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본 김혜수] '국가부도의 날' 열연, '변신의 답'을 찾았다
  • 박슬기 기자
  • 입력: 2018.11.26 05:00 / 수정: 2018.11.26 05:00
김혜수는 국가부도의 날에서 한국은행 통화정책금융 팀장 한시현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호두앤유엔터테인먼트, 강영호 작가
김혜수는 '국가부도의 날'에서 한국은행 통화정책금융 팀장 한시현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호두앤유엔터테인먼트, 강영호 작가

정제되지 않은 스타는 어떤 모습일까. 요즘 연예계는 스타도 많고, 연예 매체도 많다. 모처럼 연예인 인터뷰가 잡혀도 단독으로 하는 경우도 드물다. 다수의 매체 기자가 함께 인터뷰를 하다 보니 대부분의 내용이 비슷하다. 심지어 사진이나 영상도 소속사에서 미리 만들어 배포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더팩트>는 순수하게 기자의 눈에 비친 그대로의 스타를 '내가 본 OOO' 포맷에 담아 사실 그대로 전달한다.<편집자 주>

김혜수 주연 영화 '국가부도의 날' 11월28일 개봉[더팩트|박슬기 기자] 언제나처럼 여유가 넘쳤다. 기자들과 눈을 맞추며 정성껏 대답하는 모습도 똑같다. 작품 홍보 인터뷰란 게 늘 그렇듯 비슷한 질문과 비슷한 대답으로 진행돼 꽤 지루할 법도 한데 성심성의껏 답하는 것을 보니 역시 베테랑 배우다웠다.

지난 21일 서울 종로구 팔판동 한 카페에서 배우 김혜수를 만났다. 오는 28일 개봉 예정인 영화 '국가 부도의 날(감독 최국희·제작 영화사 집)' 출연과 관련한 인터뷰를 위해서다. 그를 다시 만난 건 1년 만이다. 당시에도 꽤 쌀쌀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최근 인터뷰를 한 날도, 11월 들어서 가장 추운 날이었다. 갈색의 앙고라 니트와 H라인 스커트를 입고 인터뷰장에 나타난 김혜수에게선 따뜻한 겨울 냄새가 물씬 풍겼다.

정말 감탄한 것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 아름다운 그의 외모였다. 도대체 어떻게 관리하는 걸까. 연예인을 보면 일반인과 확실히 다르게 시간이 흐르는 것 같다. 그중에서도 김혜수는 단연 으뜸으로 꼽고 싶다. 철저한 관리 덕인지 피부는 물론, 20대 못지않은 몸매로 시선을 사로잡는다.

인터뷰는 김혜수의 트레이드마크인 '코 찡긋' 미소로 시작됐다. 50분간 진행된 인터뷰는 꽤 진지한 분위기가 형성됐다. '국가부도의 날'이 1997년 IMF사태로 이어진 국가부도가 나기 일주일 전의 긴박한 때를 다룬 작품이기 때문이다. 김혜수는 영화 이야기를 하며 분노도 하고, 울컥한 모습을 보이기도 하며 다양한 감정을 내비쳤다. 그래서인지 1년 전 인터뷰와 다르게 감정적으로 더 교감이 되는 듯한 느낌이었다.

김혜수는 한시현 역을 위해 각종 경제용어 공부와 영어공부를 했다. /국가부도의 날 스틸
김혜수는 한시현 역을 위해 각종 경제용어 공부와 영어공부를 했다. /'국가부도의 날' 스틸

'국가부도의 날'에서 김혜수는 한국은행 통화정책팀장 한시현 역을 맡았다. 한시현은 가장 먼저 국가부도의 위기를 예견하고 대책을 세운 인물로, 최악의 사태만은 막기 위해 분투한다. 업계에선 "한시현과 김혜수의 싱크로율이 높다"며 "김혜수였기 때문에 이 캐릭터가 완성될 수 있었다"는 평이 이어지고 있다.

