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관계 동영상 불법 촬영·유포 논란을 빚고 있는 가수 정준영이 1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에서 조사를 마치고 청사를 나서고 있다. /이덕인 기자 |
정준영 동영상, 우리는 피해자의 신상정보가 궁금하지 않아요
[더팩트|성지연 기자] "야, 너는 기자니까 동영상 갖고 있지?"
성관계 동영상을 몰래 촬영하고 유포한 혐의를 받고 있는 가수 정준영과 해외 투자자 성매매 알선 혐의로 경찰에 입건된 승리 일당에 대한 사건이 연일 뜨거운 이슈인 가운데 지인에게 받은 카카오톡 메시지다. 대화의 요는 이렇다. 기자는 '이 바닥 정보'를 잘 알 것이고 정준영이 촬영했다는 '문제의 동영상' 또한 가지고 있을테니 공유하자는 것.
꽤 가까웠던 사람이기에 실망과 분노를 담아 답장을 보낼까 생각했다가, 그냥 '친구차단'을 누르고 침묵했다. 정준영 사건이 수면 위로 올라온 날, 하루종일 포털사이트 검색어 상위권을 차지한 키워드가 '정준영 동영상' '정준영 동영상 여자' '정준영 영상 주인공'이라는 것이 기억났기 때문이다.
'정준영 카톡방'에 참여한 스타들. 연예계를 탈퇴하거나 자숙하겠다고 말했다. /이동률 기자, 더팩트DB |
정준영이 불법 영상을 촬영했다는 사실이 알려진 뒤 이와 관련된 악성 루머도 온라인을 중심으로 자연스럽게 퍼졌다. 이른바 '정준영 동영상 리스트'라는 지라시가 그렇다. 정준영이 촬영한 영상 주인공으로 이름을 올린 스타들은 아무 이유 없이 이번 사건의 제2차 피해자가 됐다. 이들은 적극적으로 해명하거나 SNS에 분노에 찬 글을 올리며 사실이 아니라고 선을 긋고 있지만, 심각한 이미지 훼손으로 이어진 뒤였다.
'승리 게이트'라고 불릴 만큼 이번 사안은 연예계에서 지금까지 있었던 그 어떤 사건·사고보다 충격적이고 큰 이슈로 언급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승리 게이트' 사건은 마약, 성매매, 몰카, 권력과의 유착관계 등 다양한 범죄가 엮여있다.
정준영과 그의 동료들이 나눈 대화가 무엇이 문제인지 모르는 이들. /온라인커뮤니티 캡처 |
그 가운데 일반인뿐 아니라 동료 연예인과 성적인 행위를 하고 이를 몰래 촬영한 정준영 사건의 경우 '동영상에 촬영된 대상'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과 호기심이 뜨겁다. 사건의 본질에만 집중해도 모자랄 판에, 사건의 본질 속에 피해자들의 신상정보까지 포함된다고 생각하는 큰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정준영과 승리 이종현 용준형 최종훈 등을 두고 '운이 없었다'며 동정의 눈빛을 보내기도 한다. '운이 없게 걸렸다'는 거다.
몰래 촬영한 영상물을 단순하게 '야동'으로 분류하고, "ㅂㅈ들을 위한 노래", "차에서 강간하자", "빨리 여자 좀 넘겨요. O같은 X들로" 등 그들이 나눈 음담패설을 '남자끼리 나누는 스몰토크' 정도로 언급하면서 말이다. '야동'이란 소재를 예능프로그램, 방송 등에서 가벼운 농담처럼 다루어 왔다는 점에서 비단 정준영 사건의 특이점은 아닐 것이다.
지금까지 수많은 스타가 각종 프로그램에서 '색드립'과 '야동'을 웃음 소재로 삼았지만, 이와 관련해 문제를 제기하거나 진지하게 공론화시킨 적은 없었다. 그저 당연한 일인것 처럼 함께 웃고 떠들었을 뿐. 언젠가부터 여성을 대상화시키는 행위가 자연스럽게 녹아든 탓에 이를 인지하지 못한 우리 모두의 책임 또한 크다.
'남자들은 그런 대화를 한다. 정준영이 안타깝다'고 인터뷰하는 시민들. /영상 캡처 |
수백, 수천, 아니 수 십만 명의 팬을 거느리고 있는 글로벌 스타들이 여성, 그리고 함께 일하는 동료를 상품화해 은유하고 조롱하는 것. 그걸로 모자라 몰래 영상을 촬영하고 '후기'를 남기는 것. 이를 두고 '남자의 대화'이며 '걸린 게 안타깝다'고 대수롭지않게 표현하는 것 또한 같은 맥락일 터.
얼굴과 목소리를 버젓이 달고 "안됐다고 생각하죠" "남자면 야동을 보고 싶어 하거든요. 친구끼리 돌려보고 싶은 마음, 이해할 것 같아요"라고 말할 수 있는 '그들의 권력'에 대해 우리는 지금부터라도 진지하게 고민하고 생각해봐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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