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본 드렁큰 타이거] 슬프고도 아름다운 '리버스 오브 타이거JK'
입력: 2018.11.28 05:00 / 수정: 2018.11.28 05:00

정규 10집을 끝으로 드렁큰 타이거라는 이름을 버리고 새로운 시작을 꾀하는 술취한 호랑이 드렁큰 타이거를 <더팩트>가 만났다. /필굿뮤직 제공
정규 10집을 끝으로 드렁큰 타이거라는 이름을 버리고 새로운 시작을 꾀하는 '술취한 호랑이' 드렁큰 타이거를 <더팩트>가 만났다. /필굿뮤직 제공

정제되지 않은 스타는 어떤 모습일까. 요즘 연예계는 스타도 많고, 연예 매체도 많다. 모처럼 연예인 인터뷰가 잡혀도 단독으로 하는 경우도 드물다. 다수의 매체 기자가 함께 인터뷰를 하다 보니 대부분의 내용이 비슷하다. 심지어 사진이나 영상도 소속사에서 미리 만들어 배포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더팩트>는 순수하게 기자의 눈에 비친 그대로의 스타를 '내가 본 OOO' 포맷에 담아 사실 그대로 전달한다. <편집자 주>

정규 10집 앨범을 끝으로 타임캡슐에…드렁큰 타이거란 타이틀

[더팩트|성지연 기자] 시대의 끝은 언제나 서럽다. 퍽퍽한 현실에 발 딛고 서서 과거의 영광을 떠올리는 것. '나의 시대는 끝났구나' 생각하는 것 말이다. 이것처럼 슬픈 일이 또 있을까. 하지만 슬프면서도 아름다운, 그래서 응원하고 싶은 마지막도 있음을 알았다.

오늘 내가 만나는 스타는 전성기가 지난 뮤지션이다. 한때는 왕이라고 불렸던 이 남자는 이번 앨범을 끝으로 자신의 이름을 버린다고 했다. 과거의 영광을 떠올리며 현실을 부정하는 바보로 남기보단 클래식으로 남고 싶다는 게 그 이유다. 무려 정규 앨범 10집이다. 드렁큰 타이거란 이름으로는 이번 앨범이 마지막 활동이라고 선언한 드렁큰 타이거를 마주했다.

그를 만나러 가는 길, 내가 사랑했던 그의 노래를 들었다. 국내에서 힙합이란 문화가 생경하던 90년대 초반, 드렁큰 타이거의 등장은 나와 같은 시대를 살았던 2030세대에게 큰 충격이었다. 위트있지만, 뼈있는 가사, 새로운 멜로디, 앨범마다 빼먹지 않는 촌철살인 사회비판 등은 그의 음악을 듣고 자란 이들에게 여전히 가슴 속 깊이 남는다.

그래서일까. 전성기를 마무리하는 나의 우상을 만나러 가는 길은 설레지만, 한편으로는 서글픈 마음이었다.

지난 22일, 드렁큰 타이거가 마지막 정규 10집 '드렁큰 타이거 엑스: 리버스 오브 타이거 JK'(Drunken Tiger X : Rebirth Of Tiger JK)를 발매하고 홍대 L7호텔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매서운 바람이 불던 날, 조금 야윈 그가 수줍은 미소로 취재진을 맞이했다.

드렁큰 타이거의 마지막 앨범 드렁큰 타이거 엑스: 리버스 오브 타이거 JK(Drunken Tiger X : Rebirth Of Tiger JK). /필굿뮤직 제공
드렁큰 타이거의 마지막 앨범 '드렁큰 타이거 엑스: 리버스 오브 타이거 JK'(Drunken Tiger X : Rebirth Of Tiger JK). /필굿뮤직 제공

드렁큰 타이거로 발매하는 마지막 앨범, 그는 자신을 기다려준 팬들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서 1년 반이 넘는 시간 내내 꼬박 곡 작업에만 몰두했다. 그 결과, 이번 앨범엔 수록된 노래만 30여 곡이다.

"다 만들어 놓고 나니 뿌듯해요. 우리 팬들이 '이 CD를 왜 사야 할까'에 대해서 고민하면서 만들었어요. 소장가치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요. CD가 생각보다 좋지 않으면 장식용으로라도 가치 있게 쓰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멋지게 만들었죠."

