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격인터뷰] '자니 윤 방치 논란' 줄리아 리 "버렸다니요? 억장 무너질 얘기"(영상)
입력: 2017.12.22 13:24 / 수정: 2017.12.22 16:03

봉사하고 헌신한 저를 알아달라는 게 아니라 진실을 말해달라는 거예요. 줄리아 리는 21일 더팩트와 전화 인터뷰에서  하느님 앞에 진실만을 얘기한다고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더팩트 DB
"봉사하고 헌신한 저를 알아달라는 게 아니라 진실을 말해달라는 거예요." 줄리아 리는 21일 더팩트와 전화 인터뷰에서 "하느님 앞에 진실만을 얘기한다"고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더팩트 DB

[더팩트|강일홍 기자] "세상에 이런 어이없는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제가 당해 보니 젊은 스타 배우들이 왜 스스로 목숨을 끊는지 이해할 것 같아요. 자니 윤 선생님을 버렸다니요. 표현도 제대로 못하는 분 만나서 있지도 않은 사실을 왜곡해 보도하는 건 저한테는 억장이 무너질 일이지만, 그 분한테도 욕되게 하는 겁니다."

자니 윤(윤종승·82)의 전 아내였던 줄리아 리(이종운·63)의 목소리는 계속 떨렸다. 미국 LA에 거주하다 신병 치료를 위해 잠시 귀국한 줄리아 리는 자니 윤의 충격적 근황이 밝혀진 후 '방치 논란'에 휘말리자 22일 오전 <더팩트>와 전화 인터뷰를 갖고 "하느님 앞에 사실만을 얘기한다"며 자니 윤과 관련된 모든 얘기들을 조목조목 털어놓았다.

줄리아 리는 자니 윤과 관련된 얘기에 대해 "자니 윤과 이혼한 것은 8년 전이고 치매 발생은 지난해다. 제가 방치했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얘기고, 지금도 도움을 주고 있다"면서 "우선 저에 대해 잘못 알려진 내용을 <더팩트>가 대신 꼭 바로잡아달라"고 신신 당부했다.

"어제부터 미국 교민사회의 수많은 지인들로부터 어찌된 일이냐는 전화를 받았어요. 시차가 달라 저는 밤을 꼬박 샜고요. 최초 보도한 미국의 해당 언론사 간부와 통화해 기사를 내리고 수정보도하겠다는 약속을 받았습니다. 자니 윤 선생님을 잘 아는 미국의 지인들조차도 '줄리아 씨가 그런 분이 아닌데 어떻게 된 일인가요'라며 걱정을 했습니다."

자니 윤의 근황은 21일 오전 미국의 한 현지 매체에 의해 보도됐다. '알츠하이머 걸린 자니 윤, LA 외곽의 허름한 양로원에서 비참한 노년을 보내고 있다'는 내용으로 아내 줄리아 리와도 이혼했으며 살던 집마저 누군가에 의해 팔려버렸다고 충격적 소식을 전했다. 1989년 한국 방송 사상 처음으로 자신의 이름을 내건 토크쇼 '자니윤 쇼'를 진행하며 국내에서도 많은 팬을 확보한 자니 윤은 지난 2006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한나라당 후보 시절 미국 후원회장을 맡은 인연으로 2014년 8월 한국관광공사 상임감사에 임명된 바 있어 그의 근황은 많은 사람들의 안타까움을 샀다.

줄리아 리는 "이 기사가 보도된 직후 스트레스로 한숨도 잠을 못잤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그는 "결혼 전부터 자니 윤 선생님은 무일푼이었고, 이혼한 후에도 제가 건강을 잃고 경제적으로 힘든 그 분을 지극정성으로 돌봤다"면서 "가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스무살 가까운 나이 차이를 넘어 결혼을 했지만, (자니 윤이) 우울증으로 과격해져 도저히 부부생활을 이어갈 수 없어 불가피하게 이혼했다"고 밝혔다.

줄리아 리는 섬유사업을 크게 하던 1990년대 후반에 자니 윤과 처음 만나 1999년 결혼한 뒤 11년 만인 2010년에 정식 이혼했다. 그가 직접 밝힌 이혼 이유는 자니 윤의 우울증과 조울증 때문이다. 이 부분에 대해 줄리아 윤은 "저를 방에 가두거나 자다가 목을 조르는 등 난폭해져 무서워서 더는 같이 살 수 없을 정도였다"고 말했다.

그는 "이혼은 했지만 서로 미워서 헤어진 게 아니라서 이후에도 연민과 친구 같은 우정으로 도움을 주며 그 분을 지켜왔다"면서 "마치 내가 돈을 보고 결혼했다가 병이 들어 오갈 데 없으니 버린 듯한 뉘앙스로 세상에 알려진 건 말도 안된다"고 답답한 속내를 밝혔다.

