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지한 정극 연기도 자신 있습니다." 평소 늘 초생달같은 '애교 미소'를 달고 사는 김대희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제대로 된 악당 연기에 도전해보고 싶다"고 했다. /임영무 기자 |
"웃기는 일 전문, 기회 주어지면 악당 연기는 더 잘할 자신"
[더팩트|강일홍 기자] 김대희(44)는 '개그콘서트'(이하 '개콘')의 터줏대감이다. 원년 멤버로 어느덧 최고참 선배가 됐지만 여전히 20년 후배들과 완벽한 '폭소콤비'로 활약 중이다. 타고난 익살꾼답게 간결하지만 허를 찌르는 코멘트로 '개그 필'을 발산하고 있다.
20년 '개콘' 무대에 서며 그가 남긴 각종 유행어와 어록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이 중에서도 단연 간판코너는 '밥묵자' 유행어를 만든 '대화가 필요해'다. 김대희(아버지)가 신봉선(아내) 장동민(아들)과 함께 이끈 이 코너는 2006년 11월부터 2008년 11월까지 2년 동안 무려 105회 이상 전파를 탔다.
"밥묵자~" "동미이(동민이)~ 니는! 임마!" "뭐라 치 씨부리샀노!" 쓸데없이 호통을 치지만 경제력이 없어 실권을 잃어버린 고개숙인 아버지와 보는 사람이 민망할 정도로 무식한 어머니, 그리고 공부는 못하면서 맨날 투덜거리기나 하는 아들의 조합은 90년대 이후 급속하게 진행된 핵가족의 단면을 고스란히 반영하며 인기를 누렸다.
김대희가 '개콘'의 좌장으로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요즘 그는 '10초 안에 못 웃기면 퇴출된다'는 '봉숭아학당'에서 '개그달인들'을 조련하는 선생님으로 역량을 과시하고 있다. '개콘'이 최근 1000회를 맞은 가운데 원년 멤버이자 최장기 출연중인 그를 직접 만났다. 스페셜인터뷰는 지난 24일 서울 상암동 <더팩트> 사옥에서 2시간 동안 진행됐다.
"제가 바로 개콘의 산 증인입니다." 김대희는 1999년 7월 '개그콘서트' 파일럿부터 참여해 대망의 1000회를 넘기며 롱런하고 있다. 스페셜인터뷰는 지난 24일 서울 상암동 더팩트 사옥에서 진행됐다. /임영무 기자 |
-정말 오랜만이다. 데뷔한 지 엊그제 같은데 벌써 20년 세월이 흘렀다. '개그콘서트' 방영기간과도 일치한다. 소감부터 한마디 해달라.
네, 데뷔 직전 대학로 소극장에서 '시다바리'(허드렛일) 하던 시절에 강 기자님을 처음 뵀어요. 아마 컬트3총사(정찬우 정성한 김태균) 시절 취재 차 오셨던 것 같아요. 그러고 보면 20년도 훨씬 넘었죠. 저는 99년에 KBS 개그공채에 합격했고, 그해 '개콘'이 출범하면서 운좋게도 갓 신인으로 김미화 백재현 등 대 선배들과 함께 발탁됐어요. 9월에 정규 방송됐는데 두 달 전인 7월 파일럿 녹화 때부터 참여했으니 이제 와서 보면 제가 '개콘'의 산 증인이 된 셈이에요. 20년째 장수프로그램으로 자리잡은 '개콘'에 지금도 출연하고 있으니 너무나 감사하고 감개무량하죠.
김대희는 개그맨 데뷔 후 4개월 만에 '개콘' 멤버로 합류했다. 김대희를 포함해 김미화 백재현 심현섭 전유성 김경희 김영철 김지애 등 8명이 원년멤버다. '개콘' 출범 전까지는 '코미디 세상만사' 나 매주 일요일 방송되던 생방송 '쇼행운열차' 등에서 비공개 상황극 중심의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당시엔 희극인실 막내였지만, 덕분에 개콘세대 후배들이 모르는 콩트코미디의 매력도 두루 맛봤다. 짧은 기간 그가 체험한 다양한 경험들은 이후 세대교체의 주역이 돼 후배들을 이끄는 비결이자 원동력이 됐다.
-'개콘'은 개그프로그램 중 간판으로 불린다. 원년 멤버라는 자부심 외에도 많이 출연한 기록만으로 행복할 것 같다.
