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연은 영화 '생일'에서 세월호 참사로 아들을 잃은 순남 역을 맡았다. /매니지먼트 숲 제공 |
정제되지 않은 스타는 어떤 모습일까. 요즘 연예계는 스타도 많고, 연예 매체도 많다. 모처럼 연예인 인터뷰가 잡혀도 단독으로 하는 경우도 드물다. 다수의 매체 기자가 함께 인터뷰를 하다 보니 대부분의 내용이 비슷하다. 심지어 사진이나 영상도 소속사에서 미리 만들어 배포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더팩트>는 순수하게 기자의 눈에 비친 그대로의 스타를 '내가 본 OOO' 포맷에 담아 사실 그대로 전달한다. <편집자 주>
'생일' 4월 3일 개봉
[더팩트|박슬기 기자] 3월의 끝 무렵. 배우 전도연(46)을 만나러 가는 길은 유난히 추웠다. 따뜻한 봄이 성큼 다가온 줄 알았는데, 뼛속 시린 찬 바람이 불었다. 2014년 4월 16일. 하늘도 그날의 아픈 이야기를 나눌 거란 걸 예감한 듯했다. 바람은 더 찼고, 가슴은 더 시렸다.
25일 서울 중구 팔판동 한 카페에서 영화 '생일'(감독 이종언) 개봉을 앞두고 있는 전도연을 만났다. '생일'은 세월호 유가족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으로, 참사 있고 난 뒤 처음으로 제작된 극영화다.
전도연은 영화의 소재가 소재이니만큼 꽤 조심스러워 보였다. 질문 하나하나에 골똘히 생각하는 모습을 보이며 어렵게 입을 뗐다. 어떤 질문에는 눈시울을 붉히기도 하고, 어떤 질문에는 옅은 미소를 보였다.
사실 전도연이 '생일'을 찍기까지는 고민이 많았다. 우려의 목소리가 컸던 만큼 배우 입장에서는 조심스러울 수밖에. 참여한 것만으로도 논란의 여지가 될 수도 있어서다. 하지만 영화를 찍고 난 후의 전도연은 다른 듯했다. 그는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힘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영화를 찍고 나서 (이종언) 감독하고 팽목항에 다녀왔어요. 거기에 매어놓은 노란 리본들이 있는데, 다 빛바랬더라고요. 보면서 씁쓸했죠. 그래서 다 기억하고 잊지 말자는 생각을 했어요. 사실 대부분이 어느 순간 잊고 살잖아요. 기억에서 희미해지기도 하고요. 그런 부분에 있어서 '생일이라는 작품을 하길 잘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잊을 수 없잖아요."
'생일'을 한 차레 고사한 전도연이지만 그는 "이 작품을 하지 않았다면 후회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영화 '생일' 스틸 |
오는 4월 3일 개봉하는 '생일'은 지난 18일 언론시사회로 기자들에게 먼저 공개됐다. 베일을 벗은 '생일'은 우려와 달리 호평을 받았다. 부담감이 컸을 전도연은 한시름을 놓은 듯했다.
"'생일'에 대한 선입견과 편견 때문에 걱정했죠.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나서 그런 걱정은 없어졌어요. 많은 분이 영화를 보기까지 힘들겠지만, 보고 났을 때는 마음이 달라지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아마 제가 시나리오를 읽고 나서의 마음이랑 닮아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생각보다 호평을 받고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고요. '생일'은 세월호 이야기기도 하지만 상처받고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기도 해서, 좀 다르게 다가가지 않을까 싶네요."
전도연은 극 중에서 세월호 사건으로 아들을 잃은 순남 역을 맡았다. 그가 자식을 잃은 배역을 맡은 건 '밀양' 이후 두 번째다. 전도연은 "제가 아들이 없기도 하고, 특히 장성한 아들이 있는 건 더더욱 아니니 뭔가 이상했다"며 "제가 그런 아들을 뒀다면 영화에서처럼 아들이자 친구이자 남편처럼 많이 의지하지 않았을까 싶다"고 말했다.
