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세상을 떠난 '함중아와 양키스' 출신 가수 함중아는 투병사실을 비밀로 감추고 부산 지역에서 가수활동을 계속했다. 무대활동을 위해 주변에 입단속을 시켰다. /더팩트 DB |
'함중아와 양키스' 원조 멤버 정동권 "소주 30병 마시는 애주가"
[더팩트|강일홍 기자] 간암 투병중 1일 세상을 떠난 '함중아와 양키스' 출신 가수 함중아(67)는 5년째 투병사실을 감춘 채 가수 활동을 해온 것으로 확인됐다.
그는 5년전인 2014년 서울 강남 영동세브란스 병원에 두 차례 입원해 치료를 받았다. 이후 하지만 그는 투병사실을 비밀로 감추고 부산 지역에서 가수활동을 계속했다. 무대활동을 위해 주변에 입단속을 시켰다.
오래전부터 함중아와 친구처럼 가까이 지내온 개그맨 엄용수는 1일 오후 <더팩트>와 통화에서 "(함중아씨는) 워낙 술을 좋아하고 즐겨 마신데다 사기를 당하는 등 개인적 스트레스 때문에 건강이 악화됐다"면서 "발병 후에도 노래에 대한 열정 때문에 무대를 떠나지 못하고 몸을 혹사시킨 게 삶을 단축시킨 이유가 됐다"고 안타까워했다.
연예계 대표 애주가로 소문 난 함중아는 생전 "술을 너무 좋아해 몸이 많이 상했다"고 말했다. 그는 TV조선 '인생다큐 마이웨이'에 출연해 이런 속내를 털어놓기도 했다. /TV조선 제공 |
함중아는 10여년 전 밤무대 술집의 사업자로 활동한 적 있는데 이는 악덕업주가 처음부터 의도적으로 그를 업소 '바지사장'으로 이용하면서 고스란히 사법처리를 떠안는 피해를 봤다. 이때 그가 받은 추징금 1억원은 하루 300만원의 노역장 유치로 대신해야 했고, 경제적 육체적으로 힘든 시기를 거치며 건강이 악화되는 결정적인 빌미가 됐다.
그는 술을 좋아한 연예인 중 한명이었다. '함중아와 양키스'의 원조 멤버였던 정동권(67)은 수년전 <더팩트>와의 인터뷰에서 "함중아 씨는 엄청난 애주가여서 발동이 걸리면 하루에 소주 30병씩 마셔도 끄떡이 없을 정도였다"고 말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함중아는 젊어서 애주가로 즐겨마셨던 술이 훗날 사업을 하며 쌓인 각종 스트레스에 결국 독이 됐다.
정동권은 '함중아와 양키스'의 원조 멤버였다. 그는 함중아와 사회복지법인 펄벅재단에서 어린시절을 보낸 같은 나이의 친구 사이이면서 혼혈아다. /더팩트 DB |
함중아는 1952년 경북 포항에서 태어났다. '함중아와 양키스'의 멤버중 유일하게 순수 한국혈통이었지만, 전원 혼혈아로 구성된 '함중아와 양키스'에 합류하려는 의도에서 이 사실을 감추고 프랑스계 아버지를 둔 혼혈아 행세를 하기도 했다. 본명은 함종규다.
신중현에 의해 가요계에 발을 들여놓은 함중아는 골든 그레입스, 양키스, 초록별, 양키스 등 초창기 많은 밴드를 거쳤다.1979년 이후 그는 유행하던 뽕락(트로트+락)으로 인기가수의 대열에 올랐다. 대표곡으로는 '풍문으로 들었소' '조용한 이별' '내게도 사랑이' '안개속의 두 그림자' '카스바의 여인' 등이 있다.
그는 또 5인조 혼혈 그룹 '함중아와 양키스'의 리드보컬로 SBS 드라마 '풍문으로 들었소'의 원곡 가수로 30여년만에 조명을 받기도 했다. 드라마 '풍문으로 들었소'의 원곡은 1980년에 탄생했다.
고 함중아와 함께 활동한 정동권은 '풍문으로 들었소' 탄생에 대해 "처음 이 노래가 나왔을때 가요계 반응은 우릴 마치 정신병자 취급하듯 냉랭했다"며 시대를 앞서간 노래였다고 말했다. /더팩트 DB |
생전 그는 <더팩트>와의 인터뷰에서 히트곡 '풍문으로 들었소'의 탄생 배경에 대해 "멤버들끼리 장난삼아 흥얼거리다 즉석에서 만든 곡"이라며 "코드도 없이 오르건, 기타 등 악기를 각자 만지작 거리다 곡이 나오고, 자연스럽게 가삿말이 붙여졌다"고 말한 적이 있다.
'함중아와 양키스'의 원조 멤버 정동권은 함중아와 사회복지법인 펄벅재단에서 어린시절을 보낸 같은 나이의 친구 사이이면서 혼혈아다. 그는 "처음 이 노래가 나왔을때 가요계 반응은 우릴 마치 정신병자 취급하듯 냉랭했다"면서 "당시 트렌드에 비해 워낙 파격적이고 생소한 장르였다는 것인데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 평가를 받게 됐다"고 말했다.
eel@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