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일홍의 스페셜인터뷰㊷-김봉곤] "오리지널 K-POP은 판소리, 퓨전 콘서트 준비 "
입력: 2019.06.09 00:00 / 수정: 2019.06.09 00:00
오다가다 만나는 분들이 엄지척 하고 사인해달라는 분들이 많아요. 김봉곤은 두 딸과 함께 국악공연으로는 전무후무한 100만명 관객 동원을 목표로 전국규모 장기공연을 계획 중이다. /남윤호 기자
"오다가다 만나는 분들이 '엄지척' 하고 사인해달라는 분들이 많아요." 김봉곤은 두 딸과 함께 국악공연으로는 전무후무한 100만명 관객 동원을 목표로 전국규모 장기공연을 계획 중이다. /남윤호 기자

방송인 김봉곤(51)은 지리산 '청학동 훈장' 이미지로 오랫동안 각인된 한학자 겸 시인이다. 5살부터 서당 생활을 하며 한학 수련을 한 그는 한때 강원도 철원에 거주하기도 했지만 현재는 충청북도 진천에서 청학동 선촌서당(淸鶴洞 仙村書堂)을 운영하고 있다. 호(號)는 몽양(夢陽).

그가 대중에 얼굴을 처음 알린 건 90년대 초 MBC 교양프로그램에 지리산 청학동 댕기동자로 소개되면서다. 필자도 당시 이색 방송프로그램을 소개하는 현장 취재를 갔다가 처음 만난 인연이 있다. 한시와 고전에 해박한 지식을 가진 그는 이후 방송을 통해 예절 및 효행 덕목 등을 설파하며 눈길을 끌었다.

김봉곤은 20대 중반 서울 혜화동에서 연극배우로 잠시 활동한 적이 있지만 이후 타고난 붙임성과 예능감으로 지역 방송 등에서 리포터로 활약하다 돌연 가수로 데뷔한다. 또 MBC 청춘시트콤 '남자 셋 여자 셋'을 시작으로 드라마와 영화에 출연하는 등 다양한 탤런트적 기질을 발휘했다.

서당 학동시절 외엔 정규 학교 공부를 해본 일이 없어도 검정고시를 거쳐 3개 대학에서 비학위 석사과정을 마친 학구파다. 요즘 그는 두 딸과 국악공연을 함께하며 유튜버 스타로도 각광을 받고 있다. 끝없이 샘솟는 열정의 비결을 직접 들어봤다. 스페셜인터뷰는 지난 7일 서울 상암동 <더팩트> 사옥에서 2시간 동안 진행됐다.

아이돌형 국악 콘텐츠를 만들어내겠다. 김봉곤은 등산과 독서, 여행, 바둑, 장기에 취미가 있고 검술과 서예에 조예가 깊다. 스페셜인터뷰는 지난 7일 서울 상암동 더팩트 사옥에서 2시간동안 진행됐다. /남윤호 기자
"아이돌형 국악 콘텐츠를 만들어내겠다." 김봉곤은 등산과 독서, 여행, 바둑, 장기에 취미가 있고 검술과 서예에 조예가 깊다. 스페셜인터뷰는 지난 7일 서울 상암동 더팩트 사옥에서 2시간동안 진행됐다. /남윤호 기자

-방송에 자주 등장해 이젠 어엿한 방송인이다. 교양 예능은 물론 시트콤이나 드라마 영화에도 출연하지 않았나?

네, 이제는 누가 제 직업을 물으면 방송인이라고 해요. 강 기자님은 '청학동 댕기동자' 시절 지리산에서 처음 만났는데 그동안 참 많은 세월이 흘렀네요. 물론 지금도 저한테는 '훈장'이라는 꼬리표가 붙어다니긴 해요. 사실 그 상징적 이미지 덕분에 방송인이 됐고요. 주로 예능 교양프로그램에 많이 출연하고 있는데, 가끔은 드라마나 영화에도 출연하다보니 잡식성 연예인으로 불려요. 연기만 한게 아니고 직접 영화를 제작한 적도 있어요. 욕심이 많죠.

그가 처음 방송에 출연한 것은 94년 MBC 교양특집 '청학동 예절캠프'다. 당시 그는 학동들을 가르치는 댕기머리 총각 훈장으로 등장해 시청자들로부터 높은 관심을 끌었다. 이를 계기로 손석희 허수경이 진행하는 MBC '생방송 아침만들기'에서 보조 MC로 고정출연한다. MBC 청춘시트콤 '남자 셋 여자 셋'에서도 활약했다. 이후 '유자식 상팔자' '여유만만' '둥지탈출' '아찔한 사돈연습' 등에 잇달아 출연하며 예능프로그램의 단골 게스트가 됐다. 지난 설연휴에는 '불후의 명곡' 특집에도 출연해 화제를 모았다.