줄리아 리는 지금 그분은 이런 모습으로 비쳐졌다는 사실도 모를 수 있다. 저한테도 그 분한테도 결코 도움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사진은 건강했던 시절 자니 윤과 최근 보도된 요양원 모습. /더팩트 DB, 미주헤럴드경제
줄리아 리는 "지금 그분은 이런 모습으로 비쳐졌다는 사실도 모를 수 있다. 저한테도 그 분한테도 결코 도움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사진은 건강했던 시절 자니 윤과 최근 보도된 요양원 모습. /더팩트 DB, 미주헤럴드경제

◆다음은 줄리아 리가 밝힌 자니 윤과의 스토리를 정리한 일문일답

-미국과 국내에서 유명했던 자니 윤이 초췌한 모습으로 비쳐졌다.

자니 윤 선생님 나이가 80이 넘었다. 초췌하게 보일 수밖에 없다. 더구나 치매로 기억조차 잃어가는 상황이다. 자신의 의사를 제대로 표현 못하는 노인의 모습을 그렇게 묘사해 보도할 수 있나. 지금 그분은 이런 모습으로 비쳐졌다는 사실도 모를 수 있다. 저한테도 그 분한테도 결코 도움되지 않는다.

-자니 윤이 양로원에 혼자 머물고 있다고 들었다. 돌보는 사람은 없나.

저 말고는 다른 가족이 없다. 제가 요양병원을 자주 들르며 돌봐왔다. 두달 전까지 계속 돌보다 저도 몸이 아파 치료차 한국에 왔다. 원래 이달 중 들어가 크리스마스를 함께 보내드리려고 했는데 치료가 늦어져 내년 1월1일 들어갈 예정이다. 제가 방치했다고 하는데, 정말 억울한 일이다. 2010년에 정식 이혼했다. 선생님 치매는 작년에 발병했다. 상식적으로 방치는 이치에 맞지 않는다. 더구나 그나마 곁을 지키고 있는 사람은 바로 저다.

-자니 윤과의 처음 인연이 궁금하다.

제가 섬유 관련 사업을 크게 했다. 1990년대 후반에 지인모임에서 우연히 만났는데 그때도 선생님은 무일푼이었다. 라스베이거스에 작은 집을 하나 샀는데 융자를 못갚아 빚이 많다고 했다. 그런데 이분이 제 회사 광고에 무료 출연해준다고 하더라. 너무 고마워서 그 빚을 모두 갚아줬다. 그러면서 인연이 생겼다.

-어떻게 결혼을 하게 됐나.

스무살 가량 나이 차이도 많고, 당시 저는 경제적으로나 가정적으로 결혼할 의사는 전혀 없었다. 교포사회에서 알고 지내는것까지는 몰라도 굳이 결혼까지 할 필요도 없었다. 그런데 한국 IMF 직후인 1999년 제 생일파티에 많은 분들이 모였는데, 자니 윤씨도 참석했다. 그때 사회를 본 아나운서 출신 김금성 씨가 광고 등으로 저와 인연이 있는걸 알고는 조크처럼 "줄리아씨와는 어떤 사이냐"고 물으니 대뜸 "노래로 대신하겠다"며 나훈아의 '사랑'을 부르더라. 당시 교민사회 신문기자들도 여러명 참석했는데 다음날 '자니 윤 여류 사업가와 교제 중'으로 보도가 됐다.

줄리아 리(왼쪽)는 4년 전 국내에서 자니 윤과 TV에도 나란히 출연했다. 이 부분에 대해 그는 이혼사실을 알리지 않은 채 한국 TV에 출연한 건 그분의 자존심과 체면을 위해 부탁을 들어드린 것이라고 말했다. /더팩트 DB
줄리아 리(왼쪽)는 4년 전 국내에서 자니 윤과 TV에도 나란히 출연했다. 이 부분에 대해 그는 "이혼사실을 알리지 않은 채 한국 TV에 출연한 건 그분의 자존심과 체면을 위해 부탁을 들어드린 것"이라고 말했다. /더팩트 DB

-집안에서 반대가 심했다고 들었다.

맞다. 이 기사가 한국에서도 보도되면서 집안에서 난리가 났다. 제 오빠는 감사원장을 지낸 분이다. 집안이 좀 완고한 편인데 자니 윤씨가 나이도 많은데다 무일푼이라는 걸 다 알고 있었다. 그때 저는 40대였다. 결혼은 순전히 그분의 유머와 순수함을 평가한 저의 선택이었다.

-LA에 있는 저택이 자니 윤의 소유로 소개된 적이 있다.

저도 그런 기사를 본 적이 있고, 방송에 나가서도 굳이 '내꺼다 아니다' 말하지 않았다. 그분의 체면을 위해서였다. LA 외곽에 있는 집은 제가 땅을 사서 직접 건축한 집이다. 수십년간 보유하고 있고, 지금 현재도 제 소유다.

-자니 윤과는 왜 이혼을 하게 됐나.

