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본 '리듬파워'] '힙알못'에게 침투한 방사능 같은 매력
입력: 2019.09.28 07:00 / 수정: 2019.09.28 07:00
리듬파워(보이비, 지구인, 행주)가 9년만의 정규앨범 프로젝트 A를 발표했다. /아메바컬쳐
리듬파워(보이비, 지구인, 행주)가 9년만의 정규앨범 '프로젝트 A'를 발표했다. /아메바컬쳐

정제되지 않은 스타는 어떤 모습일까. 요즘 연예계는 스타도 많고, 연예 매체도 많다. 모처럼 연예인 인터뷰가 잡혀도 단독으로 하는 경우도 드물다. 다수의 매체 기자가 함께 인터뷰를 하다 보니 대부분의 내용이 비슷하다. 심지어 사진이나 영상도 소속사에서 미리 만들어 배포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더팩트>는 순수하게 기자의 눈에 비친 그대로의 스타를 '내가 본 OOO' 포맷에 담아 사실 그대로 전달한다. <편집자 주>

리듬파워가 건넨 현실적이고 진중한 메시지

[더팩트|김희주 기자] 힙합. 음원 차트에서도 아이돌 노래만 쏙쏙 골라듣는 기자에게 이처럼 진입장벽 높은 장르가 있을까. 힙합 가수를 꼽으라면 한참을 머뭇거린 뒤 G-dragon(지드래곤), Jay Park(제이 박), Simon. D(사이먼 디), Do.k2(도끼), Beenzino(빈지노)와 같은 알파벳 가득한 이름 몇 개를 늘어놓고 말문이 막히는 '힙알못'(힙합을 잘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힙합이란 늘 '그들이 사는 세상' 속 사람들의 전유물처럼 느껴졌다.

불만이 차 있는 듯한 강한 어투, 이해할 틈도 없이 빠르게 쏟아내는 가사, 보는 사람마저 움찔거리게 만드는 성난 표정과 제스처. 표면적인 면면만 보고 무대 위 래퍼들에게 선입견과 위화감을 껴안던 '힙알못'의 인생에 변화구를 던진 세 남자를 만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6AM은 일반적으로 가질 수 있는 잔잔한 새벽 감성이 아닌, 새벽까지 고군분투했만 소득 없이 클럽을 나와 소주잔을 기울이는 씁쓸한 패잔병들의 감성을 담아낸 반전 있는 곡이다. /아메바컬처
'6AM'은 일반적으로 가질 수 있는 잔잔한 새벽 감성이 아닌, 새벽까지 고군분투했만 소득 없이 클럽을 나와 소주잔을 기울이는 씁쓸한 패잔병들의 감성을 담아낸 반전 있는 곡이다. /아메바컬처

지난 20일 서울 마포구 한 카페에서 힙합 그룹 리듬파워의 첫 정규앨범 '프로젝트 A(Project A)' 발표 라운드 인터뷰가 열렸다. 입장하며 받은 프레스키트 속 '드레이크' 자메이카 리듬' '러브넘버' '올드스쿨' '그라임' 등 생소한 용어에 막막함을 느낄 때쯤 이름부터 친숙한 세 명의 주인공 행주, 지구인, 보이비가 등장했다.

이때부터 리듬파워의 친근함 가득한 생활밀착형 인터뷰가 진행됐다. 더불어 힙합이라는 장르에 관한 선입견이 깨지는 역사적 순간도 시작됐다.

먼저 보이비는 타이틀곡 '6AM'에 관해 "홍대로 치면 광X포차, 신사로 치면 더X집과 같은 술자리 막 자리 느낌의 노래다"라고 운을 뗐다. 앨범 설명에 포함된 '드레이크가 많이 시도하는 자메이카 리듬에 영국 특유 바운스가 섞인 것이 특징'라는 문구보다 백 번 천 번 빠르게 체감되는 명쾌한 설명이었다.

리듬파워는 쇼미더머니 비디오스타 킬빌 등 다수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Mnet 쇼미더머니 방송 캡처, MBC every 1 비디오스타 방송 캡처 MBC 킬빌 방송 배처
리듬파워는 '쇼미더머니' '비디오스타 '킬빌' 등 다수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Mnet '쇼미더머니' 방송 캡처, MBC every 1 '비디오스타' 방송 캡처 MBC '킬빌' 방송 배처

이어 보이비는 또 한 번 무릎을 탁 칠 만큼 공감이 가는 설명을 내놨다. 그는 "작년 이맘때쯤 사귀던 여자친구가 '나 클럽에서 놀아도 돼?'라고 묻길래 쿨하게 '놀아~나는 일할게'라고 대답했는데 막상 전화를 끊고 나니 일이 손이 잡히지 않더라. 겉으로는 멋있는 척했는데 사실 속으로는 전혀 그렇지 않은 그 설명하기 힘든 기분, 그 감정으로 초안을 작업했다"고 고백했다.

