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옥자'가 멀티플렉스들의 외면에도 불구하고 개봉 당일 박스오피스 4위를 차지했다. /영화 '옥자' 포스터 |
[더팩트|권혁기 기자] 봉준호 감독의 신작 '옥자'(제작 플랜B·루이스 픽처스·케이트 스트리트 픽처 컴퍼니)가 29일 개봉됐습니다. '옥자'는 전국 영화관 중 멀티플렉스를 제외한 개인사업자 극장 94개 스크린에서 324번 상영됐습니다. 그 결과 2만 3100여명의 관객을 모집하며 박스오피스 4위를 차지했죠.
대한극장, 씨네큐브광화문, 아리랑씨네센터, 아트나인, 서울극장 등에서 개봉돼 이만한 성적을 거둔 것은 대단하다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온라인·영화관 동시 상영'이라는 사상 최초의 시도에 멀티플렉스들은 반감을 드러냈는데요. 일각에서는 '부익부 빈익빈'으로 영화 산업의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멀티플렉스가 쓸데없는 자존심 싸움을 벌이는 게 아니냐는 시선도 있습니다.
멀티플렉스들의 입장도 이해가 갑니다. 한국은 한 편의 영화가 다른 수익과정으로 중심을 이동할 때까지 걸리는 홀드백(hold back) 기간을 3주로 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개봉 이후 최소 3주가 지나야 IPTV에서 상영을 할 수 있다는 말이죠.
그러나 넷플릭스는 극장과 IPTV, 컴퓨터, 태블릿, 스마트폰 등 다양한 플랫폼에서 동시개봉하겠다고 천명했습니다. 극장 개봉은 한국과 미국, 영국에서만 진행한다고도 했죠. 봉준호 감독의 의지가 반영됐다고 하는데 이는 칸국제영화제에서도 문제가 됐습니다. 프랑스 극장협회가 극장에서 개봉하지 않는 영화를 영화제에 출품되는 게 맞느냐고 지적한 것이죠.
글로벌 기업 미란도의 비밀 프로젝트에 의해 탄생된 유전자 변형 동물인 슈퍼돼지 옥자를 구하기 위해 위험천만한 여정에 나서는 미자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옥자'를 연출한 봉준호 감독은 멀티플렉스 보이콧 논란에 대해 "많지 않은 극장이지만 길게 가고 싶다"고 말했다. /임세준 기자 |
봉준호 감독은 필자와 인터뷰에서 "많지 않은 극장이지만 길게 가고 싶다"면서 "이런 상황이 다 처음이라 모든 게 신기하고 어떻게 전개될지 궁금하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넷플릭스의 입장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옥자'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이기 때문이죠. 넷플릭스는 봉준호 감독에게 5000만 달러, 한화로 약 579억 원의 제작비를 지원했습니다. 봉준호 감독은 "이만한 제작비를 지원할 국내 영화 제작사가 없기 때문에 애초에 미국 측 제작사를 찾았다"고도 했죠.
'옥자'의 멀티플렉스 보이콧 논란의 최대 수혜자는 넷플릭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넷플릭스는 '옥자' 개봉을 앞두고 곳곳에 매대를 설치해 가입을 유도했습니다. 첫 가입시 한 달 동안 무료로 체험할 수 있는 이벤트도 진행 중이죠.
190여 국가에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넷플릭스는 한국 시장에서 유독 고전했습니다. 넷플릭스는 한국 시장 진출 초기 8만여명이 가입했지만 지난해 말 기준 5~6만여 명으로 줄어들었습니다. 전 세계 가입자가 8000만여 명인 것을 감안하면 미미한 수준이죠.
일부 미국 드라마와 영화에 국한해 콘텐츠를 제공했던 넷플릭스가 한국에서 인기가 높은 봉준호 감독의 작품을 제작하면서 한국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 시장의 판도를 흔들려고 하는 의도가 있어 보입니다.
개인적으로는 넷플릭스 자본으로 봉준호 감독이 웰메이드 작품 하나를 만들었으니 환영할 만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옥자'로 국내 IPTV 시장에서 넷플릭스의 지분을 늘리려고 한다면 쉽지 않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유료 가입 후 정상적으로 콘텐츠를 즐기는 소비자들도 있지만, 한국에서 IPTV 공개는 불법유출로 귀결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옥자'는 29일 개봉 당일 토렌트 등 P2P 방식으로 풀렸습니다.
그런 여러가지 복잡한 속사정을 감안하더라도 결과적으로 넷플릭스가 국내 가입자를 늘렸다면 이 또한 성공입니다. 물론 향후 수치를 통해 확인해봐야겠지만 '옥자'의 보이콧 논란으로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바이럴 마케팅에는 성공했다고 봐도 무관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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