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년만의 나훈아 첫 무대, 선택받은 3000명 관객". 서울 올림픽공원 내 올림픽홀은 공연 1시간 전부터 3000여 명의 관객이 8줄로 줄을 이은 가운데 저마다 들뜬 기분을 감추지 못해 시작 전부터 후끈 달아올랐다. /강일홍 기자 |
[더팩트|강일홍 기자] "얼굴을 찡그리고 살기엔 인생이 너무 짧다. 확실하게 제가 뭘 잘못했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어쨌든 (오랜시간 나오지 못해) 미안하고 송구스럽다. 저는 노래를 11년간이나 굶었다. 오늘 여러분이 계속하라고 한다면 밤이라도 새겠다."
나훈아는 혼신과 열정을 쏟았다. 11년간 못 다한 노래들을 한풀이 하듯 풀어놓았다. 때론 부드럽게 때론 강한 카리스마로, 웃음과 감동과 눈물을 쏟아냈다. 과연 명불허전(名不虛傳), 그는 무대 위에서만큼은 그 누구도 따를 수 없는 언어의 마술사였다.
3일 오후 7시 서울올림픽공원 내 올림픽홀 특설무대에서 펼쳐진 '2017 드림콘서트 나훈아'(Dream Concert NA HOON A, The Man's Life Story)는 나훈아의 카리스마가 되살아난 완벽한 무대로 탄성을 자아내게 했다. 눈짓과 손짓, 고개를 돌려 미소짓는 표정 하나까지 3000여 관객들은 2시간 남짓 이어진 나훈아의 열창과 구성진 입담에 매료됐다.
무대는 '박수와 환호가 적으면 막이 올라가지 않는다'는 컴퓨터 음성 자동인식 영상자막이 관객들의 박수를 자연스럽게 끌어내며 열렸다. 박수를 유도하는 서너 차례 영상자막에 따라 무대가 열리고, 나훈아는 천장과 맞닿을 만큼 높은 무대에 앉아 기타연주와 함께 등장했다.
"황제 나훈아를 죽도록 사랑합니다". 이날 공연장을 찾은 신인 트로트가수 피터펀은 무대를 향해 연신 '앵콜'을 연호했으나, 끝내 되돌아오지 않았다. 휴대폰은 입장 전 보완필름으로 봉인되는 바람에 공연장 안에서의 촬영은 모든 공연이 종료된 후 찍을 수 있었다. /강일홍 기자 |
첫 곡은 동요 '반달', 두 번째 곡은 '머나먼 고향'이 장식했다. 나훈아가 직접 연주하는 반주와 함께 애잔하게 퍼지는 노래를 들으며 일부 관객들이 눈물을 훔치는 등 시작부터 감격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어서 자신의 히트곡 '홍시' '영영'을 비롯해 신곡 '아이라예' '몰라' '당신아' '예끼 이사람'을 연달아 불렀다.
나훈아가 공식적으로 첫 마디를 뗀 것은 무려 11곡의 노래를 부른 뒤였다. 공연 시작 40분 만이었지만 시간은 순식간에 흘러간 느낌을 줬다. 무대를 중심으로 거의 3분의 2를 채운 3면 입체형 LED가 노래 주제에 맞는 다양한 영상을 비춰내며 잠시도 눈을 뗄 수 없게 한 덕분이다.
나훈아는 신곡 '예끼 이사람'을 부르며 오랜 잠행 끝에 다시 돌아온 자신의 심경을 깊은 감동의 울림으로 표현해내 관객들을 숙연하게 했다. 마치 과거와 현재, 그리고 앞으로의 심경과 각오를 그대로 대변하는 듯했다. 코러스가 부른 1절에 대한 화답 형식으로 2절에 담았다. 노래와 멜로디는 슬펐지만, 나훈아의 솔직한 고백같은 가사로 인해 객석은 폭소가 터지는 묘한 상황이 연출됐다.
이날 나훈아는 앵콜 곡을 부르지 않아 아쉬움을 남겼다. 2시간여의 뜨거운 무대가 막을 내린 직후 텅빈 무대 앞에서 필자도 한컷. /나사모 회원 촬영 |
'어딜 갔다 이제 왔느냐, 어디서 뭘 했느냐, 소식 한번 주지 않고 죽었는지 살았는지 코빼기도 볼수 없었다. 이 몹쓸 사람아 오랜만일세. 꿈 찾아간다더니 꿈은 찾았는가, 소문에는 아프다더니 걱정 많이 했네, 예기 이 사람'(1절=코러스가 대신 부름)
'무슨 말을 해야할지, 어떤 말을 해야할지, 아무말도 못합니다. 입이 열개라도 할말이 없네요. 적지않은 이 나이에 힘든 세월 겪으면서 혼자 울고 웃으면서 인생 또다시 배웠습니다. 걱정 끼쳐서 죄송합니다. 할말은 많아도 말 못합니다'(2절=나훈아 화답 형식)
그런데 나훈아가 노래를 부르던 말미에 눈물을 흘리자 객석은 여기저기서 훌쩍거렸다. 잠시 후 "괜찮아! 괜찮아!" "오빠! 힘내~" 등의 격려가 쏟아졌고, 다시 환호와 열기가 공연장을 뒤덮었다. 나훈아의 심경은 공연도중 곳곳에서 배어났다. '인생은 흘러가는 뜬구름' '허무한 내인생' 등의 의미를 담은 '사나이의 눈물'을 부르기 앞서 그는 지나간 시간을 반추하며 또 한번 속내를 털어놨다.
