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일홍의 연예가클로즈업] 김흥국 "고통의 굴레를 이젠 벗고 싶다"
입력: 2019.10.30 05:00 / 수정: 2019.10.30 05:00
누굴 탓하겠습니까, 다 제 불찰이지요. 김흥국은 푸근한 이웃집 아저씨 같은 이미지로 대중적 사랑을 받았지만 이런 저런 구설과 논란을 피하지 못했다. /김세정 기자
"누굴 탓하겠습니까, 다 제 불찰이지요." 김흥국은 푸근한 이웃집 아저씨 같은 이미지로 대중적 사랑을 받았지만 이런 저런 구설과 논란을 피하지 못했다. /김세정 기자

'무고' 여성 A씨 상대 손배소 "더이상 논란 원치 않는다" 항소 포기

[더팩트|강일홍 기자] 김흥국 하면 '59년'이라는 단어와 쉽게 매칭되는 가수다. 그의 히트 곡 '59년 왕십리'와 연결된 상징성 때문인데 실제로 그는 59년생이고, 베이비부머 대표 세대이기도 하다. 82년 데뷔한 이후 그가 37년 가수활동을 하며 부른 노래 중 대중이 기억할 만한 곡은 겨우 열 손가락안에 꼽는다. 소위 히트곡으로 꼽히는 곡은 이중에서도 '호랑나비' 까지 달랑 두 곡뿐이다.

히트곡이 많지 않아도 그는 가수로 누구보다 화려한 조명을 받으며 절정의 인기를 누렸다. 89년 '호랑나비'의 열풍이 일면서 일약 스타가수로 부상했고, 2년 뒤인 91년 '59년 왕십리'로 김흥국의 시대를 열었다. '콧수염 가수'로 각인되기 전까지는 평범했지만, 뜨고나니 표정 하나 제스처 하나까지 달랐다. 비틀거리는 호랑나비 춤은 엉겁결에 탄생했지만 그만의 기지와 위트로 사랑을 받았다.

김흥국은 미투논란 이후 모든 방송활동을 중단했다. 뒤늦게 억울함이 밝혀졌지만 이미 모든 걸 다 잃었다. 최근 SBS플러스 밥은 먹고 다니냐로 18개월 만에 방송에 복귀했다. /SBS플러스 제공
김흥국은 '미투논란' 이후 모든 방송활동을 중단했다. 뒤늦게 억울함이 밝혀졌지만 이미 모든 걸 다 잃었다. 최근 SBS플러스 '밥은 먹고 다니냐'로 18개월 만에 방송에 복귀했다. /SBS플러스 제공

한때 '개그맨보다 더 웃긴 가수'로 승승장구하다 '미투논란'으로 좌절

배우는 카메라 앞의 연기로, 가수는 무대 위에서 노래로 존재감을 갖는다. 가요계에서 차지하는 가수의 위상은 히트곡 수와도 무관할 수 없지만, 김흥국은 뛰어난 가창력을 가진 가수보다는 예능적 끼와 익살로 주가를 올렸다. 그만큼 김흥국은 가수 외적 요소를 많이 갖고 있는 가수다. 대중적 시선을 받는 인지도와 명성으로만 보면 그는 다분히 예능인에 친숙한 멀티 엔터테이너인 셈이다.

이런 이미지는 그가 90년대 최고 인기 예능으로 군림한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게스트로 출연하면서 굳어졌다. '심하다 심해' '거의 나의 독무대야' '앗, 응애예요' 등의 유행어를 만들어내며 한때 '개그맨보다 더 웃긴 가수'로 선정되기도 했다. 여세를 몰아 박미선과 함께 진행을 맡은 '특급작전' 등으로 MBC 연기대상 라디오부문 우수상(96년)을 수상하며 끝없는 예능 입담을 과시했다.

김흥국이 갖고 있는 또 하나의 대중 이미지는 축구 사랑이다. 그는 2002년 월드컵을 전후해 가수보다 축구인으로 더 인정받는 전국민적 호감도를 끌어올렸다. '2002 월드컵 한국유치'를 기원하는 이벤트(5시간 동안 2002배)에 도전하고, 2010년엔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이 남아공 월드컵 16강에 진출하면 콧수염을 깎겠다'고 약속한 뒤 30년을 길러온 콧수염을 처음으로 깎기도 했다.

김흥국은 2002년 월드컵을 전후해 가수보다 축구인으로 더 인정받는 전국민적 호감도를 끌어올렸다. 사진은 2014년 정몽준 전 대한축구협회장 둘째딸 결혼식 당시. /남윤호 기자
김흥국은 2002년 월드컵을 전후해 가수보다 축구인으로 더 인정받는 전국민적 호감도를 끌어올렸다. 사진은 2014년 정몽준 전 대한축구협회장 둘째딸 결혼식 당시. /남윤호 기자

억울함은 풀렸지만…김흥국 "누굴 탓하겠습니까, 다 제 불찰이지요"

대중 스타는 올라서기보다 그 자리를 유지하는 일이 훨씬 더 힘들다. '예능 치트키' '흥궈 신' 등으로 불리며 만능 엔터테이너로 활약해온 김흥국도 이런 저런 구설과 논란을 피하지 못했다. 한나라당 정몽준 의원의 총선을 지원했다는 이유로 MBC에서 퇴출당한 뒤 1인 시위(2011년 6월)를 벌였고, 이듬해 3월엔 중국대사관(서울 효자동) '탈북자 강제북송 반대시위'로 이슈에 중심에 섰다.

그를 무너뜨린 '결정타'는 역시 미투논란이다. 승승장구하던 그에겐 날벼락이었다. 30대 여성 A씨는 보험설계사 출신 미용사로, 이미 또다른 남성 B씨와 C씨에게 결혼을 전제로 금품을 갈취한 혐의를 받고 2017년부터 병합 수사를 받던 중이었다. 김흥국과는 2016년 지인들이 함께한 자리에서 처음 만난 뒤 2년 후인 지난해 3월 갑자기 '성폭행'을 주장하며 소송을 냈다. 결과는 무혐의였다.

김흥국은 최근 A씨를 상대로 낸 손배소 항소를 포기한 뒤 "민사소송은 최소한의 자존심 때문이었지 금전적 이유가 아니다"면서 "이 지긋지긋한 지옥에서 이젠 벗어나고 싶다"고 심경을 밝혔다. 억울함은 풀렸지만 김흥국은 이미 모든 걸 다 잃었다. 그는 연예계 대표 불자 연예인으로, '미투'에 휘말린 뒤 자주 산사를 찾아 마음을 달랬다고 한다. "누굴 탓하겠습니까, 다 제 불찰이지요."

eel@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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