김혜수는 "한시현이라는 인물은 부당함에 맞서고, 할 말 하는 당당함을 가졌다고 보일 수 있다. 나는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서 자기 소임을 다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어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또 국민을 지키기 위해서 자기 자리에서 담담하고 묵묵하게 그 일을 해내는 사람으로 표현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김혜수가 영화에서 맡은 '전문직 여성' 한시현은 그동안 그가 맡았던 캐릭터와 결을 달리한다. 그동안 드라마틱한 캐릭터를 그려왔던 터라 한시현은 비교적 현실적이다. 또 그의 진정성 있는 연기들은 그 어떤 작품보다 더 관객의 가슴을 파고든다.

기자가 그를 처음 본 건 어린 시절에 본 영화 '신라의 달밤'에서다. 당시 차승원과 이성재 사이에서 갈등하는 라면집 주인 민주란 역를 맡았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엉뚱하면서도 사랑스러운 모습이 인상 깊었다. 하지만 이후 행보는 색달랐다. 강렬했다. '얼굴 없는 미녀' '분홍신' '타짜' '바람피기 좋은 날' '도둑들' '관상' '차이나타운' 등 대부분의 작품은 청소년관람불가이거나 캐릭터 색채가 강했다.

그런 작품 탓인지 쉽게 다가갈 수 있는 배우란 생각은 들지 않는다. 하지만 직접 만난 김혜수는 한없이 인간적이고 따뜻하다. 어떤 인터뷰에선 눈물을 보이기도 하는데 그동안 '어떻게 강렬한 캐릭터를 했을까'란 생각도 든다. 인터뷰를 하면서 눈물이라니. 점점 현실에 부딪혀 감각이 무디어져 가는 기자로선 짐작할 수 없는 영역으로 보인다.

김혜수는 할리우드 진출보단 국내에서 잘해내기도 바쁘다며 할리우드는 생각해본 적 없다고 말했다. /영화 국가부도의 날 스틸
김혜수는 "할리우드 진출보단 국내에서 잘해내기도 바쁘다"며 "할리우드는 생각해본 적 없다"고 말했다. /영화 '국가부도의 날' 스틸

김혜수는 영화에서 자신의 캐릭터 말고 다른 캐릭터 캐스팅도 궁금했다고 밝혔다. 조우진, 뱅상 카셀, 유아인 등의 캐스팅 소식을 들었을 때 그는 "이 배우들이 해줘서 정말 좋았다"며 "어떤 그림이 그려질지 궁금했다"고 말했다. 특히 "뱅상 카셀이 어떻게 캐스팅됐는지 놀랐다"며 그와 연기하던 때를 회상했다.

뱅상 카셀은 영화에서 IMF 총재 역으로 출연했다. 김혜수와 협상 테이블에 앉아 IMF 협상안을 두고 설전을 벌인다. 김혜수는 "훌륭한 연기자와 공연을 해볼 수 있다는 게 행운이었다"며 "앞으로도 그런 기회가 없을 것 같아서 더 좋았다"고 말했다.

김혜수는 이 작품을 위해 경제와 영어 공부를 열심히 했다고 밝혔다.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서 대사를 외울 수 있을 만큼 열심히 했다는 말에 "캐릭터 준비도 힘들 텐데, 인물과 대립 장면도 만만치 않게 힘들었겠다"고 걱정을 내비쳤다. 그러자 김혜수는 "경직될 수 있는 장면이 많은데 실제 촬영장에선 화기애애하게 진행됐다"고 말했다. 베테랑 배우의 여유가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대사를 한 번 읽은 사람과 천 번 읽은 사람은 표현이 다르다고 한다. 아마 촬영 현장이 편했다면 그만큼 준비가 철저했으리라.

