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본 '엄태구'] '카톡' 아닌 '버디버디' 같은 남자
입력: 2019.07.10 05:00 / 수정: 2019.07.10 08:45
배우 엄태구는 OCN 드라마 구해줘2로 드라마 주연 자리를 꿰찼다. /프레인TPC 제공
배우 엄태구는 OCN 드라마 '구해줘2'로 드라마 주연 자리를 꿰찼다. /프레인TPC 제공

정제되지 않은 스타는 어떤 모습일까. 요즘 연예계는 스타도 많고, 연예 매체도 많다. 모처럼 연예인 인터뷰가 잡혀도 단독으로 하는 경우도 드물다. 다수의 매체 기자가 함께 인터뷰를 하다 보니 대부분의 내용이 비슷하다. 심지어 사진이나 영상도 소속사에서 미리 만들어 배포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더팩트>는 순수하게 기자의 눈에 비친 그대로의 스타를 '내가 본 OOO' 포맷에 담아 사실 그대로 전달한다. <편집자 주>

'구해줘2'로 주연 배우로 거듭난 엄태구

[더팩트|문수연 기자] 건장한 체격에 낮은 목소리, 선 굵은 얼굴을 가진 배우 엄태구를 만나기 전 약간의 긴장감이 밀려왔다. 강해 보이는 첫인상 탓도 있었지만 '구해줘2'에서 '미친 꼴통' 역을 맡아 보여준 그의 '미친 연기' 때문에 인터뷰 분위기도 조금은 경직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에서였다. 하지만 그는 등장과 동시에 첫인상을 뒤집어놨다. 허리를 굽히며 조심스럽게 인터뷰장으로 들어오더니 작은 목소리로 수줍게 인사를 전했고, 조근조근 이야기를 이어갔다.

지난 3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프레인TPC 사옥에서 지난달 27일 종영한 OCN 드라마 '구해줘2'(극본 서주연, 연출 이권)에 김민철 역으로 출연한 엄태구를 만났다. 엄태구는 '구해줘2'가 첫 드라마 주연작이었음에도 흠잡을 데 없는 연기로 극찬을 받았다.

작품을 호평 속에 무사히 마친 엄태구는 아쉬움 가득한 목소리로 "종영해서 후련하기도 하고, 잘 끝나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지금까지 찍었던 작품 중에 여운이 가장 큰 작품인 것 같다. 월추리라는 마을이 실제로 어딘가에 있을 것 같다. 현장 분위기도 너무 좋았고 같이 한 스태프, 배우들도 너무 좋아서 더 기억에 남는다"고 말문을 열었다.

엄태구에게 '구해줘2'는 의미가 큰 작품이다. 2007년 데뷔한 그가 이 작품을 통해 12년 만에 드라마에서 첫 주연을 맡게 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구해줘'는 시즌1이 큰 사랑을 받은 만큼 시즌2에 대한 관심도 높았기에 엄태구가 부담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걱정도 잠시, 무던한 말투처럼 그는 흔들림 없이 작품에서 제 몫을 해냈다.

"처음에는 타이틀이 부담스러웠는데 촬영을 해보니 각자 맡은 부분에서 책임을 다하면 되는 거여서 제가 맡은 것에 최선을 다했어요. 촬영 횟수가 많아졌다는 것 말고는 이전 작품들과 큰 차이가 없어서 촬영에 잘 임할 수 있었어요. 연기적으로는 물론 아쉬운 부분도 있지만 그 부분은 편집, 상대 배우의 연기가 채워줬어요. 감사하고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배우 엄태구가 OCN 드라마 구해줘2 촬영 현장 분위기를 전했다. /OCN 제공
배우 엄태구가 OCN 드라마 '구해줘2' 촬영 현장 분위기를 전했다. /OCN 제공

긴 이야기를 나누지는 않았지만 몇 마디를 해보니 엄태구란 사람이 궁금해졌다. 허스키한 목소리와는 달리 조심스러운 말투로 또박또박 이야기하는 그가 낯설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김민철을 연기한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차분하고 순수한 느낌도 물씬 풍겼다. 질문에 대한 답을 할 때마다 그의 얼굴에는 수줍은 미소가 가득했고, 시선은 부끄러운 듯 종종 허공을 바라봤다. 생애 첫 라운드 인터뷰를 한다는 그는 잔뜩 긴장한 듯한 모습을 보였지만, 나지막한 목소리로 할 말은 다 하는 의외의 모습이 꽤나 인상적이었다.

"제가 낯을 많이 가리는 성격인데 지금은 조금씩 좋아지고 있는 것 같아요. 그래도 친구들이랑 있을 때는 수다도 많이 떨고 재밌는 얘기도 많이 해요. 현장에서는 선배님들이 계시면 아무래도 저절로 더 깍듯해지게 되더라고요."

하지만 예상과 달리 현장은 그렇게 딱딱한 분위기는 아니었다. 특징 있는 목소리에 왠지 놀리고 싶은 순박한 성격 때문일까. 현장에서는 엄태구 성대모사가 유행처럼 번지기도 했다. 엄태구에게 이 얘기를 꺼내자 그는 "주로 저 없을 때 하셨던 것 같다. 스태프분들이 얘기해주셨는데 우현(붕어 역) 선배님이 진짜 똑같이 따라 하신다더라"라고 말했다. 이어 과장되게 목소리를 깔더니 "제가 그렇게까지 '어-어-' 하지는 않는 것 같은데…. 그런데 다들 똑같다고 하시더라"라며 멋쩍게 웃었다.

