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일홍의 스페셜인터뷰㊿-진성] 40년 무명 담금질로 빚은 '혼의 목소리'
입력: 2019.08.11 00:00 / 수정: 2019.08.11 17:34
한(恨)과 깊은 울림의 목소리를 가진 가수. 진성은 수십년 무명생활을 거쳐 트로트계가 인정하는 중후하고 묵직한 스타가수로 당당히 자리매김했다. /임영무 기자
한(恨)과 깊은 울림의 목소리를 가진 가수. 진성은 수십년 무명생활을 거쳐 트로트계가 인정하는 중후하고 묵직한 스타가수로 당당히 자리매김했다. /임영무 기자

'안동역에서' 인생곡..."시련과 고난도 내겐 축복"

[더팩트|강일홍 기자] 진성(59 본명 진성철)은 한(恨)과 깊은 울림의 목소리를 가진 가수다. 40년 무명생활을 딛고 일어선 그에겐 남모르는 애환도 많다. 그래서 그가 부르는 노래 중에는 유독 슬픔과 한을 되새김질하는 곡이 많다.

그는 어린 시절 부모에 대한 기억이 거의 없다. 불행하게도 양친 모두 3살때 차례대로 집을 떠나 홀로 남겨졌다. 11살 때 어머니를 잠깐 만났지만 다시 결별했다. 친척집을 전전하며 외로움과 원망, 우울함, 가슴속 증오만 남은 가슴 아픈 과거가 켜켜이 쌓였다.

일찌감치 어른들의 고뇌와 슬픔의 정서를 본능적으로 느끼며 살았다. 외토리의 유일한 친구는 노래였고, 다행히 재능은 천부적으로 타고 났다. 이미자의 '동백아가씨' '여자의 일생' '기러기 아빠' 등을 따라 부르며 막연하게나마 가수 꿈을 키웠다. 노래는 희망이자 살아갈 생계의 방편이기도 했다.

수십년 무명생활을 거쳐 그는 트로트계가 인정하는 중후하고 묵직한 스타가수로 자리매김했다. 뒤늦게 건강 적신호의 그림자로 다가온 혈액암도 거뜬히 이겨냈다. 눈물과 인고의 세월을 살아온 그의 드라마 같은 삶의 궤적을 되짚어봤다. 스페셜인터뷰는 지난 9일 서울 상암동 <더팩트> 사옥에서 2시간 동안 진행됐다.

진성은 무명 설움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에 방송사나 행사장 등에서 신인가수들을 만나면 먼저 아는 척을 하고 위로해준다고 말했다. 스페셜인터뷰는 지난 9일 서울 상암동 더팩트 사옥에서 2시간동안 진행됐다. /임영무 기자
진성은 "무명 설움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에 방송사나 행사장 등에서 신인가수들을 만나면 먼저 아는 척을 하고 위로해준다"고 말했다. 스페셜인터뷰는 지난 9일 서울 상암동 더팩트 사옥에서 2시간동안 진행됐다. /임영무 기자

-누구나 무명시절은 서럽지만 유독 오랜 기간 고되고 힘들게 살았다. 인기 대중가수로 조명을 받을수록 지난 삶이 더 극적으로 와닿을 것 같다.

말해 뭣 하겠습니까. 모든 게 다 꿈만 같죠. 10대 후반 밤무대서부터 노래를 부르기 시작해 쉰 살이 넘도록 무명이었어요. 더는 승부가 나지 않으면 장사라도 해서 먹고 살 궁리를 하던 차에 뒤늦게 히트곡이 터진 거죠. 무명설움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에 저는 신인가수들을 만나면 '동생 많이 힘들지' 하면서 등이라도 두드려주며 먼저 위로합니다. 제 삶이 말해주듯 저한테는 조금 떴다고 한가롭게 스타의식에 젖는 건 절대 어울리지 않아요.

'안동역에서'는 그에게 오랜 무명생활을 벗게 해준 인생곡이 됐다. 하지만 세상에 알려지기까지 무려 6년이 걸렸다. 2008년 첫 음반 발표 후엔 아무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스스로도 마음에 들지 않아 거의 부르지 않았다. 2014년 작사가 김병걸이 "지금 이 시기에 부르면 딱 히트할 곡"이라고 권유하자, 그는 나훈아가 부른 '어메'의 작곡자 정경천씨한테 부탁해 복고풍 리듬으로 편곡해달라고 부탁했다. 다시 부른 이 곡은 재발표한 지 불과 3개월 만에 역주행 신화를 쓰며 대박 히트를 기록했다.

