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일홍의 스페셜인터뷰㉜ -설운도] 편안함보다 변화를 택한 37년 '트로트 인생'
입력: 2019.03.31 09:33 / 수정: 2019.03.31 20:27
가요계 인기 작곡가들 사이에서도 실력을 인정받는 트로트 싱어송라이터. 가수 설운도는 깨끗한 목소리를 유지하기 위해 30여년째 술 담배를 입에 대지 않을 만큼 자기관리에도 철저하다. /이선화 기자
가요계 인기 작곡가들 사이에서도 실력을 인정받는 트로트 싱어송라이터. 가수 설운도는 깨끗한 목소리를 유지하기 위해 30여년째 술 담배를 입에 대지 않을 만큼 자기관리에도 철저하다. /이선화 기자

다양한 실험적 트로트 변형 장르 시도해 성공한 싱어송라이터

[더팩트|강일홍 기자] 설운도(61, 본명 이영춘)는 뛰어난 예능감을 자랑하는 '젊은 가수'다. 한국 가요계에 독보적인 '트로트 천왕'으로 불리며 후배들 사이에선 '어르신 대접'을 받으면서도 여전히 그는 '라디오스타' '복면가왕' '신의 목소리' 등 젊은 예능프로그램의 단골 출연자로 활약하고 있다.

82년 KBS '신인탄생'을 통해 데뷔한 설운도는 싱어송라이터로 매년 자신의 곡을 꾸준히 발표하고 후배가수들에게도 곡을 줘 히트시키는 저력의 가수다. 깨끗한 목소리를 유지하기 위해 30여년째 술 담배를 입에 대지 않을 만큼 자기관리에도 철저하다.

그는 또 40년 가까이 활동하는 동안 가수로서 단 한번도 초심을 잃어본 적이 없다. 선배들을 깎듯이 모시면서 후배들한테는 따뜻하고 편안한 형이나 오빠처럼 격의없이 대해 존경을 한몸에 받는다.

설운도는 최근 유망 신인가수들을 잇달아 발굴한 뒤 후견인을 자처하고 있다. 대중문화기자로 늘 가까이서 그를 지켜본 필자는 변함없는 대중적 인기 비결이 새삼 궁금했다. 스페셜인터뷰는 지난 29일 서울 이태원 설운도 자택 인근 카페에서 2시간 동안 진행됐다.

트로트가 살 길은 정형화 된 틀을 벗는 겁니다. 설운도는 다양한 변형장르를 시도해 히트했다. 스페셜인터뷰는 지난 29일 서울 이태원 설운도 자택 부근 카페에서 2시간동안 진행됐다. /이선화 기자
"트로트가 살 길은 정형화 된 틀을 벗는 겁니다." 설운도는 다양한 변형장르를 시도해 히트했다. 스페셜인터뷰는 지난 29일 서울 이태원 설운도 자택 부근 카페에서 2시간동안 진행됐다. /이선화 기자

-얼마 전 '라디오스타'에 출연해 시청자들을 웃겼다. 쟁쟁한 예능스타들도 예상치 못한 반전 토크에 깜짝 놀란다고 한다.

아이고, 아닙니다 그건 정말 과찬이시고요. 서당개도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잖아요. 연예계 생활이 얼마입니까. 가수는 노래만 한다는 고정관념을 깨야죠. 자연스럽게 말문이 터지는 건 모두 자신감입니다. 김구라나 김국진처럼 입으로 먹고 사는 친구들은 일단 기선부터 제압해야 밀리지 않아요. 그리고 저는 방송에서도 꾸미거나 숨기거나 이런 거를 할 줄 몰라요. 있는 그대로를 쏟아내니 거칠 게 없지요.

설운도는 지난 20일 간판예능인들의 입담프로그램인 MBC '라디오스타'에 출연했다. 설운도는 MC 김구라가 "아들이 군대 갔다 오더니 직접 이불을 갠다고 자랑하지 않았느냐"고 하자 "근데 겨우 한달이더라, 아무래도 군대를 다시 보낼까 고민중이다"고 받아쳐 웃음을 빵 터뜨렸다. 장범준, 심지호, 밴드 소란 멤버 고영배가 함께한 이날 설운도는 밀리지 않은 예능감으로 패널들을 받아쳤다.