영화에서 화제가 된 장면 중 하나는 김혜수의 유창한 영어 실력이다. 워낙 자연스러운 영어 대화에 "할리우드 진출 생각은 없냐"고 묻자 그는 단박에 "관심 없다"며 "여기서(한국에서) 제 거 잘하기도 너무 힘들어요"라고 손사래를 쳤다. 30년 넘게 연기한 그의 입에서 나온 뜻밖의 말에 짐짓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연기를 그렇게 오래 했는데 아직도 힘드냐"고 물었다. 김혜수는 "다 그럴 거"라며 "자기 거 잘하기가 쉽지 않다. 정신 똑바로 차리고 잠깐 방심해도 다 드러난다. 그건(할리우드) 나랑 별로 상관없는 일인 것 같은데"라며 웃었다. 배우라면 한 번쯤은 꿈꿀 수 있는 할리우드지만 국내에서 배우 생활에 집중하고 싶다는 그의 말에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여전히 연기에 대해 고민하는 그의 열정이 느껴졌다.

김혜수는 좋은 배우들과 좋은 환경에서 일을 해서 좋았다고 말했다. /호두앤유엔터테인먼트, 강영호 작가
김혜수는 "좋은 배우들과 좋은 환경에서 일을 해서 좋았다"고 말했다. /호두앤유엔터테인먼트, 강영호 작가

김혜수에게 빠질 수 없는 질문은 여성 캐릭터에 대한 것이다. 그 역시 충무로 대표 여배우인 만큼 부담감을 떨쳐낼 순 없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의외의 답변이 돌아왔다. 김혜수는 "여성 캐릭터에 대한 부담감을 느끼지 않는다"고 말했다.

"전 배우로서 캐릭터를 선택하는 거고, 최선을 다해서 충실히 해내고 싶은 게 다일 뿐이에요. 최근 한지민 배우의 '미쓰백'이라는 작품을 정말 잘 봤어요. 그 영화가 개봉하기까지 참 어려웠다는데, 개봉하고 성과가 잘 나왔잖아요. 중간에 영화가 안 나올 수도 있었겠죠. 하지만 그런 시도가 없다면 이런 아름다운 결과가 나올 수도 없는 거잖아요. 전 시도의 시간, 노력의 시간이 너무 소중한 것 같아요. 그래야 더 좋은 캐릭터도 많이 나오겠죠."

사실 '국가부도의 날'은 쉽지 않은 경제 영화다. 또한 수많은 사람들을 나락으로 빠뜨린 우리의 아픈 역사를 조명하는 영화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국가 부도로 인해 고통을 겪었는지, 그래서 거리로 내쫓기며 피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던 과정을 다룬다. 경제 용어가 많이 나오기 때문에 어린 친구들이 보기에는 어려울 수도 있다. 그러자 김혜수는 초등학생 조카 이야기를 꺼내며 '조카 바보' 미소를 지었다.

"조카한테 영화를 보여주고 '어땠어?'라고 물어보니 아빠한테 물어보면서 봤다고 하더라고요. 그래도 친구들하고 다시 볼 거라고 하던데. 사실 영화가 어려울 수도 있지만 인물들의 감정을 따라가다 보면 상황과 맥락이 이해되기 때문에 괜찮을 것 같아요. 촬영할 때도 최대한 우리가 많이 쓰는 경제 용어로 바꿔서 했거든요."

그동안 몇 번의 인터뷰에서도 느꼈지만 김혜수의 연기 열정은 식을 줄 모른다. 여전히 노력하고 공부한다. 그는 "조우진 같은 좋은 배우를 만나면 그를 통해 또 하나의 연기 수업을 하는 거다. 나한테는 굉장히 좋은 공부와 자극이 됐다. 그런 경험을 해서 좋았다"고 말했다.

어느새 데뷔 33년 차에 접어든 김혜수는 충무로에 없어선 안 될 배우로 자리매김했다. 지금의 자리에 있기까지 엄청난 노력이 있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믿고 보는 배우'라고 불리는 김혜수는 공개하는 작품마다 새로운 인생 캐릭터를 경신한다. 그가 또 어떤 얼굴로 우리를 놀라게 할지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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