원년멤버 중에선 제가 유일하게 지금까지 출연 중이다 보니 다들 그렇게 생각해요. 사실은 제 동기인 김준호가 가장 많이 출연했더라고요. 준호는 첫 방송 이후 몇회 지나서 뒤늦게 합류했는데도 최다 기록을 갖고 있고, 저는 중간에 기획사 대표 등을 맡으며 공백이 좀 있었거든요. '최다출연 넘버5' 중 제가 두 번째에 있으니 아쉬울 건 없어요. 그보다는 첫회 출연자로서 1000회 특집까지 '개콘'의 역사를 함께 한 뿌듯함이 더 강렬하니까요.
'개콘'에 가장 많이 출연한 사람은 김준호다. 총 797회 출연했다. 지금도 개콘무대를 지키고 있는 김대희는 721회로 두번째로 많다. 횟수로는 김준호가 많아도 가장 긴 생명력을 지킨 '개콘'의 자랑거리는 김대희다. 김준호와 김대희는 KBS 14기 공채 데뷔 동기로 개콘 출발부터 함께했다. 김대희는 "준호는 95년에 이미 연극배우로 데뷔해 나보다는 연예계 선배지만 개그맨으로 동고동락하며 20년 넘게 친구로 지내고 있다"고 말했다.
"제 원래 꿈은 연극배우였죠." 김대희는 군복무를 마치고, 우연히 대학로에서 컬트공연을 보고 개그맨 지망생이 됐다. 컬투 정찬우는 육군 문선대 MC 6년 선임이다. /임영무 기자 |
-20년간 '개콘' 무대에 서면서 무려 50개가 넘는 다양한 브릿지 코너를 한 것으로 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개그 코너는 무엇인가?
저도 그렇지만 주변에서 '대화가 필요해'를 가장 많이 기억해주더라고요. 느낌이 강렬했으니까요. 또 6개월만 넘어도 장수코너로 인정받는데 '대화가 필요해'는 무려 2년을 넘겼어요. 공개 개그프로그램의 특성상 매우 빠르고 치열하게 전개될 수밖에 없는데요. 이 코너는 '느림의 미학'을 제대로 표현했어요. 버럭호통과 함께 묘한 긴장감을 조성하고, 이후 반전과 함께 웃음을 주는 개그코드였죠.
김대희는 심현섭의 간판코너였던 '사바나의 아침'을 필두로 '방황' '스승님 스승님' '바보삼대' '닥터.BJ' '일단뛰어' '집으로' '하류인생' '개그전사300' '꽃봉오리 예술단' '맞수' '씁쓸한 인생' '남극의 눈물' '버전뉴스' '사랑합니다 형님' '달인' '개그법정' '피곤한 가족' '좀도둑들' '나는 아빠다' '초보뉴스' '대화가 필요해 1987' 등에 출연했다. 그는 "아이디어가 채택돼 부지런히 연습하고도 방송 직전 밀려나는 코너도 많다"면서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10초 내 못 웃기면 퇴출된다는 말이 탄생했다"고 말했다.
-현재 '봉숭아학당' 선생님을 맡고 있다. 학당 스승 역할로 나선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닌 걸로 기억한다.
아, 저도 잊고 있었는데 그러고 보니 예전에도 한 적이 있네요. 그동안 봉숭아학당'에는 여러 선배들이 선생님으로 등장했어요. 초창기엔 김미화 박미선 박준형 박성호 선배가 번갈아 했고 그 틈바구니에서 저도 1년가량 선생님 역을 맡았죠. 그로부터 한참 지나 매니지먼트사 JDB를 설립하고 대표이사를 맡으면서 2년가량 공백을 가졌어요. 다시 컴백하면서 10여년 만에 '봉숭아학당' 스승으로 돌아왔고요. 역시 개그맨은 무대에 서야 스릴과 긴장감을 동시에 맛보는 것 같아요. 요즘 후배들과 새로운 코너를 준비 중인데 조만간 저의 다른 모습도 볼 수 있을 겁니다. 기대해주세요.
김대희는 2005년 11월부터 1년가량 '봉숭아 학당' 선생님으로 출연했고, 2017년 7월 그 사이 변신을 거듭한 신세대 학동들과 다시 만나 1000회 특집까지 이끌고 있다. '봉숭아학당'은 일제 강점기 시절의 보통학교를 배경으로 한 '개그콘서트' 오프닝 코너로, 원래는 90년대 초 KBS 2 '한바탕 웃음으로'에서 화제를 모았던 상황극이다. 당시엔 이창훈이 열연한 맹구와 오재미가 열연한 오서방을 중심으로 다양한 캐릭터들이 등장했다.
