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 8집 발매한 싱어송라이터 루시드폴. 루시드폴은 지난달 26일 서울 강남구 도산대로 안테나 사옥에서 더팩트와 인터뷰를 했다. /안테나 제공 |
정규 8집으로 돌아온 싱어송라이터 루시드폴 인터뷰
[더팩트ㅣ강수지 기자] 싱어송라이터 루시드폴(42·본명 조윤석)이 자연으로 삶을, 삶으로 행복을 들여다보고 음악과 글에 녹였다.
루시드폴은 지난달 30일 정규 8집 음반과 에세이를 발매했다. 이를 나흘 앞두고 서울 강남구 도산대로 안테나 사옥에서 <더팩트>와 만난 루시드폴은 소박한 듯하지만 깊고 넓은 시각으로 음악 팬들을 향한 마음을 담아 조곤조곤 풀어냈다.
제주로 이사 후 귤 농사 행보로 관심을 받은 루시드폴이다. 그는 2년 전 발매한 정규 7집 '누군가를 위한,'을 발매하고 앨범과 함께 자신이 직접 제주에서 키운 귤을 앨범과 함께 판매, 전량 판매를 기록했고 화제를 모았다. 이번에는 에세이다. 따뜻한 제주 생활이 글과 사진으로 엮여 200쪽이 넘는 책으로 만들어졌다.
"항상 '음반'이라는 매체에 대한 고민이 있었어요. 'CD가 정말 좋아' '나는 CD 마니아야'라고 말할 수 있는, CD에 충분히 만족하는 사람이라면 예전과 다름없는 형태로 앨범을 발매했을 거예요. 그런데 좀 아쉽더라고요. 요즘처럼 쉽게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시대에도 분명 천천히 음악을 듣고 싶어 하시는 분들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죠. 그런 분들에게 더 드려야겠다는 마음으로 저번에는 귤을, 이번에는 책을 드리게 됐어요. 이렇게 하면 음반을 사는 분들에게 즐거움을 좀 더 전달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죠(웃음)."
싱어송라이터 루시드폴은 더팩트와 인터뷰에서 "(생명) 그 안에 굉장히 큰 우주가 있다는 것을 매일 피부로 느끼고 있다"고 고백했다. /안테나 제공 |
정규 8집의 이름은 '모든 삶은, 작고 크다'다. 타이틀곡은 지난 2년 간 팬들에게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담긴 곡 '안녕,'이다. 지난 2014년 제주로 이사를 한 후 루시드폴의 삶 패턴에는 많은 변화가 생겼다. 그는 "예전에는 전형적인 '야행성'이었다. 그런데 제가 사는 곳이 굉장히 조용해서 이제는 빨리 자면 오후 7시 반에 잠든다. 10시를 넘기는 일이 거의 없다. 여름에는 4시, 겨울에는 5시 반쯤 일어난다"고 말했다. 제주에서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 귤 농사를 짓고, 또 음악을 만드는 그가 2년 만에 발매하는 앨범으로 음악 팬들에게 어떠한 인사를 하고 싶었기에 이 같은 앨범 이름이 탄생했을지 궁금해졌다.
"출판사 분들이 책에 어떤 내용이 들어가기를 요청한 게 없었어요. 저도 콘셉트 얘기를 따로 전달하지도 않았죠. 어쩌다 보니까 수필이 됐어요(웃음). 제가 음반 전체 얼개를 꾸미면서 생각했던 것은 '작게 산다는 것, 그게 뭘까'였죠. 그러면서 부제처럼 떠올랐던 게 '모든 삶은 작고 크다'는 말이었어요. 삶이라는 큰 단어를 언급한다는 게 조금 그랬는데(선뜻 내키지 않았는데), 이름이 이렇게 됐네요(웃음)."
"제주에 살다 보니, 과수원 안에서만 봐도 제가 하루에 마주치는 생물들이 정말 많아요. 미생물들도 있고요. 저도 사실 농사짓기 전에는 몰랐죠. 과수원에 잘린 나무가 있는데 잘린 나무에서도 순이 계속 자라나요. 한 산림학자의 책을 보니 나무들은 뿌리로 이야기를 한다고 하더라고요. 잘린 나무들은 뿌리를 통해, 또 어떠한 매개체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양분을 주고받는 거죠. 화장실의 굼벵이들은 하늘소가 돼서 밖으로 나와요. 이렇듯 우리가 알지 못하는 다양한 생태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 후에는 뭐 하나 쉽게 할 수 없게 되더라고요. 벌레 한 마리든, 큰 말 한 마리든 생명은 모두 똑같다는 것, 작다면 작다고 할 수 있지만 그 안에 굉장히 큰 우주가 있다는 것을 매일 피부로 느끼고 있죠. '모든 삶은, 작고 크다' 이 말이 가장 적당한 제목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998년 밴드 미선이 1집 '드리프팅(Drifting)'으로 데뷔한 루시드폴은 스스로 기념비로 여기는 앨범들이 있다. 먼저 그에게 미선이 1집은 인간으로서 첫 앨범이다. 루시드폴 1집은 솔로 뮤지션으로서, 4집은 전업 가수로서, 6집은 프로듀서로서의 첫 앨범이다. 이번 정규 8집은 그에게 엔지니어로서의 첫 앨범이다.
싱어송라이터 루시드폴은 지난 2014년 제주로 이사, 귤 농사를 지어 화제를 모았다. /안테나 제공 |
"알려고 하지 않고 직접 해보지 않으면 모르는 게 정말 많죠. 제 목소리가 어떻게 생겼는지 알고 싶었고, 그래서 계속 녹음했어요. 이런저런 다양한 마이크를 써보면서 말이죠. 기타도 마찬가지인 것 같고요. 하지만 어쨌든 서투르지만 직접 녹음해보고 믹싱작업을 해봤기 때문에 앞으로는 뭔가를 '알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 차이는 클 거라고 생각해요. 알아가는 과정이 앞으로 계속 숙제로 남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요(웃음). 좀 더 소리를 잘 알게 돼서 녹음 방식 등에 신경을 쓰고 원하는 소리에 가깝게 표현하고 싶어요. 이제 진짜 힘든 싸움이 시작된 것 같기도 하네요(웃음)."
루시드폴에게 가장 사랑하는 세 가지를 묻자 그는 주저하지 않고 "아내"라고 답했다. 잠시 머뭇거리더니 "가족으로 정정하겠다"고 말하며 수줍게 웃었다. 그리고는 두 번째로 '음악'을, 세 번째로 '살고 있는 지금'을 꼽았다. 배우자를 향한 마음이 드러나는 대목, 필자는 그에게 배우자 자랑을 요청했다.
"굉장히 감사해요. 감사하게 살아가고 있어요. 제가 앨범을 많은 분의 도움을 받아 만들고 있지만, 콘텐츠 면에서 아내의 도움을 가장 많이 받죠. 노래를 쓰고, 글을 쓰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노래와 글이 일상에서 어떻게 나왔는지가 중요하다는 생각인데, 모든 것의 뒤에는 아내가 있죠. 프로필 사진을 찍을 때도 그렇고요(웃음). 이번 에세이에 실린 사진 가운데 제가 찍은 것이 아닌, 제가 등장하는 사진들은 모두 아내가 찍었죠. 또 다른 내가 돼서 사진을 찍어줬어요. 필름도 마찬가지고요(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