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계은숙은 "모든 악몽을 다 털어내고 오직 노래만으로 팬 곁에 다가서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프로미스 엔터프라이즈 제공 |
최근 새 앨범 '리:버스'(Re:Birth) 내고 컴백 선언
[더팩트|강일홍 기자] 가수 계은숙은 지난 2016년 4월 서울 강동구 천호동의 한 장례식장에 들어서자마자 통곡했다. 모친 고 송종열 씨의 빈소가 마련돼 있던 곳이다. 마약 투약혐의로 수원구치소에 수감 중이던 계은숙은 3박4일간 구속집행정지 결정을 받고 '가슴시린 외출'을 허락받았다. 그는 10개월 전인 2015년 6월 자신의 집에서 3차례에 걸쳐 메스암페타민을 투약한 사실이 발각돼 수원지검 안양지청에 전격구속됐다. 그가 영어의 몸이 되면서 가장 가슴 아픈 일은 구순 노모를 보살필 수 없는 일이었다.
계은숙은 유년시절을 힘들고 불우하게 자랐다. 어머니 혼자 작은 매점 등을 운영하며 두 딸을 키웠고 계은숙은 어린 나이에도 언니와 함께 비닐 우산이나 신문팔이를 하며 생계를 도왔다. 어머니는 자신이 태어나기 전 가정불화를 겪다 아버지와 결별하고 친정에 돌아온 뒤에야 임신사실을 알았다. 애초 아버지 존재를 모르고 살았던 셈이다. 뒤늦게 아버지의 생존을 알고, 계(桂) 씨 종친회를 수소문해 찾았지만 애정없는 짧은 만남으로 끝이 났다. 계은숙한테는 어머니가 유일한 '희망'이고 삶의 목표였다.
경제적으로는 어려웠지만 모녀의 삶은 비교적 평온하고 행복했다. 계은숙은 답십리초와 성수여중, 천호여상을 졸업한 뒤 1977년 '럭키샴푸' CF 모델로 연예계와 인연을 맺는다. 상큼 발랄한 외모와 함께 노래실력까지 인정받으며 이듬해인 78년 당시 최대 음반사였던 유니버설레코드를 통해 가수로 데뷔했다. 이후 '노래하며 춤추며' '기다리는 여심'이 잇달아 히트하면서 MBC10대가요제 신인상을 수상한다. 최고 인기가수로 승승장구하던 그는 스캔들에 휩싸인 뒤 한국을 떠나 돌연 일본무대를 노크한다.
계은숙은 최근 복귀 쇼케이스에서 "노래 없이는 살 수 없기에 여러분한테 의지하고, 기대고 싶었다"고 말했다. 사진은 계은숙이 팬모임에서 노래를 부르는 장면. /계은숙 팬카페(최영욱) 유투브 캡쳐 |
◆ NHK '홍백가합전' 한국가수 7년 연속 출연 전무후무 대기록, 엔카가수서 한국가수로 귀환
위기는 때로 더 큰 기회를 만들기도 한다. 계은숙은 실연의 아픔과 상처난 자존심 때문에 어디론가 숨어버리고 싶은 심정으로 한국을 떠났지만 최고 엔카가수로 우뚝 섰다. 90년대 인기절정이던 무렵에는 한달 평균 개인 수입이 1000만 엔(한화 약 1억 원)에 달했다. 계은숙은 "당시 어떤 분과 결혼까지 약속하고 사랑을 했는데, '홀어머니가 있는 가수는 며느리로 받아줄 수 없다'는 상대방 쪽 부모의 모욕적인 말에 방황했다"면서 "이런 모습을 엄마한테 보여주기 싫어서 일본으로 가게 됐다"고 털어놨다.
계은숙은 당시 유명 작곡가인 하마 게이스케(浜圭介)와 만남이 인연이 돼 일본내 유명 프로덕션과 계약할 수 있었다. 그리고 '오사카 황혼'(大阪暮色, 오사카 보쇼쿠)으로 정식 데뷔했다. 정식 계약에 앞서 그는 소속사 제일프로덕션 사장과의 면담을 통해 "제가 만약 엔카로 출발하게 된다면 앨범이 꾸준히 팔릴 정도로 생명력이 긴 아티스트가 되게 해달라"고 했다. 자신의 바램대로 계은숙은 엔카 가수로는 드물게 앨범이 팔리는 가수가 됐고, '싱글은 팔려도 앨범은 팔리지 않는다'는 기존 징크스를 깬다.
일본 가요계의 인기 바로미터는 매년 연말 치러지는 NHK '홍백가합전'이다. 웬만큼 인기가 있는 일본 가수들도 '한번만 초청받으면 소원이 없겠다'고 말할 만큼 영예로운 무대로 정평이 나 있다. 그동안 한국 가수가 일본에 많이 진출했지만 김연자 조용필 보아 동방신기 카라 소녀시대 등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지난해 '캔디팝'과 '웨이크미업'으로 활동하며 오리콘 1위를 기록한 트와이스가 이 무대에 오르면서 화제를 모으기도 했지만, 계은숙은 '한국가수 7년 연속 출연'이라는 전무후무한 대기록을 갖고 있다.
계은숙은 지난 15일 서울 마포구 서강대학교 메리홀 쇼케이스에서 마이크를 쥔 채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프로미스 엔터프라이즈 제공 |
◆ 성공과 추락, 극과 극의 굴곡진 인생, 중후하고 깊은 울림의 가수로 부활 '리:버스'(Re:Birth)
이런 계은숙이 추락한 건 슬럼프와 마약복용이었다. 2007년 11월 일본 관동지방후생국 마약단속부(關東信越厚生局麻藥取締部)가 돌연 계은숙을 긴급 체포한다. 한달 뒤 도쿄 지방법원은 각성제단속법 위반 혐의에 대해 계은숙에게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다시 이듬해 5월 일본 당국은 '계은숙의 비자기간 연장이 불가하다'는 통보를 하고 출입국 추가심사를 거쳐 8월 국외 퇴거(추방) 조치를 내린다. 당시 그는 이혼 후유증과 부채에 따른 재판, 갱년기 장애와 우울증 등에 시달리고 있었다.
일본에서의 추방은 그에게 너무나 깊은 상처를 안겼다. 28년 만에 서울로 돌아온 그는 5년간 누구와도 접촉하지 않고 어머니와 단둘이 살았다. 가수가 무대를 서지 못하는 아픔과 고통은 겪어보지 않고는 모른다고 한다. 오랜 칩거를 깨고 몇차례 국내 데뷔를 시도했지만 안타깝게도 번번이 실패했다. 국내 물정을 몰라 부동산 투자사기에 집을 날리고, 생활고에 시달리다 빌린 돈을 갚지 못해 거꾸로 사기 혐의로 피소되기도 했다. 끝내는 마약에 다시 손을 대면서 돌이킬 수 없는 최악의 상황으로 내몰렸다.
계은숙이 최근 새 앨범 '리:버스'(Re:Birth)를 내고 컴백 활동에 들어갔다. 지난 15일 쇼케이스를 가진 마포구 서강대학교 메리홀에서 그는 다시 마이크를 쥐고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무려 37년 만의 국내 복귀 무대에서 그는 "숨어서 반성도 해보고 방황 아닌 방황도 했다"면서 "노래 없이는 살 수 없기에 여러분한테 의지하고, 기대고 싶었다"고 말했다. 계은숙은 성공과 추락, 누구보다 극과 극의 굴곡진 인생을 살아 온 가수다. '엔카 여왕'의 이름표를 떼고 한층 중후하고 깊은 울림의 한국 가수로 돌아온 그의 부활 의지에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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