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아인은 28일 개봉한 영화 '국가부도의 날'에서 금융업에 종사하는 윤종학 역을 맡았다. /UAA, 김재훈 포토그래퍼 제공 |
정제되지 않은 스타는 어떤 모습일까. 요즘 연예계는 스타도 많고, 연예 매체도 많다. 모처럼 연예인 인터뷰가 잡혀도 단독으로 하는 경우도 드물다. 다수의 매체 기자가 함께 인터뷰를 하다 보니 대부분의 내용이 비슷하다. 심지어 사진이나 영상도 소속사에서 미리 만들어 배포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더팩트>는 순수하게 기자의 눈에 비친 그대로의 스타를 '내가 본 OOO' 포맷에 담아 사실 그대로 전달한다. <편집자 주>
'국가부도의 날' 28일 개봉
[더팩트|박슬기 기자] 배우 유아인과 인터뷰는 처음이었다. 그동안 공식 석상에선 여러 번 봤지만 가까이 만나 이야기 나눌 기회는 없었다. 마침 영화 '국가부도의 날' 인터뷰가 잡혔다. 내심 기대했다. 그동안 SNS나 여러 발언으로 논란의 중심에 섰던 그였기에 실제 만남에선 어떨까 궁금했다.
지난 22일 서울 종로구 팔판동 한 카페에서 영화 '국가부도의 날'(감독 최국희·제작 영화사 집)에 출연한 유아인을 만났다. 그날은 한겨울처럼 추웠다. 손이 너무 시려워 들고 있던 노트북 가방을 던지고 싶을 정도였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추위에 인터뷰할 의욕도 떨어졌다. 하지만 인터뷰와 동시에 시작된 유아인의 열변에 그 의욕은 곧 상승했다. 묻고 싶은 것도 많았고, 듣고 싶은 것도 많았다.
유아인은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느라 기자에게 질문할 기회를 쉽게 주지 않았다. 아무래도 이틀째 진행하는 인터뷰라서 그런지 이야기할 게 더 많았던 것 같다. 그는 "어제 인터뷰를 했더니 오늘은 생각 정리가 됐다"며 말문을 열었다.
"외환 금융 위기는 꼭 한 번 해야만 하는 이야기라고 생각해서 의미를 갖고 영화에 참여하게 됐어요. 사실 윤정학은 저한테 최적화되어 있는 역할은 아니었어요. 금융맨이잖아요. 하하. 제가 금융맨이라뇨? 제작진은 전형적일 수 있는 인물구조를 캐스팅의 차별화를 통해서 새로운 지점을 만들어가지 않았나 싶어요. 이야기는 정통한 방식으로 가져가면서 인물들의 힘으로 작품을 새롭게 만들어가는 거죠."
'국가부도의 날'에서 윤정학은 위기를 기회로 만들기 위해 사표를던진 금융맨 역이다. /CJ엔터테인먼트 제공 |
사실 유아인이 '국가부도의 날'에서 맡은 '금융맨' 윤정학 역은 쉽지 않은 배역이다. 영화의 토대가 되는 큰 줄기에서 빠져나와 따로 노는 느낌이 강하다. 주인공 김혜수, 조우진, 허준호와 붙는 장면이 없고, 혼자서 자신만의 스토리를 이끌어가야 한다. 영화계에선 "많은 배우가 꺼리던 역이었는데, 유아인이 이 캐릭터를 선뜻 한다고 했다"며 놀라움을 나타내기도 했다.
영화에서 윤정학은 심리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는 알쏭달쏭한 인물이다. 캐릭터가 선명하지 않기 때문에 배우로서 접근하기 힘들었을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유아인은 "표현에 있어서는 어려웠지만 접근할 땐 오히려 공감했다"며 "평범한 인간의 내적갈등이나 삶의 태도, 삶의 방식들이 모두 단순하진 않으니까"라고 말했다.
"사실 단순한 인물들이 더 어려울 때가 있어요. '베테랑'에서 맡은 조태오 같은 캐릭터요. 접근성과 복합성을 찾아볼 수 없고 선이 확실한 그런 인물은 오히려 힘들죠. 사실 우리 인간은 끊임없이 모호하고 선명하지 않은 삶을 살잖아요. 윤정학은 이 시대를 열심히 살아가고 있지만 끊임없이 갈등하고 고민하는 인물이죠. 진정성으로 접근할 수 있는 인물이라고 생각했어요."
유아인의 필모그래피를 살펴보면 어떤 하나의 색깔로 정의 할 수 없다. 시대를 넘나들고, 선악을 넘나든다. '버닝'의 종수와 '시카고 타자기' 한세주, '육룡이 나르샤' 이방원, '베테랑'의 조태오, '사도'의 사도세자, '밀회'의 이선재 등. 최근 3~4년 동안 그는 연기 스펙트럼을 대폭 확장했다. 이 필모그래피에서 또 하나 드러나는 것은 그가 모험과 도전을 끊임없이 한다는 것이다.