공연장 입구 한켠에는 KBS '불후의 명곡' 제작진이 보낸 것으로 보이는 "모시고 싶습니다" 화환이 눈길을 끌었다. /강일홍 기자 |
"(지난 11년간) 보따리 하나 둘러메고 지구를 5바퀴나 돌았다. 혼자서 오지만 찾아 여행을 했다. 잘사는 나라, 화려한 불빛이 있는 곳보다는 못사는 나라, 오염되지 않은, 별빛과 달빛이 보이는 그런 곳에서 꿈을 찾았다."
말문이 터진 이후 나훈아는 관객들을 울리고 웃기며, 시종 무대를 들었다 놓기를 반복했다. 노래는 '사나이눈물' '고향으로 가는배' '죽는시늉' '품바타령' '공' '청춘을 돌려다오' '모래시계' '고장난 벽시계' '고향역' '건배' '내청춘' 등 히트곡과 신곡을 포함해 총 20여 곡을 열창했다.
공연이 펼쳐진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은 시작 전부터 뜨겁게 달아올랐다. 관객들은 오후 2시부터 팬클럽 '나사모'(나훈아를 사랑하는 모임)를 중심으로 공연장을 찾아 북적였다. 공연 1시간 전부터 3000여 명의 관객이 8줄로 줄을 이은 가운데 저마다 들뜬 기분을 감추지 못했다.
공연 시작전까지 공연장 입구에서는 나훈아 신곡 CD '남자의 인생'을 구매하려는 팬들로 북적였다. /강일홍 기자 |
서울 답십리에서 공연장을 찾은 김영애씨(63·여)는 "취소된 불법 거래 암표의 추가발매 때 어렵게 구했다"면서 "로또 당첨되듯 하도 어렵게 티켓을 구한 탓에 이렇게 입장하게 된 것만으로도 행복하다"고 말했다. 젊어서부터 나훈아씨의 골수 팬이라고 밝힌 그는 "생애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오늘 공연을 맘껏 즐기겠다"고 말했다.
한국연예제작자협회 초대회장을 지낸 원로 가요제작자 엄용섭 쌍용기획 대표는 "가요계 젊은 후배 제작자한테 부탁해 인터넷 예매 티켓팅으로 표를 구했다"면서 "여러차례 공연을 봤지만, 이번엔 꼭 직접 무대를 지켜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엄용섭 대표는 지난해 나훈아 미발표곡 '연정'(신일성 작사·구로환 작곡)을 34년만에 발굴, 출반해 화제를 모은 바 있다.
'2017 드림콘서트 나훈아'는 이날 올림픽홀에서 첫 서울공연(5일까지 3일간)을 펼쳐진데 이어 부산(24일~26일 벡스코 오디토리엄), 대구(12월15일~17일)에서 각각 3차례씩 총 9회 공연이 진행된다.
서울 답십리에서 온 열성팬 김영애씨(63 사진왼쪽)는 "로또 당첨되듯 하도 어렵게 티켓을 구한 탓에 이렇게 입장하게 된 것만으로도 행복하다"고 말했다. 오른쪽은 필자. /나사모 회원 촬영 |
지난 9월5일 '나훈아티켓'을 통해 발매돼 10여 분 만에 전국 3만여 석이 동이 났고, 이후 웃돈을 얹어 좌석을 판매하려는 신종 인터넷 암표상이 등장하자 이들에 대해 주관사가 강제 취소하고 환불조치하기도 했다.
2006년 데뷔 40주년 공연을 끝으로 모든 활동을 중단하고 칩거에 들어간 나훈아는 이듬해 3월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공연을 취소한 뒤 공백을 가졌다. 이후 건강 이상설 등에 휩싸인 뒤 전처 정 모 씨와의 이혼 소송 등으로 컴백시기가 10여년 간 늦춰졌다.
지난 7월 새 앨범 '드림 어게인(Dream again)'을 발표하며 컴백을 선언한 나훈아는 내년부터 국내는 물론 해외까지 본격적인 콘서트투어에 나설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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