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월 3일 국내 개봉을 확정한 영화 '레토'. 지난 5월 열린 제71회 칸국제영화제 공식 경쟁 부문에 초청돼 전 세계 영화팬의 관심을 받았다. /엣나인필름 제공 |
칸이 사랑한 '레토', 음악영화의 새로운 매력을 느끼고 싶다면
[더팩트|성지연 기자] "기차는 나를 내가 원하지 않는 곳으로 데리고 가네." (빅토르 최, 엘렉트리치카 Elektrichka, Электричка가사 중)
누구에게나 잊고 싶지 않은 '순간'이 있습니다. 치기 어린 젊은 시절의 단편적인 추억 같은 것 말이죠. 첫사랑, 첫키스, 혹은 내가 가장 빛난 순간들. 그때라서, 청춘이라서 가능했던 아름다운 추억들. 뜨겁고 열정적인 청춘의 조각은 누구나 가슴에 하나씩 품고 살아갑니다. 그러다 지쳐버린 어느 순간, 그 조각을 잠시 꺼내 추억하기도 하고 그리워하기도 하죠.
찬란하게 빛나던 우리의 젊은 날. '레토'(Leto, Summer, 2018, 감독 키릴 세레브렌니코프)는 그런 찰나를 담은 영화입니다. 슬프지만 아름답고, 새롭지만 익숙한 이야기죠.
영화 '레토'는 한국인 최초 록 뮤지션 빅토르 최의 젊은 시절을 담은 작품이다. /엣나잇필름 제공 |
내년 1월 3일 개봉을 앞둔 영화 '레토'. 한국인 최초의 록스타 빅토르 최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작품입니다. 러시아 연방에서 '영웅'으로 추앙받는 빅토르 최가 유명해지기 전, 그의 세계관에 지대한 영향을 줬던 젊은 시절의 에피소드를 그렸습니다. 지난 5월 열린 칸국제영화제 공식 경쟁 부문에 노미네이트돼 한 차례 화제를 모으기도 했습니다. 러시아 영화가 칸영화제에 공식 초청된 사례는 드물기 때문이죠.
빅토르 최. 한국인 최초 록스타라지만, 우리에게 다소 생소한 이름입니다. 러시아 연방에서 태어난 고려인으로 28년의 짧은 인생을 살다간 뮤지션입니다. 그의 음악이 러시아에서 높은 평가를 받으며 '영웅' 이란 타이틀로 불리는 이유는 단순히 록 음악을 처음 전파한 뮤지션이라서는 아닙니다. 빅토르 최가 살았던 1980년대, 개인의 삶을 보장해주지 않았던 러시아 연방 전체주의체제의 부조리를 우회적이고 짧은 가사로 비판했던 록스타. 당대 청춘들에겐 자유와 반항의 아이콘입니다.
빅토르 최를 연기한 독일계 한국 배우 유태오. /엣나인필름 제공 |
영화는 러시아 연방의 영웅이 된 록스타의 화려한 삶이나 대단한 업적 등에 포커스를 맞추지 않습니다. 실존했던 인물을 다루는 전기 영화가 대체로 지루하다고 느낄 땐, 대체로 역사적 위인이나 영웅, 예술가 등등의 업적을 화려하게 표현할 때입니다. 그런 면에서 '레토'를 전기 영화라기보다 음악영화에 가깝습니다. 빅토르 최가 첫 앨범을 내기 전 그가 사랑했던 여자와 사랑했던 친구들, 멘토처럼 따르던 동료와의 에피소드, 그리고 무엇보다 빅토르 최의 목소리를 충실히 담았습니다.
영화의 주인공 빅토르 최는 독일계 한국 배우 유태오가 맡았습니다. 독일 쾰른 출신으로 어릴 적부터 뉴욕과 런던을 오가며 다수의 작품에 참여, 다양한 스펙트럼을 쌓았습니다. 국내에서도 '열정같은 소리 하고 있네'(2015) '여배우들'(2009) 외 몇몇 작품에서 신선하고 개성 있는 모습을 보여준 바 있습니다. 유태오는 '레토'에 출연하고자 오디션에 직접 지원했고 그 결과 2000대 1의 높은 경쟁률을 뚫고 작품에 캐스팅됐습니다.
단역 혹은 조연으로 얼굴을 보여줬던 유태오는 빅토르 최를 만나 자신의 가능성을 200% 증명합니다. 독특한 그의 이력이 단점이 아닌 장점으로 발휘되죠. 정해진 틀이나 법칙없이 자유분방한 그의 연기가 빅토르 최라는 자유로운 젊은이를 만나 환상적인 궁합을 보여주는 셈입니다. '레토'가 국내에서 개봉하는 것 또한 한국에서 배우로 활동하는 그의 공이 컸다고 봐야겠죠.
유태오가 완벽에 가깝게 빅토르 최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독보적인 미장센과 파격적인 연출로 '스타일 마스터'라 불리는 거장 키릴 세레브렌니코프 감독의 연출력 덕분입니다. 전작 '유리의 날' '플레잉 더 빅팀' 등으로 세계 각종 비평가상을 휩쓸며 '거장' 반열에 오른 그는 빅토르 최의 무명시절에 초점을 맞춰 사회 비판적인 영화들이 대부분인 러시아 영화 시장에서 무겁지 않고 흥미로운 작품을 만들어 냈습니다.
중간중간 현실과 비현실을 오가는 장면들과 흑백필름 속 재치있는 자막, 과장된 표현은 감독의 위트를 대신합니다. 무거운 이야기를 유쾌하게 풀어내다가 마지막에 가서야 보여주는 총천연색 엔딩신이 더욱 감동적인 이유도 그 때문일 겁니다.
이데올로기적 제약에서 벗어나 자유를 갈망하던 청춘의 이야기를 위트있는 연출력으로 표현한 영화 '레토'/엣나인필름 제공 |
감독은 '레토'를 촬영하던 도중, 가택연금 조치에 취해졌습니다. 명목은 '공금 횡령'이지만, 러시아 정부에 곱게 보이지 않은 시대 정신 때문이라고 보는 사람들이 더 많습니다. 그리고 현재, 여전히 그는 갇혀있습니다.
평소에 듣기 힘든 러시아어 대사, 흑백 필름 등은 국내 관객들에게 다소 낯설 수 있습니다. 하지만 '레토'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전혀 낯설지 않습니다. 두발 자유화, 새마을 운동, 통금 조치가 아무렇지 않았던 1980년대. 표현할 자유를 빼앗긴 한국의 청춘들과 마찬가지로 저 멀리, 러시아에서도 '자유'를 갈망하던 빅토르 최의 젊은 시절은 그리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데올로기적 제약에서 벗어나 자신들이 진정으로 추구하는 특별한 이상을 달성하기 위해 멈추지 않는 젊은이들의 이야기는 국가가 어디든 아름답고 고결합니다. 시린 겨울, 조심스럽게 꺼내어보는 여름의 조각은 그래서 더 뜨겁고 아름다울지도 모르겠습니다.
'레토'는 2019년 1월 3일 개봉하며 15세 관람가, 러닝타임 128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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