유아인은 윤정학 역이 "표현하기는 어려웠지만 역할에 접근할 땐 공감이 잘 됐다"고 말했다. /UAA, 김재훈 포토그래퍼 제공 |
"위험성이 없는 모험은 모험이라고 할 수 없죠. 모험의 재미를 추구하고, 그런 걸 삶의 방식으로 가져가려고 해요. 단, 리스크를 감당할 수 있어야 하죠. 사실 안정을 추구하는 측면도 있지만 모험과 도전을 통해서 새로운 안정을 찾는 게 좋아요. 이미지를 메이킹하고 이미지를 통해 전달되어지고 대중을 실망시켜드리고 싶지 않고, 기대를 충족하고 싶어요. 하지만 저는 신념이 선다면, 시행착오를 겪어볼 의지가 있다면, 그것들에 몸을 던지기 위해서 준비하는 사람인 것 같아요. 그 결과물은 단기적이기도 하지만 큰 그림을 만들어내는 하나의 과정이기도 하죠."
이번 작품에서 그는 김혜수와 11년 만에 재회했다. 2007년 영화' 좋지 아니한가'에 함께 출연했던 두 사람은 '국가부도의 날'에서 또 만났다. 유아인은 "(김혜수가) 어릴 때부터 예뻐해 주셨다"며 "걱정도 많이 해주신다"고 말했다.
"(김)혜수 누나는 워낙 이 바닥에 오래 계셨고 다양한 시대에서 대중과 호흡을 나누셨잖아요. 그래서 댓글 하나, 누군가 한 마디에도 예민하게 반응하실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래서 저보고 '아인이가 예쁜 말만 들었으면 좋겠다'고 말씀을 많이 하세요. 저 역시도 그런 마음을 느끼기 때문에 책임 안에서 모험과 도전을 하는 것 같아요. 경력이 쌓이다 보니 책임지고, 감당해야 할 일도 많아지더라고요. 하지만 단기적으론 우려를 줄 수 있겠지만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더 큰 기쁨과 감동을 줄 수 있는 사람으로 주변에서 살아가고 싶어요.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사람으로요."
김혜수가 이렇게 그를 걱정하는 건, 평소 유아인이 SNS를 통해 밝히는 자신의 견해들 때문일 것이다. 그의 발언은 비교적 자주 논란이 되고, 많은 사람들은 그의 글을 두고 갑론을박을 벌인다.
유아인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배우이기에 끊임없이 대중과 소통하고 더 가까워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UAA, 김재훈 포토그래퍼 제공 |
"힘들 때도 있고 답답할 때도 있고, 상처받을 때도 있어요. 제가 잘못할 때도 있고요. 제가 맞다는 게 아니에요. 옳은 말을 하고 싶은 것도 아니죠. 저마다 각자 '표현'을 하자는 거죠. 우리는 모두 의견을 피력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비난하는 사람만이 의견을 개진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모두가 보다 더 적극적으로 의견을 표출하는 게 중요한 거죠."
대중의 비난이 쏟아져도 유아인은 멈추지 않는다. 자신의 의견을 꿋꿋이 내비치고, 표출한다. 그게 '유아인'이다.
"이제는 시대가 달라졌어요. 이 시대 배우들의 태도는 20~30년 전과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새롭게 만들어나가야 하기도 하고요. 기성의 틀, 보편의 틀 안에 집어넣어 안정을 추구하기보다는 나답게 관객과 친구가 되어 가는 과정이 필요하죠. 매일 좋기만 할 순 없어요. 가족이랑도 매일 싸우는데 어떻게 대중과 매일 좋기만 할 수 있겠어요. 대중과 연예인의 관계도 동등한 관계가 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가 '진지충' 같지만 이 진지함을 '오그라들어서' '욕 먹을 것 같아서' 란 이유로 안 하기 시작하다 보면 세상은 더 공허해지고 헛헛해질 거예요. 전 좀 달라도 되잖아요. 좀 튀어도 되는 사람이기도 하고요."
벌써 데뷔 15년 차. 유아인은 평탄하면서도 순탄치 않은 배우의 길을 걸었다. 다양한 작품으로 그의 넓은 연기 스펙트럼을 자랑했지만 솔직하고 과감한 발언으로 비난을 받기도 했다. 상처를 받고, 걱정을 사지만 그는 멈출 생각이 없다. 대중이 유아인을 좋아하는 이유는 아마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솔직하고 담백했다. 목이 쉬어 상태가 좋지 않은데도 자신이 맡은 캐릭터에 대해서, 또 자신이 가진 신념에 대해서 열정적으로 토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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