김대희는 데뷔 동기이자 단짝 친구인 김준호와 종합매니지먼트사 JDB를 설립해 이끌고 있다. 사진은 2년 전 KBS 별관에서 가진 개그콘서트 기자간담회 당시. /이덕인 기자 |
-평소엔 차분하고 진지해 보이는데 개그적 감각이나 순발력이 남다르다는 평가를 받는다. 원래 꿈이 개그맨이었나?
아니에요, 고교시절 연극반에서 활동하면서 배우가 로망이었어요. 대학도 연극영화과를 지원했고요. 개그맨으로 방향을 튼 건 컬트3총사 때문입니다. 대학로에서 공연을 한 번 본 뒤 매력에 푹 빠졌죠. 그때까지 몰랐던 개그감각이 제 몸속에 꿈틀거린다는 것도 알았고요. 그날부터 '컬트공연'이 펼쳐지던 대학로 소극장에 들어가 청소도 하고 포스터도 붙이며 실력을 키웠죠. 정식 데뷔(KBS 공채개그14기)까지는 당시 컬트3총사 '포복절도 개그시리즈' 공연제작자인 서현덕 쇼당엔터테인먼트 대표와 (정)찬우 형님의 도움이 컸어요.
김대희는 군복무를 마치고, 우연히 대학로에 갔다가 컬트공연을 봤다. 하필이면 리더인 정찬우와 육군 11사단 수색대 출신으로 문선대 MC를 거친 이력이 똑같았다. 6년 선임이어서 함께 근무하진 못했지만 정찬우는 자신의 직속 후임병인 김대희를 살뜰히 아꼈다. 당시 집 부근인 잠실서 주유소 아르바이트를 하던 그는 정찬우가 "너는 무조건 개그맨을 해야한다"고 한 말이 개그맨의 길로 들어선 전환점이 됐다.
-코미디나 예능프로그램 외에도 드라마나 영화에 종종 출연했다. 정극 배우에 대한 미련이 남아서인가.
정극 배우에 대한 미련은 당연히 많죠. 개그프로그램은 즉흥 애드리브나 순발력, 튀는 아이디어가 늘 필요해요. 어찌 보면 대본에만 몰입돼 연기하면 되는 정극 연기보다 힘들 수도 있어요. 그런 이유로 영화나 드라마를 하다 보면 오히려 편하게 느껴질 때가 많았죠. 개그맨이란 이미지 때문에 지금까지는 코믹한 상황 연기를 해달라는 주문이 많지만, 저는 희극배우보다는 차라리 정색하고 보여줄 진지한 캐릭터를 해보고 싶어요. 특히 액션물 속 악랄한 배역을 맡겨주면 훨씬 더 잘할 자신이 있어요.
김대희는 연극 '모래여자'를 시작으로 SBS 드라마 '옥탑방 왕세자'(2013년) '못난이 주의보', KBS2드라마 스페셜 '불침번을 서라' '최고의 한방', 투니버스 '내일은 실험왕1' '내일은 실험왕2', tvN '내성적인 보스' 등에 출연했다. 영화 '공포 특공대' '더 히스토리' '당신이 잠든 사이에' '유감스러운 도시'에도 조연 또는 카메오 출연한 바 있다. 정준호 정운택 정웅인 등 3정트리오가 함께한 '유감스러운 도시'에서는 연기 뿐 아니라 시나리오 작업에도 참여해 김동원 감독과 엔딩 스크롤에 나란히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JDB는 여타 연예기획사와 달리 선후배간 끈끈한 결속력이 근간이다. 사진은 지난해 소속사 개그맨들과 JDB엔터테인먼트 'JDB스퀘어' 개관 기념 기자간담회 당시 포즈. /이덕인 기자 |
-JDB라는 예능인 중심의 연예기획사를 직접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 개그계의 대부로 불리는건 이 때문인가.
대부는 강 기자님 아니신가요? 저한테 대부라고 하시면 쟁쟁한 대선배님들한테 욕을 먹습니다. JDB엔터테인먼트는 2015년 친구이자 데뷔 동기인 김준호와 출범시킨 개그맨 전문 기획사예요. 과거와 달리 방송환경이나 활동영역이 크게 바뀌었기 때문에 각자가 가진 역량을 가장 효율적으로 발산하기 위한 일종의 연합체로 보면 됩니다. 처음엔 배우도 몇명 영입해 활동했는데 전문성 등을 고려해 지금은 개그맨들끼리 똘똘 뭉쳐있어요. 제가 대표를 맡아 운영하다 현재는 전문 경영인이 이끌고 있어요. 물론 등기이사로 주요결정 등에는 참여하죠.
