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인터뷰] 김명민이 매일 아침 볼펜 물고 '하루'를 시작하는 이유
입력: 2017.06.18 04:00 / 수정: 2017.06.18 04:00
연기본좌 김명민이 말하는 배우의 자세란? 영화 하루에서 의사 준영 역을 맡아 열연을 펼친 배우 김명민은 매일 아침 볼펜을 입에 물고 딕션 연습을 한다. 그는 연습을 한다는 느낌이 아니라 하지 않으면 이상한 것이라고 자신만의 연기 철학을 밝혔다. /CGV아트하우스 제공
'연기본좌' 김명민이 말하는 배우의 자세란? 영화 '하루'에서 의사 준영 역을 맡아 열연을 펼친 배우 김명민은 매일 아침 볼펜을 입에 물고 딕션 연습을 한다. 그는 "연습을 한다는 느낌이 아니라 하지 않으면 이상한 것"이라고 자신만의 연기 철학을 밝혔다. /CGV아트하우스 제공

[더팩트|권혁기 기자] '연기본좌'라고 불리는 배우 김명민(45). 연기 잘하는 배우로 유명하지만 그가 현재의 자리까지 온 과정을 한 번 짚어보자면 파란만장하다.

1996년 SBS 공채 탤런트 6기로 데뷔했다. 데뷔 이후 2년간 엑스트라와 단역을 전전했다. 1999년 한 공포영화에 주연배우로 발탁됐지만 교체됐다. 이후 몇몇 작품을 통해 이름을 알리기도 했지만 몇몇 작품은 제작이 무산됐고, 연기자로서 한계를 느낀 김명민은 모든 재산을 처분하고 뉴질랜드로 이민을 결심했다.

그런 그에게 다가온 작품이 KBS1 '불멸의 이순신'이었다. 타이틀 롤을 맡은 김명민은 최선을 다했고 2005년 '연기대상' 대상이라는 결과로 돌아왔다. 영화 '명량'이 나오기 전까지 '이순신'하면 김명민이었다. 이후 '하얀 거탑' '베토벤 바이러스'를 통해 캐릭터 구축에 일가견을 보인 김명민은 '명민좌'라는 애칭을 얻었다.

연기자의 길을 떠나는 것까지 생각했던 김명민이 성공한 이유는 단순했다. 노력. 그는 매일 아침마다 볼펜을 물고 대사 연습을 한다.

지난 8일 서울 종로구 팔판동 카페에서 만난 김명민은 "요즘도 아침마다 볼펜을 물고 하루를 시작하느냐"는 질문에 "그건 매일 아침 화장실을 가듯 제 몸의 일부처럼 돼 버린 것"이라고 말문을 열었다.

"연습을 한다는 느낌이 아니라, 하지 않으면 이상한 거죠. 매일 아침 화장실에 가서 해요. 솔직히 배우가 연기를 하는데 있어 기본적인 훈련이 안 돼 있으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하루, 이틀 빼먹다 보면 굳어버리죠. 매일 발성이나 발음 연습을 하는 게 기본이라고 배우기도 했고요. 호흡과 딕션은 하지 않으면 떨어지거든요. 훈련은 계속 해줘야죠."

김명민이라는 배우가 어떤 작품에서든 인정을 받는 이유였다. 15일 개봉된 영화 '하루'(감독 조선호·제작 라인필름)에서도 김명민의 연기력을 확인할 수 있다. '하루'는 매일 똑같은 일이 발생한다는 '타임루프'를 소재로, 의사인 준영(김명민 분)이 딸 은정(조은형 분)의 생일 약속 장소로 향하던 중 교통사고 현장을 수습하면서 죽어 있는 딸을 발견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후 준영은 은정을 구하기 위해 하루를 무한 반복한다.

다음은 하루를 볼펜 물고 연습하는 것으로 시작하는 김명민과 나눈 일문일답.

김명민은 타임루프를 소재로 한 하루에 대해 내러티브가 살아 있는 작품이라고 자평했다. /CGV아트하우스 제공
김명민은 타임루프를 소재로 한 '하루'에 대해 "내러티브가 살아 있는 작품"이라고 자평했다. /CGV아트하우스 제공

-영화를 본 만족감이 궁금하다.

촬영하고 1년 만에 처음 봤는데 괜찮더라고요. 저는 제 작품에 후한 점수를 주는 편은 아닙니다. 감독님이 연출을 잘 하신 것 같아요. 타임루프라는 게 까다로운데 잘 만진 느낌이었죠.

-구체적으로 표현하자면?

영화가 지루하지 않았어요. 일단 시나리오 자체가 기가 막히게 잘 짜여 있었죠. 타임루프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뭔가 석연치 않음을 남겨뒀어요. '이건 선과 악이 분명하지 않구나'라고 생각했죠. 사랑하는 가족을 잃었을 때 할 수 있는 행동들이었으니까요. 내러티브가 살아 있죠. 영화를 선택한 이유도 그것이었습니다.

-하루가 계속 돌지만 감정의 변화를 표현하는 게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현장 모니터링까지 하지 않으면 어렵지 않은가?

저는 모니터링을 하는 게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에 아예 안 합니다. 모니터를 보는 순간 그 컷만 보기 때문에 욕심이 생겨서 한 번 더 가자고 할 수 있고, 그러면 힘이 들어가게 되거든요. 계속 하루가 돈다는 설정으로 계산이 필요한 영화인 만큼 더 철저하게 상상력과 계산 하에 나눠 놓았죠. 7번의 타임루프라고 하면 2번째는 '혼란', 3번째는 달리고, 4번째부터는 '이성적인 판단'을 키워드로 놓는 거죠. 매 타임마다 정리를 하고 몰아서 촬영을 하면서 감정 상태를 유지했죠.

