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초점] '대선 불황' 공연계, 사기피해 이중고에 '울상'
입력: 2017.04.19 12:02 / 수정: 2017.04.19 15:46

한국연예제작자협회가 주관하고, 가수 허각이 수만명 관객 앞에서 멋진 무대를 펼친 2013년 상암동 월드컵 경기장 드림콘서트의 한 장면. 사진은 본 기사 내용과는 관련 없음. /더팩트 DB
한국연예제작자협회가 주관하고, 가수 허각이 수만명 관객 앞에서 멋진 무대를 펼친 2013년 상암동 월드컵 경기장 드림콘서트의 한 장면. 사진은 본 기사 내용과는 관련 없음. /더팩트 DB

[더팩트|강일홍 기자] 공연계의 훈풍은 봄가을 중에서도 5월이 좀 더 부드럽다. 5월은 어버이날을 비롯해 스승의 날, 가정의 달 등 각종 기념일이 겹치는 최적기이기 때문이다.

한데 올해는 찬바람이 분다. 지난해 탄핵정국 파장이 공연 불황을 가져오더니 곧바로 대선정국으로 이어지면서 고통을 가중시키고 있다. 일부 공연은 4월로 앞당겨지거나 6월로 미뤄지는 등 냉기류는 여전하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시기에 떠들썩한 공연은 좀 맞지 않다는 사회적 정서가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와중에 공연계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각종 사기사건에 휘말리며 분위기가 더 우울하다.

최근 제주에서 공연을 빌미로 100억원대의 투자금을 받아 잠적한 사건이 대표적이다. 일반인부터 법인, 심지어 아이돌 가수까지 투자를 받아 최대 120억원 투자피해를 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소식을 접한 공연계 관계자들은 "서로 힘을 모아 불황을 타개해도 모자랄 판에 사기 사건까지 터져 죽을 맛이다. 투자가 위축되면 그나마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공연조차 힘들어지는 것 아니냐"며 우려를 나타냈다.

제주에서 공연기획을 해온 김모(34)씨는 지난해부터 주변 지인 등에게 콘서트 투자 명목으로 돈을 빌린 뒤 지난 6일 자취를 감췄다. 제주동부경찰서에 따르면 김씨에게 사기를 당했다고 고소한 피해자는 19일 현재까지 8명이고 피해액은 17억 원에 이른다. 지난 10일 처음 경찰이 고소장을 접수할 당시 5명(8억원)에 비해 피해자는 3명, 피해액은 2배 이상 늘었다.

김씨가 대표를 맡고 있는 이 기획사는 최근 3~4년간 제주에서 윤도현 허각 로이킴 혁오 등 유명가수 초청 공연을 기획하며 이름을 알렸다. 또 번화가인 제주시청 주변 '젊은이 거리'에서 헬스장과 스튜디오, 포케볼, 바 등을 운영하며 호감도와 명성을 쌓았다.

서울 송파구 잠실학생체육관에서 열린 E1 Cheer up 오카 패밀리 콘서트가 열린 가운데 젝스키스 팬들이 젝스키스를 응원하고 있다. 사진은 본 기사 내용과는 관련 없음. /남용희 기자
서울 송파구 잠실학생체육관에서 열린 E1 Cheer up 오카 패밀리 콘서트가 열린 가운데 젝스키스 팬들이 젝스키스를 응원하고 있다. 사진은 본 기사 내용과는 관련 없음. /남용희 기자

김씨의 사기행각에 피해를 입은 A씨는 19일 <더팩트>와 통화에서 "김씨는 제주안에서는 제법 재력을 갖춘 사업가로 인식돼왔고, 유명 가수들의 무료공연을 유치하면서 신뢰를 쌓았다"면서 "지인을 통해 좋은 투자처가 있다는 말에 다들 속은 것"이라고 말했다.

A씨는 "처음부터 작정하고 사기를 친 김씨를 설령 붙잡더라도 돈을 되찾기가 쉽지 않다는 이유로 일부는 아예 고소를 포기한다"면서 "전체 사기피해 규모가 120억에 이르는 것으로 들었다"고 말했다.