JDB에는 김대희 김준호 외에 김준현 김지민 박나래 홍윤화 유민상 김민경 박소영 허민 홍인규 정명훈 권재관 등 30여명이 소속돼 있다. 회사 명칭도 김준호와 김대희의 상징성을 담아 J&D(준호&대희)Brother'에서 이니셜을 따 만들었다. JDB는 여타 연예기획사와 달리 선후배 간 끈끈한 결속력을 바탕으로 기존 개그 무대를 넘어 다양한 길을 개척하거나 모색하고 있다. 지난 17~18일 스탠드업 코미디 공연 '박나래의 농염주의보'가 대표적인 케이스다. 이 공연은 2500명의 관객이 몰려 대성황을 이룬 가운데 향후 지방투어와 넷플릭스를 통한 세계 190개국 서비스 등 사업적 비전까지 공고히 했다.
-딸이 셋인 '딸부자' 아빠여서 주변으로부터 엄청 부러움을 사고 있다. 5식구가 한 방에서 잠을 잔다고 들었다. 무슨 얘기인가?
큰 애가 중1이고 둘째 셋째가 초등 4학년 2학년이에요. 우리 집의 문제는 아직도 안방에서 온식구가 부대끼며 잔다는 건데요. 낮엔 각자 방에 있다가도 밤만 되면 베개를 들고 안방으로 달려오니 말릴 수도 없고 고민이 많죠. 그래도 주변에선 딸들이 사춘기 접어들면 아빠랑 말도 안 섞는다며 오히려 부러워해요. 아내가 큰 아이 출산을 기점으로 전업주부가 됐는데 장거리 비행을 해야하는 직업상 어쩔수 없는 선택이었죠. 덕분에 딸들이 모두 밝고 명랑하게 잘 자랐으니 아내한테 평생 충성하며 살아야죠.
김대희는 2006년 대한항공 승무원 출신인 지경선 씨와 결혼했다. 미녀 엄마를 똑 닮은 세딸 사윤, 현오, 가정은 각각 중학생과 초등학생이다. 집안에선 아빠의 유머가 엄마의 유쾌함과 버무러져 딸들까지 폭소잔치로 이어질 때가 많다. 그는 "딸 둘을 낳은 뒤에 '혹시 셋째가 생기면 이번에도 딸이었으면 좋겠다'고 아내와 얘기를 나눈 적이 있는데 소원성취를 했다"면서 "주변에서 '아들 낳으려다 실패한 게 아니냐'는 소리를 하면 서운하다"고 말했다.
"밤만 되면 베개를 들고 안방으로 달려와요." 김대희는 2006년 대한항공 승무원 출신인 지경선 씨와 결혼해 세 딸을 뒀다. /김대희 SNS |
익살꾼 김대희는 '개그콘서트 20년사'를 관통하는 상징성을 갖고 있다. 첫 회부터 꿋꿋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유일한 멤버인 탓이다. 그가 중심축을 이루며 20년간 열정을 불태우고 있는 '개콘'은 지난 19일 1000회 특집 방송에 이어 26일 '특집 2탄'(1001회)을 방영해 다시한번 긴 여정의 의미를 되새긴다.
개그계 동료들 사이에 김대희는 특유의 능청스러움과 번뜩이는 재치, 코너를 위해 삭발도 마다하지 않는 열정과 솔선수범의 리더로 꼽힌다. '대화가 필요해' '쉰 밀회' 등 다양한 개그코너에서 인상깊은 개그감을 발산하며 KBS 연예대상 코미디 부문 최우수상도 두 차례 수상했다. 이는 그가 개그맨에서 종합매니지먼트기획자로 변신할 수 있었던 밑거름이 됐다.
데뷔 직전 개그맨 지망생 시절부터 20여년간 줄곧 그를 지켜봐온 필자는 "개그는 내 인생이고, 개그콘서트에 내 청춘을 바쳤다"는 말에 깊이 공감한다. 그에게 '개콘'의 위상은 곧 그의 자존심이기도 하다. 단 한번도 불필요한 언행이나 사소한 논란조차 만들어본 일이 없는데다 늘 초생달같은 '애교 미소'로 주변에 유쾌한 엔돌핀을 뿌리는 김대희는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천생 익살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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