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인터뷰] '마스터' 이병헌 "사람 너무 쉽게 믿어, 의심하게 되고 무섭더라"
입력: 2016.12.20 07:30 / 수정: 2016.12.20 07:30

마스터 이병헌 인터뷰. 배우 이병헌이 영화 마스터에서 희대의 사기꾼 진회장 역을 연기한 소감을 말했다. /CJ엔터테인먼트 제공
'마스터' 이병헌 인터뷰. 배우 이병헌이 영화 '마스터'에서 희대의 사기꾼 진회장 역을 연기한 소감을 말했다. /CJ엔터테인먼트 제공

'마스터' 이병헌 "매너리즘 빠지지 않으려고 발버둥"

[더팩트 | 김경민 기자] 사람은 누구나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관건은 이 가능성을 얼마나 어떻게 끌어올리냐는 것이다. 이런 부분에서 보면 이병헌(46)은 본래 간직한 에너지의 범위도, 그것을 지치지 않고 퍼낼 수 있는 마중물의 한계도 한정되지 않은 배우다.

이병헌에게 영화 '마스터'(감독 조의석·제작 영화사 집)는 그를 옭아맨 시선을 또다시 싹둑 잘라낸 작품이 됐다. 그는 극 중 대중과 세상을 제 발밑에 두고 대규모 사기 사건을 벌이는 진회장 역을 맡았다. 마냥 어둡고 음울하지 않으면서도 분노를 자아내고 긴장감을 쥐고 흔드는 악인 역할이다. 드문드문 흰머리에 경박한 행동과 냉혹한 눈빛을 보여주는 인물.

이병헌은 최근 서울 종로구 북촌로 한 카페에서 진행된 '마스터' 인터뷰에서 영화와 진회장을 위해 고민하고 열중한 기억들을 차분하게 되짚었다. 작품에 대한 접근법부터 캐릭터에 대한 이해까지, 그가 '마스터' 그리고 진회장에 흡수되기 위한 과정이 고스란히 보였다. 더불어 진회장을 제3자로 바라본 이병헌의 시각도 흥미로웠다.

이병헌이 본 마스터. 이병헌은 마스터와 전작 내부자들의 차별점을 제시했다.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이병헌이 본 '마스터'. 이병헌은 '마스터'와 전작 '내부자들'의 차별점을 제시했다. /CJ엔터테인먼트 제공

- '마스터' 시나리오를 처음 본 느낌은 어땠나.

"처음 조의석 감독한테 시나리오 받기 몇 달 전부터 이 기획을 듣고 출연 제안을 받았다. 조 감독 특징을 생각하지 못한 채 막연하게 다큐멘터리 같은 센 영화가 나오겠구나 생각했는데 시나리오를 보니 상업영화더라. 어떤 콘셉트를 잡고 어떤 톤으로 기획을 하느냐에 따라서 신나고 통쾌한 영화가 될 수도 있고 우울하고 센 영화가 될 수도 있겠더라."

- '마스터' 소재나 캐릭터 면에서 국내 전작인 '내부자들'과 비교선상에 오르곤 한다.

"시기적으로도 그렇고 국내 영화로는 '내부자들' 다음 작품이어서 많이 비교하더라. 현실을 비판한다는 지점은 '내부자들'과 비슷하지만 톤이나 속도감 같은 여러 가지 색깔이 다른 영화다. 조의석 감독 특기를 잘 살렸다. 우울하고 아주 음침할 수 있는 소재의 영화를 경쾌한 템포로 만들었다."

- 진회장 캐릭터를 구축하면서 참고한 부분이 있나?

"애초에 누구를 모델로 했는지는 다 알 것이다. 사실 우리 사이에서는 비밀처럼 여기는 분위기였지만 무대 인사할 때 나도 모르게 '저는 조…'라고 인사할 뻔해서 놀랐다. 너무 민감한 문제다. 조의석 감독이 굉장히 자료가 많았다. 다큐멘터리처럼 사실적인 심각한 드라마로 꾸렸다면 아마 외형, 걸음걸이, 헤어스타일 다 따라 했을 것이다. 하지만 픽션이니까 자유롭게 새로운 인물을 창조할 수 있었다."

