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4일 개봉한 영화 '나랏말싸미'가 역사왜곡 논란에 휩싸였다.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제공 |
'나랏말싸미', 역사 왜곡 논란 ing
[더팩트|박슬기 기자] 훈민정음 창제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영화 '나랏말싸미'(감독 조철현)가 역사 왜곡 논란에 휩싸였다. 세종대왕이 집현전 학자들과 훈민정음을 만들었다는 정설을 뒤로하고 신미 스님이 주체적으로 훈민정음을 만들었다는 가설을 전면에 내세우면서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영화는 영화일 뿐"이라며 역사 왜곡 논란에 반박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배급사 메가박스중앙(주) 플러스엠은 지난 24일 개봉한 '나랏말싸미'에 대해 '모든 것을 걸고 한글을 만든 세종(송강호 분)과 불굴의 신념으로 함께한 사람들, 역사가 담지 못한 한글 창제의 숨겨진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소개만 보면 세종대왕을 전면에 내세운 것 같지만, 영화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불교 승려 신미 스님이 훈민정음을 창제했다는 내용이 담겼다.
그러자 '나랏말싸미'에 반박하는 의견과 주장들이 쏟아지고 있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세종대왕이 훈민정음 28자를 창제한 해는 1443년이고, 신미라는 이름을 알게 된 것은 1446년이다.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창제한 뒤에 신미를 알게 됐다는 것이다. 영화에서 세종대왕과 신미 스님이 함께 훈민정음을 창제했다는 내용과 반대된다.
또한 영화에서는 훈민정음이 다른 나라의 글을 모방했다는 내용이 등장한다. 하지만 이는 거짓이다. 훈민정음이 창제되고 3년 동안 집현전 학자들과 세종대왕은 훈민정음 창제 원리와 해설이 담긴 '훈민정음 해례본'에서 훈민정음을 직접 만들었음을 증명했기 때문이다.
배우 박해일은 극중 신미스님 역을 맡았다.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제공 |
이 가운데서도 신미 스님이 훈민정음을 최초로 창제했다는 가설의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가설의 시작은 신미 스님이 1435년에 발간했다는 불교 고서 원각석조성보다. 훈민정음이 창제된 시기보다 8년 전에 나온 고서로, 한글로 쓰여 있다. 이를 이유로 신미스님이 최초로 훈민정음을 만들었고, 세종대왕이 이를 참고해서 반포한 게 아니냐는 주장이 나왔다. 하지만 신미스님이 썼다고 알려진 원각석조성보는 조선시대 고서가 아닌 현대에서 만들어진 위조 고서라고 알려져,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역사 이야기는 민감한 소재다. 아울러 조선시대 최고의 성군인 세종대왕의 업적을 뒤집는 듯한 내용의 '나랏말싸미'는 대중의 반발을 사기 충분하다.
이 영화를 연출한 조철현 감독의 발언도 화를 키우고 있다. 조 감독은 '나랏말싸미' 기자간담회에서 "훈민정음 창제설 중 하나의 설을 영화화한 작품"이라고 소개하면서도 "그걸 영화적으로 재구성했다는 것을 언급했지만 감독으로서 알리고 싶지 않은 문구였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조 감독의 말만 듣자면 신미 스님이 훈민정음을 만들었다는 것을 본인은 믿는다는 듯한 뉘앙스를 풍긴다. 충분한 오해의 소지가 있는 발언이다.
이로 인해 현재 '나랏말싸미'에 대한 보이콧 움직임은 물론 평점 테러도 이어지고 있다. '나랏말싸미'를 본 한 관객(s2on****)은 "영화가 시작되기 전에 이 영화는 100% 허구임을 밝힌다고 넣어야지 두루뭉실하게 훈민정음 창제에 관한 가설들 중 하나라고 한 이유는 무엇이냐"고 지적했다. 또 다른 관객 전 모(29)씨는 "역사적 배경지식이 부족한 사람은 이 영화의 내용이 사실인 마냥 믿을 수도 있다"며 "픽션임을 강조해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나랏말싸미'는 훈민정음 창제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영화로, 배우 송강호, 박해일, 고(故) 전미선 등이 출연한다.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제공 |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24일 개봉한 '나랏말싸미'는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다. 25일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 입장권 통합전산망 집계 결과에 따르면 '나랏말싸미'는 개봉 하루 동안 관객 15만 1262명을 동원, 누적 관객 17만 1350명을 기록했다. 이는 전국 1211개 스크린에서 6598번 상영한 결과다.
역사 왜곡 논란에 휩싸인 '나랏말싸미'지만 영화적 완성도는 높다는 평이다. 공기의 흐름마저 관객이 고스란히 느낄 수 있도록 섬세하게 표현한 것은 물론 세종 신미 소헌왕후 세 사람의 관계 설정이 잘 어우러졌다는 평을 받는다. 또한 담백하고, 세련되게 만들어내 몰입도를 높인다.
또한 일부 관객은 "'나랏말싸미'가 훈민정음 창제 여러 가설 중 하나를 영화화했다고 밝혔기 때문에 역사 왜곡은 아니지 않냐"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24일 영화를 본 관객 김 모(31) 씨는 "영화는 영화일 뿐"이라며 "이런 논란이 계속되면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모두가 논란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의견을 내비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랏말싸미'를 향한 반발의 목소리가 거세지고 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배우 고(故) 전미선의 유작이기 때문이다. 고인의 열연이 담긴 '나랏말싸미'가 역사 왜곡 논란으로 얼룩지면서 많은 관객의 안타까움을 자아내고 있다.
배우 전미선은 영화 '나랏말싸미'를 마지막으로 세상을 떠났다.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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