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일홍의 스페셜인터뷰㉒-이상용] 사라진 20년, '뽀빠이는 죽지 않는다'
입력: 2019.01.20 00:00 / 수정: 2019.01.21 17:10

마이크를 잡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일. 이상용은 오래도록 무대에 서고 싶어 체력관리에 공을 들인다고 했다. /이새롬 기자
"마이크를 잡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일". 이상용은 "오래도록 무대에 서고 싶어 체력관리에 공을 들인다"고 했다. /이새롬 기자

[더팩트 | 강일홍 기자] 방송인 이상용(74)은 '뽀빠이'란 닉네임으로 불리며 아낌없는 사랑을 받았다. 작달막한 키와 다부진 근육질 몸은 건강과 힘의 상징이자 자랑이었다. 군장병 위문프로그램 '우정의 무대'(1989년~1997년)를 통해 국민적 사랑을 받던 그는 근거없는 허위 제보로 한순간에 무너졌다.

벌써 20년이 흘렀지만 이상용은 그 악몽들을 잊을 수 없다. '심장병 아동 성금 유용' '우정의 무대 폐지' '수술비 공금횡령 의혹 방송 퇴출'. 지금도 자다가 섬뜩 놀라 깰 만큼 그에게는 고통스런 기억들이다.

당시 국회의원 출마 요구를 거절한데 대한 정치권 보복이라는 의혹이 있었고, 사법기관 무혐의 결론이 났음에도 그는 방송에 다시 돌아오지 못했다. 타고난 유머 감각과 번뜩이는 재치로 대중적 사랑을 듬뿍 받았지만 치명상을 입으면서 돈도 명예도 다 잃었다.

지난 20년간 그는 어떻게 살았을까. 예상을 깨고 그는 변함없이 유쾌했다. 대중스타로서의 화려했던 과거는 묻혔지만 매주 케이블TV와 지역방송을 통해 2개의 TV 고정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전국을 누비고 다니며 한달 40여 차례 강의를 소화할 만큼 다시 바쁜 몸이 됐다.

최고 전성기시절부터 추락 직후까지 종종 인터뷰를 해온 필자는 '좌절의 세월'을 견딘 그의 근황이 궁금했다. 오랜만의 인터뷰 요청에 "송해 형님과 비교하면 내 전성기는 지금부터 20년간"이라며 유쾌하게 응수했다. 스페셜인터뷰는 지난 17일 서울 상암동 <더팩트> 사옥에서 진행됐다.

심한 스트레스로 실명 위기까지. 심장병 어린이 수술비 유용이라는 낙인은 이상용에게 사형선고나 다름 없었다. 스페셜인터뷰는 지난 17일 서울 상암동 <더팩트> 사옥에서 진행됐다. /이새롬 기자
심한 스트레스로 실명 위기까지. '심장병 어린이 수술비 유용'이라는 낙인은 이상용에게 사형선고나 다름 없었다. 스페셜인터뷰는 지난 17일 서울 상암동 <더팩트> 사옥에서 진행됐다. /이새롬 기자

-요즘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해하는 분들이 많다. 케이블과 종편에 종종 출연하는 모습을 보는데 스케줄이 많은가?

사람들은 지상파 TV에 자주 안 보이면 놀고 있는 줄 알아요. 요새 저 무척 바쁩니다. 경기케이블 TV 딜라이브의 '청춘노래자랑'을 4년째 진행하고 있고, 대전 SBS '고향 최고야' MC를 맡고 있어요. 서울 이외 수도권과 충남북 시청자들한테는 송해 선배가 진행하는 '전국노래자랑' 인기 못지 않죠. 기업과 지자체 강의를 한 달 40개 정도 소화해야 하니 매일 2~3개씩 스케줄을 소화합니다.

-건강한 모습을 보니 정말 반갑고 다행이다. 한때는 심한 스트레스로 실명 위기까지 갔다는 얘기도 있었다.

사람이 살다 너무 억울한 일을 겪으면 몸부터 망가지더라고요. 억울함을 풀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니고 하소연하는 중에 갑자기 왼쪽 눈이 안 보였어요. 실명 위기라는 진단을 받았는데 그때 많은 걸 깨달았죠. 세상은 내가 잘못한 게 아니어도 누명을 쓸 수 있다는 사실을요. 모든 걸 포기하고 다 내려놓으니 건강도 되찾고 시력도 서서히 되살아나더군요.