이병헌이 마주한 진회장. 이병헌은 진회장 같은 사람을 만난다면 속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이병헌이 마주한 진회장. 이병헌은 진회장 같은 사람을 만난다면 속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CJ엔터테인먼트 제공

- 극 초반 원네트워크를 이끄는 진회장의 연설 장면은 특히 강렬했다.

"몇만 명의 사람을 앞에 두고 심지어 그런 연설을 한다는 것 자체가 배우로서 재밌고 흥미로운 부분이었다. 관객 또한 진회장 앞에 있는 사람들이 바보가 아니라 나라도 그럴 것 같다는 공감대를 형성했으면 좋겠더라. 그렇다면 진회장이 사기꾼이라는 것을 알고 영화를 보지만 첫 장면을 보고 관객도 피해자 입장에서, 김재명(강동원 분) 입장에서 영화를 재밌게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연설문은 원래 시나리오에 없었는데 한 달 이상 걸쳐서 다시 썼다. 재밌으면서 수긍이 가고 설득력 있게끔 연기하려고 많이 연습했다."

- 진회장이 많은 사람을 설득하는 면에서는 배우도 비슷한 능력을 갖춰야 하는데.

"진회장과 배우의 속성에 유사성이 있을 수 있다. 어느 배우나 가짜를 이야기하면서 허구를 연기하지만 내용은 진실되게 표현하려고 애를 쓴다. 감정을 연기하는 그 순간만큼은 진짜 진실이고 싶은 몸부림이 좋은 작품과 좋은 연기를 만들어낸다. 쉬운 것도 아니고 아마 모든 배우가 그것을 위해 노력하고 있지 않을까."

- 진회장 같은 사람이 앞에 있다면, '인간' 이병헌은 그에게 속을까?

"원래 나라면 당연히 속을 것이다. 30대 중반이 될 때까지, 불과 얼마 전까지도 어머니나 친한 친구들이 '사회생활하면서 사람을 너무 쉽게 믿는 걸 버려라'고 했다. 사람이 당하다 보니까 그걸 고치는 걸 넘어서 정도가 심해지더라. 어느 정도 사람을 안 믿을지 방법이나 정도를 모르니까 반대로 다 의심하게 되고 믿지 않게 된다. 오히려 다 무섭더라."

이병헌의 애드리브. 이병헌이 마스터에서 펼친 애드리브 비화에 대해 털어놨다.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이병헌의 애드리브. 이병헌이 '마스터'에서 펼친 애드리브 비화에 대해 털어놨다. /CJ엔터테인먼트 제공

- 이 시대 진회장들에게 한 마디 한다면.

"그렇게 살지 마(웃음)."

- 극에서 애드리브 같은 설정과 연기가 많이 보이던데.

"촬영 전까지 아이디어가 너무 많이 나왔다. 김엄마(진경 분)와 박장군(김우빈 분) 셋이 손등 키스하는 장면은 원래 손만 잡고 이야기하는 거였는데 그것만으로 그렇게 싫어한다는 설정이 맞지 않는 것 같더라. 구호를 복창한다든지 교가처럼 회사의 노래를 부른다거나 여러 가지를 생각하다가 손등 뽀뽀를 선택했다. 애드리브는 정신이 맑아야 하거든. 다수의 정서를 이해해야 선을 넘는 코미디가 안 되겠다는 판단이 드는데 아침 일찍부터 계속 촬영해서 밤새는 상황에 지친 상태에서 판단력이 흐려졌다. 다음 날 너무 걱정돼서 감독한테 문자로 '잘못하면 유치하게 흘러갈 수 있다'는 걱정을 했더니 다들 좋아했다고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고 했다.

에필로그 쿠키 영상은 원래 시나리오에 없었다. 영화가 끝나면 관객이 진회장은 뭘하고 있을지 궁금해할 것 같았다. 에필로그 아이디어를 감독에게 이야기했고 촬영하면서 넉 달 동안 내내 계속 연구했다. 원래는 진회장이 성경을 보다가 고개를 들고 햇빛을 받으며 뭔가 찾아낸 것 같은 느낌의 표정을 짓는 거였다. 우리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게 우스꽝스럽다고 생각했는데 자칫 잘못하면 덜 통쾌하고 진회장에게 희망을 주는 것 같아서 뺐다.