-데뷔 이래 수많은 히트곡을 냈다. 심지어 음반을 발매한 지 단 하루 만에 히트를 친 적도 있다고 들었다. 무슨 얘기인가.

이렇게 오랫동안 과분한 팬사랑을 받는다는 것만으로 저는 성공한 인생입니다. 너무나 고마운 일이죠. 저의 인생곡이 된 '잃어버린 30년'은 정말로 발표한 날부터 인기곡으로 떴어요. 1983년에 KBS 특별 생방송 '이산가족을 찾습니다'에 출연한 것이 발단이었죠. 아시다시피 당시엔 '남북이산가족 찾기' 행사로 온 국민이 눈물바다를 이룰 때였잖아요. 분단과 이산의 아픔을 워낙 애절하게 담은 곡이다보니 신인가수인 저까지 덩달아 급부상한거죠.

설운도는 80년대 초 군복무를 마치고 82년 KBS 서바이벌 오디션프로그램 '신인탄생'에서 발군의 실력을 자랑하며 5주 연속 우승한다. '잃어버린 30년'은 당초 작곡가 남국인의 '아버지께'라는 곡이었지만, 작사가인 박건호가 이산가족 분위기에 맞는 내용으로 급히 개사해 음반을 냈다. 녹음 후 이틀만에 방송되고, 하룻밤 사이에 이변을 일으키며 최단기간 히트곡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됐다. 설운도는 이 곡으로 데뷔 1년만에 제3회 KBS 가요대상 7대 가수상을 수상하며 스타덤에 오른다.

쌈바의 여인 여자여자여자 다함께 차차차 보라빛엽서 등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히트곡을 갖고 있는 설운도는 트로트 특유의 꺾임 창법 외에도 고음과 저음의 높낮이를 그만의 독특한 창법으로 구사하며 사랑을 받고 있다. /이선화 기자
'쌈바의 여인' '여자여자여자' '다함께 차차차' '보라빛엽서' 등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히트곡을 갖고 있는 설운도는 트로트 특유의 꺾임 창법 외에도 고음과 저음의 높낮이를 그만의 독특한 창법으로 구사하며 사랑을 받고 있다. /이선화 기자

-다른 가수들과 비교하면 트로트라는 장르를 매우 다양성있게 불렀다는 평가를 듣는다. 트렌드를 선도했다고 말할 수 있나?

그리 거창하게 비행기를 태우면 부담스럽고요. 선도했다기보다는 예전부터 트로트도 늘 새롭게 달라져야한다는 저만의 기준은 있었어요. 직접 작곡을 하면서 느끼는 건 일정한 틀에 얽매이면, 모든 곡들이 귀에 익숙한 듯 비슷해서 색깔을 낼 수가 없어요. 그러다보니 자연히 선택하는 곡들도 조금씩 변형된 장르로 기울게 되더라고요.

설운도는 '쌈바의 여인' '너만을 사랑했다' '여자여자여자' '누이' '다함께 차차차' '보고싶다 내사랑' '사랑이 이런건가요' '사랑의 트위스트' '보라빛엽서' '추억속으로' '춘자야' 등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히트곡을 갖고 있다. 그는 트로트 특유의 꺾임 창법 외에도 고음과 저음의 높낮이를 그만의 독특한 창법으로 구사하며 사랑을 받고 있다.

-성인가요계 분위기도 과거에 비하면 많이 변했다. 앞으로 트로트가 살 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트로트도 전반적으로 리듬이 빨라졌지요. 정형화 된 틀을 벗어야합니다. 남녀노소 가장 교감이 많은 장르인데도 트로트는 루즈하다는 편견이 많았어요. 좀더 신선한 기획과 아이디어가 가미돼야죠. 아이돌로 대변되는 K-POP의 성공은 이런 다양한 시도가 적중한 케이스입니다. 최근 호평을 얻고 있는 '미스트롯'이라는 프로그램이 좋은 예라고 생각해요. 젊은 친구들이 적극 호응하고 참여할 수 있는 포맷을 도입한 뒤 아이돌 못지 않은 열기와 공감을 불러 일으켰어요.

종편채널 TV조선이 새로 론칭한 '미스트롯'(목 오후 10시 방송)은 차세대 트로트 스타를 탄생시킬 신개념 오디션 프로그램이다. 처음부터 중년층을 노린 트로트 오디션 프로그램으로 차별화 노선을 택해 공감을 얻었다. 종편 채널 주요 타깃 시청층과도 맞아떨어졌다는 평가다. 시청률도 첫 방송부터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1회 5.889%(닐슨 코리아 전국 유료가구 기준)로 시작, 2회 7.337% 3회 7.743%, 4회 8.357%, 5회 9.421%로 상승곡선을 그렸다.