피해자들에 따르면 김씨는 국내 피해자들 외에도 중국자금까지 투자받은 뒤 일부 투자금으로 원금 돌려막기를 하면서 유지해왔다. 하지만 사드 후폭풍으로 중국관광객 유치 등 활로가 막히고 공연 유치도 어려워지자 잠적한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은 김씨를 출국정지하고 행방을 쫓고 있지만 행적이 묘연한 상태다. 아직 공식적인 출국기록은 없지만 밀항 등의 방법으로 일본 또는 중국으로 도피했을 가능성도 조사하고 있다.

김씨의 공연 투자사기에는 유명 걸그룹 멤버인 J양이 2억원을 투자해 전액 떼인 것으로 알려졌으나, 소속사와 당사자는 일체 함구하고 있다. J양은 확실한 투자수익을 약정받고 가요계 지인을 통해 김씨에게 직접 투자한 것으로 전해졌다.

공연계의 사기사건은 불황일 때가 더 위험하다. 지난 2014년 가수 이승철의 지방 공연을 맡으면서 콘서트 계약금 등을 빼돌려 미국으로 출국한 H공연제작사 K씨의 사건 역시 큰 파장을 일으켰다.

K씨는 2014년 이승철의 부산공연을 끝내고 도망, 이듬해 예정돼 있던 제주공연에 막대한 피해를 안겼다. 당시 제주기획사 대표였던 J씨는 "H사와 1억 9000만원에 공연계약을 해놓은 상태였는데 K씨가 도망가면서 고스란히 떼었다"고 밝혔다.

하반기엔 공연 분위기가 살아날까? 11월부터 연말까지 서울 부산 대구에서 각각 나훈아, 조용필 공연이 각각 예고돼 있는 가운데 유례없는 불황을 떨쳐낼 수 있을지 기대를 걸고 있다. /더팩트 DB
하반기엔 공연 분위기가 살아날까? 11월부터 연말까지 서울 부산 대구에서 각각 나훈아, 조용필 공연이 각각 예고돼 있는 가운데 유례없는 불황을 떨쳐낼 수 있을지 기대를 걸고 있다. /더팩트 DB

이 사건은 K씨와 공동대표였던 H씨가 이승철 소속사 및 피해자 J씨와 장기간 소송을 벌인 끝에 징역 6월에 집행유예 판결을 받은 것으로 마무리됐다. J씨한테는 H씨가 법원에 공탁해둔 3000만원만 되돌려 받은 게 전부다.

H씨는 이미 계약돼 있던 이승철 공연이 불발되면서 연쇄 피해가 생겼다고 항변했지만, 정작 이승철과 소속사 측이 더 큰 피해를 입은 것으로 확인됐다. 사건 직후 이승철 측은 H씨가 주장한 8개지역 잔류공연 판권에 대해 "밴드비 등 수억원에 이르는 하드웨어비용을 받지 못해 계약 무효"라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이밖에도 얼마전 가수 콘서트 투자금 문제로 손모씨가 구속된 데 이어 황모씨가 뮤지컬 콘서트와 관련해 투자자들과 갈등을 빚으며 법적 다툼을 벌이고 있다.

문제는 이 같은 공연 투자와 관련된 잡음은 건강한 공연 활동을 위축시킬 우려가 짙다는 점이다. 최근 유례없는 불황을 겪고 있는 공연계는 하반기 예정돼 있는 굵직한 공연 빅이벤트에 기대를 걸고 있으나 투자 사기 사건이 늘어날 경우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11월부터 연말까지 서울 부산 대구에서 각각 나훈아, 조용필 공연이 각각 예고돼 있다. 나훈아는 11월3∼5일 서울을 시작으로, 24∼26일 부산, 12월15∼17일 대구 등 3개 지역에서 공연을 계획하고 있다.

공연계는 두 '빅 스타'의 하반기 콘서트 일정이 부분적으로 겹쳐 잡힐 것으로 예상 되면서 수년간 계속돼온 공연침체 국면에서 벗어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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