-극 중 딸을 잃게 되는데 실제 '내 아이'를 떠올리면서 연기하지는 않았나?

실제로 자식이 있는 배우가 자신의 진짜 자식의 얼굴을 떠올리지는 않는 것 같아요. 기본적으로 부성애가 깔려 있지, 내 아이를 생각하면 오히려 감정이 깨질 수 있거든요.

-영화에서 준영은 딸에게는 조금은 소홀한 유명한 의사였다. 실제로는 어떤가?

저희 아버지가 그런 사람이었어요. 남들한테 인정을 받는데 집에서는 그렇지 않은 아버지였죠. 집에서는 엄격하면서 밖에서는 부드러우셨는데 저는 어릴 때 그게 이상했어요. 그래서 저는 그러지 말아야지라고 생각했죠. '도 아니면 모'라는 심정으로 혼낼 때는 완전 혼내고 칭찬할 때는 아낌없이 칭찬하죠. 중간이 없어요. 남들을 먼저 생각하는 아빠는 되지 말자고 다짐했죠. 또 저는 오지랖이랑은 거리가 먼 편이거든요.(웃음)

-변요한과는 '육룡이 나르샤' 때 호흡을 맞췄다. 이번에는 어땠나? 또 유재명과 호흡은?

좋았다는 말밖에 할 말이 없네요.(웃음) '나르샤' 때가 좋았어요.(좌중 폭소) 열정이 넘치는 젊은 피다보니 힘이 장사죠. 멱살을 붙잡히는 장면에서는 자꾸 꼬집혔어요. 진짜처럼 잡아줘야 그게 영화에 보이니까 좋았죠. 잡힌 사람도 아프지만 참아야 그게 스크린으로 드러나거든요. 그런데 생각 외로 너무 아팠어요. 너무 아파서 가운데 잡으라고 일부러 옷깃을 세웠는데 역시나 가슴 부위를 잡더군요.

박수칠 때 떠나겠다. 김명민은 가늘고 길게 가는 게 싫다면서 하향곡선을 타기 전에 떠나고 싶다고 속마음을 내비쳤다. /CGV아트하우스 제공
'박수칠 때 떠나겠다.' 김명민은 "가늘고 길게 가는 게 싫다"면서 "하향곡선을 타기 전에 떠나고 싶다"고 속마음을 내비쳤다. /CGV아트하우스 제공

-과거 '박수칠 때 떠나겠다'고 얘기한 적이 있다.

가늘고 길게 가는 게 싫어요. 예전부터 저는 많은 배우와 대중에게 인정 받는 자리에 가고 싶다고 생각했고, 지금도 '진행형'이죠. 나이를 먹으면서 '언제까지 배우를 할까?'라고 생각했을 때 변수가 있을 수 있잖아요. 뜻하지 않은 일에 휘말려 갑자기 사장되는 배우들을 보면 안타까울 때도 있어요. 저도 똑같은 배우라 불안함 속에 놓여 있다는 기분이 들 때가 있어요. 실수를 해도 무마되는 게 아니라 그대로 '아웃'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가장 빛날 때, 하향곡선을 타기 전에 떠나고 싶다는 마음이죠. 제 성격상 누울 자리를 알아보고 떠나지 않을까 싶어요.(웃음)

-만약 영화처럼 괴로운 하루가 반복되는 게 아니라 일상적인 하루가 반복된다면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저는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없어요. 돌아가면 더 미련이 남을 것 같습니다. 후회하는 시점이 없지는 않아요. 작품 선택에 있어서도 '이걸 했어야 했는데'라는 게 분명 있지만 돌아가고 싶지는 않아요. 그런 선택이 있었기에 지금의 저라는 사람이 있는 것 같거든요. 돌아가면 더 얻는 게 많을 수 있지만 사람이나 다른 많은 것을 잃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해요. 지금의 김명민은 적당한 고생, 적당히 도는 무언가가 있었기에 지금까지 온 것 같아요. 저는 제 인생을 잘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쓴맛, 단맛 다 느끼면서 말이죠.

-매우 다양한 역할에 도전하고 있다.

매번 창조적인 연기를 하자는 게 과제죠. 창조적이지 않으면 과제를 포기한 것과 같아요. 선배 연기자와 얘기를 하다보면 항상 이런 말씀을 하세요. '배우는 창조 연기를 해야한다. 창조하지 못하면 배우는 끝난 것'이라고 말이죠. 저는 아직 창조적인 역할이 남은 것 같아요.

-그럼 앞으로 해보고 싶은 역할은?

글쎄요. 마에스트로, 장군, 대통령, 의사, 마라톤, 형사도 해봤는데 남은 게 조폭이네요.(웃음) 두 얼굴을 가진 소시오패스 캐릭터도 해보고 싶어요. 외국에는 많은데 한국은 영화의 장르가 아직 부족한 것 같아요. 어디선가 본듯한 장르가 많죠. 드라마로 보자면 지금 다양한 장르가 나오고, 호응을 얻고 있으니까 영화도 그런 날이 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다양한 장르를 바라는 관객들의 목마름을 해갈해줬으면 좋겠어요. 투자사나 배급사 모두 다양하게 힘을 쏟고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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