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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팩트 독자여러분 사랑합니다~잉!" 남진은 유쾌한 분위기로 인터뷰를 하면서 최근 더팩트가 단독 보도한 '인강학교 폭행사건'을 언급하며 막강 취재력을 칭찬하기도 했다. /이덕인 기자 가수 남진(72, 본명 김남진)은 가요계의 '영원한 오빠'다. 목포 제일의 부잣집 아들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유복하게 자랐고, 스무 살이던 65년 데뷔 후 '한국의 엘비스 프레슬리'로 불리며 70년대 가요계를 풍미했다. 흔히 비슷한 시기에 데뷔한 나훈아와 비교되기도 하지만, 남진이 진정한 국민적 대중가수로 평가받는 데는 누구와도 격의없이 소통하고 만나는 스타일 때문이다. 나훈아가 베일에 가려진 신비주의를 펼친다면 남진은 '대중가수는 늘 대중과 가까이 숨쉬고 호흡해야한다'는 게 소신이고 그게 바로 그의 또다른 매력이다. 그의 명성이야 굳이 필설로 나열할 필요가 없지만, 반세기 넘도록 가요계 정상을 걸어온 인생 발자취는 되새길수록 흥미롭다. 지난 8월 원로가수 최희준 씨가 별세했을 때 가장 슬퍼했다는 얘기를 듣고 이유가 궁금하던 차에 최근 신곡까지 냈다는 소식에 인터뷰 요청을 했다. 필자는 10년 전 서울 목동 SBS 본사 옆 오목공원에서 대면 인터뷰를 한 지 꼭 10년 만에 그와 단둘이 만났다. 남진의 스페셜인터뷰는 지난달 30일 자택이 있는 경기 분당의 한 카페에서 2시간 동안 진행됐다. -콘서트나 가요계 공식 행사 자리에서 종종 뵙곤 하지만, 이렇게 정식 인터뷰를 하기는 꽤 오랜만인데요. 아네, 반갑습니다. 강 기자님이 스포츠조선 시절에 저를 인터뷰한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10년이 훌쩍 지났군요. 그 사이 개인적인 이슈가 좀 있어도 젊은 기자들과 소통이 쉽지 않으니 인터뷰할 일이 거의 없었죠. <더팩트>는 요즘 단독 특종을 많이 하는 핫한 매체로 떠올라 저도 관심이 많아요. 바로 얼마 전엔 '인강학교 폭행사건'을 세상에 알렸던데 참 대단합니다. 스페셜인터뷰에 초대해주셔서 영광이에요. 일세를 풍미한 스타여도 그는 누구한테나 정중하고 겸손하다. 가요계의 맏형으로 후배들한테 늘 살갑고 정겹게 대해 '가요계의 신사'라는 호칭을 듣는다. 끈끈한 의리와 함께 자신보다 상대방을 먼저 배려하는 정많은 사나이로 살았다. 데뷔 이후 반세기 넘게 비교적 호불호가 없는 대중 스타로 우뚝 선 비결인 셈이다. ![]() '누구라도 한번 만나면 푹 빠져드는 이 남자'. 남진(오른쪽)은 자택이 있는 경기 성남시 분당구 성남대로의 한 카페에서 2시간동안 스페셜인터뷰를 했다. /이덕인 기자 -가요계에서는 '한번만 만나보면 누구나 빠져드는 남자'라고 말합니다. 어떤 매력 때문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글쎄요, 그렇게 불러주니 감사한 일이긴 한데 그런 과찬을 그냥 인정해야할지 말아야할지 난감하네요. 아시다시피 저는 대중가수로 너무나 많은 사랑과 박수를 받고 살았잖아요. 그러니 모든 분들이 제 팬이고 가족인 셈이죠. 동료 선후배 가수들도 저한테는 경쟁자가 아닌 존중해야할 동반자입니다. 서 있는 위치를 보고 높낮이를 판단하지 않는 이유는 누구라도 저에게는 고마운한 분들이기 때문이죠. -65년에 데뷔해 올해까지 54년째 한결같은 모습으로 무대에 서고 있는데요. 남진 콘서트는 여전히 티켓파워를 자랑합니다. 데뷔한지 이제 막 5년 쯤 된 것같은 느낌인데 벌써 54년이라니, 저도 믿기지가 않아요. 철 들자 막 내리는 게 아닌가 싶은 아쉬움도 있고요. 다행인 것은 요즘이 가수로 활동한 이후 가장 만족한다는 거예요. 