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인터뷰] '1987' 장준환 감독 "올해 망신수가 있는 것 같아요"
입력: 2017.12.31 04:00 / 수정: 2017.12.31 04:00
장준환 감독은 자신의 영화 시사회장에서 눈물을 흘렸다. 이에 대해 스스로 올해 망신수가 있는 것 같다고 말했지만, 그 눈물의 의미는 좀 더 심오했다.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장준환 감독은 자신의 영화 시사회장에서 눈물을 흘렸다. 이에 대해 스스로 "올해 망신수가 있는 것 같다"고 말했지만, 그 눈물의 의미는 좀 더 심오했다.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장 감독 "박종철 열사, 이한열 열사 가족들께 폐 끼치지 않길 바랐다"

[더팩트|권혁기 기자] 가끔 자기가 출연한 작품을 보고 우는 배우가 있다. 그만큼 배역에 몰입해 연기하다보면 그럴 수 있다. 지난 2014년 개봉된 영화 '우아한 거짓말' 당시 필자와 인터뷰에 응한 고아성은 극중 스스로 목을 맨 동생 천지(김향기 분)를 상상으로나마 막는 장면을 회상하며 눈물을 흘린 바 있다.

그러나, 필자는 감독이 우는 경우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장준환(47) 감독이 처음이었다. 장준환 감독은 지난 13일 서울 용산구 한강대로 CGV 용산아이파크몰에서 진행된 영화 '1987'(감독 장준환·제작 우정필름) 언론시사회 후 진행된 기자간담회에서 영화에 대한 설명을 하던 중 눈물을 흘렸다. 아니 흘렸다기 보다는 쏟아냈다. 잠시 고개를 돌려 눈물과 콧물을 닦아내야 할 정도였다.

지난 22일 오후 3시 '왜 눈물을 쏟았을까'란 생각을 갖고 장준환 감독을 만나러 서울 종로구 팔판동 카페를 방문했다. 생각에 대한 답을 듣기 위해 첫 질문으로 "시사회 후 연락 많이 받지 않았냐? 많이 울어서"라고 했다. 그러자 장준환 감독은 크게 웃으며 "울었다는 보도 이후 문자를 많이 받았다. 올해 망신수가 있는 것 같다"고 너스레를 떨어 웃음을 자아냈다.

"언론시사회가 배우들에게도 처음 영화를 보는 자리였거든요. 같이 배급관에 앉아서 영화를 보는데 배우들도 울었거든요. 저는 편집이다 뭐다, 많이 봤지만 배우들과 같이 보니까 감정이 남달랐던 것 같아요. 1차적인 요인은 그런 것이고, 2차적으로는 박희순 배우가 대기실에서 눈물을 참지 못하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더 눈물이 났죠. 마음이 엷어진 상태인데 배우들이 다 우니까 저도 펑펑 울었습니다."

다음은 잠깐의 망신일지 모르지만 그만큼 진심이 전해질 영화를 연출한 장준환 감독과 나눈 일문일답.

장준환 감독은 고 문익환 목사의 아들인 배우 문성근에게 당시 안기부장 역할을 맡겼다. 장 감독은 죄송하지만 흔쾌히 승락해주셔서 감사했다고 회상했다. /영화 1987 촬영장 스틸
장준환 감독은 고 문익환 목사의 아들인 배우 문성근에게 당시 안기부장 역할을 맡겼다. 장 감독은 "죄송하지만 흔쾌히 승락해주셔서 감사했다"고 회상했다. /영화 '1987' 촬영장 스틸

-눈물을 흘린 시점이 묘했다.

그렇죠. 이한열 열사와 박종철 열사의 나이를 이야기하면서 울컥했죠. '1987'은 저만의 영화가 아닌 것 같아요. 그렇다고 스태프들의 영화도 아니죠. 30년 밖에 지나지 않은 실제 이야기이고 제가 살아온 삶이 포함된 영화라 크게 다가온 것 같아요. 영화를 떠나서 저도 아이를 낳아 기르다보니 스무살 자식을 떠나 보낸 부모님의 마음을 알겠더라고요. 물론 유가족의 심정과 같을 수는 없겠지만, 스무살 청년이 뭘 얼마나 잘못했다고 남영동 차가운 물 속에서 죽어가야 했으며 최루탄을 맞고 쓰러져야 했는지 그게 가슴 아프게 다가온 것 같아요. 제가 이 영화를 시작하게 된 계기도 그런 것이죠. 극 중 이한열 열사의 대사 '나도 가만히 있고 싶지만 마음이 아파서 어쩔 수 없다'는 말처럼 말이죠. 영화로만 다가오지 않았습니다.

-재미있는 공통점을 발견했다. 대공처장 박 처장 역할의 김윤석 배우는 박종철 열사의 고등학교 2년 후배, 그리고 안기부장을 연기한 문성근 배우의 아버지는 고(故) 문익환 목사이시다. 그런데 악역이다.

죄송한 부분이기도 했어요. 문성근 선배님은 치열하게 사신 분이고, 아버님도 치열하게 사신 분인데 그 나이대(문성근의 나이)에 좋은 배역이 없었죠. 죄송하다며 부탁을 드렸더니 '만들어져야 한다'는 취지에서 흔쾌히 승락을 해주신 것 같습니다.

-캐스팅 전에 먼저 출연하고 싶다고 연락온 배우가 많다고 들었다.