1999년에 결혼한 뒤 11년만인 2010년에 이혼했다. 처음엔 행복했다. 제가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어서 윤 선생님도 이전보다 편안한 생활을 했는데 우울증과 조울증이 생기면서 문제가 생겼다. 난폭해지더라. 병원에서 약을 처방 받았지만, 밥맛도 없고 잠만 자는게 싫다며 약을 안먹었다. 갈수록 심해졌고, 나중엔 저를 방에 가두고 같이 죽자며 목을 졸랐다. 부엌에서 식칼을 저한테 던진 적도 있다. 무서워서 도저히 함께 살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이혼을 하게 된 거다.

-이혼 사실은 알려지지 않았다. 4년 전엔가 국내 TV도 나란히 출연하지 않았나.

이혼 사실을 알리지 않은 건 윤 선생님의 간곡한 부탁 때문이다. 그분도 미국에서 오래 사셨던 분이고, 나이가 어린 젊은 여성과 살다가 이혼당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는게 싫다고 했다. 이혼은 하되 이혼사실을 공표하지 말아달라고 부탁을 해 감춰준 것이다. 한국 TV에 출연한 것도 그분의 체면과 부탁을 들어드린 것 뿐이다. 한때는 부부로 살았고, 미워할 분도 아닌데 그분의 사회적 체면을 살려주는 일 쯤 이혼했다고 못해줄 이유는 없지 않느냐. 이혼 사실은 작년에 윤선생님이 미국으로 돌아온 뒤 제가 교포사회에 정식으로 알렸다.

줄리아 리가 자니 윤과 결혼 후 살았던 LA 저택. LA 외곽에 있는 이 집은 줄리아 리가 땅을 사서 직접 건축한 집이다. 그는 건축한 이후부터 줄곧 내 소유이고, 지금 현재도 보유하고 있다고 밝혔다. /줄리아 리 제공
줄리아 리가 자니 윤과 결혼 후 살았던 LA 저택. LA 외곽에 있는 이 집은 줄리아 리가 땅을 사서 직접 건축한 집이다. 그는 "건축한 이후부터 줄곧 내 소유이고, 지금 현재도 보유하고 있다"고 밝혔다. /줄리아 리 제공

-이혼한 뒤에도 계속 돌봤다고 하는데.

맞다, 병들어 오갈 데 없는 분을 나몰라라 할 수 없었다. 한국에서 이미 병은 깊었다. 2014년 한국관광공사 상임감사 시절에는 그나마 주변에서 케어를 해 어느정도 유지가 됐다. 사실 그때도 서울아산병원과 용인에 있는 재활병원(R병원)을 모시고 다니면서 온갖 수발을 다 들었다. 물론 모든 비용은 제가 다 댔다. 그러다 지난해 뇌경색으로 쓰러져 미국으로 모셔갔고, 현지에서도 이병원 저병원 모시고 다니면서 치료를 했다. 그러다 요양병원에 모시게 된 것이다.

-요양병원은 무료인가.

미국 정부에서 지원을 받는 병원이긴 하지만, 별도로 사비가 많이 들어간다. 음식이나 옷, 그 외 환자를 돌보는 분들한테 수시로 팁을 줘야 잘 돌봐준다. 한번 가면 보통 100불씩 그분들한테 팁으로 줬다. 그러다 제가 목디스크와 골절 등 병이 나서 지난 10월 서울에 치료받으로 나왔다. 미국 병원은 주사나 시술 같은걸 잘 해주지 않기 때문에 이전에도 치료받은 적이 있는 한국으로 건너왔다. 귀국 전 제가 돌아갈 동안 윤선생님 몫으로 쓸 수 있게 4500불을 현지 한미은행에 맡겨놓고 왔다.

-자니 윤이 버림 받았다는 얘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버림을 받은게 아니라, 한 여인의 헌신과 봉사로 케어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선생님의 모습은 생로병사의 한 과정이라고 본다. 다만 일세를 풍미했고, 저 개인적으로는 부부였던 분이 저렇게 추한 모습으로 대중 앞에 비쳐지게 된게 가슴 아플 따름이다. 1월 초에 미국 들어가면 떡국이라도 끓여가서 함께 먹을 생각이다.

-마지막으로 당부할 말이 있으신지.

살다보면 별의별 일을 다 겪게 마련이다. 부끄럽지 않은 집안의 딸로 태어나 60살 넘게 살면서 수많은 경험을 했다. 사업으로는 크게 성공했지만, 시기질투하는 분들도 있다. 하지만 결코 누구한테든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았다고 자부한다. 자니 윤 선생님을 만나 결혼하고 이혼한 걸 후회하거나 부끄럽게 여긴 적도 없다. 그것도 다 제 인생의 한 조각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다만 왜곡되고 잘못 알려진 부분은 반드시 바로잡아야 한다. 이 역시 정당한 저의 인생이고 발자취이기 때문이다. 하느님 앞에 맹세하지만, 저는 윤 선생님을 지극정성 돌봤고, 앞으로도 돌볼 사람은 저 말고는 없다. 그분이 잘 나갈때 옆에 그 많던 분들, 다 어디갔는지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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