전성기 시절 못지않은 흥분과 셀렘이 있어요. 70살이 넘은 지금도 환호하는 팬들 앞에서 콘서트를 한다는 사실은 축복입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전국 투어콘서트를 하셨는데 어떤 스타일로 진행하시는지요. 연말에도 남은 공연이 있죠? 네, 올해 콘서트는 12월 8일 의정부 공연만 남았어요. 그동안 장윤정 등 젊은 후배 여가수들과도 다양한 스타일로 변화를 줬고 올해는 제 히트곡 중심의 단독 공연에 포커스를 맞췄어요. 다양한 모창 레퍼터리도 이번 공연에 담았어요. 남진은 방송 출연 대신 매년 콘서트를 통해 그 때 그 시절의 중장년 팬들의 추억과 기억을 되새긴다. 지난 2월 인천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을 시작으로 천안(4월) 성남(5월) 광주(5월) 전주(9월)에서 팬들을 만났고, 12월 8일 마지막 의정부 실내체육관 공연을 앞두고 있다. 콘서트와 별개로 해마다 해오는 디너쇼는 크리스마스 직전 여의도 63빌딩에서 갖는다. ![]() "54년간 1000곡 정도 불렀다." 남진은 숱한 히트곡 중에서도 자신의 첫번째 히트곡인 '울려고 내가 왔나'가 가장 애착이 간다고 말했다. 사진은 데뷔50주년 콘서트 당시. /이새롬 기자 -원로 가수 고 최희준 씨가 타계한 뒤 가장 마음 아파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어떤 사연이 있나? 최희준 선배님은 제가 가수 꿈을 키우게 된 인생 모델이었어요. 모창도 많이 했는데 워낙 흉내를 많이 낸 탓에 신인 때는 제 노래를 최희준 씨가 부른줄 알았다고 할 정도였죠. 당대 최고 스타가수였던 선배님은 무명시절에도 저를 많이 이뻐해줬고요. 동대문 고궁에서 사진 찍어준 기억이 엊그제 같네요. 선배님은 돌아가시기 몇년전까지만 해도 나를 만나면 "이놈 이놈"하며 50년전과 똑같이 내게 정겹게 대해 주셨는데 그런 선배님이 막상 세상을 떠나시니 인생이 너무 허무하더군요. 장례식날 "형님, 이번엔 제 차례입니다" 하면서 속으로 한참 울었어요. -그동안 몇곡이나 불렀는지 기억하나? 스스로 꼽는 '가수 남진의 인생곡'은 무엇인가? 세 곡만 꼽는다면? 정확히 헤아려보진 못했지만 대략 1000곡 정도 되는걸로 파악하고 있어요. 딱 세 곡만 꼽으라면 좀 가혹하지 않나요. 장르별로 '가슴 아프게' '울려고 내가 왔나'(트로트), '님과 함께' '둥지'(빠른곡), '미워도 다시한번' '빈잔'(슬로곡) 등 최소 6곡은 꼽아야죠. 이중 '울려고 내가 왔나'는 저의 첫번째 히트곡이라서 가장 애착이 갑니다. -올해 가요계에 가장 큰 이슈는 대한가수협회 내홍이었다. 초대회장을 지낸 원로이기도 하지만 논란을 잠재우는 역할을 했다. 소회가 남다를 것 같다. 작곡 작사가의 권리가 커진데 비해 가수들의 권익은 자꾸 후퇴해 안타까워요. 한국 가수들이 중국, 일본, 동남아를 넘어 세계로 진출하고 있는데 말이죠. 한때 최고 인기를 누렸던 원로가수들 중에는 나이들어 셋방살이하는 분들도 많아요. 대한가수협회는 순수 친목모임이긴 하지만 선후배가 힘을 모아 바로 이런 일을 하나씩 풀자고 탄생된 겁니다. 그런데 가수들끼리 알력이 생기고 고소고발로 이어지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벌어진거죠. 남진은 초대 대한가수협회 회장으로 추대돼 협회를 약 3년간 이끌었다. 대한가수협회는 예총 산하 연예협회에 흡수되면서 분과로 규모가 축소된 지 45년만에 남진이 구심점이 돼 재탄생했다. 후임으로 송대관 태진아 김흥국이 바통을 이어받았지만 회원들간 분란이 끊이지 않았다. 남진이 비대위원장을 맡아 교통정리에 나섰고, 지난 9월말 김흥국에 이어 이자연이 첫 여가수 회장으로 추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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