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인터뷰] '재심' 정우 "예민한 성격, 소모 많지만 빈틈 채우는 에너지"
입력: 2017.02.22 06:22 / 수정: 2017.02.22 06:22

배우 정우는 영화 재심에서 그만이 표현할 수 있는 절제된 휴머니즘을 연기했다. /오퍼스픽쳐스 제공
배우 정우는 영화 '재심'에서 그만이 표현할 수 있는 절제된 휴머니즘을 연기했다. /오퍼스픽쳐스 제공

'재심' 정우 "진심, 시간이 걸리더라도 반드시 통한다"

[더팩트 | 김경민 기자] 배우 정우(36·본명 김정국)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작품들이 많아졌다. 잔뜩 불량기를 머금고 화면 한참 뒤에서 얼굴만 빼꼼 내밀던 단역부터 분량은 적지만 등장마다 존재감이 뚜렷했던 조연을 거쳐 알짜배기 주연이 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허투루 보낸 순간은 없다.

본격적으로 정우의 대중성이 작용한 영화 '히말라야' '쎄시봉' '붉은 가족'을 비롯해, 거슬러 올라가면 거칠지만 진솔한 짱구('바람'), 인간적인 냄새 풍기는 허술한 노식('민들레 가족'), 처절하고 절박한 벼랑 끝에 선 용대('칠성호'), 진지하다가도 웃기지 않고는 못 배기는 진욱('최고다 이순신'), 투박하지만 완벽한 로맨스를 실현하는 상남자 쓰레기('응답하라 1994')가 정우의 순간을 채웠다. 모두 진부하지 않은 스펙트럼이다.

어느새 '정우스러운' 색깔이 눈에 박히는 듯하던 찰나, 영화 '재심'(감독 김태윤) 이준영 역은 또 다른 정우를 끄집어냈다. '정우스럽다'는 느낌을 '정우여야 하는' 당위성으로 발전시켰다.

억울한 누명을 쓴 소년의 유일한 변호사 이준영은 정우의 표출과 절제 사이 표현력이 돋보이는 인물이다. 덕분에 이준영은 '재심'을 끝까지 허황되지 않고 억지스럽지 않게 무리 없이 이끌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휴먼 드라마에선 그 어떤 것보다 성공적인 결과다. 정우의 성공 비결을 최근 서울 종로구 삼청로 한 카페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발견했다.

정우는 재심에서 이준영 역을 맡아 서서히 변화하는 감정선을 묘사하는 데 고민했다. /오퍼스픽쳐스 제공
정우는 '재심'에서 이준영 역을 맡아 서서히 변화하는 감정선을 묘사하는 데 고민했다. /오퍼스픽쳐스 제공

- '재심' 소재인 약촌오거리 살인사건은 어떻게 받아들였나.

"사건을 접하고 충격적이었다. 가족들 심정이 어땠을지 생각하면서 촬영하니까 감정이 계속 쌓였다. 작품을 하면 캐릭터에 빠져서 지낸다고들 하는데 의식하지 못하는 편이었다. '재심'에서는 전체적인 영화의 감정이 겹겹이 쌓이더라. 촬영 중간에 시나리오 처음부터 다시 읽는 게 드문데 그렇게 되더라. 처음 읽었을 때보다 더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 이준영은 특정한 변화 지점이 있다기보다는 서서히 변화해서 까다로웠겠다.

"정확하게 이해해줘서 감사하다. '재심'은 준영이라는 속물적인 인물이 현우(강하늘 분)라는 친구의 아픔을 이해하고 믿기까지 과정을 그린 휴먼 드라마다. '내가 오늘부터 너를 믿을게' 이야기한들 그게 100% 이뤄질까. 영화에서 준영이 현우에게 '오늘부터 네 변호사'라고 하고 정의로움에 불타는 영웅 같은 모습이라면 (현실에서)일어나는 일이라고 느낄 수 있을까. 준영과 현우는 그 전에 알던 사이도 아니고 알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준영은 바른 길로 가겠다는 인물도 아니지만 최소한 사람으로서 양심은 가졌다. 이익을 위해서 접근했던 사건이었는데 현우가 슬퍼하고 아파하는 모습을 보고 흔들리고 마음을 다잡게 된다. 따뜻한 진심을 느껴서 준영의 마음도 움직이지 않았을까."

- 실존 인물이 존재하니까 배우로서 연기하기 부담스러웠을 것 같은데.

"부담스러운 게 있다. 원래 시나리오상에서 준영이가 그렇게 유쾌한 캐릭터는 아니었다. 이야기 소재 자체가 무겁고 안타까운 이야기인데 긴장감이나 스릴감 있는 누아르나 스릴러도 아니고 휴먼드라마라는 장르다. 관객이 두 시간 동안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잘 따라올 수 있을지 생각할 때 조금 힘들 수도 있겠더라. 너무 무겁지 않게 풀어지면 어떨까 해서 감독에게 조심스럽게 물어봤다. 부담스럽지 않게 편안하게 연기하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럼에도 매 장면 과하거나 덜한 게 아닌지 많은 생각을 했다. 코믹 강도를 조절해서 몇 가지 버전을 찍고 욕심을 냈다."