-얼마 전 부산 KNN 'K트롯 골든마이크' 본선 데스매치 1라운드 특별 심사위원으로 참석했다. 저도 취재 차 당일 녹화현장에 있었지만 군더더기 없는 심사평이 인상적이었다.

가수의 근원은 노래입니다. 춤이나 율동, 비주얼을 함께 평가할 수는 있어도 일단 노래가 되지 않는다면 엄격할 수밖에 없어요. 개인적으로 저는 다른 게 좀 미흡해도 노래만 잘하면 기회를 주는 게 맞다고 생각하지만 가수를 하려는 분들 스스로 뼈를 깎는 노력으로 극복해야합니다. 취미로 부르는 아마추어들과 다르기 때문이죠. 솔직히 듣기좋은 칭찬 심사평이 훨씬 더 쉽습니다. 그런데 제 경험상 누군가 부족한 부분을 매섭게 지적해주는 게 큰 도움이 되더라고요.

진성은 불우한 어린시절 때문에 제대로 음악교육을 받을 기회가 없었다. 그는 마흔이 넘어서야 이론 공부를 시작했다. 화성학을 비롯해 작곡 편곡 작사까지 대중음악의 길라잡이 이론서인 '음악통론'을 독학으로 수십번 통독하며 터득했다. 그는 "학벌이 없다 보니 처음엔 한두 번 읽는 것만으로는 이해를 못 했다"면서 "자꾸 반복해서 정독하다 보니 20여년의 무대경험과 접목돼 저절로 저만의 음악세계가 열렸다"고 말했다. 그는 평소 음악적 깊이가 남다른 가수라는 평가를 듣는다.

가수의 근원은 노래, 일단 노래가 되지 않는다면 더 엄격할 수밖에 없어요. 진성은 지난달 말 부산 KNN K트롯 골든마이크 본선 데스매치 1라운드 특별 심사위원으로 참석했다. 심사위원장 태진아의 칭찬에 쑥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다. /부산=강일홍 기자
"가수의 근원은 노래, 일단 노래가 되지 않는다면 더 엄격할 수밖에 없어요." 진성은 지난달 말 부산 KNN 'K트롯 골든마이크' 본선 데스매치 1라운드 특별 심사위원으로 참석했다. 심사위원장 태진아의 칭찬에 쑥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다. /부산=강일홍 기자

-무명 시절을 돌이키며 "시련과 고난도 내겐 축복"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부르는 노래에 자신의 과거와 연관 지어진 사연이라도 있나?

저는 17살부터 10년 이상 남의 노래로만 무대에 섰고, 93년에야 '님의 등불'로 정식 데뷔했어요. 이후 '사랑은 장난이 아니야' '내가 바보야' 같은 노래를 불렀는데 여전히 가수로는 존재감을 내지 못했죠. 2000년대 중반 전북 부안에 행사가 있어 아버지 산소도 들를 겸 3시간 가량 먼저 내려갔어요. 산소에 막걸리를 한 잔 따라드리고 돌아서는데 아버지가 '너는 이 바닥 생활이 몇년인데 아직도 그 모양이냐'고 하시더라고요. 물론 환청이었지만 너무 생생했어요. 근데 저도 모르게 '태어난 순간부터 내 인생 태클을 건 분은 바로 당신'이라고 항변하고 말았죠.

그렇게 탄생한 노래가 바로 '태클을 걸지마'다. 진성의 유일한 자작곡(작사 작곡)이기도 하다. '어떻게 살았냐고 묻지를 마라/ 이리 저리 살았을꺼라 착각도 마라/ 그래 한때 삶에 무게 견디지 못해/ 긴 세월 방황 속에 청춘을 묻었다(중략)/ 지금부터 뛰어 앞만 보고 뛰어/ 내 인생에 태클을 걸지마'. 가삿말 하나 하나에 지나온 자신의 삶이 묻어있다. 급히 답배갑을 찢어 가사와 리듬을 메모했고, 불과 5분 만에 곡의 기본 구상이 완성됐다. 이후에도 그는 '보릿고개' '울엄마' '동전인생' 등 자신의 사연을 담은 10여곡의 노래들을 직접 작사했다.

-평소 이미지는 매우 조용하고 차분한데 실제로는 매우 사교적이라고 들었다. 가요계의 막역한 후배 김용임 씨는 '유머 감각이 남다른 분'이라고 말한다.

