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를 11년간이나 굶었다." 무대를 열고 나온 이후 시종 '부드럽게 강하게' 완급조절을 하더니 자신의 히트곡 '청춘을 돌려다오'를 부를 즈음에 그야말로 자지러지는 분위기를 연출했다. 사진은 나훈아 공연이 끝난 직후 무대. /강일홍 기자 |
[더팩트|강일홍 기자] "개인적으로 저는 1천만 서울 인구 중에 이번 올림픽홀 공연을 보신 1만 명은 모두 선택받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해요. 나훈아 공연 티켓을 거머 쥔 0.1%의 행운아들이잖아요. 솔직히 어젯밤 너무 설레서 밤잠을 설쳤어요. 아이들과 이 피켓(트로트 황제 나훈아)을 만들었는데, 티켓이 하나 밖에 없으니 부득이 저만 왔죠. 무명이지만 저도 트로트 가수이고 평소 나훈아 형님을 신처럼 존경하는 걸 알고서는 아이들도 무척 좋아하거든요. 다음 번에 다시 기회가 주어진다면 아내와 아이들에게도 꼭 이 멋진 공연을 보여주고 싶어요."
자신이 진심으로 좋아하는 걸 가졌을 때의 표정은 다 이럴까. 서울 올림픽홀 나훈아 콘서트 객석에서 만난 트로트가수 피터펀(45)은 무한 행복을 만끽하는 듯했다. 재채기와 가난과 사랑은 감출 수 없다지만, 그의 나훈아 사랑은 얼굴 표정에서부터 고스란히 드러나 보였다. 나훈아 콘서트를 '하늘이 두 쪽 나도 보고싶었다'고 했다. 경제적 여유가 없어 티켓을 달랑 하나밖에 못 사는 형편이어도 '이게 어니냐'며 즐거워했다. 강렬한 붉은 옷차림의 그는 공연 내내 '나훈아 형님!'을 연호하며 탄성을 질렀다. 아이돌 팬심이 부럽지 않은 '진정한 팬덤'을 보는듯 했다.
필자도 티켓을 어렵게 구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십수년 간 나훈아 근황을 취재하며, 늘 가까이에 있다고 믿었지만 티켓을 손에 넣기는 쉽지 않았다. 신곡 발표와 컴백공연 등 나훈아의 움직임을 발빠르게 전하면서도 정작 티케팅에는 신경 쓸 겨를이 없었던 탓이다. 10분만에 전국 3만여 석이 동이 나고 나서야, 아차 싶었다. '어떻게든 되겠지' 하고 있다가 '콘서트 현장 취재는 어떡하지?'로 생각이 미칠 즈음 조바심은 극대화 됐다. 티켓이 없으면 그 누구라도 내부 진입은 불가다. 강제 취소된 암표의 추가발매가 바늘구멍의 기회를 준 건 다행이었다.
"하늘이 두 쪽 나도 보고싶었다". 나훈아 콘서트 객석에서 만난 트로트가수 피터펀(45)은 무한 행복을 만끽하는 듯했다. 나훈아 공연이 끝난 뒤에도 그는 한참 동안 '앙코르'를 연호했다. /강일홍 기자 |
◆ 나훈아 공연 매력, 말 한마디 표정 하나까지 '철저히 연출된 콘셉트'
필자는 오랜 공백을 깬 나훈아의 첫 마디가 가장 궁금했다. 객석에 앉아 이제나 저제나 기다렸지만, 무려 11곡을 부를 때까지 말문을 열지 않았다. 하고 싶은 말은 컴퓨터와 연결된 영상 자막으로 대신했다. 정말 말 안하기로 작심을 했는가 싶을 만큼 인내심이 필요한 긴 시간, 공연 시작 40분 만에야 비로소 나훈아는 입을 열었다. "얼굴을 찡그리고 살기엔 인생이 너무 짧다. 확실하게 제가 뭘 잘못했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어쨌든 (오랜시간 나오지 못해) 미안하고 송구스럽다. 저는 노래를 11년간이나 굶었다. 오늘 여러분이 계속하라고 한다면 밤이라도 새겠다."
