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제되지 않은 스타는 어떤 모습일까. 요즘 연예계는 스타도 많고, 연예 매체도 많다. 모처럼 연예인 인터뷰가 잡혀도 단독으로 하는 경우도 드물다. 다수의 매체 기자가 함께 인터뷰를 하다 보니 대부분의 내용이 비슷하다. 심지어 사진이나 영상도 소속사에서 미리 만들어 배포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더팩트>는 순수하게 기자의 눈에 비친 그대로의 스타를 '내가 본 OOO' 포맷에 담아 사실 그대로 전달한다.<편집자 주>
[더팩트ㅣ강수지 기자] 배우 송승헌(42)과 인터뷰가 잡혔다. 송승헌 하면 먼저 짙은 눈썹과 '누가 봐도 미남'이란 단어가 떠오른다. 하지만 머릿속 이미지와 실제 나이가 잘 연결되지 않는 '미남 배우', 그와의 인터뷰는 영화 '미쓰와이프' 이후 3년 만이다. 그는 또 얼마나 변했을까.
송승헌은 지난 11일 종영한 케이블 채널 OCN 월화드라마 '플레이어'(극본 신재형·연출 고재현)에서 마성의 매력을 지닌 천재 사기꾼 강하리 캐릭터로 분해 활약했다. '플레이어'는 사기꾼, 드라이버, 해커, 파이터 등 각 분야 최고의 플레이어들이 뭉쳐 불법으로 모은 더러운 돈을 찾아 훔치는 내용을 그린 액션 드라마다. 그동안 보여준 이미지와 사뭇 다른 '사기꾼' 캐릭터를 송승헌은 완벽하게 소화해냈고, 시청자는 박수를 보냈다.
15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모처에서 <더팩트>와 만난 송승헌은 회색 맨투맨 상의를 입고 편안한 분위기를 풍기며 젠틀하게 인사를 건넸다. 이번 드라마 속 장난기 가득한 사기꾼은 온데간데없었다. 역시 연기는 연기, 현실은 현실이다. 연기자들이 연기 속 인물에서 벗어나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고 하는데, 시청자나 관객들 역시 연기자의 극중 이미지에서 벗어나는 데는 시간이 필요한 모양이다. 송승헌을 보자 강하리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숯검댕이 눈썹'은 여전했다. 하지만 그의 연기와 캐릭터는 변하고 있다는 말이 많다. 청춘스타, 멜로물의 남자 주인공이라는 이미지를 벗기 위해 다채로운 장르의 작품으로 대중과 만나고 있음은 그가 출연한 작품을 통해 알 수 있다. 사실 이번 드라마 '플레이어' 방송 전 그가 사기꾼 캐릭터로 변신한다는 소식에 '의외의 선택'이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꽃미남'과 '사기꾼'이라니…. 웬지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다른 한편에선 미남이라고 사기꾼이 아니라는 보장이 없으니 그 연기가 궁금하기도 했다. 뚜껑이 열리자 호평이 쏟아졌다.

사기꾼 캐릭터를 선택한 그에게 '어떤 생각의 변화가 있었던 것일까?'라는 궁금증을 안고 인터뷰를 시작했다. 송승헌은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인터뷰에 응했다. 그가 선택하는 단어, 말투마다 신중함이 묻어났다. 이번 드라마 '플레이어'에 대해선 "정말로 연기에 대한 재미를 느끼게 해줬고, 많은 분이 저에 대해 '다시 봤다'고 말씀하시게 해준 작품이다"며 연기 스펙트럼을 넓혀준 작품이라고 표현했다. 또 "새로운 모습을 많은 분이 좋게 봐 주신 것 같아서 용기를 얻었다"고 했다. 뻔한 종영 소감처럼 들릴 수 있겠으나 그의 말은 빈말로 들리지 않았다.
연기 변신에 어떤 계기가 있었던 것일까. 연예계 데뷔 23년이 넘는 송승헌에게 연기 변신의 이유, 작품 선택의 기준 등을 물어보는 게 실례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조심스럽게 들었다. 하지만 본인 또한 본인이 드러낸 '새로운 모습', 이에 대한 대중의 반응을 자각하고 있었기에 과감히 물었다. 그는 이에 대한 새로운 감회를 자연스럽게, 그리고 허심탄회하게 털어놨다. 조금 더 자세히 물어볼 용기가 생겼다.
송승헌은 "20대, 30대 초반에는 기본적으로 연기에 대해 잘 몰랐다. 재밌지도 않았고, '내 길인가?'라는 고민도 있었다. 연기를 못한다고 혼나니 신인 때는 방송국 세트장에 불이 나서 촬영이 연기됐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고 고백했다. 외모가 오히려 연기자에게는 부담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촬영장에 불이 나길 바랄 정도의 절박한 심정이 가슴을 울린다.
1995년 의류 브랜드 '스톰'의 모델로 데뷔, 꾸준히 활동해온 '꽃미남 배우'. 30대 초반에 한 팬이 준 편지를 읽고 연기자라는 직업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다는 송승헌은 "한 팬이 '연기자라는 직업은 누군가에게 행복을 주는 직업이다. 감사하며 살라. 축복받은 직업 아니냐'고 하더라. 그 편지를 읽고 뜨끔했다. 굉장히 창피했다"고 회상했다. 또 "의도하지 않았지만 직업이 됐다. 그런 편지를 빨리 받았으면 좀 더 나은 연기자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고 수줍게 웃었다. 연예계 데뷔 20년이 넘는 스타의 진솔한 고백, 자기 성찰에 응원의 마음이 절로 일었다.

송승헌이 예능 프로그램에서 활약한다면 어떨까? 지난 8월 말 송승헌이 MBC 예능 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에 잠깐 얼굴을 비쳤을 때 대중은 환호했다. 예상치 못한 활약에 기자 또한 반가웠다. 잠깐의 출연으로 대단한 반응을 얻은 송승헌은 "'저런 면이 있네' '인간적이네'라는 말을 듣고 '거리감이 드는 이미지였구나' 싶었다"며 "대중과 조금 더 친숙해졌으면 좋겠다. 그래서 SNS(사회관계망서비스)도 조금씩 더 해보려고 하고 있다"고 최근의 고민을 드러냈다.
작품, 예능, SNS 등에서 정형화된 이미지가 아닌, 새로운 매력으로 대중을 만나기 시작한 송승헌. 거듭 "재미가 없는 사람이라 예능 프로그램에 자신이 없다"고 푸념한 그는 "소지섭이 출연한 리얼리티 예능 프로그램을 봤는데 출연해서 거의 말이 없더라. '나도 저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털어놨다. 또 잠시 주저하더니 "예능 프로그램 출연 제안이 많이 왔는데 고민 끝에 출연을 고사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의 말에 오히려 예능 프로그램 출연을 강력하게 추천했다. 대중과 한 걸음 더 가까워지기 시작한 송승헌, 연기 등 활동에 재미를 붙이기 시작한 그가 또 다른 활약, 색다른 면모를 보여준다면 대중이 그에게 더욱 마음을 열 것이라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그리고 편안하고 친근한 이미지로 대중에게 다가가는 모습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아직 실행은 못했지만 언젠가는 할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고 여운을 남기며 예능 프로그램 출연을 주저하는 그에게 "예능에 출연하면 좋은 리뷰 기사를 작성하겠다"고 약속했다. 순간 흔들리는 눈빛과 미소를 봤다. 긍정적인 신호이기를. 그의 다채로운 활약을 기다리는 이들이 많다. 송승헌, 그의 새로운 2막에 기대가 높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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