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초점] '82년생 김지영' 논란, 비판인가 테러인가
입력: 2019.10.31 05:00 / 수정: 2019.10.31 05:00
영화 82년생 김지영 관련 논란이 뜨겁지만 일주일 연속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하고 있다. /김세정 기자
영화 '82년생 김지영' 관련 논란이 뜨겁지만 일주일 연속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하고 있다. /김세정 기자

'82년생 김지영', 논란보다 뜨거운 흥행세

[더팩트|문수연 기자] '82년생 김지영'이 개봉 후 일주일 연속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다. 2016년 원작 소설이 출간되면서부터 화제의 중심에 섰던 이 작품은 영화 개봉 후 다시 한번 사회적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지난 23일 개봉한 영화 '82년생 김지영'(감독 김도영)은 2016년 10월 출간된 조남주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서른네 살 경력단절 여성인 주인공 김지영의 삶을 통해 한국 사회 여성들이 맞닥뜨린 차별과 불평등 문제를 고발하는 내용을 담았다.

사실 여기에는 문제가 될 만한 요소가 없지만 소설이 세상에 나온 후 3년간 끊임없이 각종 논란에 시달리고 있다. '82년생 김지영'의 내용은 지극히 현실적이다. 많은 이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겪고 있는 일이고, 뉴스에서 숱하게 다뤄졌던 이야기이기도 하다. 출산과 육아로 인한 경력 단절과 승진 불이익, 육아와 가사의 부담감, 직장 내 성희롱, 가족 구성원의 방관 등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하지만 2016년 시작된 페미니즘의 대중화와 맞물리면서 여성이 받는 차별을 그렸다는 이유만으로 작품을 보지 않은 이들에 의해 '페미니즘의 상징'이라는 프레임이 덧씌워졌다. 그리고 납득하기 힘든 무차별한 공격들이 이어지고 있다.

배우 정유미는 82년생 김지영에 출연한다는 이유만으로 무차별한 비난을 받았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배우 정유미는 '82년생 김지영'에 출연한다는 이유만으로 무차별한 비난을 받았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지난해 그룹 레드벨벳 아이린은 팬미팅에서 이 책을 읽었다고 밝혔다가 일부 남성 팬들의 비난을 받았다.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아이린의 사진을 불태우는 '인증 사진'이 올라오기도 했다. 또 그룹 소녀시대 수영이 리얼리티 프로그램 '90년생 최수영'을 공개하면서 "'82년생 김지영'을 읽고 "여자라는 이유로 부당한 것들을 나도 모르게 견디고 있었다고 깨달았다"고 말해 뭇매를 맞았다.

이 사건을 시발점으로 '82년생 김지영'은 역주행해 베스트셀러 1위에 다시 올라섰고, 이후 9년 만에 나온 밀리언셀러 소설이 되기도 했다.

지난해 9월 영화로 제작되는 '82년생 김지영'에 배우 정유미와 공유가 캐스팅됐다는 보도가 나왔다. 온라인상에는 비난이 들끓었고, 정유미의 인스타그램에는 악성 댓글이 폭주했다. 심지어 "영화화를 막아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까지 등장했고, 제작 전부터 일부 누리꾼들은 영화를 보지도 않고 혹평하는 댓글을 달았다.

82년생 김지영에 일부 남자들의 평점 테러가 이어지고 있다. /네이버 영화 캡처
'82년생 김지영'에 일부 남자들의 '평점 테러'가 이어지고 있다. /네이버 영화 캡처

개봉 후에는 일명 '평점 테러'가 이어졌다. 네이버 영화 사이트를 보면 10월 30일 기준, 이 작품에 남자들은 평균 2.51점(10점 만점)의 점수를 매겼다. 반면 여자들의 평균 점수는 9.52점이었다. 이뿐만 아니라 일부 누리꾼들은 영화에 없는 대사를 명대사 코너에 등록하며 영화를 조롱하고 있다. '가짜 명대사'들은 온라인상에서 확산되며 더 큰 비난을 받고 있다.

영화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낸 스타들도 화살을 피하지 못했다. 영화 개봉 전날 가수 겸 배우 수지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우리 모두의 이야기"라는 글과 함께 영화 포스터를 올렸다가 악플 세례를 받았다. 최우식, 유아인 등 남자 배우들도 관련 글을 올린 후 수지 만큼은 아니지만 지적을 받았다.

정당한 이유 없는 공격이 이어지자 반대 의견을 가진 누리꾼들의 목소리도 더욱 높아지면서 갈등은 심화하고 있다. 사회 제도와 관념에 의해 억압된 여성의 권리 및 기회의 평등을 주장하는 페미니즘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비난만을 일삼는 이들에게 일침을 가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성별 가사분담률, 남녀 임금 격차, 임신·출산·육아로 인해 급감한 여성 경제참여율, 여성 대상 범죄율 등 객관적인 지표를 들이밀며 사회에서 보편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불합리함을 꼬집고, 이러한 내용이 '82년생 김지영'에 녹아 있다고 주장한다.

82년생 김지영을 두고 젠더 갈등이 심화하고 있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82년생 김지영'을 두고 젠더 갈등이 심화하고 있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이러한 상황에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더팩트>와의 통화에서 "영화를 본 분들이라면 '평점 테러'를 할 만한 영화가 아니라 가족들과 같이 볼 영화라는 걸 알 거다. 그런 걸 인지한 분들은 오인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젠더(gender, 성) 관점을 담은 영화인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과 상관없이 우리 시대 가족의 모습, 달라져야 할 가족의 모습을 중점적으로 봐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영화다. 작품을 보지 않고 얘기하는 선입견을 버리고 봐도 좋을 듯하다"라고 덧붙였다.

'82년생 김지영'으로 심화된 젠더 갈등이 아쉬운 이유는 페미니즘의 정확한 개념을 이해하지 못한 채 영화를 보지도 않은 이들의 무차별 폭격에서 논란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그저 감정에 호소하며 정확한 근거 없는 말들로 사회의 문제점을 꼬집는 이들에게 비난을 퍼부으며 소설, 영화를 헐뜯는 이들과의 싸움은 끝난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82년생 김지영'에 대한 갑론을박이 연일 뜨거운 가운데 영화는 지난 29일 4만 8321명의 관객을 동원하면서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다. 현재까지 누적관객수는 141만 1220명으로, 손익분기점인 160만 명을 가뿐하게 돌파할 것으로 보인다.

munsuyeon@tf.co.kr
[연예기획팀 | ssent@tf.co.kr]

발로 뛰는 <더팩트>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카카오톡: '더팩트제보' 검색
▶이메일: jebo@tf.co.kr
▶뉴스 홈페이지: http://talk.tf.co.kr/bbs/report/write
- 네이버 메인 더팩트 구독하고 [특종보자▶]
- 그곳이 알고싶냐? [영상보기▶]
AD
인기기사
실시간 TOP10
정치
경제
사회
연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