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석은 영화 '미성년'으로 장편 영화 감독 데뷔를 했다. /쇼박스 제공 |
정제되지 않은 스타는 어떤 모습일까. 요즘 연예계는 스타도 많고, 연예 매체도 많다. 모처럼 연예인 인터뷰가 잡혀도 단독으로 하는 경우도 드물다. 다수의 매체 기자가 함께 인터뷰를 하다 보니 대부분의 내용이 비슷하다. 심지어 사진이나 영상도 소속사에서 미리 만들어 배포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더팩트>는 순수하게 기자의 눈에 비친 그대로의 스타를 '내가 본 OOO' 포맷에 담아 사실 그대로 전달한다. <편집자 주>
'미성년' 4월 11일 개봉
[더팩트|박슬기 기자] 휴지 조각을 만지작만지작. 머리카락을 여러 차례 쓸어 올린다. 웃는 표정이지만 그 안에는 뭔가 모를 예민함이 보인다. 기자들에게 의견을 묻는다. "어떻게 보았냐."
3일 서울 종로구 팔판동 한 카페에서 만난 김윤석의 모습이다. 31년 차 베테랑 배우에서 신인 감독으로 변신한 그는 그간의 여유 있는 모습과 사뭇 달랐다. 한층 긴장한 모습이었다. "제가 배우로 출연한 작품보다 10배 정도 떨리는 것 같아요. 신경 안 쓰이는 곳이 없네요. 신인 배우들이 시사회나 행사 때 답변을 잘 못 하니까 신경 쓰이고. 그렇게 되더라고요. 아직도 얼떨떨합니다."
1988년 연극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로 데뷔한 김윤석은 오랜 무명 생활을 거쳐 '타짜'에서 이름을 알리고 '추격자'로 흥행배우가 됐다. 그의 탄탄대로는 이때부터 시작됐다. '전우치' '황해' '완득이' '도둑들' '검은 사제들' '남한산성' '1987' 등 다수의 작품으로 '믿고 보는 배우'가 됐다. 그런 그가 30년이 넘는 배우 생활 끝에 감독으로서 출사표를 던졌다.
"'미성년'을 연출하고, 연기도 직접 했는데 이게 보통 일이 아니더라고요. 정신력과 체력이 강해야 하는데 힘들었죠. 배우들은 자기 회차에 와서 찍고 가면 되는데, 감독은 준비단계부터 크랭크업하고, 후반 작업까지. 정말 어렵더라고요. (하)정우가 대단하다고 생각했어요. 정우는 '허삼관' 찍을 때 영화 대부분 장면에 출연하고 연출도 했잖아요. 저는 당분간 두 가지 역할을 모두 하는 건 못할 것 같습니다. 하하."
김윤석(왼쪽)이 배우 박세진에게 연기 지도를 하고 있는 모습. /쇼박스 제공 |
김윤석이 메가폰을 잡는다는 소식에 영화계에서는 우려와 기대의 시선이 공존했다. 하지만 베일을 벗은 '미성년'은 우려의 시선을 거두어내고, 기대감을 높였다. 아마 그의 귀에도 여러 이야기가 들릴 듯했다. 감독과 배우 두 가지 역할을 해내야 하는 입장으로서 어땠을까.
"좋은 평을 보면 기분이 좋고 그래요. 지금 '미성년'과 관련한 기사는 일부러 안 보고 있어요. 왜냐면 거기에 동요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해서요. 농담처럼 '사람들이 벼르고 있다'는 이야기도 하는데, 그런 것에 신경 쓰기엔 제가 나이가 좀 많은 것 같아요. 신경 쓰기보다는 제가 해야 할 것에 집중해야 하는 것 같아요. 묵묵히 저의 길을 가는 게 맞지 않을까요."
배우로서는 후배이지만 감독으로서 선배인 하정우와 이야기를 나눈 게 있는지 궁금했다. 하정우는 앞서 '허삼관'(2014) '롤러코스터'(2013) 등을 연출했다. 김윤석은 "형 많이 힘들 거라고. 고기 많이 먹고, 영양제 챙겨 먹으라고 하더라"고 말했다.
김윤석은 오랜 연극배우 생활을 거쳐 드라마, 영화 등 다방면에서 활약했다. 그는 연극작업이 감독 하는데 가장 큰 도움이 됐다고 했다. "연극하면서 조명도 하고, 연출도 하고, 무대 세트도 만들고 포스터도 붙여봤어요. 연극은 조건이 열악하잖아요. 연극 연출하고, 연극 대본 공동 집필하고 이런 작업이 어디 가지 않더라고요. 저에게 가장 큰 힘이 됐죠."
김윤석은 영화 '1987' '남한산성' '검은사제들' 등 다수의 작품으로 관객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영화 '1987' '남한산성' '검은사제들' 스틸 |
'미성년'에서 김윤석은 배우로서도 색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앞서 그는 '1987'에서 "책상을 탁치니 억하고 죽더라"고 말하던 박처장, '남한산성'에서 보여준 우직한 충신 김상헌, '검은 사제들'의 김신부, '도둑들'의 마카오 박, '타짜' 아귀 등 대부분 강렬한 캐릭터를 연기했다. 하지만 '미성년'에서는 지질한 중년남성 그 자체다. 한동안 볼 수 없었던 그의 새로운 모습이었다.
"저랑 함께 작업한 감독님들은 제가 얼마나 실없이 웃기는 사람인지 잘 알아요. 일반 관객분들은 강렬한 캐릭터에 대한 잔상이 오래 남아 있어서 색다르게 다가올 수도 있을 것 같네요. 저는 상황이 주는 코미디를 좋아하는데 '미성년'에서도 그런 모습이 담기지 않았나 싶네요."
김윤석은 "차기작을 아직 생각하진 않았지만 소중한 이야기를 찾으려고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쇼박스 제공 |
'미성년'은 김윤석이 만들었다고 하기에 믿기지 않을 만큼 여성의 심리를 굉장히 섬세하게 표현했다. 중년의 남성인 그가 중년의 여성의 내면 심리와 10대 여고생들의 마음을 이렇게까지 잘 알 수 있나 싶을 정도다. "'미성년'은 요즘 시대 우리의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태생적으로 막히고 모르는 부분은 함께 작업한 이보람 작가에게 물었고, 또 주변 친한 동료 배우나 편집 기사와 영화팀에 있는 PD가 모두 여성이라 자문을 구하고, 상의를 했죠. 언제든지 묻고 영화에 담을 수 있었어요."
'미성년'에 대해 이야기하던 김윤석은 제작 당시부터 지금까지 일련의 과정들이 떠오르는 듯 상념에 잠겼다. 그러면서 그는 "제가 좀 더 빨리 (연출을) 해야 했나 싶다"며 "내가 얼마나 실없이 웃긴 사람인데. 이 작품은 저의 개성과 속살이 드러난 작품이다"라고 영화를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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