많은 배우들이 연락을 주셨죠. 참여하고 싶은데 못한 배우도 있어요. 너무 감사드리죠. 정말 이게 무슨 일인가 싶을 정도로 고마웠습니다. 김의성 선배님은 연락을 드렸더니 '기다리고 있었어'라고 하시더라고요.(웃음) 처음 시나리오가 충무로에 퍼지고 많은 분들이 보시고 난 뒤 그런 마음을 표현하신 것 같은데 이 영화가 가진 힘이 아닌가 싶었어요.

-매우 극비리에 준비한 것으로 알고 있다.

장미대선이 결정되기 전에, 대한민국 정국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배우들께서 용기내주신 거라 감사드립니다. 처음에는 저예산으로 해야하나? 만들 수는 있을까 싶은 마음으로 시작했죠. 사실 실존인물들도 인터뷰를 하고 싶었는데 영화 제작 사실이 알려질까봐 최대한 텍스트, 문서와 자료들만 모아 시나리오 작업을 했어요. '극비리'라는 말이 맞습니다.

유가족들께 폐 끼칠까 걱정했죠. 장준환 감독은 실존인물 및 유가족을 대상으로 1987 시사회를 열었다. 장 감독은 박종철 열사 가족들께 인정을 받은 것에 대해 감사했다.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유가족들께 폐 끼칠까 걱정했죠." 장준환 감독은 실존인물 및 유가족을 대상으로 '1987' 시사회를 열었다. 장 감독은 박종철 열사 가족들께 인정을 받은 것에 대해 감사했다.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유가족을 포함한 실존인물 시사회도 했다고.

유가족 분들 중 이한열 열사 가족은 못 오셨어요. 아직 준비가 안된 것 같다며 볼 수가 없을 것 같다고 하셨죠. 박종철 열사 형님과 누님이 오셔서 보셨는데 얘기를 들어보니 이 소재를 갖고 영화나 연극을 하겠다는 기획이 좀 있었더라고요. 그런데 너무 한쪽으로 치우쳐 정치적이거나 상업적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유가족들께서 허락을 하지 않으셨던 것 같아요. 균형감 있게 만들어줘서 고맙다는 얘기를 하셨는데, 마음이 놓이더라고요. 가족들께 폐를 끼칠까, 누가 될까 노심초사했는데 다행이라고 생각했고 감사했습니다.

-1987년, 당시 고등학교 3학년이었는데 실제로 겪었던 1987년은 어땠나?

계속 최루탄 냄새가 나 공부하고 있다가 투덜됐던 기억이 있어요. 그러면서도 굉장히 의아하고 궁금했던 게 있죠. 왜 저렇게까지 싸울까? 그러던 어느날 성당에서 비디오를 보여준다길래 친구를 따라 갔는데 광주 민주화운동에 대한 비디오였어요. 처음 본 실상에 충격이 엄청났죠. 무서운 영화나 소설을 읽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충격이었죠. 현실에서 벌어진 일이니까요. 같이 본 친구가 참 말이 많은 학우였는데 둘이 걸어오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당시 도덕 선생님이 토론수업을 한다면서 대학생들에 대한 비판을 하라고 했는데 저는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대학생 형, 누나들이 그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있을 것 같다'고 했더니 좋지 않은 시선을 보내시더라고요. 그것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원래 정치적인 관심이 많았나?

전혀 그렇지 않았죠. 좀 더 뭐랄까…. 민망한 말이지만 저는 실존적인, 철학적인 개인적 고민들이 많았어요. 그것도 만만하지는 않았죠. 그런 핑계로 사회적인 이슈와 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나서거나 그러지는 못했던 것 같아요. 두렵기도 했던 것 같고. 그래서 이 영화를 선택하는데 작용된 것 같습니다. 부채감 같은 것이죠. 아이를 키우다보니 마냥 외면할 수 없는 것들이 있더라고요. 사회 안 공동체의 일원으로 살아가고 있으니, 우리 아이들에게 어떤 세상을 물려줘야하는지 고민해야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1987로 세대간 소통되길. 장준환 감독은 자신이 연출한 영화를 통해 세대간 소통이 되길 바랐다. /CJ엔터테인먼트 제공
"'1987'로 세대간 소통되길." 장준환 감독은 자신이 연출한 영화를 통해 세대간 소통이 되길 바랐다. /CJ엔터테인먼트 제공

-'1987'이 관객들에게 어떤 의미가 됐으면 좋겠나.

흥행에 대한 욕심보다는 세대간 소통이 되는 영화였으면 좋겠어요. '엄마 아빠가 이렇게 치열하고 힘들게 민주주의를 지켜냈다'는 마음을 자식들이 알았으면 좋겠고, 더 윗 세대들과도 이 영화를 보면서 그 때를 떠올리며 이야기를 했으면 좋겠고, 그런 소통이 이어지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어렵고 힘들겠지만 말이죠. 우리는 지난해, 올해 비슷한 일이 시청 광장 앞에 있지 않았습니까? 87년의 시청 광장과 2017년의 시청 광장은 무엇이 똑같았으며 무엇이 다른가를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영화를 보고난 뒤 '그래 우리는 그렇게 아름답고 뜨겁고 순수했지'뿐만 아니라 '386세대가 아파트 값을 다 올려놨지'까지도 얘기할 수 있는.(웃음) 우리는 지금, 열사들이 꿈꾸던 세상으로 가고 있는 것인지. 각자의 그날은 무엇인지. 건강한 담론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솔직하게 1987년은 미완의 혁명이었죠. 이듬해 노태우 대통령이 당선됐고 그 이후 복잡한 부분들도 있었으니까요. 그런 부분들을 좀 더 얘기할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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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팀 | ssent@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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