한 기자가 "지금은 그 여자친구와 헤어졌냐"고 농담 섞인 질문을 하자 그는 웃으며 "맞긴 한데, 그 일 때문에 헤어진 건 아니다. 제가 아는 게 전부가 아닐 수도 있지 않을까, 상대방에게도 어떤 잘못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라고 의미심장하게 대답해 현장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프로젝트 A'는 10대 고등학교 재학 당시 처음 만나 20대를 함께 보내고 이제 30대가 된 리듬파워의 성장한 가치관과 생각, 상황이 그대로 담긴 앨범이다. 행주는 "지금 딱 떠오르는 점은 조금 지질함이 묻어 나왔던 예전에 비해 우리 음악이 '쿨'해진 것 같다. 나이를 먹는다는 건 그런 것 같다. 같은 표현도 방식이 달라지고 가사로 드러나는 점 말이다"라고 설명했다.

리듬파워는 우리만의 정체성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싱글보다 정규 앨범이 적합했다고 고백했다. /아메바컬처
리듬파워는 "우리만의 정체성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싱글보다 정규 앨범이 적합했다"고 고백했다. /아메바컬처

지구인도 포장 없이 있는 그대로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그는 "20대에는 되고 싶은 사람과 미래를 정해놓고 그것을 쫓았다. 동적인 사람이 되고 싶어서 책 보는 행동이 속된 말로 '간지'가 떨어진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 30대가 됐고 저의 어렸던 생각이 바뀌게 됐다"고 고백했다.

9년 만에 처음으로 정규앨범을 발표하는 감회를 묻자 의외의 솔직한 말로 운을 뗐다. 행주는 "정규라고 해서 특별하게 포장해서 설명하고 싶지 않다. 저희가 '쇼미더머니'로 각각 유명세를 얻고 개별 활동을 한 뒤 처음으로 뭉쳐 발표하는 앨범이기에 '정규'라는 타이틀을 붙일 정도로 소중했다"고 밝혔다.

보이비 또한 "지금 음원시장이 싱글 위주로 돌아가고 있으나, 저희끼리 모은 결론은 '리듬파워'로서 정체성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싱글보다 앨범이라는 결과물이 적합하다'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리듬파워는 프로젝트 A로 생존과 발전을 얻고 싶다고 대답했다. 첫 정규이지만 부담감을 내려놓자 일사천리로 만들어진 앨범이기에 소중하다고 고백했다. /아메바컬처
리듬파워는 '프로젝트 A'로 '생존과 발전'을 얻고 싶다고 대답했다. 첫 정규이지만 부담감을 내려놓자 일사천리로 만들어진 앨범이기에 소중하다고 고백했다. /아메바컬처

방사능이라는 전 그룹명과 리듬파워라는 현 그룹명에 얽힌 비화도 공개했다. 지구인은 "2005년 대학 강의에서 '방사능 물질은 어디에도 침투할 수 있다'는 교수님의 말을 듣고 '내 랩 네임으로 해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얼마 후 고등학교 동창들끼리 속초로 여행을 떠나는 버스에서 이 이야기를 했더니 행주가 '팀 이름으로 괜찮네!'라고 말해서 팀 이름으로 됐다. 저는 영어 이름보다는 한글 이름을 쓰고 싶었는데 어쩌다 '지구인'이 됐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고등학생 재학 시절부터 10년 넘게 인연을 유지하고 있는 세 사람의 우정에 감탄하며 "해체할 뻔한 적은 없었냐"는 물음에 이들은 일단 웃음부터 터트렸다. 보이비는 "싸운 적은 몇 번 있었고 사이가 안 좋았던 적도 당연히 있는데, 저희는 일단 음악 활동을 하는 팀이기에 해체보다는 절교에 가깝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음악을 하는 경우에는 선택권이 저희에게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음악을 그만둬도 저희는 해체하지 않겠다"고 자신했다.

마지막으로 이들은 앞으로의 활동 방향과 계획을 밝히며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이들은 모두 입을 모아 "이번 앨범으로 얻고 싶은 것은 '생존과 발전'이다. 첫 정규이니만큼 부담감도 컸지만 그 부담을 내려놓으면서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대중들이 우리를 개별로서가 아닌 팀으로 인식하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힙합이라는 거창해 보이는 장르 속 세 남자가 10대부터 지켜온 음악적 가치관과 세계관은 진정성 넘쳤다. 자신이 하고 싶은 말, 지키고 싶은 소신, 그리고 자기와 같은 청춘들에게 건네고 싶은 솔직한 메시지.

이 소소하지만 힘 있는 생각들을 어렴풋하게나마 느꼈고, 인터뷰를 마치며 돌아가는 기자의 플레이리스트에는 첫 힙합 음악 '방사능'이 추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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