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포커스] '아시안' 산드라 오, 세상에서 가장 빛나는 여우주연상
입력: 2019.01.08 00:00 / 수정: 2019.01.08 00:00

한국계 할리우드 배우 산드라 오가 7일(한국시각) 열린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킬링 이브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AP=뉴시스
한국계 할리우드 배우 산드라 오가 7일(한국시각) 열린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킬링 이브'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AP=뉴시스

산드라 오, 제76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서 '킬링 이브'로 여우주연상 수상

[더팩트|성지연 기자] 국내에서 '미드'(미국 드라마)와 '영드'(영국 드라마)를 찾아보는 게 유행처럼 번지던 시절, 너무 재미있어서 10번은 넘게 반복해서 봤던 미국드라마가 있다. 의사들의 일과 사랑을 담은 '그레이스 아나토미'(Grey's Anatomy, ABC방송) 시리즈다.

시애틀 그레이스 병원에서 일하는 의사, 주인공 메러디스 그레이(엘렌 폼페오 분)를 중심으로 매번 다른 에피소드가 벌어지는데 언뜻 보면 병원을 무대로 한 드라마라 매디컬 드라마로 분류될 것 같지만, 사실 '그레이스 아나토미'는 의사들이 하라는 진료는 안 하고 막장 연애를 하는 게 주된 내용으로 작품의 재미있는 포인트기도 했다.

하지만 '그레이스 아나토미'에 그토록 열광했던 결정적인 이유는 미국 시애틀이란 이국적인 배경과, 금발의 의사들이 주인공이란 이유에서 였다.

별세계를 엿보는 듯한 즐거움이 컸기 때문이다. 그런데 '별세계'에서 지극히 현실적인 캐릭터가 딱 하나 있었는데 그게 바로 산드라 오. 여자 주인공 메러디스 그레이의 절친 역할로 출연하는 한국계 배우다.

금발에 바다 같은 눈을 가진 백인들 사이에서 단춧구멍 같은 눈과 흑단 같은 머리칼을 휘날리며 등장한 동양인. 극 중 무엇이든 완벽하게 해내고야 마는 엘리트 의사 크리스티나 양으로 분해 독특한 매력을 발산했다. 덕분에 국내 미드 팬들에게도 강렬한 인상을 남겼고 두터운 팬층도 만들었다.

산드라 오는 자연스럽게 튀었다. 수많은 백인들 사이에 껴있는 아시아인은 유독 눈에 띄기 마련이니까. 드라마 중간중간 아시아인이라는 이유로 인종차별을 당하는 에피소드도 그의 몫. 인종차별에 당당히 맞서는 당찬 캐릭터를 연기한 덕분에(?) 인지도도 올라가긴 했지만 말이다.

그레이스 아나토미로 국내 팬들에게 인지도를 높였던 산드라 오. / Greys Anatomy 공식 페이스북
'그레이스 아나토미'로 국내 팬들에게 인지도를 높였던 산드라 오. / Grey's Anatomy 공식 페이스북

그랬던 그가 오늘(7일, 이하 한국시각) 제76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그레이스 아나토미'로 지난 2005년 골든 글로브 여우조연상, 2006년 미국배우조합상 연기상과 에미상을 수상하며 남다른 재능을 지닌 배우임을 입증했던 그였지만, 이후 그의 행보는 이렇다할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하는 역할이 대부분이었다.

우스갯소리로 아시아계 배우는 '백인 친구' 아니면 할 만한 역할이 없다는 할리우드다. 아시안 캐릭터를 등장시킨 작품 자체가 좀처럼 제작되지 않는 황무지. 그래서 그의 수상이 더욱 값지게 다가온다.

산드라 오는 6일 오후 5시(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비벌리힐스 힐튼 호텔에서 열린 제76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BBC 아메리카의 TV 드라마 '킬링 이브'(Killing Eve)로 드라마 부문 여우주연상을 거머쥐었다.

'킬링 이브'는 일도 사랑도 권태에 빠진 여자가 사이코패스 킬러와 쫓고 쫓기는 추격전을 벌이는 스토리를 담았다. 이 작품에서 산드라 오는 영국 MI5 요원으로 열연했다.

자신의 이름이 호명되자 산드라 오는 놀란 얼굴로 무대에 올랐다. 그는 제작진과 동료 배우에게 감사 인사를 전한 뒤 수상 소감 끝에 한국어로 부모님께 감사 인사를 남겨 국내 팬들의 눈길을 끌었다. 그는 "엄마 아빠, 사랑해요"라며 밝게 웃어보였다. 동시에 카메라는 객석에서 딸의 수상을 축하하고 있는 산드라 오의 아버지 오준수 씨와 어머니 전영남 씨를 향해 앵글을 돌려 감동을 더 했다.

여우주연상을 받고 트로피를 바라보며 뿌듯한 표정을 짓는 산드라 오. /AP=뉴시스
여우주연상을 받고 트로피를 바라보며 뿌듯한 표정을 짓는 산드라 오. /AP=뉴시스

여우주연상 수상 후 한국어로 소감을 전하며 누구보다 크게 웃어보인 산드라 오. 그가 이날 던진 한 마디의 농담은 다른 어떤 설명보다 이날의 트로피가 더욱 의미있는지 짐작하게 한다.

'조이럭 클럽' 이후 올-아시안 캐스팅 스튜디오 영화가 다시 나오기까지 25년의 세월이 걸렸다는 점을 꼬집기 위한 한 마디였다.

"영화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은 '공각기동대 - 고스트 인 더 쉘'과 '알로하' 이후 최초로 아시안 배우가 주연을 맡은 대형 스튜디오 제작 영화입니다."

이번 수상으로 할리우드의 오랜 관행, 화이트워싱이 한 번에 사라지는 것을 기대하긴 어렵다. 어쨌든 백인으로 가득찬 골든글로브 행사장 안에서 오늘 가장 크게 웃은 이는 작은 아시안, 산드라 오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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