소속사를 옮긴 것도 새로운 도약과 부활을 위한 다짐이죠. 설운도는 올해 대규모 전국투어 콘서트와 함께 연말엔 럭셔리 디너쇼도 계획중이다. /이선화 기자
"소속사를 옮긴 것도 새로운 도약과 부활을 위한 다짐이죠." 설운도는 올해 대규모 전국투어 콘서트와 함께 연말엔 럭셔리 디너쇼도 계획중이다. /이선화 기자

-오랜 기간 가요계 정상을 지키고 있는데 여전히 '젊은 가수'라 말할 수 있는 객관적 지표가 있는지 궁금하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팬들이 알아보고 평가하는 거지요. 그럴수록 팬심을 등에 업은 대중스타는 어떤 경우라도 초심을 잃지 않는 게 중요합니다. 데뷔한 지 37년째 한번도 이 기준을 어겨본 일이 없어요. 심지어 후배들한테도 늘 겸손하고 낮은 자세로 임하려 노력하고 있어요. 진정성 없는 형식적 언사만으로 마음을 얻기 힘들거든요. 그 부분에 대해 제가 스스로 평가를 할 순 없는 일이지만, 젊은 후배들과 앙상블을 이뤄 무대에 서는 일은 조금도 거리낄 게 없습니다. 언제든 자신이 있다는 얘기입니다.

설운도는 홍경민 유성은 오마이걸(승희) 악동뮤지션 이진아 업텐션(선율) 홍진영 대성 등 그동안 아이돌을 포함한 수많은 후배가수들과 컬래버레이션을 시도했다. 젊은 가수들과 장르를 뛰어넘어 활약하는 모습은 그동안 방송을 통해 종종 소개돼 시청자들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실제로 그는 아이돌과 호흡하는 프로그램에 가장 많이 출연하는 가수로 자리매김했다.

-트로트 싱어송라이터로 불린다. 후배들한테도 평소 곡을 많이 주기로 유명한데 어떤 기준이 있는지 궁금하다.

우선 제 노래를 후배들이 불러 히트하면 큰 보람을 느끼죠. 모든 곡을 제가 다 소화할 수는 없잖아요. 아무리 좋은 곡이라도 제가 부를 노래와 다른 가수가 부를 노래는 꼭 구분을 합니다. 곡을 쓰다 보면 어떤 스타일의 가수가 적합한지 저절로 판가름나기도 하고요. 그동안 제가 쓴 곡이 대략 200~300곡 정도 발표가 됐는데 90%는 제가 불렀고, 기성가수나 신인가수들한테 준 곡은 10% 가량 됩니다.

가수 우연이는 오랜 무명 시절을 보내다가 설운도에게 '우연히'라는 곡을 받아 활동하면서 대중적 인지도를 알렸다. '우연히'는 노래방 인기곡으로 선정될 만큼 여자의 마음을 파고들었다. 설운도는 '럭키'(박주희) '인연' '사랑을 한번 해보고 싶어요'(하동진) 등 후배들에게 많은 곡을 줬다. 쟁쟁한 가요계 작곡가들 사이에서도 트로트 싱어송라이터로서의 실력을 인정받고 있는 그는 최근 나일강이란 후배가수에게 '나일강의 기적'이란 곡을 주고 의욕적으로 후원하고 있다.

설운도는 트로트 가수들 사이에서도 변형 장르를 주도해온 선두주자다. 트로트에 쌈바와 트위스트 리듬을 접목한 쌈바의 여인(95년), 상하이 트위스트(97년)를 잇달아 히트시켰다. /더팩트 DB
설운도는 트로트 가수들 사이에서도 변형 장르를 주도해온 선두주자다. 트로트에 쌈바와 트위스트 리듬을 접목한 '쌈바의 여인'(95년), '상하이 트위스트'(97년)를 잇달아 히트시켰다. /더팩트 DB

-수년 전 모 동료가수가 아내 이수진 씨에 대해 '도박 전과 6범'이라고 말해 파장을 일으킨 적이 있다. 진실이 뭔가?

