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당' 배우 박충선. 배우 박충선은 지난달 27일 오전 서울 마포구 성암로 더팩트 사옥에서 인터뷰를 했다. /남윤호 기자 |
'명당' 지관 정만인 役 박충선 인터뷰
[더팩트ㅣ강수지 기자] 베테랑 배우 박충선(54)이 영화 '명당'으로 연기 인생 터닝포인트를 꿈꾼다. 지난달 27일 서울 마포구 성암로 <더팩트> 사옥에서 박충선을 만났다.
박충선이 활약한 영화 '명당'(감독 박희곤·제작 주피터필름)은 땅의 기운을 점쳐 인간의 운명을 바꿀 수 있는 천재 지관 박재상(조승우 분)과 왕이 될 수 있는 천하명당을 차지하려는 이들의 대립과 욕망을 그린 작품으로, 지난달 19일부터 관객을 만났다. 영화는 흥미로운 소재로 관심을 모으며 추석 연휴 관객의 발걸음을 극장으로 이끌었고, 꾸준히 박스오피스 2, 3위를 오가고 있다. 박충선은 이번 작품에서 상황에 따라 태세를 전환하는 비열한 지관 정만인 캐릭터로 분해 인상 깊은 열연을 펼쳤다.
첫 독립영화 출연은 1989년 '오! 꿈의 나라', 첫 상업영화 데뷔는 1992년 '가슴에 돋는 칼로 슬픔을 자르고'로, 어느덧 데뷔 27년 차를 맞은 박충선이다. 그는 영화 '결정적 한방' '후궁: 제왕의 첩' '내 연애의 기억' '소수의견' '헬머니' '순정' '궁합', 드라마 '그녀는 예뻤다'부터 어린이 드라마 '매직키드 마수리' '마법 천자문'까지 스크린과 브라운관을 오가며 꾸준히 활약했다.
영화 '명당' 스틸 속 박충선. 배우 박충선은 영화 '명당'에서 지관 정만인 캐릭터로 분해 열연을 펼쳤다. /'명당' 스틸 |
- '명당'에 출연한 소감은?
정말 행복했다. 제가 '이 시나리오, 이 캐릭터는 정말 하고 싶다'고 피력하고 제 의견이 받아들여져서 작품에 출연한 게 처음이다. 그리고 워낙 인기있는 배우들과 함께 한 것이 정말 행복했다. 다들 그랬겠지만 준비 열심히 해서 참여했다. 처음에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부터 정말 함께하고 싶었다. 전개가 긴박하고 속도감, 에너지가 좋았다. 제가 연기한 정만인 캐릭터를 연기하고 싶어하는 배우들이 여럿 있던 걸로 안다. 운이 좋게 제가 함께 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 처음으로 큰 작품에서 비중이 큰 캐릭터를 연기했다.
배우는 선택을 받는 입장이기 때문에 선택 받은 이상 정말 잘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동안 저를 봐온 대중분들이 이 영화를 보고 다른 시각을 갖게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정말 영화도 잘 되고 배역도 잘 표현돼서 조금 폭 넓게 제작자나 관객에게 선택받는 배우가 되는 계기가 될 수 있길 하는 바람도 있었다.
현장에서 연기하는데 정말 기분이 좋았다. 긴장감 있는 분위기도 참 좋았다. 최고 내공을 지닌 백윤식 배우와 대면하는 장면이 극 초중반에 많이 있었는데, 그 긴장감이 저에게 쾌감을 줬다. 이런 좋은 배역을 맡은 것 자체도 기분이 좋았지만 현장에서의 쫄깃쫄깃한 긴장감이 유쾌했다. 배역은 비장했지만 말이다(웃음).
- 촬영장 분위기는 어땠나.
감독님이 워낙 준비가 확실히 돼있고 디렉션에 거침이 없었다. 한 장면이 끝나면 디테일한 설명을 해줬다. 안정감을 주는 감독님이었다. 이 장면을 이렇게 연기해야한다는 충분한 동기부여를 해주고 설명을 해줬다. 혹여나 제가 준비를 너무 많이 해오면 '이건 좀 약하게 해줬으면 좋겠다'고 정리를 해줬다. 친절하고, 잘 준비된 칼날 같은 분이었다. 조승우 지성 김성균 유재명 등 함께한 배우들 인성이 정말 좋았다. 얼굴 붉히는 상황이 전혀 없었다. 저는 아니지만(웃음) 다른 배우들 가운데 또래가 많아서 분위기가 더 좋았던 것 같다. 조합이 참 좋았고, 현장이 잘 굴러갔다. 제가 나이가 좀 있어서 다른 배우들이 저를 배척할 줄 알았는데(웃음) 전혀 그런 것 없이 '형님 형님'하면서 잘 해줘서 행복했다. 이 작품을 함께한 것 만으로도 제가 복받았구나 싶다.
