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일홍의 스페셜인터뷰<55>-김철민] '폐암 말기 삶', 그래도 여전한 '희망 천사'
입력: 2019.09.15 00:00 / 수정: 2019.09.15 00:00
몸은 힘들어도 지인들이 찾아오면 반갑고 행복해요. 한 달 전 폐암 말기 판정을 받은 김철민은 의학적 치료 대신 힐링 치유를 위해 경기 양평의 한 요양원에 머물고 있다. /경기 양평=임세준 기자
"몸은 힘들어도 지인들이 찾아오면 반갑고 행복해요." 한 달 전 폐암 말기 판정을 받은 김철민은 의학적 치료 대신 힐링 치유를 위해 경기 양평의 한 요양원에 머물고 있다. /경기 양평=임세준 기자

8월 7일 폐암 말기 판정..."기적이 있다면 대학로 공연 하고 싶다"

[더팩트|강일홍 기자] 김철민(52 본명 김철순)은 서울 혜화동에서 30년간 통기타 거리모금활동을 벌여온 주인공이다. 그래서 '대학로의 화석' 또는 '대학로의 걸어다니는 동상'이란 별칭으로 불렸다. 주말 대학로를 찾은 젊은 청춘들은 물론 서울대 병원에 입원 환자를 둔 가족과 보호자들은 그의 노래를 들으며 희망과 용기를 얻었다.

"강 기자님, 오늘 아침에 폐암 말기 판정을 받았어요. 제 삶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고 정신없이 헤매다 이제서야 전화 드려요. 데뷔 때부터 방송국에서 만나면 늘 격려하고 다독여주셨잖아요. 언젠가는 (스타로) 떠서 보답하려고 했는데 이런 소식을 전하게 돼 죄송해요. "

김철민이 폐암 말기 판정을 받은 날은 한 달여 전인 지난 8월 7일이다. 신인시절부터 그와 호형호제하고 지낸 필자는 당일 오후 늦게 전화 한 통화를 받았다. 다른 약속을 취소하고 부랴부랴 김철민이 입원한 서울 노원구 OOO병원으로 향했다. 이미테이션 가수로 활동하다 5년 전 간암으로 사망한 그의 형 너훈아(故 김갑순)를 떠올리며 안타까움으로 마음이 더 착찹했다.

그는 지난해 음반을 냈다. 형 너훈아가 못다한 가수 꿈을 뒤늦게라도 대신하기 위해서다. 필자가 지난 5일 김철민이 머물고 있는 경기 양평의 한 요양원을 찾았을 때 그는 여전히 대학로 무대를 동경했다. 실제로 그는 스페셜인터뷰 다음 날 대학로의 한 작은 소극장 무대에 섰다. 암과 싸우며 마지막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는 김철민. 그가 걸어온 삶의 이력을 되짚으며 의미있는 시간을 두 시간 넘게 가졌다.

김철민은 필자가 한 달 전 암 진단 직후 병원에서 처음 만났을 때 어떤 상황을 맞게 되더라도 울지 않겠다고 했지만 요양원에서 다시 마주한 뒤엔 시간이 흐를수록 두렵고 무섭다고 말했다. 스페셜인터뷰는 지난 5일 김철민이 머물고 있는 경기 양평의 한 요양원에서 2시간 동안 진행됐다. /경기 양평=임세준 기자
김철민은 필자가 한 달 전 암 진단 직후 병원에서 처음 만났을 때 "어떤 상황을 맞게 되더라도 울지 않겠다"고 했지만 요양원에서 다시 마주한 뒤엔 "시간이 흐를수록 두렵고 무섭다"고 말했다. 스페셜인터뷰는 지난 5일 김철민이 머물고 있는 경기 양평의 한 요양원에서 2시간 동안 진행됐다. /경기 양평=임세준 기자

-얼마 전 동료 가수 개그맨들이 대학로에서 매우 의미있는 시간을 만들었다. 필자도 현장에서 직접 노래하는 장면을 지켜보며 가슴이 찡했다. 어떤 무대였나?

