-진기입니다. 모두 큰 아버님께서 손수 지어준 이름이에요. 알다시피 제 예명은 나훈아(홍기) 형님을 따라 자연스럽게 나진기로 결정이 됐고요. 처음엔 뭐든 그저 형님만 따라하면 되는 걸로 알았는데, 막상 홀로서기를 하려고보니 그게 다 걸림돌이더라고요. 충분히 공백기를 갖고 새로 시작해도 마찬가지예요. 아예 이름에서부터 이미지 변화를 주려고 합니다. 나훈아 형님과 연상되는 걸 차단하고 단절하기 위한 고육책이죠.

그가 새로 바꿀 이름은 '진기'이다. 예명으로 가져다 쓴 나훈아의 '나'를 떼내기로 했다. 본명 최진기에서 성을 뺀 이름만 차용한 또 다른 예명이다. 새 이름은 무엇보다 스스로 다시 태어난다는 상징성의 의미가 크다. 나진기는 "주변의 많은 분들한테 조언을 들은 결과 쉽게 와닿는 간결면서도 강렬하고 진취적인 이름"이라면서 "다음 신곡을 낼 때 쯤 새 이름을 쓸 생각"이라고 말했다.

대기만성형 가수를 꿈꾸는 나진기는 10여년전부터 방송 대신 언더활동을 주로 했다. 그는 가수 윤시내가 운영하는 열애(사진)에서만 8년째 고정출연중이다. /더팩트 DB
대기만성형 가수를 꿈꾸는 나진기는 10여년전부터 방송 대신 언더활동을 주로 했다. 그는 가수 윤시내가 운영하는 '열애'(사진)에서만 8년째 고정출연중이다. /더팩트 DB

나진기는 '인간극장'이나 '마이웨이' 같은 휴먼스토리를 다루는 인물다큐프로그램에는 출연하지 못 한다. 아니, 못 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 거부한다. 이미 수차례 출연제의를 받았지만 정중히 사양했다. 사촌 형님인 '가수 나훈아'의 얘기를 피할 수 없고, 자칫 누를 끼칠 수 있다는 염려 때문이다.

처음에 그는 나훈아를 닮았다는 얘기만 들어도 행복했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나훈아의 그늘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일부러 다른 창법을 구사하려 노력했다. 나훈아 스타일의 정통 트르트가 아닌 애절한 발라곡을 부르기도 했다. 그는 "현실은 생각보다 냉정했다"고 말했다.

홀로서기는 결국 본인 몫이다. 스스로 껍질을 깨지 못하면 알에서 나올 수 없다. 그는 한때 '아라기획'(나훈아의 전 소속사)의 울타리 안에 머물렀지만, 안주하지는 않았다. 그는 "자력으로 실력을 키워 대중의 사랑을 받으면 언젠가는 형님도 저를 인정해줄 것이란 희망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수년 전 필자는 나진기가 노래하는 라이브 무대(미사리 '열애')를 방문한 적이 있다. 당시 그는 "저는 비록 무명가수일지라도 형님한테 누가 될까 항상 조심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시 만난 그는 여전히 경외로움의 대상인 나훈아의 충고를 금과옥조처럼 가슴에 새기고 있었다. '때는 온다, 상상하고 꿈을 꾸면 현실이 된다.'

eel@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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