주스를 피처럼 입에 묻히고 마시는 장면도 있고 정치인과 술을 마시면서 이야기하는 것도 테니스장에서 옷 갈아입으면서 이야기하는 거였다. 새로운 생각을 해냈고 그 아이디어가 이 장면에 악영향을 끼치지 않고 웃을 수 있다면 금상첨화다. 그런 것들이 탄생하기 전까지 수많은 썰렁함을 참아야 한다. 재밌는 것도 한두 번 하면 되게 조용하다. 애드리브 내고 나서 창피해서 고개 숙이고 민망하게 있을 때도 있다(웃음)."

이병헌과 후배 배우들. 이병헌(사진)이 마스터에서 호흡을 맞춘 배우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이병헌과 후배 배우들. 이병헌(사진)이 '마스터'에서 호흡을 맞춘 배우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CJ엔터테인먼트 제공

- 작품마다 애드리브를 자주 하는 편인가.

"애드리브를 위한 애드리브는 아니고 그 장면 자체가 풍성해지고 관객들에게 확실하게 전달될 수 있는 지점을 많이 살핀다. 심각한 상황에서 더 심각하게, 무서우면 더 무섭게. '내부자들'과 '마스터'가 공교롭게도 애드리브가 많이 허용될 수 있는 캐릭터였다."

- 이병헌 강동원 김우빈, 이 조합에 대한 느낌은 어떤가.

"여전히 생소하다. 25년 동안 연기하면서 작품은 물론 생활하면서 시상식에서도 못 본, 처음 본 사람들이다. 다들 훤칠하고 키가 크더라. 처음에 농구 영화인 줄 알았다. 내가 코치고(웃음)."

- 코치도 농구선수 출신이다(웃음).

"옛날 농구선수들은 그렇게 크지 않지 않나(웃음)."

- 극 중 특히 김우빈과 진경과 많은 호흡을 맞췄다.

"현장에서 호흡도 좋았지만 영화를 보고 특히 더 좋았다. 제 몫 이상을 정말 잘해낸다. 김우빈은 현장에서 리허설하면 이 신을 얼마나 많이 준비했는지 느껴진다. 순발력도 대단하다. 때에 따라 촬영이 반복되면서 대사를 다르게 하면 거기에 맞게 다르게 받아친다. 어깨에 힘이 들어가지 않은 너무나 좋은 자세를 갖고 있다. 김우빈이 아주 유연하게 움직이는 걸 보면서 저렇게 자유롭고 신나게 놀아야 새로운 것이 발견된다는 것을 느끼고 어린 배우로부터 다시 한번 나 자신을 채찍질했다. 진경은 워낙 다른 영화에서 세련된 군더더기 없는 연기를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이 영화에서 또 한번 진가를 발휘했다."

이병헌의 포부. 이병헌은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이병헌의 포부. 이병헌은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CJ엔터테인먼트 제공

- '믿고 보는 배우'라는 타이틀을 계속 갖고 가고 싶다고 했는데.

"배우 생활을 하는 동안 듣기에 가장 기분 좋고 행복한 말이 아닌가 싶다."

- 이병헌이 이병헌을 뛰어넘어야겠다는 생각은 안 드나.

"어떻게 뛰어넘는지 알면 좋을 텐데. 모든 배우들이 마찬가지겠지만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으려고 한다. 자신 안에서 발버둥 치고 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어떤 틀 안에 갇혀서 생각하고 있지 않을까. 경력이 길어질수록 그 위험성은 더 높다. 긴 세월 작품마다 훌륭한 모습을 보여주는 배우가 되고 싶다. '상상하지 못했던 모습이 있었네'하고 자꾸 그 사람 작품은 찾아보게 되는 배우."

- 올해 많은 작품이 개봉했다. 돌아보면 어떤가.

"정말 바빴던 한 해였다. 영화만 하는데도 틈틈이 계속 바빴던 이유는 그 영화로 인해서 정말 많은 시상식 참여해야 했고, 심지어 시상식 중에 하나는 뉴욕이고 홍콩이어서 외국까지 갔다. '내부자들'로 엄청난 사랑을 받아서 정말 고맙고 배우로서 영광스러운 순간이 많았다. 상의 무게만큼 이제 또 어떻게 할지 생각하게 만드는 한 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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