이상용은 1996년 11월 심장병 어린이 수술기금을 유용했다는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았다. KBS '추적 60분'을 통해 대대적으로 보도되자 8년째 진행중이던 '우정의 무대'를 떠나야했다. 숱한 선행과 자선활동, 군장교 복무(육군 소위) 등 확고부동한 국가관을 가진 그에게 '심장병 어린이 수술비 유용'이라는 낙인은 사형선고나 다름 없었다. 이듬해 2월 무혐의 처분을 받았지만 이미 '미운털'이 박힌 그는 다시 방송계로 돌아올 수 없었다. 그의 아버지는 당시 검찰이 사건 불기소처분 내용을 복사해 대전역 등 거리에서 억울함을 호소하다 쓰러져 작고했다.

수술비 유용이라는 누명은 3개월 뒤 무혐의 처분을 받았지만 이미 미운털이 박힌 그는 다시 방송계로 돌아올 수 없었다. 사진은 무혐의 처분 기록과 단란했던 당시 가족(작은 사진). /이새롬 기자, 이상용 제공
'수술비 유용'이라는 누명은 3개월 뒤 무혐의 처분을 받았지만 이미 '미운털'이 박힌 그는 다시 방송계로 돌아올 수 없었다. 사진은 무혐의 처분 기록과 단란했던 당시 가족(작은 사진). /이새롬 기자, 이상용 제공

-정치 보복 등 여러 소문이 있었다. 당시 상황을 설명해달라.

아픈 과거 기억을 다시 들춰내고 싶진 않지만 억울한 속사정은 밝혀야죠. 정치권에서 대전 유성지역 국회의원 출마를 권유 받았어요. 말이 권유이지 강요나 마찬가지였죠. 저는 오래전부터 정치와는 등을 지고 살던 사람이라 그 이유를 설명하고 거절했지요. 양복 입은 사람 둘이 다짜고짜 데려가 협박을 하더군요. 끝내 말을 안 들으니 방송 퇴출이라는 보복이 날아든 거죠. 순수한 선행을 엉뚱하게 횡령으로 몰고가는데 정말 죽고 싶었어요.

이상용의 방송퇴출에는 당시 청와대 비선 실세가 개입돼 있다는 의혹이 나돌았다. 이상용은 '우정의 무대' MC로 활동하며 심장병어린이 수술비 마련 자선활동을 꾸준히 했다. 그는 "제가 미숙아로 태어나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겼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각별한 관심을 갖게 됐다"고 했다. 이를 위해 중앙대학교 사회개발대학원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했다.

-어려서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겼다는 얘기는 뭔가? 키가 크지 못한 이유라고 말한 적도 있다.

워낙 찢어지게 가난하다 보니 벌어진 슬픈 얘기죠. 정상으로 태어나도 살아남기 힘든 시절에 저는 미숙아로 태어났어요. 부모님이 도저히 살 가망이 없다고 판단해 산에 내버렸다고 들었거든요. 당시 12살이었던 이모가 몰래 데리고 도망쳐서 살아난거죠. 어린시절 내내 병마에 시달렸고 6살이 돼서야 걸음마를 뗐고, 청소년기에 온갖 성인병을 다 앓았으니 아예 키가 클 수 없는 상황이었어요. 결국 살아남기 위해 열심히 운동을 할 수밖에 없었죠.

이상용이 자그마한 키에도 탄탄한 근육질의 몸을 갖게 된 이유는 그의 말대로 '살기 위해서'였다. 10대 시절에 보디빌딩을 시작해 고교시절 이미 보디빌더로 활동했다. 고려대학교 재학 시절에는 '미스터 고려'에 선발되기도 했다. 이후 방송활동을 하며 그는 '뽀빠이'이라는 호칭을 가진 건강의 상징이 됐다.