가수 김장훈 씨와 후배 박명수 김현철 등 후배 개그맨들이 저를 즐겁게 해주기 위해 일부러 모인 자리였어요. 일반인 관객분들도 많이 와주셨어요. 춤추고 노래하고, 콩트로 이어진 유쾌한 시간이었죠. 원래는 대학로 길거리에서 즉석 콘서트를 하려고 했다가 비가 와서 근처 소극장 무대로 옮긴 것인데 분위기는 오히려 좋았어요. 가장 힘들고 어려울 때 함께 해주신 모든 분들께 고개 숙여 감사드려요. 어쩌면 저한테는 마지막일지도 모를 콘서트라는 생각에 지금도 여운과 감동이 크게 남아있어요. 너무 행복한 시간이었어요.

김철민은 이날 아주 특별한 경험을 했다. MBC 출신 후배 박명수가 지난 6일 대학로 파랑새 소극장에서 자신이 출연 중인 TV조선 '엄마의 맛' 제작진과 함께 투병으로 지친 그를 위로했다. 절친 동료 개그맨들이 다수 참석했고, 그는 폐암 발병 이후 모처럼 활짝 웃었다. 앞서 지난달 24일 인천문화예술회관에서는 김철민의 치료비 모금을 위한 자선콘서트가 진행됐다. 설운도 황기순 이동준 진시몬 박구윤등 동료 연예인들이 나선 무대였다. 그가 출연해온 KBS1 '아침마당'의 신인가수 등용문 '도전 꿈의 무대' 멤버들도 가세했다.

-폐암 진단 후 20여일 정도 입원 치료를 받고 요양원으로 들어왔다. 지금 몸이 어떤 상태인가.

하루에 세 차례씩 진통제를 복용하고 있어요. 일종의 마약 성분 진통제인데 이걸 먹지 않으면 통증이 심해요. 또 1주일에 한번씩 말기 암환자한테 꼭 필요한 고가의 약을 쓰고 있어요. OOO 병원에서 4차례 방사선 치료를 한 뒤 가평 OOOO병원을 거쳐 여기 요양원으로 들어왔어요. 폐에서 간과 임파선 등 거의 온몸에 전이된 상태라 지금은 절대적 안정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오래 얘기하면 숨이 가쁘지만, 그래도 아직 체력이 남아있을 때 많은 분들을 만나고 싶어요. 지인들이 찾아오면 너무 반갑고 행복합니다.

김철민은 경기도 양평의 한 요양원에 머물고 있다. 민가와 거리를 둔 깊은 산중이다. 의학적 치료보다는 맑고 깨끗한 공기, 스트레스 없는 쾌적한 환경을 갖춘 곳이다. 필자가 그를 만나기 위해 요양원을 찾은 날은 비가 막 개인 뒤끝이어서 공기가 더욱 청량했다. 마침 황토사우나를 하고 나온 그는 "여기는 특별한 치료를 받는게 아니라 몸에 좋은 음식을 먹고 주변 산길을 걷거나 황토방에 들어가 땀을 빼는게 일과"라고 말했다.

김철민(사진 위)은 30년간 통기타 거리모금활동을 해온 주인공이다. 아래 사진은 지난달 24일 인천문화예술회관에서 김철민의 치료비 모금을 위한 자선콘서트 당시. /김철민 SNS 캡쳐
김철민(사진 위)은 30년간 통기타 거리모금활동을 해온 주인공이다. 아래 사진은 지난달 24일 인천문화예술회관에서 김철민의 치료비 모금을 위한 자선콘서트 당시. /김철민 SNS 캡쳐

-그동안 비교적 건강한 모습으로 꾸준히 무대활동을 하지 않았나. 갑작스런 암투병 사실을 듣고 모두가 놀랐다. 이상 징후를 못느꼈나?

어리석게도 전혀 낌새를 못 차렸어요. 암 진단 한 달 전부터 허리가 아프긴 했는데 첨엔 그냥 담에 걸렸다고 생각했어요. 늘 기타를 메고 다녔기 때문에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고, 술을 먹으면 며칠간 괜찮길래 설마했어요. 그런데 너무 아파서 정형외과를 갔다가 암소견 진단을 받았고, 암치료 전문병원의 정밀진단을 통해 폐암 말기의 청천병력 같은 통보를 받았어요. 지금은 모두 운명으로 받아들이기로 해 담담합니다만, 어리석게도 암이 허리 뼈에 전이돼 통증이 올 때까지 몰랐어요.