작업물을 보며 뿌듯하게 웃는 드렁큰 타이거다. 그의 미소를 보니 더욱 궁금해진다. 이토록 좋아하는데 왜 이름을 버리고 새로 시작하려는지 말이다.

"지금은 어쩔 수 없이 어느 정도 대우를 받고 '선배'라고 불리고 있지만, 저는 이제 민폐 같아요. 더이상 추해지지 않고 싶어서 결정한 겁니다. 나의 영광스러운 시대를 타임캡슐에 넣어 보관하는 거죠. 난 더이상 유행을 빠르게 쫓아갈 수도 없고 빠르게 변화는 세상에 적응하는 것도 힘들어요. 시대랑 안 맞게 고집을 피운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클래식함의 가치를 지키려는 것뿐이죠."

더듬더듬, 빙글빙글 돌려가며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가는 드렁큰 타이거는 무대 위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과는 정 반대다. 직관적이지 않고 언제나 추상적인 그의 대화법은 퍼즐을 맞춰가는 재미가 있다. 어눌한 말투로 수줍게 이야기하는 그가 잠시 숨 고르기를 한다. 그러더니 다시 한번 이야기를 이어갔다.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입니다. 드렁큰 타이거란 이름은 누구나 알고 유명한 타이틀이죠.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이름이에요. 그걸 버리고 다시 시작하고 싶다는 의미에요. 저한테는 또 다른 의미로 굉장히 큰 모험이기 때문에 저희 팬들만은 멋지다고 느껴주실 것 같아요. 추해지고 싶지 않아요."

드렁큰 타이거의 아내 윤미래는 남편의 마지막 아웃트로를 들은 뒤 눈물을 펑펑 쏟았다고 했다. /필굿뮤직 제공
드렁큰 타이거의 아내 윤미래는 남편의 마지막 아웃트로를 들은 뒤 눈물을 펑펑 쏟았다고 했다. /필굿뮤직 제공

그의 곁을 지키는 가장 가까운 동료이자 사랑하는 아내 윤미래는 남편의 마지막 앨범 녹음 날, 결국 참아왔던 눈물을 펑펑 쏟았다고 했다. 윤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자 드렁큰 타이거는 손등에 한 하트 모양 타투를 만지작거렸다.

"마지막 곡이 나오는데 막 울더라고요(웃음). 제 앨범에 아웃트로를 듣고 감동해서 우는 거였어요. 우리 둘이 미쳐서 그러는 거 같기도 한데 같이 울었어요. 우는 포인트가 비슷한 거 보면 '이렇게 마음은 통하는 거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요. 미래는 항상 제가 마음에 상처를 입을까 봐 두려워해요. 하지만 말해주고 싶어요. 드렁큰 타이거란 이름을 타임캡슐에 묻어두고 음악을 하는 것도 신나는 일이라고. 어떤 일이 벌어질까 항상 기대하고 있어요."

인터뷰 말미, "윤미래 만큼은 아니겠지만, 당신의 음악을 좋아했다"고, "그래서 지금 이 순간이 굉장히 슬프다"고 수줍게 고백했다. 드렁큰 타이거는 빙긋 웃었다.

"우리의 추억은 타임캡슐에 담기겠지만, 그것만 기억해요. 우리가 만들어 왔다는 것. 힙합이란 문화를 처음 국내에 전파한 건 드렁큰 타이거고 드렁큰 타이거의 노래를 들어준 건 당신이에요. 우리가 하나의 문화를 만들었어요. ONE!"

드렁큰 타이거의 앨범을 정규 1집부터 소장 중인 기자는 마지막 앨범인 10집으로 그를 인터뷰하고 사인까지 받을 수 있었다. 성공한 덕후다. 드렁큰 타이거, 잘가요! /성지연 기자
드렁큰 타이거의 앨범을 정규 1집부터 소장 중인 기자는 마지막 앨범인 10집으로 그를 인터뷰하고 사인까지 받을 수 있었다. 성공한 덕후다. 드렁큰 타이거, 잘가요! /성지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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