-두 딸과 함께 다양한 국악콘서트를 준비하고 있다고 들었다. 어떤 형태의 공연인지 궁금하다.

한마디로 고전과 현대를 아우르는 신구(新舊) 접목의 퓨전 예능 국악콘서트 형식입니다. 사실 저도 판소리 공부를 좀 했어요. 득음을 못해 명창의 꿈을 이루지 못했지만 국악은 늘 제 마음 한 구석에 자리잡고 있었어요. 1남 3녀의 아들 딸 중에 아버지가 못다한 꿈을 이뤄줄 것을 기대하고 철들기 전부터 판소리를 가르쳤어요. 큰 딸과 아들은 목소리도 따라주지 않은 데다 별 흥미를 느끼지 않더라고요. 다행히 셋째와 넷째가 자질을 보여 안도했죠. 덕분에 우리의 전통 문화를 계승 발전시킨다는 자부심이 생겼어요.

김봉곤은 두 딸과 함께 '훈장과 악동들'의 이름으로 지난해 첫 음반을 냈다. 방송과 공연무대에 출연하며 적극적인 활동을 시도하고 있다. 올 하반기 본격적인 전국투어에 나서는 그는 "한류 명성을 날리고 있는 오리지널 K-POP의 원조는 다름 아닌 국악 판소리"라면서 "누구나 친숙하게 와닿는 아이돌형 국악 콘텐츠를 만들어내겠다"고 말했다. 그는 등산과 독서, 여행, 바둑, 장기에 취미가 있고 검술과 서예에도 조예가 깊다.

원래는 5명 정도 낳고 싶었죠. 김봉곤은 1남3녀의 자녀 중 셋째 넷째 도현(맨 왼쪽) 다현(가운데) 두 딸과 국악그룹으로 활동 중이다. 사진은 KBS2 불후의 명곡 출연 당시. /쇼당이엔티
"원래는 5명 정도 낳고 싶었죠." 김봉곤은 1남3녀의 자녀 중 셋째 넷째 도현(맨 왼쪽) 다현(가운데) 두 딸과 국악그룹으로 활동 중이다. 사진은 KBS2 '불후의 명곡' 출연 당시. /쇼당이엔티

-그동안 젊은 국악인들이 많이 등장하면서 국악 저변확대에 나름 기여했다는 평가를 듣는다. 어떤 차별화 계획을 갖고 있는지 궁금하다.

국악 공연을 해보면 요즘엔 느낌이 달라요. 과거에 비해 확실히 대중적으로 보편화 돼있다는거죠. 이럴 때일수록 적절한 변화와 함께 새로운 볼거리 콘텐츠를 만들어야합니다. 국악공연으로서는 전무후무한 100만명 관객 동원을 목표로 뛰고 있어요. '김영임의 효 대공연'이라는 콘텐츠를 탄생시킨 공연전문기획사 ㈜쇼당이엔티 서현덕 대표와 손을 잡고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 더 관심 가질 만한 국악콘텐츠를 기획하고 있어요.

김봉곤의 두 딸 도현(국립전통예술중2)과 다현(초등4)이는 4살, 5살부터 '국악신동'이란 칭찬과 격려를 받았다. 일찌감치 키즈 아이돌 그룹에 합류해 현대 감각의 춤과 노래, 연기공부를 체계적으로 배웠다. 현재는 김영임 명창으로부터 경기민요를 집중 사사 중이다. 김봉곤은 "심청가나 춘향가 외에 남도민요, 경기민요, 강원도 아리랑에 각설이까지, 그야말로 '고전한류'의 만능을 꿈꾸고 있다"고 말했다.

-원래 꿈이 연극배우였다고 들었다. 대학로에서 연극무대에도 섰다는데 왠지 '청학동 댕기동자' 이미지와는 매칭이 안된다.

상투 차림에 도포를 입고 다니다 보면 예기치 못한 에피소드가 많이 생기죠. 요즘엔 얼굴을 알아보고 인사말도 건네고 하지만 예전엔 난감한 일이 많았어요. 말 그대로 연극무대 배우가 분장하고 그냥 나온 모습이잖아요. 물론 주목받고 관심받으려는 '관종'으로 삐딱하게 보시는 분들도 있어요. 애초 그런 부분에는 개의치 않았으니 상처받을 일은 없지만 오해하시면 저도 힘들어요. 다행히 지금은 마주치면 '엄지척' 하며 뛰어와서 사인해달라는 분들이 훨씬 많죠.