사이비를 주제로 다룬 만큼 극 분위기는 어두웠지만 현장 분위기는 화기애애해 보였다. 특히 극 중 남매로 출연한 이솜(김영선 역)에게 엄태구는 많은 힘을 받았다. "솜이 씨가 차분하지만 밝은 성격이라 먼저 저한테 편하게 말해줘서 저도 편하게 다가갈 수 있었어요. 현장에서 제가 불편해 보이면 먼저 다가와서 '어디 불편하세요?'라고 물어봐 주고 저를 많이 챙겨줬어요. 제가 피곤해 보이면 비타민도 줬고요. 덕분에 힘내서 촬영했어요."

함께한 배우, 스태프들과의 호흡이 좋아서인지 엄태구는 유독 '구해줘2'에 대한 애정이 깊어보였다. 현장 분위기를 묻는 말에 그는 지난 시간을 떠올리며 순식간에 추억 속으로 빠져든 듯한 눈빛을 보이기도 했다. "마을 사람들이 다같이 나오는 장면을 찍을 때는 선배님들이 음식을 싸와서 나눠주기도 했어요. 마을회관에 모여서 앉아있으니까 실제 동네 식구 같더라고요. 마지막 신 찍고나서 우는 스태프도 있었는데 저도 뭉클했어요. 이번 작품 끝나고 유독 보고 싶은 마음이 강하게 드네요."

배우 엄태구는 친형인 영화감독 엄태화가 연출한 영화 가려진 시간에 출연했다. /쇼박스 제공
배우 엄태구는 친형인 영화감독 엄태화가 연출한 영화 '가려진 시간'에 출연했다. /쇼박스 제공

'구해줘2'를 통해 오랜 무명의 시간을 끝내고 빛을 보고 있는 엄태구. 조금은 느리게 걷고 있지만 본인은 자신이 걸어온 길에 대해 "굉장히 만족한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그는 "당시에는 되게 힘들었는데 돌이켜 생각해봤을 때는 감사하다"며 벌써 차기작으로 달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엄태구와 다섯 작품을 함께한 친형인 영화감독 엄태화의 생각은 어떨까. 엄태구는 "형이랑 친하지만 '재밌네' 한 마디 정도 하는 성격이다. '구해줘2'를 보고 '오늘 거 재밌다' 이렇게 문자가 왔다. 말수가 적어서 원래 형과 평소에 거의 말을 안 했는데 요즘에는 그래도 예전보다 많이 한다"고 전했다. 이에 한 기자는 "그런데 엄태구 씨 몸값이 올라서 이제 형이 캐스팅하기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고 엄태구는 "형이 부탁하면 생각해보겠다"고 농담을 던져 웃음을 자아냈다.

'구해줘2'에 4개월을 쏟은 만큼 촬영이 끝나면 하고 싶은 일도 많았을 것 같았다. 하지만 엄태구는 종영 후 "엄마랑 강아지 데리고 산책도 하고 잠도 많이 잤다. 친구들 만나서 이야기도 많이 했다"고 평범한 근황을 전했다. 그는 평소에도 주로 이렇게 시간을 보낸다고 했다. 기독교 신자인 그는 일요일은 물론 수요예배, 금요예배까지 참석하고, 쉴 때는 산책하거나 집에서 쉬며 하루를 보낸단다. "술은 몸에 받지도 않고 쓰고 맛도 없다. 종방연에서도 사이다를 너무 마셨다"는 그에게는 '바른 생활 사나이'라는 말이 잘 어울렸다.

배우 엄태구가 반전 있는 실제 성격을 보여줬다. /프레인TPC 제공
배우 엄태구가 반전 있는 실제 성격을 보여줬다. /프레인TPC 제공

하지만 팬들은 베일에 싸인 그의 일상이 궁금하지 않을까 싶어 SNS를 하지 않는 이유를 물었다. 돌아오는 대답에 기자들은 순간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더니 이내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엄태구는 "특별한 이유는 없다. 시작을 안 해봐서 뭔가를 올린다는 게 쑥스럽다. 버디버디가 끝인 것 같다"며 "아, 싸이월드도 고등학생 때 했다"고 말했다.

스마트폰도 사용한 지 3년 정도 됐다는 엄태구. 하지만 '카카오톡'은 설치가 안 되어있다고 말했다. 같은 날 인터뷰를 진행한 김영민(성철우 역)은 '구해줘2' 배우들의 단톡방이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 이야기를 전해주자 엄태구는 "있는지도 몰랐다"고 놀란 표정을 지어 인터뷰장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작품에서의 모습과는 다른 엄태구의 반전 매력을 혼자만 알기는 아까워 그에게 예능 출연 계획을 물었다. 하지만 그는 숫기 없는 성격 탓에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였고 기자들은 급기야 여러 프로그램을 추천하기 시작했다. 먼저 혼자 산다는 그에게 '나 혼자 산다'를 추천하자 그는 섣불리 대답하지 못 하며 자신감 없는 모습을 보였다. 이에 한 기자는 "부끄러움이 많으니 얼굴을 가리고 나오는 '복면가왕'은 어떻겠냐"고 물었고 엄태구는 말없이 강하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어 다시 한번 웃음을 안겼다.

엄태구의 매력이 더 많은 이들에게 알려지길 바라는 염원을 하던 중 어느새 인터뷰를 마칠 시간이 다가왔다.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한 후 퇴장하던 엄태구는 출구로 향하는 순간까지 "조심히 들어가세요"라며 꾸벅 인사를 전했다. 몸에 배어있는 예의에 달변가는 아니지만 적은 말수로도 사람을 사로잡을 줄 아는 엄태구. 그는 어떤 캐릭터보다 정말 '매력 있는 배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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