워낙 말수가 적어 그렇게 비치는 것 같습니다. 저는 10대시절부터 밤무대에서 노래를 불렀어요. 나이트나 카바레에 서기 위해 미성년자임을 속이고 5살을 올려 22살로 행세를 했거든요. 가수 형이나 누나들 틈바구니서 감초 윤활유 역할을 많이 했죠. 요즘도 유머 감각이 뛰어나다는 말은 많이 들어요. 김용임이나 오은주 씨는 당시 베이비 가수로 활동했는데 워낙 오래 알고지내다 보니 지금은 마치 오누이 같은 느낌이 들죠. 특히 김용임은 예나 지금이나 내가 무슨 말 한마디만 해도 웃겨 죽겠다며 깔깔거리고 웃죠.

진성은 과묵해 보이는 자신의 이미지는 불우했던 어린 날의 그림자 때문이라고 했다. 거꾸로 그가 매우 사교적이라는 부분에 대해서는 30대 시절 리어커 과일장사로 돈을 많이 번 사업가적 기질을 예로 들었다. "부자촌이던 종로구 청운동 사모님들은 당시에도 백화점 같은 데서 특급 과일만 배달해 먹었는데 불과 몇달 사이에 모두 제 단골이 됐어요. 경찰에 신고돼 쫒겨다니면서도 제대로 된 과일만 팔았거든요. 신뢰가 쌓이니 나중엔 과일 아닌 다른 생필품까지 부탁하더라고요. 노래를 포기했다면 아마 다른 사업을 했을테고 반드시 성공했으리라고 믿습니다."

진성은 노래에 대한 열정과 감성이 풍부한 가수, 나보다 상대에 대한 배려와 공감능력 높은 가수로 정평이 나 있다. 사진은 전주 JTB 톱10 제작빌표회 당시. /명엔터테인먼트 제공
진성은 노래에 대한 열정과 감성이 풍부한 가수, 나보다 상대에 대한 배려와 공감능력 높은 가수로 정평이 나 있다. 사진은 전주 JTB '톱10' 제작빌표회 당시. /명엔터테인먼트 제공

-가수는 폭발적인 히트곡을 내면 후속곡이 묻히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요즘 준비 중인 신곡이 있나?

욕심 나는 곡들이 꽤 많은데, 여러 곡들 중 우선 네 곡 정도만 신곡으로 낼 생각입니다. 기존 스타일과 분위기와 조금 다른 노래도 있어요. 나훈아 선배님이 주신 '지나야'란 곡인데요. 그동안 저는 정통 트로트를 고수해왔다고 자부하는데 처음으로 변화를 주려고요. 슬로 고고 리듬을 가미해 30~40대도 친숙하게 접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하반기까지 충분히 다듬고 준비해서 내년 초쯤 선보일 계획입니다.

-'40년 무명가수'의 꼬리표를 오히려 영광스럽게 여긴다는 얘기도 들었다. 유명해지면 과거를 덮고 싶어하지 않나.

무명시절은 길고 혹독했지만, 그 시간이 없었다면 오늘의 저도 없어요. 남들보다 그런 날들을 오래 겪었다는 게 부끄러울 일은 아니죠. 말씀드린 대로 저는 서너살 어린 나이에 가족이란 울타리에서 내팽개쳐지며 삶 자체가 고행이었어요. 그래도 낳아주신 부모님에 대한 감사한 마음까지 버린 적은 없습니다. 무명시절도 마찬가지입니다. 대중가수로 인지도가 낮았을 뿐 '대한민국 최고의 메들리가수였다'는 자부심이 있습니다.

진성은 발표곡이 많지 않은 가수다. 스스로에게 딱 공감가는 노래가 아니면 절대 부르지 않기로 유명하다. 이 때문에 데뷔곡 '님의 등불' 이후 26년간 대중에 알려진 노래는 불과 14곡(노래방 등록 기준) 뿐이다. 대신 자신의 목소리를 통해 선보인 메들리 음반곡은 수천곡(200집)에 이른다. 진성은 무명시절에도 김용임 김난영 신웅과 함께 '4대 히트 메들리가수'로 꼽힐 만큼 얼굴없는 가수로 인기를 누렸다. 그는 트로트전통가요보존회가 인정한 '길보드차트 밀리언셀러'로 수차례 등극하기도 했다.