김철민은 "가족력이 있어서 30년 전부터 담배를 끊고 조심했는데 아마도 오랜 시간 길거리 공연을 하며 매연을 마신 게 하나의 원인이 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부모님은 폐암으로, 큰형과 둘째 형은 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필자가 한달전 암 진단 직후 병원에서 처음 만났을 때 그는 "어떤 상황을 맞게 되더라도 울지 않겠다"고 했지만 이날 요양원에서 마주한 뒤엔 "시간이 흐를수록 두렵고 무섭다"고 말했다.

-암 투병 사실이 언론에 공개된 이후 많은 온정의 손길이 쏟아졌다고 들었다.

너무 감사하고 죄송해요. 정말 수많은 분들이 저를 위로해주셨어요. 연예인으로 오래 활동했지만 존재감 없이 살다보니 저는 동료 선후배님들한테 한번도 제대로 기여한 게 거의 없거든요. 힘들 때는 늘 외토리라며 체념하곤 했는데 그게 아니라는걸 알고 솔직히 놀랐습니다. 제가 더이상 아무 것도 해드릴 게 없는 상황을 맞고나서야 그걸 깨달았어요. 일반인 후원자 분들도 2000명이 넘어요. 아낌없이 온정을 베푸신 그 많은 분들께 저는 어떻게 보답해야할까요. 마지막 순간까지 감사의 마음을 잊지 않겠습니다.

유재석 이영자 유해진 이승철 진시몬 박명수 엄용수 이원승 황기순 김대훈 황우연 조세호 김학도 김만기 김주철 공성수 정성호 김광해 양철수 문천식 고명환 한승기 등이 그를 찾았다. 한솥밥을 먹으며 동고동락한 선후배 개그맨들 뿐만이 아니었다. 소리 소문없이 거액을 맡기고 간 몇몇 배우와 가수들은 25년 넘게 연예계 생활을 하며 한번도 마주친 적이 없다. 투병 기사를 본 일반 독지가들은 십시일반 그의 계좌에 후원금을 보냈다. 그는 "그 분들한테는 큰 빚을 진 것같은 심정"이라고 했다.

연예계 동료들은 소리 소문없이 그에게 위로금을 전달했다. 일반인들도 십시일반 그의 계좌에 후원금을 보냈다. 사진은 이달초 유재석 조세호 등이 그가 머물고 있는 요양원을 방문했을 당시. /김철민 SNS 캡쳐
연예계 동료들은 소리 소문없이 그에게 위로금을 전달했다. 일반인들도 십시일반 그의 계좌에 후원금을 보냈다. 사진은 이달초 유재석 조세호 등이 그가 머물고 있는 요양원을 방문했을 당시. /김철민 SNS 캡쳐

-7080 개그 세대로는 막내라고 할 수 있다. 선후배들 틈바구니에 끼어 혹시 손해를 봤다는 생각은 들지 않나?

데뷔할 무렵에는 '유머1번지'나 '웃으면 복이와요' 같은 콩트 코미디가 슬슬 물러나던 시기였어요. 트렌드가 바뀌는 과도기라 대선배들도 우왕좌왕해 저 같은 신인들은 설 무대가 없었죠. 제대로 바통을 이어받지 못한 상태에서 쇼 코미디와 개그콘서트 형태로 급변했으니까요. 어느쪽에서도 덕을 보지 못하고 희생만 강요받는 경우를 '낀 세대'라고 하잖아요. 주춤하는 사이 화려한 언변과 다양한 주특기를 가진 후배들이 우릴 건너 뛰었어요. 저처럼 90년대 중반에 데뷔한 개그맨들이 대부분 비슷한 과정을 거친 것같아요.

김철민은 80년대 후반부터 기타를 치며 대학로에서 노래를 부르다 94년 MBC 개그공채 5기로 정식 입문했다. 7080 개그맨 마지막 세대다. 연예계와 인연을 맺게 된 계기도 개그맨 고 김형곤의 코미디클럽 무대에 서면서다. 데뷔 직후 SM엔터테인먼트에 소속돼 반짝 주목을 받았지만 동기들에 비해 지속적으로 두각을 내지 못했다. 개그 트렌드가 개콘 스타일로 급속히 재편되면서 설 자리를 잃고 다시 대학로 무대로 돌아갔다. 선배 개그맨 고 김형곤의 코미디클럽 무대에도 자주 섰다.