이상용은 대학노트 40개 분량의 유머집을 갖고 있다. 대부분 자신이 직접 창작한 아이템을 꼼꼼히 기록해둔다고 한다. 사진은 생각날 때마다 수시로 메모해 들고다니는 유머 쪽지. /이새롬 기자
이상용은 대학노트 40개 분량의 유머집을 갖고 있다. 대부분 자신이 직접 창작한 아이템을 꼼꼼히 기록해둔다고 한다. 사진은 생각날 때마다 수시로 메모해 들고다니는 유머 쪽지. /이새롬 기자

-70살 중반이 된 지금도 운동을 꾸준히 하고 있다고 들었다. 어떤 운동을 하는지 궁금하다.

매일 헬스를 3시간씩 해요. 숨쉬고 밥먹는 것처럼 평생 해오던 일이니까요. 추가로 아침 운동 후 꼭 뜸을 뜨죠. 뜸은 운동을 병행해 수년째 하고 있는데 나이가 드니 꼭 필요한 일이더라고요. 건강은 젊고 건강할 때부터 지켜야 된다는게 제 소신이에요.

이상용은 50kg짜리 역기를 하루에 500번씩 들어올린다. 젊은 시절 운동 방식을 조금 단순화 했을 뿐 강도는 그대로다. 또 1주에 3번씩 집 부근 양재천에 나가 한번에 3Km 씩 땀이 날 정도의 속보로 걷는다. 그는 "젊어서부터 꾸준히 운동을 해왔기 때문에 이 나이에도 아직은 큰 무리가 없다"고 말했다.

-올해가 데뷔 50주년이라고 들었다. 반세기를 연예계에서 보냈는데 올해 특별히 준비하는 게 있나?

지난해부터 폭소콘서트를 착실히 준비하고 있어요. 5월부터 전국을 순회하며 온국민을 웃겨드릴 생각입니다. 초대가수 5명도 이미 섭외를 끝냈는데 단순 코미디쇼가 아니라 종합버라이어티쇼이자 지금껏 보지 못한 최고 수준의 폭소 잔치를 펼치려고요. 정말 기대해도 좋습니다.

이상용은 대학노트 40개 분량의 유머집을 갖고 있다. 그가 정리해둔 웃음코드만 무려 3만여 개에 달한다. 하루 2~3권의 책을 읽을 만큼 다독의 주인공답게 대부분 자신이 직접 창작한 아이템을 꼼꼼히 기록해둔다고 한다. 이런 노력 덕분에 기업체와 대학교, 지자체, 중고등학교 등 한달 40여 차례 초빙 강의자료도 늘 신선하다.

송해 선배보다 내가 먼저 했다. 이상용은 전국노래자랑 MC 후임은 정통성을 갖고 있는 자신이 맡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새롬 기자
"송해 선배보다 내가 먼저 했다." 이상용은 '전국노래자랑' MC 후임은 정통성을 갖고 있는 자신이 맡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새롬 기자

-지난해 연말 연예대상을 시청하면서 개인적으로 속상한 게 많다고 들었다. 억울한 일이라도 있나?

방송사에 섭섭한 게 많아요. 연예계 50년 동안 저는 예능 MC로 활동하며 주로 10년 넘은 장수프로그램을 많이 했어요. '위문열차'(국군방송) '모이자 노래하자'(KBS) '늘푸른 인생'(MBC) '우정의 무대'(MBC) 등 한번 맡으면 최소 8년에서 26년까지 길게 했어요. 그런데 흔한 공로상조차 없으니 서운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 오늘은 어제가 있어 존재하고, 또 내일의 거울이 됩니다. 공로상까지는 아니라도 참가해달라는 연락 한 번 없으니 후배들 보기도 민망해요.

이상용은 장교 전역후 서울 도봉동에서 월 1만5000원짜리 월세를 살며 2년간 외판원 생활을 했다. 연예인이 되기로 작심하고 방송사(MBC 정동시절)를 찾아가 한달간 매일 앞마당에 쌓인 눈을 쓸어냈다. 주목을 받자 당시 '유쾌한 청백전' 유수열 PD(뒷날 춘천문화방송 사장, MBC프로덕션 대표이사 역임)가 "고려대까지 나온 인텔리가 왜 연예인 하려고 하느냐"고 말리기도 했다. 이렇게 방송과 인연을 맺어 올해가 데뷔 50년째다.

