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이라는 게 뭔지 아나. 양심 있다". 전인권은 표절논란에 휩싸이면서 전혀 예상치 못한, 의외의 관심사로 이번 대선정국을 뒤흔들었다. 사진은 2012년 지산밸리 록페스티벌. /이새롬 기자 |
[더팩트|강일홍 기자] 뜨겁게 달아올랐던 '5월 장미대선'이 막을 내렸다. 사상 최다 후보군이 난립한 가운데 치러진 이번 대선은 다자대결 구도라는 상징성만큼이나 변수가 많았던 선거였다. 선거판도가 늘 그렇듯이 새로운 이슈가 불거질 때마다 유권자들의 표심은 조금씩 흔들렸다. 한데 전혀 예상치 못한, 의외의 이슈로 대선정국을 뒤흔든 장본인도 있었다.
선거 막바지에 불거진 전인권의 표절논란은 그가 앞서 밝힌 특정 후보(안철수)에 대한 지지 발언과 오버랩되면서 파장을 몰고왔다. 평소 같으면 가요계의 흔한 표절의혹의 하나로 넘어갈 사안이었지만, 공교롭게 대선정국과 맞물리면서 더 크게 부각됐다. 일부 누리꾼은 '이 곡의 표절 논란이 하필 이 시점에 일어난 것이 의심스럽다'며 음모론을 제기하기도 했다.
전인권의 자작곡 '걱정 말아요 그대'는 독일 그룹 블랙 푀스의 '드링크 도흐 아이네멧(Drink doch eine met)'이란 곡과 멜로디와 코드 진행이 매우 유사하다. 그런데 그는 안철수 후보를 거론하면서 "요즘 안(安)씨 성을 가진 사람이 좋다, 새 대통령은 남의 뒷말을 안 하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고 했다가 문재인 후보와 안 후보 지지자들간 공방(攻防)을 불러일으켰다.
"독일 가서 원작자한테 확인하겠다". 전인권은 표절의혹을 부인했지만,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표절을 인정하는 듯한 애매한 글을 남겨 혼란을 키웠다. 사진은 지난해 박근혜 퇴진 4차 범국민행동 문화제 장면. /남용희 기자 |
◆ '표절의혹' 특정 후보에 대한 지지발언과 오버랩 돼 파장
"양심이라는 게 뭔지 아나. 양심 있다, 나 양심 이런 거에 너무 빠지면 사람 신체 내부에 더 깊숙한 곳을 구경하게 된다. 나도 그래 봤다. 그런데 아티스트는 양심보다 미치는 걸 보고 싶지 않나. 다 자기 몫이 있는데. 내가 지금 이 이야기를 적당한 때 했는지 아닌지 잘 모르겠다. 그런데 맞죠?"
논란 속에 전인권은 선거 사흘을 앞둔 지난 6일 자신의 콘서트 '새로운 꿈을 꾸겠다 말해요'(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이렇게 얘기했다. 이날 콘서트장 에는 3000명의 관객이 운집했고, 여기서 그가 말한 '양심'은 '표절하지 않았다'는 주장을 간접 표현한 것으로 해석됐다. 그럼에도 직후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표절을 인정하는 듯한 애매한 글을 남겨 혼란을 키웠다.
그는 지난달 28일 페이스북에 "나는 곧 독일로 간다. 일단 그 곡을 만든 사람 입장을 충분히 받아들이고 원하는 것을 해주겠다. 로열티를 달라고 하면 적당선에서 (합리적으로 재판을 하든 로열티가 결정되면) 한국 저작권 협회와 상의해서 주겠다"고 썼다. 전인권은 독일 밴드와 노래를 '원작자' '원곡'이라고 지칭했다. 듣기에 따라 표절을 인정한다는 건지 아닌지 헷갈린다.
촛불민심을 주도적으로 대변한 가수. 어찌 보면 오히려 당당해야할 입장이었음에도 전인권은 '표절'이란 덧에 발목이 잡혔다. 사진은 2014년 엠카운트다운 10주년. /더팩트 DB |
◆ 전인권, "아티스트는 양심보다 미치는 걸 보고 싶지 않나"
전인권이 2004년 발표한 '걱정말아요 그대'는 지난해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 이적의 리메이크곡이 삽입되며 복고풍 인기가요로 재조명됐다. 가요계는 "우연치고는 곡의 유사성에서 의심이 간다"는 반응이었다. 특히 후렴구의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떠난 이에게 노래하세요' '우리가 다 함께 노래합시다' 등 일부 멜로디가 매우 흡사하게 들린다고 지적했다.
전인권을 둘러싼 논란은 단순 표절 의혹보다는 특정 후보에 대한 정치적 지지와 겹쳤다는 점에서 좀 더 증폭된 감이 있다. 사실 이은미와 함께 지난해 촛불민심을 주도적으로 대변한 가수란 점에서 보면 크게 문제가 될 일도 아니다. 어찌 보면 오히려 당당해야할 입장이었음에도 전인권은 '표절'이란 덫에 발목이 잡혔다. 진위여부를 떠나 음모론이 고개를 든 빌미가 됐다.
또 하나, 이번 대선에서는 유독 연예인들의 정치적 지지가 자취를 감췄다. 혹자들은 대중문화계 블랙리스트 파장이 확산된 이후의 민감한 분위기가 반영된 탓이라고들 말한다. 전인권을 둘러싼 논란 역시 선거가 끝난 마당에 별 의미는 없다. 그가 독일 원작자와 어떤 결말을 낼지는 이제 본인 몫이다. 새 대통령이 탄생한 첫날, 그럼에도 개운찮은 논란의 뒷맛은 그대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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