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기의 연예필담] 영화 '1987'과 1967년생 김윤석의 눈물
입력: 2017.12.15 10:19 / 수정: 2017.12.15 10:19
배우 김윤석이 영화 1987 인터뷰 중 눈물을 보였다. 연기 생활 이후 처음 있는 일이라며 자신도 묘하다고 말했다. /CJ엔터테인먼트 제공
배우 김윤석이 영화 '1987' 인터뷰 중 눈물을 보였다. 연기 생활 이후 처음 있는 일이라며 자신도 "묘하다"고 말했다. /CJ엔터테인먼트 제공

故 박종철 열사 고교 2년 후배 김윤석, 박 열사 가족에게 합격점

[더팩트|권혁기 기자] 1987년은 필자가 지금은 초등학교인, 국민학교에 들어가기 전 해였습니다. 어린 나이였지만 아직도 기억에 남는 게 있습니다. 거리를 울렸던 대학생 형·누나들의 함성 소리와 구호, 전투경찰과의 대치 장면입니다. 건물 옥상에 올라 시위 구경을 하고 있으면 어느덧 '펑펑' 소리와 함께 뿌연 최루탄 가스가 옥상까지 올라와 눈에서는 눈물을, 코에서는 콧물이 흘렸습니다.

강원도 춘천에서의 일이었습니다. 영화 '1987'에서는 엔딩 크레딧이 올라간 후 그때의 자료영상들이 등장합니다. 그 중에는 춘천도 있습니다. 영화를 보며 기억이 더욱 선명해지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1987'은 대한민국 격동의 시기를 다룬 영화입니다. 민주화운동을 조명한 영화는 많았지만 1987년 1월 14일 고(故)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 6월 9일 고 이한열 열사의 사건을 다룬 작품은 '1987'이 처음입니다.

김윤석은 영화 1987 언론시사회 당시에도 벅참 감동을 감추지 못했다. 김윤석은 악역을 맡아 죄송하다는 박희순의 말에 어깨를 두드려 주기도 했다. /배정한 기자
김윤석은 영화 '1987' 언론시사회 당시에도 벅참 감동을 감추지 못했다. 김윤석은 "악역을 맡아 죄송하다"는 박희순의 말에 어깨를 두드려 주기도 했다. /배정한 기자

14일 오후 4시, 서울 종로구 소격동 한 카페에서 '1987'의 주연배우 김윤석을 만났습니다. 소격동은 80년대, 국군기무사령부가 전두환 정권 당시 대학생들을 강제 징집해 정신교육을 하는 녹화사업을 진행했던 곳이기도 하죠.

점심 후 2시부터 인터뷰 장소에 도착한 필자는 2층에서 들려오는 김윤석의 웃음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영화가 잘 나와 분위기가 좋은가보다'라고 생각했죠. 시간이 돼 2층으로 올라갔고, 영화 '해무' '극비수사'에 이어 이번이 세 번째 만남인 김윤석과 반갑게 인사를 했습니다.

이날 김윤석은 박종철 열사에 대해 "제 고등학교 2년 선배"라고 말했습니다. 김윤석과 박종철 열사는 부산 혜광고등학교 동문입니다. 언론시사회 후 박종철 열사 가족들을 모시고 '실존인물 시사회'에 대한 이야기도 했습니다.

김윤석은 "박종철 열사 가족들께 합격점을 받았어요. 기분이 좋았고 정말 감사했죠. 개인적으로 저는 감독님 옆자리에 앉아 봤는데 손을 잡고 '수고하셨다'고 말씀드렸죠"라며 웃었습니다.

기자가 "시사회 때 감독님이 눈물을 흘리셨는데 촬영 때도 그런 일이 있었느냐"고 묻자 김윤석은 "숨어서 울었는지는 모르겠지만…"이라더니 갑자기 눈물을 흘렸습니다. 배우와 기자를 떠나 개인적인 친분도 있기에 적잖이 놀랐습니다.

고 박종철 열사와 고등학교 동문이자 2년 후배인 김윤석은 영화에서 강력한 악역 박 처장으로 등장해 열연을 펼쳤다./CJ엔터테인먼트 제공
고 박종철 열사와 고등학교 동문이자 2년 후배인 김윤석은 영화에서 강력한 악역 박 처장으로 등장해 열연을 펼쳤다./CJ엔터테인먼트 제공

"감독님은 처음 모였을 때부터 우셨어요. 참…. 어제부터 (눈물이)터지기 시작했는데 이런 영화는 처음인 것 같아요. 제가 대단한 운동권은 아니었어요. 대자보 쓰는데 손이 모자르다고 하면 도와주고, 구호 한 번 외쳐주는 정도였죠. 그래서 더 그런(슬픈) 것 같아요. 나이가 이만큼 먹어 지금은 30년 전 사건이 됐는데, 그 사람들은 대학생으로 남아 있잖아요. 그게 자꾸 눈물을 흘리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촬영 할 때는 눈물이 나지 않았죠. 치열하게 했으니까요. 완성본을 보니까 참을 수가 없네요."

1967년 생으로 1987년, 스무살 청년이었던 김윤석의 입장에서 지금의 대한민국을 있게 해준 수많은 열사들에 대한 죄송함, 고마움, 그리고 그때 좀 더 힘을 실어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뒤섞인 감정이었습니다.

김윤석의 그런 마음은 촬영 때부터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1987'에서 김윤석은 더욱 빛이 납니다. 1987년 대공수사의 대부, 독재정권이 빚어낸 폭력의 시대의 상징인 박 처장을 맡은 김윤석은 "박종철 선배의 누님을 만나 '이런 이야기를 하기로 했다'며 '제가 가장 강력한 악역'이라고 말씀드렸죠. 누님께서 흔쾌히 잘 만들어 달라고 말씀주셨어요. 그래서 더욱 최선을 다할 수 밖에 없었고, 악역에 대한 부담감보다 완성도에 대한 부담감이 더 컸죠"라고 회상했습니다. 김윤석이 어떤 마음으로 '1987'에 임했을지 조금이나마 이해가 됐습니다.

끝으로 김윤석은 '1987'의 의미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올해 한 일 중 가장 뿌듯한 것 같아요. 제 두 딸이 중학생, 초등학생으로 아직 어린데 그래도 보여줘야할 것 같아요. 아빠가 배우인 것도 알고 하니까 '아빠가 이번에 이런 악역을 맡았고 이런 시대가 있었어'라고 설명해주면 될 것 같아요. 아이들이 보고 올바른 판단을 하게 어른들이 도와야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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