전도연은 2015년 '남과 여' 이후 약 4년 만에 스크린으로 복귀했다. 그동안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하던 그는 긴 시간의 공백기를 가졌다. 전도연은 "그동안 마음에 드는 작품이 없었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전도연은 영화 '밀양'(위쪽)과 '너는 내 운명'에서 인상깊은 연기를 펼쳐 관객에게 사랑을 받았다. 그는 '밀양'으로 칸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기도 했다. /영화 '밀양' '너는 내 운명' 스틸 |
1990년 CF '존슨 앤드 존슨'으로 연예계에 발을 들인 전도연은 1997년 영화 '접속'으로 스크린에 진출했다. 이후 '약속' '내 마음의 풍금'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 '스캔들' '너는 내 운명' '밀양' '하녀' '집으로 가는 길' '무뢰한' '협녀' '남과 여' 등 20여 년간 여러 작품에 출연해 강렬한 배역으로 관객을 사로잡았다. 이 가운데 전도연은 이창동 감독의 '밀양'으로 칸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는 영광을 안았다.
"이제 '칸의 여왕'을 듣기는 창피한 것 같아요.(웃음) 오래됐잖아요. 사실 처음에도 그 수식어가 부담스럽기도 하고 어떻게 하면 벗어날 수 있을까 생각을 많이 했죠. 그런데 지금은 제가 어떻게 할 수 없는 부분인 것 같아요. 계속 많은 작품을 하고 다양한 모습과 성과를 보여주면 뭔가 다른 게 생겼을 수도 있겠지만 제가 그렇지 못한 탓인가 봐요."
하지만 '생일'은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손꼽힐 만큼 강렬한 작품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란 예감이 들었다. 전도연 역시 "저에게 다르게 다가올 것 같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전도연은 "연기로 세월호 이야기를 할 수 있어서 의미가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매니지먼트 숲 제공 |
"각계각층의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이 이야기(세월호)에 대해서 다양한 방법으로 접근하잖아요. 저는 배우기 때문에 연기를 통해서 하는 거죠. 연기했다는 것에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처음으로 '이 작품 안 했으면 굉장히 많이 후회했겠구나'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동안 뭔가 다 어렵고 조심스러웠는데 막상 부딪히고 나니 '정말 잘했구나' 싶네요."
그러면서 전도연은 '생일' 이야기를 하던 도중 유가족 시사회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털어놨다. 눈시울을 붉히며 어렵게 말을 꺼낸 그는 결국 눈물을 보였다.
"영화가 끝나고 나서 유가족분들 앞에 '내가 설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너무 힘든...무슨 인사를 어떻게 들여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되게 힘들고, 어렵고, 그 자리에 서 있는데...어떤 어머님이 관객석에서 내려오셔서 유가족 어머니들이 수를 놓아 만들어주신 손지갑을 주시더라고요. 거기에 노란 리본을 묶어서 제 손에 쥐여주시는데...너무 감사하고 또 한 번 미안했어요. 이 자리가 어려워 피하려고 했던 게 죄송했고, 정말 감사했죠."
그 어떤 인터뷰보다 조심스러웠을 그는 '생일' 예비 관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제 친구가 영화를 보고 보내준 메시지가 있어요. 아이 셋을 두고 일을 하는 친군데. 하루하루가 너무 힘들대요. 일도 하고 아기도 키우고 세상 살기 힘들다고 생각했는데, 이 영화를 보고서 '이렇게 살고 있는 게 감사하고, 집에 가면 내 가족과 아이들이 있는 게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대요. 그 이야기가 바로 우리 '생일'이 말하고자 하는 게 아닐까 싶어요. 사는 게 너무 힘들지만, 그 힘듦을 감사함으로 바꿀 수 있는 게 저희 '생일'이 아닐까 싶네요."
전도연은 '생일' 예비 관객에게 "세월호 이야기도 담고 있지만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것"이라고 말했다. /매니지먼트 숲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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