김봉곤은 스무살 때인 1987년 전주에서 2년간 한학 공부를 했다. 2년 뒤인 89년 판소리를 체계적으로 배우기 위해 거처를 서울로 옮겼다. 故 은희진 당시 국립극장 창극단 판소리 명창으로부터 사사했다. 권해요 유오성과 함께 한국공연예술 아카데미에 들어가 연기공부도 했다. 1991년 충돌 소극장 무대에서 '그대, 거기 왕관을 쓰고 서 있어도'라는 연극에 40여일간 출연했다. 배고픈 연극배우 시절 생계를 위해 서초구 양재동에서 '댕기머리 동자' 서당을 별도 운영하기도 했다.

조상 대대로 돈과 명예를 버리고 도인처럼 생활했어요. 지리산 청학동 출신 김봉곤 훈장은 울타리 벗어나고 싶은 욕망 때문에 세상으로 뛰쳐나왔다고 말했다. /남윤호 기자
"조상 대대로 돈과 명예를 버리고 도인처럼 생활했어요." 지리산 청학동 출신 김봉곤 훈장은 "울타리 벗어나고 싶은 욕망 때문에 세상으로 뛰쳐나왔다"고 말했다. /남윤호 기자

-지리산 청학동에서 출생했다. 학교를 다닐 수도 없는 깊은 산골이다. 부모나 조상때부터 그곳에 산 이유가 있는지 궁금하다.

말 그대로 저는 심산유곡 산골에서 태어났어요. 조상님들은 화전을 일구며 사셨고, 할아버지 때부터 대를 이어 훈장을 하셨어요. 청학동 주민들은 돈과 명예를 버리고 도인처럼 생활했어요. 은둔생활을 하며 전통 예절 등 인륜의 도를 전파했지만, 속세나 문명과는 크게 동떨어진 삶이었죠. 감자 옥수수 무우를 심고, 산나물과 약초를 캐 최소 생계를 유지하셨으니까요. 저 역시 서당에서 한학을 공부하며 살 수 밖에 없었는데, 어느순간 울타리 벗어나고 싶은 욕망 때문에 뛰쳐나오고 말았죠.

김봉곤은 1967년 경상남도 하동군 청암면 묵계리 청학동 도인촌에서 태어났다. 김해김씨 판도판서공파(版圖判書公派) 22세손이다. 시조는 가락국의 수로왕이고, 그의 조상 중 조선 성종 때 사관 김일손은 세조의 왕위 찬탈을 비판하는 김종직의 조의제문(弔義帝文)을 사초에 실었던 일로 인해 능지처참을 당했다. 청학동 명륜서당(淸鶴洞 明倫書堂)을 운영하는 이정석 훈장이 그의 사형(師兄)으로 알려져 있다. 서당에서 사서삼경 등을 독파했지만 정규학력 미달로 군면제를 받았다.

-1남3녀 다둥이 아빠다. 요즘 자녀 출산 기준으로 보면 많은 편이다. 특별히 다자녀를 둔 이유라도 있나?

저는 어려서부터 조부모님 아래서 3대가 함께 사는 대가족 생활이 더 익숙했어요. 생활 터전 자체가 전통 가족의 틀 안에서 모두 함께 먹고 자고 일하는 방식이죠. 그러다보니 자녀 역시 인위적으로 제한하는 건 옳지 않다고 생각해요. 낳을 수만 있다면 다자녀를 갖는게 가장 자연스럽고 이상적이라고 믿어요. 원래는 5명 정도 낳고 싶었는데 목표 달성을 못 하고 말았죠. 어쨌든 저는 아이들이 훗날 결혼해 분가하더라도 전원이든 도심 속이든 한 동네서 아웅다웅 소통하며 살고 싶은 게 소망입니다.

오리지널 KPOP은 국악. 김봉곤은 지난해 두 딸과 함께 서울 부산 광주 인천 청주 고양 등 6개 도시에서 자선콘서트를 했다. 올해는 좀더 큰 규모의 대중공연을 준비 중이다. /쇼당이엔티
"오리지널 KPOP은 국악." 김봉곤은 지난해 두 딸과 함께 서울 부산 광주 인천 청주 고양 등 6개 도시에서 자선콘서트를 했다. 올해는 좀더 큰 규모의 대중공연을 준비 중이다. /쇼당이엔티

-10여년 전 강원도 철원에 학습당을 지어 거주한 적이 있는데 지금은 충북 진천에 둥지를 틀었다. 지리산 청학동을 떠난 이유는 뭔가?