진성은 무명시절에도 트로트전통가요보존회가 인정한 길보드차트 밀리언셀러로 수차례 등극한 바 있다. 그의 목소리를 통해 발표된 메들리 음반은 200집을 넘겼다. /임영무 기자
진성은 무명시절에도 트로트전통가요보존회가 인정한 '길보드차트 밀리언셀러'로 수차례 등극한 바 있다. 그의 목소리를 통해 발표된 메들리 음반은 200집을 넘겼다. /임영무 기자

-벌써 은퇴를 꿈꾸고 있다고 들었다. 대다수 가수는 평생 노래를 부르고 싶어한다. 은퇴를 계획하는 이유라도 있나.

네 맞습니다. 물론 지금 당장은 아니고요. 앞으로 6~7년 후 쯤이면 실행에 옮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미 20년 전부터 늘 생각해오던 것이에요. 단 한 번도 여유롭게 나를 돌아보며 살아보지 못 했어요. 인기라는 걸 얻고 나니 더욱 아등바등 시간에 쫒기며 살게 되더라고요. 무대 위에서 수많은 팬들로부터 환호와 갈채를 받는 순간엔 잠시 잊어버리지만, 돌아서면 늘 허공에 매달린 듯 허탈함이 엄습해요. 가수로서 원하는 걸 충분히 이룬 만큼 더 욕심을 내면 안된다는 생각도 들고요.

이런 결심은 확고해보였다. 진성은 9년 전 경기 고양시 덕양구 천태산 자락에 800여평의 텃밭을 마련했다. 각종 과실나무를 심고, 봄이면 고추 상추 등 채소 씨를 뿌려 키우는 게 취미가 됐다. 그는 "요즘도 스케줄을 절반으로 줄여 미리 미리 제 시간 갖는 연습을 한다"면서 "수년 뒤 완전히 은퇴하게 되면 자유롭게 살면서 남는 시간에 노래봉사도 하고 이웃을 위해 뭔가 도움 줄 수 있는 일을 해보고 싶다"고 했다.

쉰이 다 된 나이에 뒤늦게 만난 아내 용미숙 씨(오른쪽)는 하늘이 맺어준 인연이 됐다. 진성은 만나자마자 전율을 느끼듯 서로의 마음이 관통한 운명의 만남이었다고 말했다. /명엔터테인먼트 제공
쉰이 다 된 나이에 뒤늦게 만난 아내 용미숙 씨(오른쪽)는 하늘이 맺어준 인연이 됐다. 진성은 "만나자마자 전율을 느끼듯 서로의 마음이 관통한 운명의 만남이었다"고 말했다. /명엔터테인먼트 제공

진성의 목소리에는 확실한 색깔이 스며있다. 뚜렷한 성음(聲音)을 가진 불세출의 가수 배호나, 나훈아 남진과도 다르다. 가요계에서는 한(恨)을 넘어 혼(魂)이 들어있다고 평가한다. 신세 넋두리하듯 한만 푸는 게 아니라, 진성은 혼을 더해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그만의 맛깔나는 음악세계를 만들었다.

국민가요가 된 '안동역에서' 히트 원동력은 진정성있는 노랫말로 대중과 교감한 덕분이다. 첫사랑에 대한 아련한 추억을 가진 중장년층이라면 한번쯤 안 불러본 사람이 없는 불멸의 애창곡이 됐다. 최근 5년간 '내 나이가 어때서' '백세인생'과 함께 트로트 빅3 신드롬의 중심에 서 있다.

또 '보릿고개'는 고단했던 그의 인생이 고스란히 담긴 드라마 같은 이야기다. 단지 노래를 좋아하는 팬이었던 아내 용미숙 씨는 하늘이 맺어준 인연이 됐다. 아내는 그의 노래와 목소리만 듣고 진한 공감대를 느끼며 열렬한 팬이 됐고, 진성은 "만나자마자 전율을 느끼듯 서로의 마음이 관통한 운명의 만남이었다"고 말했다.

진성은 노래에 대한 열정과 감성이 풍부한 가수, 나보다 상대에 대한 배려와 공감능력 높은 가수로 정평이 나 있다. 그는 어떤 무대 어떤 상황에서도 팬들이 원하면 손을 잡아주고 인증샷을 찍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다. 자신을 향한 애정과 관심에 반드시 보답한다는 원칙을 지키기 위해서다. '초심을 잃지 않겠다'는 그의 굳은 각오와 다짐이 필자한테는 더 묵직한 중량감으로 다가왔다.

eel@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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