배우 박충선은 더팩트와 인터뷰에서 영화 '명당' 정만인 캐릭터를 표현하기 위해 기울인 남다른 노력을 고백했다. /남윤호 기자 |
- 정만인 캐릭터 표현을 위해 노력한 점이 있다면?
감독님과 저는 정만인이라는 캐릭터를 '음지를 지배하는 자'라는 느낌으로 해석했다. 첫 번째는 이 인물은 어떤 사람인가, 어떤 성장과정을 거쳐 어떻게 살아온 사람인가, 트라우마는 뭔가, 세계관 여성관은 어떤가, 이 인물이 현실을 바라보는 시선은 어떨까 등을 구체적으로 고민했다. 그게 명확하지 않으면 안 되는 캐릭터다. 정만인은 극에서 주요 인물들을 다 만나는 캐릭터다. 한 장면 한 장면에서 누군가를 마주할 때 말투, 시선에 당위성, 진정성이 떨어지지 않을 수 있도록 연구를 많이 했다.
두 번째는 소리와 눈빛에 신경을 많이 썼다. 보통 제 체중이 60㎏인데 5㎏을 감량했다. 살이 빠지면 눈에 자연스럽게 힘이 실리더라. 몸에 비해 얼굴이 큰 편이라 얼굴이 날카로워보일 수 있게 노력했다. 예를 들어 백윤식 배우를 마주했을 때, 기운이 워낙 좋으시니 눈싸움을 하는 것보다는 '뇌 뒤를 뚫어본다' '폐 속을 뚫어본다'는 느낌으로 시선을 줬다. '너는 이미 내 안에 다 있다' '네 폐 속 까지 다 알고 있다' 이런 시선을 가져보려고 애를 썼다. 목소리도 제 평소 목소리가 저음에 평범한데 정제된 소리를 내려고 했고, 말도 조금 빠르게, 강하고 딱딱하게 그러면서도 스며들 수 있게 목소리를 내려고 노력했다.
이미지는 만약 김병기(김성균 분)가 식칼이라면 정만인은 사시미칼 느낌, 김좌근(백윤식 분)이 능구렁이라면 정만인은 독사 느낌으로 생각했다. 고단수가 상대를 잡아먹으러 가는 느낌을 생각했다. 웃음 소리 연구도 많이 했다. 조롱하거나 비아냥거리는 듯한 느낌이 살짝 들도록했다.
- 연기를 오랫동안 해오면서 힘든 점은 없었는가.
작품 얘기가 오가다가 엎어지는 경우도 있고, 배우로서 계속 뭔가를 기다리는 상황을 자주 겪는다. 연극할 때는 공연을, 공연 시작하면 관객을, 연습할 때는 상대 배우를, 촬영장에서도 순서를 기다린다. 기다리는 직업이다. 그러다보니 결혼도 40살에 늦게 하게 됐다. 일을 쉬는 시간이 많아지는 게 힘들더라. 좋은 배역을 만나면 정말 좋았다. 일 없이 집에 오래 있으면 눈치가 보인다. 제 아내가 워낙 사람이 좋아서 잔소리를 안 하기는 한다. 안타를 치든 홈런을 치든 타석에 서야하는 게 배우인데, 잘 안될 때도 있고 대기하는 느낌도 있다. 기회는 늘 온다고 생각하고 기다렸다. 앞으로는 정만인 캐릭터를 계기로 타석에 서는 일이 많았으면 좋겠다.
- '명당'은 박충선 배우에게 어떤 의미인가.