-최근까지도 예능프로그램에서 노래와 개그를 접목한 통기타 개그를 선보이지 않았나. 소망이 있다면 말해달라.

의학적으로 완치된다는 건 불가능이라고 합니다. 기적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있을 수 없는 일인거죠. 다만 조금이라도 호전이 되고, 더이상 악화되지만 않는다면 일주일에 한번만이라도 대학로 빨간 벽돌담 앞에서 기타 치며 노래하고 싶어요. 그런 기회가 다시 주어지리라고 믿지는 않습니다만 저의 마지막 소망입니다. 이제 남은 시간들은 모두 저 아닌 다른 분들을 위해 기도하며 살기로 했어요.

김철민은 폐암 진단 이후 급격히 몸이 쇠약해졌다. 가족력에 의한 불가항력(시한부)을 숙명처럼 받아들여야한다는 사실이 그를 더 힘들게 했다. 하지만 마지막 희망까지 포기하지는 않는다는 각오다. 몸이 불편한 가운데서도 최근 두 차례 콘서트 무대에 오른 것도 뒤늦게나마 자신을 기억하는 모든 이들에게 최소한의 보답을 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5년전 '내가 못다한 진짜 가수 꿈을 꼭 이뤄달라'는 형 너훈아의 마지막 말에 따라 지난해 생애 첫 음반 '괜찮아'를 내고 가수로 활동해왔다.

김철민은 가족력에 의한 불가항력(시한부)을 숙명처럼 받아들여야한다는 사실이 가장 힘들었다고 했다. 부모님과 두 형 모두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경기 양평=임세준 기자
김철민은 "가족력에 의한 불가항력(시한부)을 숙명처럼 받아들여야한다는 사실이 가장 힘들었다"고 했다. 부모님과 두 형 모두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경기 양평=임세준 기자

아무리 착하고 순수하게 살아도 도드라지지 않으면 묻힐 수밖에 없는 게 세상 인심이다. 연예계라고 다르지 않다. 유명하지 않으면 무시되는 경우가 더 많다. 김철민은 연예인으로 늘 언저리 삶을 살았다. 인기가 서열이 되고 존경의 척도가 되는 상황을 숱하게 겪고 경험했다. 데뷔 25년, 그에게는 늘 몸에 밴 겸손이 먼저였다.

막다른 골목에 내몰리면 작은 희망의 불씨, 하다못해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다. 누군가의 한 마디 위로와 격려에도 고맙고 행복하다. 김철민은 길거리에서 30년간 기타공연을 하며 묵묵히 자기 길을 걸었다. 그는 "누군가 단 한명이라도 저를 통해 위로가 됐다면 그것으로 저는 행복하다"고 말했다.

"개그지망생들에서 재수생, 일자리를 찾아 거리로 나선 분들, 병원에 입원한 환자분들의 가족 등 저를 지켜본 수많은 분들의 선한 눈빛이 지금도 기억이 생생합니다. 제가 대학로를 떠나지 못했던 이유죠. 이젠 거꾸로 그분들이 저에게 희망을 주십니다. 어떤 이들은 제 소식을 듣고 '꼭 완쾌되시길 기원한다'며 몇만원씩 보내시더라고요. 당시엔 1000원짜리 한 장이 없어 모금에 참여하지 못할 만큼 힘드셨던 분들이죠."

김철민은 동료들이 자신을 위로하기 위해 준비한 '깜짝 콘서트'에 참석해 관객들에게 엎드려 큰절을 올렸다. 그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게 용기를 주신 모든 분들에게도 일일이 연락해 감사의 인사를 직접 전하고 싶다"고 했다. '말기 암'과 싸우는 극단의 상황에서도 그는 끝까지 편안한 미소를 잃지 않았다. 필자의 눈엔 여전히 반짝이는 '희망 천사'였다.

eel@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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