정우(사진)는 재심에서 호흡을 맞춘 강하늘 놀리는 재미에 빠졌다. /오퍼스픽쳐스 제공
정우(사진)는 '재심'에서 호흡을 맞춘 강하늘 놀리는 재미에 빠졌다. /오퍼스픽쳐스 제공

- 더 건조할 수도 있고, 더 자극적으로 울릴 수도 있는데 정도에 대한 고민은 없었나.

"중간중간 대사를 내뱉을 때 개인적으로 정우가 나와서 울컥할 때가 있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전재산 받아본 적 있느냐, 내가 이겼다'는 대사다. 되뇌면 되뇔 수록, 새로운 공간에서 새로운 대사를 내뱉을 때 울컥한다. 내 감정이 관객 감정보다 더 높으면 안 되니까 좀 억누르고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보여줄 때가 있는데 조절하는 게 쉽지 않았다."

- 정우가 변호사였다면 이준영보다 많이 울었겠다.

"준영이는 별로 안 울지만 많이 울었을 것이다(웃음). 영화를 보면서는 눈물 흘리진 않았다. '으으윽'하고 참았다(웃음)."

- 강하늘과는 친분이 있으니 촬영장 호흡이 더욱 궁금하다.

"강하늘과는 막히는 게 별로 없었다. 안정적으로 연기하는 친구여서 상대방을 불안하게 하지 않는다. 그 전에는 배려가 넘치다 보니까 형이자 선배 입장에서 부담스러울 때가 있었다. 지금은 전혀 없다. 영화 '쎄시봉'보다 tvN '꽃보다 청춘' 여행을 다녀와서 가까워진 느낌이다. 같이 먹고 자고 괴롭히기도 하고 하늘이가 때리기도 하고(웃음). 사람들 앞에서는 너무 잘해주는데 뒤에서는 때린다. 하늘이가 요즘 무에타이를 배운다더라. 농담이다. 이렇게 하늘이한테 짓궂게 장난을 친다. '사람들 많으니까 깍듯하게 인사하네' '사람만 없으면 왜 이렇게 때리냐'고 하면 당황한다. 놀리는 재미가 있다. 귀여움을 많이 받는 이유가 있다."

정우는 연기적으로 예민한 부분 때문에 소모가 되지만 긍정적인 효과를 얻는다. /오퍼스픽쳐스 제공
정우는 연기적으로 예민한 부분 때문에 소모가 되지만 긍정적인 효과를 얻는다. /오퍼스픽쳐스 제공

- '꽃보다 청춘'에서 다른 사람의 의견에 신경을 많이 쓰느라 회의를 자주 했다. 촬영이라는 작업에 에너지를 많이 소모할 것 같다.

"많이 예민해서 소모도 많이 된다. 웃으면서 촬영하려고 노력하지만 다른 직업을 가진 캐릭터 옷을 입고 연기하는 걸 한두 명이 아니라 나중에 100명, 1000명, 몇백만 명이 볼 수도 있다. 물론 즐거움 속에서 연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예민함들이 작품에 좋은 에너지를 불어넣기도 한다. 연기하면서 매번 어떻게 웃나. 감독이나 스태프 배우의 예민함이 빈틈을 가득 채워줄 수 있다."

- 변호사 연기로 업그레이드 된 전문직 역할을 맡았다.

"사실 체감하는 건 다르지 않다(웃음). 주위에서는 영화 중반 이후 모습을 새롭게 보는 것 같더라. 사투리를 안 써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좋아하는 연기 방식이 있으니까 연기하는 부분이 겹칠 수도 있다. 적재적소에 맞게 캐릭터를 소화한다면 좋아해 주지 않을까."

- 결혼하면서 부드러워진 느낌이 난다는 의견이 많다.

"어떤 걸 의식하면서 행동하진 않는다. 한 해가 지날수록 어색한 게 덜하다. 인터뷰할 때도 그렇고 연예 프로그램 스태프로 만나는 사람과도 어색함이 없어진다.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더 편해졌다. 예전에는 농담이나 행동, 대답 하나하나 정말 성심성의껏 조심스럽게 솔직하려고 노력했는데 쉽지 않다. 그렇게 하면 재미는 떨어지더라(웃음)."

정우는 관객에게 새로운 면을 꺼내 보여주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오퍼스픽쳐스 제공
정우는 관객에게 새로운 면을 꺼내 보여주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오퍼스픽쳐스 제공

- 진심은 통한다고 믿나.

"100%, 1000%, 10000% 믿는다. 시간이 조금 걸릴지언정 언젠가는 통한다."

- '정우스럽던' 전작 캐릭터들과는 또 다른 차별화가 느껴진다.

"오, 그런가. 어떤 지점부터인가? (답을 들은 후)의식하지 않으려는 버릇이 있다. 습관적으로 의식하는 순간 어색함이 묻어날 것 같아서 작정하고 덤비는 성향은 아니다. 다만 내 안에 가지고 있는 모습이었는데 관객은 처음 보니까 새롭게 느끼는 것 같다. 앞으로도 작품에 녹여서 꺼내 보여줘야지."

shine@tf.co.kr
[연예팀 | ssent@tf.co.kr]

발로 뛰는 <더팩트>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카카오톡: '더팩트제보' 검색
▶이메일: jebo@tf.co.kr
▶뉴스 홈페이지: http://talk.tf.co.kr/bbs/report/write
- 네이버 메인 더팩트 구독하고 [특종보자▶]
- 그곳이 알고싶냐? [영상보기▶]
AD
인기기사
실시간 TOP10
정치
경제
사회
연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