제 연기 인생 터닝포인트가 되길 바라는데 관객분들이 어떻게 보셨을지는 모르겠다.배우 생활 27년 만에 주변 사람들에게 '내 작품 봐달라'고 홍보한 게 처음이다. 가족, 지인들이 영화를 열렬히 홍보해주고 응원해주고 있다. 이런 경험이 처음이다. 오늘 같은 인터뷰도 경험이 많지 않다. 주변 사람들이 '땅 좀 봐달라' 등 재밌는 반응도 보여준다. 앞으로도 좋은 배역 만나고 싶다. 예전에 같은 작품을 한 배우, 감독 등 후배들도 '선배님에게 그런 모습 있는지 몰랐다'는 후기를 이야기해주더라. 정말 반가운 반응이다. 농담이라도 그런 얘기 듣는 게 기분이 좋다. 연기 인생을 걸으면서 꾸준히 타석에 섰으면 좋겠다. 정만인 캐릭터, 제작사 대표님, 감독님, 스태프 등 다들 정말 고맙다. 그래서 더 잘해야겠다는 부담도 있었다. 좋은 결과가 있어서 모두에게 다음 작품을 할 수 있는 힘이 비축될 수 있기를 바란다.
배우 박충선은 더팩트와 인터뷰에서 "꾸준히 타석에 서는 배우가 되고 싶다"는 바람을 드러냈다. /남윤호 기자 |
- '매직키드 마수리' 속 마패 캐릭터로 기억하는 이들이 많다.
아직도 '마수리 마패죠?'라고 말하며 인사하는 분들이 많다. 드라마 방영 당시 어린시절을 보낸 분들은 대부분 저를 아시더라. 그 사실 자체가 저에게 자극이 된다. 어릴 때 텔레비전으로 저를 본 애청자들이 나이가 들어 사회인이 되는 동안 난 무엇을 했는지 돌아보게 된다. 그분들에게 새로운 면모를 보여드린 적이 많이 있었나 싶다. 자극이 된다. 마수리 마패가 '그냥 늙어가는 아저씨' 정도밖에 안 된다면 저도 아쉬울 것 같다. 예전에는 저에게 달려와서 '마패 포즈' 보여달라고 하는 분들이 많았다(웃음). 요즘도 인사해주시는 분들 만나면 정말 감사하고 반갑다. 좋은 모습 많이 보여드리고 싶다. 아마 '명당' 보면서 '마패 아저씨인데?'하는 분들 꽤 있을 것 같다(웃음). 정말 고맙다. 사실 지금 생각해보면 과분한 사랑이었다. 제가 컴퓨터를 잘 못해서 당시 생긴 팬카페에 댓글도 안 달았다. 팬들에게 정말 못해준 것 같다. '고마워요 기운납니다' 한마디라도 전달했어야했는데. 지금 돌아보니 미안하기도 하다.
- 사랑하는 아내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추석 연휴에 장인어른, 장모님을 뵈러 가서 온가족 함께 '명당'을 관람했다. 아내가 영화를 보더니 '저런 캐릭터가 어울리는 구만. 임팩트 있네. 앞으로 센 배역 맡았으면 좋겠다'고 얘기하더라. 아내에게 처음 받은 칭찬이다. 평소에 잔소리가 별로 없는 편이다. 제가 벌어다 준 돈도 별로 없는데 애들 잘 키워줬다. 저희 어머니가 '며느리가 전화해서 언젠가 아들 잘 될거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고 하더라. 지금까지 제가 연기하는 것에 대해 관여하거나 비하하거나 한 적이 없었다. 제 일에 대해서 터치를 안하는 편이다. 저희 아내는 다정다감하지는 않지만 크게 안아주고 지켜봐주는 스타일이다. 제가 표현을 잘 못하는데 정말 고맙다. 저도 누구보다 가정이 최우선인 사람이다. 가정을 잘 지키고 사랑하려면 결국 제 일을 열심히 하는 게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좋은 작품 만나서 집 밖에 자주 나가주는 게 가정의 행복을 위한 일이 아닐까 싶다(웃음). 아내에게 고맙다.
- 앞으로 어떤 배우로 남고 싶은가.
더그아웃에 있든 안타를 치든 삼진아웃을 당하든 늘 현장에 있는 배우가 되고 싶다. 저에게 작품 선택권이 크게 있지는 않지만 작품이나 배역이나 결국 '맛'이라고 생각한다. 달콤, 매콤 등 '맛'이 있는 작품, 배역과 함께 하고 싶다. 중간중간에 안타는 치고 싶다(웃음). 꾸준히 타석에 서는 배우가 됐으면 좋겠다. 그게 저에게 즐거움이다.
joy822@tf.co.kr
[연예기획팀ㅣssent@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