나훈아 콘서트의 매력은 예측할 수 없는 각본과 구성이다. 나훈아 스스로 "관객들에게 (절대로 돈이 아깝지 않을 만큼) 완벽한 공연을 보여줄 수 없을 바엔 차라리 꿈을 찾아 아무도 없는 곳을 떠도는 게 낫다. (억만금을 준다해도) 꿈이 없는, 그런 공연은 하지 않는다"고 선언한 바 있다. 11년 만의 공백 끝에 돌아온 그는 이렇게 언급했다. "보따리 하나 둘러메고 지구를 5바퀴나 돌았다. 혼자서 오지만 찾아 여행을 했다. 잘사는 나라, 화려한 불빛이 있는 곳보다는 못사는 나라, 오염되지 않고, 어디서든 별빛과 달빛이 보이는 그런 곳에서 꿈을 찾았다."
예상했던 대로 나훈아는 무대를 압도했다. 군더더기 없는 그의 공연은 말 한 마디 표정 하나까지 직접 기획과 연출까지 도맡은, 사전에 철저히 준비된 콘셉트에 따른 결과다. 무대를 열고 나온 이후 시종 '부드럽게 강하게' 완급조절을 하더니 자신의 히트곡 '청춘을 돌려다오'를 부를 즈음에 그야말로 관객들이 자지러지는 분위기를 연출했다. "내 늙었노 안늙었노? (스탭쪽을 바라보며) 카메라좀 가까이 비촤~보라카이~." 객석은 금방 탄성이 터졌다. 11년간 목을 빼고 기다려온 50~60대 중년팬들은 저마다 "거꾸로 나이를 먹는다" "10년 전보다 젊어보인다"며 환호했다.
'원조 나쁜 남자, 나훈아의 열정'. 나훈아는 10년이란 세월을 스스로 정지해놓은 듯 전혀 손색없는 활력 넘치는 무대로 관객들을 사로잡았다. 위 사진은 나훈아 팬클럽 나사모 회원들, 아래 사진은 나사모 회원과 필자의 기념사진. /강일홍 기자, 나사모 회원 촬영 |
◆ 카리스마 나훈아, '웃음과 감동과 눈물'로 11년 못 다한 무대 한풀이
10분 만에 전국 3만여 티켓이 매진됐던 터라, 단 한 곳의 빈 좌석이 없다는 사실은 더는 놀랍지 않다. 6개의 장애인석까지 실제 휠체어를 탄 관람객에 한해 일일이 신분확인을 거쳐 판매했다는 사실도 이번 공연에 대한 관심을 읽을 만했다. 한꺼번에 단체 티켓을 구매하는 기업협찬도 거부했다. 통상 기업이 고객을 위해 한꺼번에 1000장, 2000씩장 예약해주면 아티스트에겐 최상의 대접이다. 나훈아는 "누구라도 내 공연을 보고 싶은 사람은 돈을 주고 구매해야하지만, 그 기회 또한 공평해야 한다"는 자신의 소신에 따라 전석을 예매티켓으로 판매했다.
공연 직후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다양한 글들이 올라왔다. "빈 좌석이 진짜 한 개도 없더라. 엄마랑 같이 보는데 이 아저씨 등장부터 장난 아니더라. 캄캄한 데서 빛이 딱 떨어지면서 샤랄라 하고 내려왔다. 원조 나쁜 남자답게 인사 따위 쿨하게 안 하고 다짜고짜 노래 몇 곡 메들리로 부르더니, 마침내 입 여는데 하도 꺅꺅대서 무슨 소린지 듣지도 못했다. (나훈아가) '11년 동안 너무 힘들었다. 죄송합니데이' 하고 우는데 할머니들, 아줌마들 단체로 '괜찮아! 괜찮아!' 이러더라. 신곡도 다같이 떼창하더라. 뮤직뱅크 부럽지 않더라."(D커뮤니티 글중에서)
나훈아는 혼신의 열정을 쏟았다. 11년 못 다한 노래들을 한풀이 하듯 풀어놓았다. 때론 부드럽게 때론 강한 카리스마로, 웃음과 감동과 눈물을 쏟아냈다. 나훈아는 세월을 스스로 정지해놓은 듯 전혀 손색없는 활력넘치는 무대로 관객들을 사로잡았다. 고의적삼에 부채를 든 모습도, 찢어진 청바지에 가슴과 어깨 근육이 훤히 드러나는 민소매 차림도 팬들한테는 그야말로 경이로움이었다. 고전과 현대, 과거와 현재를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오래 기다린 관객들을 매료시켰다. 명불허전(名不虛傳), 무대 위의 그는 그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언어의 마술사였다.
eel@tf.co.kr
[연예팀 │ ssent@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