우리의 훌륭한 전통을 계승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인격이 형성되는 어린 시절 인성을 배양하는 데는 효(孝)와 예절이 필수예요. 제가 사춘기 이후 문명 세계를 떠돌다 다시 청학동으로 되돌아간 것은 그런 깨우침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한데 때묻지 않은 청학동 교육이 언론에 소개된 뒤 문제가 생겼어요. 방학 때마다 학생들이 몰려드니 여기저기 서당을 빙자한 외지인 학당들이 떴다방처럼 우후죽순 생겨난 거죠. 그래서 떠날 수밖에 없었는데 아직도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습니다.

김봉곤은 스무살 무렵 도심을 동경해 홀로 지리산을 떠났다. 문명 속에 부대끼며 하고싶은 일을 실컷 했다. 연기공부를 하고 연극무대에도 섰다. 그러다 7~8년간의 세상구경을 끝내고 1996년 다시 귀향을 한다. 청학동에 둥지를 튼 그는 형제들과 함께 전통을 되살리며 과거와 현대가 공존하는 서당촌을 만들고 싶었다. 하지만 본래 그가 꿈꾼 순수 의미가 퇴색하자 10여년 전 철원으로 옮겼고 현재는 충북 진천에 문을 연 '선촌서당'에 머물고 있다.

-마지막으로, 방송 출연과 콘서트 외에도 기업체나 대학 등에 강연을 많이 다니는데 주로 어떤 내용을 소개하고 그들과 소통하는지 궁금하다.

다소 늦은 감은 있지만 저는 요즘 판소리와 국악 인생을 다시 설계하고 있습니다. 포기했던 열망과 욕구가 딸들을 통해 다시 되살아났어요. 예(禮)와 효(孝)의 토대 위에 우리의 '오리지널 KPOP'은 국악 판소리라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강연을 하면서 새삼 느끼는건 배움의 길은 끝이 없다는 겁니다. 딸들과 함께 배우고 익히는 과정에서 가르침보다 더 큰 희열을 만끽하거든요. 강연을 듣는 분들도 저의 그런 솔직하고 소탈한 얘기들에 공감을 해요.

지난해 그는 두 딸과 함께 서울 부산 광주 인천 청주 고양 등 6개 도시에서 자선콘서트를 했다. 김포와 시흥 등에서 소규모 공연도 했다. 짧은 기간 무려 6000여 명의 관객과 소통하는 저력을 발휘한 가운데 올해는 이보다 더 큰 규모의 공연을 준비 중이다. 지난달 16일 제7회 서울 구로국제어린이영화제 폐막식 무대에서는 특별 게스트로 무대에 올라 가장 뜨겁게 박수를 받은 이벤트의 주인공이 됐다. 그는 "개인 강연이든 두 딸과 함께 하는 무대이든 청중과 기본 소통의 근간은 흥겨움"이라고 말했다.

만능 예술인을 표방하는 김봉곤은 표정 하나에서부터 포스가 묻어난다. 한학자에서 소리꾼, 교육자, 매니저, 배우, 예술감독까지 그가 추구하는 열정은 변화무쌍하고 끝이 없다. /남윤호 기자
만능 예술인을 표방하는 김봉곤은 표정 하나에서부터 포스가 묻어난다. 한학자에서 소리꾼, 교육자, 매니저, 배우, 예술감독까지 그가 추구하는 열정은 변화무쌍하고 끝이 없다. /남윤호 기자

김봉곤은 만능 예술인이다. 한학자에서 소리꾼, 교육자, 매니저, 배우, 예술감독까지 추구하는 열정은 변화무쌍하고 끝이 없다. 인터뷰 다음날인 8일 충북 진천군 문백면 생거진천 선촌서당 특별무대에서 치른 '제3회 대한민국 중고제 소리경연대회'는 그가 직접 기획하고 총 예술감독 겸 대회장을 맡았다.

국악은 오정해 박예리 남상일 송소희 등이 대중적 주목을 받은 이후 젊은층들에게도 한층 친숙한 장르가 됐다. 세계 속 국악 한류를 꿈꾸는 그의 포부는 그래서 더 크고 원대하다. 김봉곤은 "장르 영역을 뛰어넘어 더 다양한 재미와 볼거리로 승부를 걸어야 해외 무대에서도 관심을 받을 수 있다"고 말한다.

김봉곤은 '얼리 어답터'(Early adopter)를 뛰어넘는 '테크 새비족'(Tech-savvy, 디지털 IT 기기를 다루는 데 능숙한 사람)으로 불린다. 유튜브 채널 '봉TV'를 통해 다양한 정보를 공유하며 세상 사람들과 소통하는 모습은 낯설지만 이채롭다. 지리산 청학동에서의 첫 만남 이후 20여년 이상 '호형호제' 해온 필자의 눈엔 여전히 댕기동자 시절 호기심 많은 '열혈 청년' 모습, 그대로다.

eel@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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