이상용의 방송퇴출에는 당시 청와대 비선 실세가 개입돼 있다는 의혹이 나돌았다. 사진은 지난 2015년 김영삼 전 대통령 빈소 조문 당시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사진공동취재단
이상용의 방송퇴출에는 당시 청와대 비선 실세가 개입돼 있다는 의혹이 나돌았다. 사진은 지난 2015년 김영삼 전 대통령 빈소 조문 당시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사진공동취재단

-'전국노래자랑' MC인 송해 후임을 노리고 있다고 들었다. 가능성이 있는 얘기인지 궁금하다.

사실은 제가 송해 선배보다 '전국노래자랑' MC를 먼저 했습니다. '전국노래자랑'은 위키리 선배가 초대 MC를 했고 제가 바통을 받았어요. 제가 MBC '우정의 무대' MC로 발탁되면서 KBS 아나운서가 잠시 맡았다가, 그 후에 송해 선배가 이어받은겁니다. 이후 워낙 오래 하시다보니 송해 선배의 독무대로 각인이 된거죠. 송해 선배가 언젠가는 정통성을 갖고 있는 저한테 물려주시지 않을까 기대를 하고 있어요.

이상용은 "현재 차기 '전국노래자랑' 경쟁자는 5명"이라고 했다. 그는 "송해 선배 앞에서는 쉬쉬 하지만 저를 포함해 이상벽 허참 김성환 이용식 등이 공공연히 거론되고 있다"면서 "다만 90세를 넘은 연세에도 건재하시니 누구도 감히 입밖에 꺼내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방송인으로서는 정말 견디기 힘든 시기를 거쳤는데, 마지막으로 향후 계획이나 희망사항이 있다면 알려달라.

전국을 다니며 맛집 수백개를 선정해뒀어요. 어디에 무슨 음식이 얼마나 유명한지 제가 다 알죠. 더 나이들기 전에 아내와 전국을 다니며 맛집 순회를 하려고 합니다. 올해 데뷔 50주년 폭소콘서트를 잘 마무리한 뒤 바로 행동으로 실천하려고 해요. 사랑하고 존경하는 아내에게 제가 해줄 수 있는 마지막 즐거움이 아닐까 싶어요.

이상용의 아내 윤혜영은 결혼 당시 TBC 3기 탤런트 출신으로 한 살 연상이고, 그보다 키가 10cm나 더 큰 늘씬한 미녀였다. 고향 누나의 동갑내기 친구인 윤씨를 알게 돼 사랑에 빠졌다. 60년대 대학축제 응원단장으로 일찌감치 유명했던 이상용은 대학졸업 직후인 66년 3월 윤씨와 결혼, 올해 54년째를 맞았다.

이상용은 고 김수환 추기경이 당시 눈이 덮였으니 쓸지 말고 떠나라고 조언하자 모든걸 버리고 미국으로 떠났다. 김수환 추기경은 생전 자신이 끼던 반지(사진)을 평소 아끼던 이상용에게 물려줬다. /강일홍 기자
이상용은 고 김수환 추기경이 당시 "눈이 덮였으니 쓸지 말고 떠나라"고 조언하자 모든걸 버리고 미국으로 떠났다. 김수환 추기경은 생전 자신이 끼던 반지(사진)을 평소 아끼던 이상용에게 물려줬다. /강일홍 기자

'엄마가 보고플 때 엄마 사진 꺼내놓고~'. 이상용이 진행한 '우정의 무대'는 90년대 최고의 인기 프로그램이었다. 자녀를 군에 보낸 가족들은 매주 일요일마다 '그리운 어머니'라는 낯익은 이 노래가 나오면 눈시울부터 붉히곤 했다.

그는 최고의 인기를 누리다 추락한 뒤 모든 걸 버리고 미국으로 떠났다. 평소 자신을 각별히 아껴준 故 김수환 추기경이 "눈이 덮였으니 쓸지 말고 떠나라"고 조언했기 때문이다. 관광버스 안내원 등 온갖 고생을 하면서 깨달음을 얻고 돌아왔다. 다 내려놓으니 편안해질 수 있었다.

이상용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일 하나를 꼽아보라'는 필자의 질문에 주저없이 "마이크를 잡는 것"이라고 답했다. 그는 "송해 선배보다 더 오래도록 무대에 서고 싶어 체력관리에 공을 들인다"고 했다. 그는 고희가 넘은 나이에도 여전히 스페셜하게 빛이 나는 '작은 거인'이었다.

eel@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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