네 4년 전 어떤 유명 가수분이 그런 얼토당토 않은 말을 공개석상에서 한 적이 있지요. 도무지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황당한 일이었죠. 가족들을 포함해 주변에서 많은 분들이 명예훼손으로 고소하라고 했지만, 저는 그냥 덮었어요. 가요계에서 오래 잔뼈가 굵으신 동료가수이고 소송을 한다고 달라질 것도 없으니까요. 아내는 저와 결혼한 지 30년 됐는데 도박이 뭔지도 몰라요. '도박 전과 6범'이라는 영예로운(?) 꼬리표에 알만한 사람들은 다 웃고 말았죠.

설운도는 90년 배우 겸 모델 이수진과 결혼했다. '상하이 트위스트' '누이' '쌈바의 여인' 등 설운도가 작곡한 노래 60% 이상을 아내 이수진이 작사해 자연스럽게 '부창부수의 길'을 걷고 있다. 2남1녀로 큰아들(루민)은 군복무 후 영화배우로, 딸(소피아)은 음대 졸업 후 가요계 진출을 모색하고 있다. 설운도는 "우리 집은 비즈니스 학과를 전공한 뒤 제 갈길을 가고 있는 둘째(승민)만 빼고 온가족이 모두 연예인 가족"이라고 말했다.

-정규앨범을 준비 중이라고 들었다. 또 얼마 전엔 소속사를 바꾸고 새 출발한다는 소식을 전했는데 수십년 만에 변화를 준 어떤 이유라도 있나.

네 올 5월부터 서울 부산 제주도 등 전국투어를 합니다. 앨범은 콘서트 직전에 맞춰 공개할 수 있을 것 같고요. 국내 공연을 병행해 미국과 중국 공연일정도 조율하고 있습니다. 저한테는 데뷔 이후 가장 규모있는 단독콘서트예요. 소속사를 옮긴 것도 새로운 도약과 부활을 위한 다짐이죠. 연말에는 럭셔리한 디너쇼도 계획하고 있는데 요즘엔 정말 갓 신인이 된 기분입니다.

설운도는 한 달 전 루체엔터테인먼트(대표 신현빈)로 소속사를 옮겼다. 무려 20여년 만에 새로운 둥지를 틀었다. 루체에는 후배가수 김혜연, 조정민, 문희옥 등이 소속돼 있다. 설운도는 "꽃은 무리를 지어야 더 아름답고, 별도 저 혼자서는 반짝일 수가 없다"면서 "항상 나보다 상대를 먼저 배려하고 후배들 앞에 솔선수범하는 모습을 잃지 않겠다"고 말했다.

설운도는 장윤정과 함께 트로트 부활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듣고있다. 사진은 지난 2014년 트로트엑스 당시 박현빈 홍진영과 함께 포즈. /더팩트 DB
설운도는 장윤정과 함께 트로트 부활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듣고있다. 사진은 지난 2014년 '트로트엑스' 당시 박현빈 홍진영과 함께 포즈. /더팩트 DB

설운도는 트로트 가수들 사이에서도 변형 장르를 주도해온 선두주자다. '여자여자여자'(92년)를 발표했을 당시 트렌드에 어긋난다며 방송가에서조차 처음엔 기피했다. 그룹사운드에나 어울리는 펑키 리듬이 어색하다는 이유였다. 앞서 선보인 '다함께 차차차'(91년) 역시 비슷한 운명을 겪었다.

하지만 트로트에 쌈바와 트위스트 리듬을 접목한 '쌈바의 여인'(95년), '상하이 트위스트'(97년)를 잇달아 발표한 뒤 신선하다는 평가를 들으면서 '설운도 스타일'의 노래로 동반 인기를 누렸다. '누이'(컨추리뮤직)와 '보랏빛옆서'(슬로곡) 등 이전에 시도해보지 않은 실험적 장르를 넘나들며 정착시키는데도 일조했다.

그는 또 논란과 구설에 오르지 않은 연예인이다. 장윤정과 함께 트로트 부활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들으며 한때 '반짝이 의상'을 입고 무대에 자주 올라 대중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주기도 했다. "인기에 안주하는 편안함보다 변화를 위한 고난을 택하겠다." 인터뷰 내내 진솔한 인간미와 함께 내비친 음악에 대한 강한 열정을 체감하며 과연 '가요계의 자존심'이란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eel@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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