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순 노익장의 원천은 바로 마이크의 힘. 최근 몇년째 건강에 대한 우려에도 불구하고 KBS 내에서 송해의 'MC교체'는 여전히 금기어다. /더팩트 DB |
[더팩트|강일홍 기자] 연예인 나이는 '고무줄 나이'라는 말이 통용되던 때가 있었다. 편의에 따라 늘였다 줄였다 했던 탓이다. 특히 여자 연예인들의 경우 나이를 속이는 경우가 많았다. 인터넷 시대인 지금은 데뷔하는 순간부터 모든 프로필이 차곡차곡 쌓인다. 조금이라도 나이를 속였다간 언젠가 부메랑이 돼 자신을 망칠 수도 있다. 가요계에 나이와 관련된 에피소드 중에는 가수 방실이의 일화가 너무나 유명하다.
방실이는 가수 현숙 남궁옥분 등과 20년 이상 '또래 가수'로 지냈다. 현숙은 59년생, 남궁옥분은 58년생이고, 비슷한 나이로는 김연자 김흥국 등이 있다. 이중 방송이나 행사 출연 등 활동 영역이 비슷했던 트로트 가수 현숙과는 유독 자주 보는 사이가 됐다. 오랜 시간 가요계 활동을 하며 은연중 현숙과 비슷한 나이대임을 암시했고, 현숙의 절친이자 또래인 남궁옥분 역시 자연스럽게 이를 받아들였다.
그러다가 그의 정확한 나이가 공개된 건 2007년 돌연 병석에 눕게 되면서다. 2007년 6월 과로 증상으로 쓰러져 뇌경색 진단을 받은 방실이는 당시까지 빠른 댄스 리듬의 율동, 풍부한 가창력 등이 주특기였다. 위로와 격려를 위해 병석을 찾은 몇몇 또래 여가수들은 침대 모서리에 '63년 10월 29일생'이 선명하게 찍힌 이름표를 보고 깜짝 놀랐다. '야자'를 트던 친구가 아니라 '새까만' 후배였던 탓이다.
연예인 나이는 고무줄 나이. 가요계에 나이와 관련된 에피소드 중에는 가수 방실이의 일화가 너무나 유명하다. 왼쪽부터 현숙, 남궁옥분, 방실이. /더팩트 DB |
◆ 연예계 고무줄 나이 왜? 상황과 편의에 따라 수시 오락가락
방실이는 강화여고를 졸업한 직후 미8군 무대를 통해 가요 활동을 시작했다. 80년대 중반 여성트리오 서울시스터즈를 결성하기 전까지 그의 정확한 활동 시기는 알려지지 않았다. 당시엔 스스로 밝히지 않는 이상 나이를 가늠하기 쉽지 않았고, 또 선배그룹에 묶이느냐 후배그룹에 묶이느냐에 따라 가요계 활동에 큰 차이가 있던 시기다. 그 무렵 가수들 사이에 고무줄 나이가 유독 많았던 이유이기도 하다.
연예계에 나이로 얽히고 설킨 사연은 많지만, 90세 넘어 현역 방송인으로 활약중인 송해의 '나이 공방'은 여전히 불가사의로 남아있다. 30년 넘게 국내 최장 예능프로그램인 '전국노래자랑'을 이끌고 있고, 그의 변함없는 노익장은 늘 화제다. 그런데 송해의 나이는 3년째 구순으로 오락가락한다. 공식적으로 밝혀져 있는 나이는 27년생이지만, 실제로는 25년생이라는 증언 때문이다. 본인도 시청자들도 늘 헷갈린다.
필자가 2014년 송해의 건강비결을 취재할 당시에도 나이는 '구순'으로 언급됐다. 송해의 고향은 황해도 재령이고, 6.25 이후 함께 월남한 지인들은 학창시절 동문 수학한 기억을 떠올려 '그가 실제 태어난 해는 25년생이 맞다'고 했다. 송해 스스로도 수년 전 코미디협회 신년회에서 "원래 내 나이는 지금보다 많다"고 말한 바 있다. 송해는 지난해 작고한 고(故) 구봉서(26년생)를 선배로 깎듯이 대접했다.
"무대 위에서 쓰러질 때 까지 마이크 잡겠다". 최고령 현역방송인 송해는 '전국노래자랑'을 30년 넘게 진행하며 국민 연예인의 상징이 됐다. /더팩트 DB |
◆ 송해의 '노익장 원천'은 마이크, KBS 내 'MC 교체'는 금기어
송해는 자신의 나이에 대해 이렇게 언급한 일도 있다. "제 나이에 대해 혼동을 많이 하시는 걸로 아는데 결례되는 말씀이지만 우리끼리는 나이에 대해 장난스럽게 얘기할 때가 많다. 구봉서 형님이 사석에서 내게 '야, 너 나랑 동갑 아니냐'라고 한 적도 종종 있다. 우리들은 전후 60년대부터 가설극단 시절을 거치면서 선후배가 위계질서를 깎듯이 지켰지만 나이 몇살 오르내리는 건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송해는 이제 나이를 떠나 '국민 연예인'의 상징이다. 3년 전부터 90살이 언급된 건 혼란한 시기에 호적 나이와 실제 나이가 오락가락하면서 생긴 해프닝일 수 있다. 국내 최장수 프로그램 MC, 최고령 방송인 등의 호칭만으로 그는 이미 전 국민적 영웅으로 칭송받을 만하다. 그가 편의에 따라 일부러 나이를 속일리야 없겠지만 25년생이든 27년생이든 분명한 것은 여전히 마이크를 잡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런 송해가 최근 건강 이상설에 휘말려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전국노래자랑'의 한 제작진은 "간단하고 쉬운 멘트마저 종종 까먹어 조마조마할 때가 있다"고 말했다. 실무 제작진의 이런 걱정에도 KBS 내에서 송해에 대한 'MC교체'는 여전히 금기어다. 송해에게 '노익장의 원천'은 마이크이고 '마이크를 뺏는 순간 쓰러질 것'이라는 말은 빈말이 아니다. 아무도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지 못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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