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인터뷰] '판도라' 박정우 감독 "원전 인근 지진, 영화가 현실화될까 겁 나"
입력: 2016.12.19 07:00 / 수정: 2016.12.19 07:00
영화 판도라를 연출한 박정우 감독은 한국의 롤랜드 에머리히 감독이라는 말에 호탕하게 웃었다. /임세준 인턴기자
영화 '판도라'를 연출한 박정우 감독은 '한국의 롤랜드 에머리히 감독'이라는 말에 호탕하게 웃었다. /임세준 인턴기자

[더팩트|권혁기 기자] 1969년 미국의 아폴로11호 닐 암스트롱이 달에 첫 발을 내딛었다. 전 세계 인류는 그 장면을 숨죽여 지켜봤다. 그보다 앞선 104년 전 쥘 베른은 '지구에서 달까지'라는 소설을 발표한다. 바로 인류가 포탄 모양의 우주선을 타고 달에 갔다가 다시 지구로 귀환한다는 내용으로 현실과 똑같아 놀라움을 자아냈다.

쥘 베른은 그저 달로 날아가는 여행을 묘사했을 뿐만 아니라 우주선의 모양이나 무게, 우주 캡슐의 크기 및 역추진 로켓 등을 완벽하게 예언했다. 심지어 지구에서 달까지 3일(현재는 반나절)이 걸린 것까지 맞췄다. 이밖에도 쥘 베른은 80여편의 공상과학소설을 통해 현대의 화학전, 잠수함, 고층 유리빌딩, TV, 화상전화 등 당시는 상상할 수 없었던 내용을 담고 있다.

영화 '판도라'(감독 박정우·제작 CAC) 역시 상상력이 동원된 작품이다. 바로 대한민국에 강력한 지진이 발생해 원자력발전소(이하 원전)가 폭발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일어나지 말아야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판도라'를 연출한 박정우(47) 감독을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소격동 라디오엠에서 만났다. 박정우 감독에게 '한국의 롤랜드 에머리히 감독'이라고 하자 웃음부터 터트렸다. 롤랜드 에머리히 감독은 '투모로우' '2012' 등을 연출한 재난영화의 명감독이다.

박정우 감독은 원전사고 영화인 '판도라'를 계획한 이유부터 밝혔다. 그는 "지진과 관련해서는 4년 전 보고된 원전 사고의 수백가지 원인을 조사한 결과, 몇백년을 기준으로 한반도에 큰 지진이 있었으며 동남권 원전들이 지진 활성단층 위에 지어졌다는 보고서가 있었지만 묵살된채 지어졌고 원전 근처에서 지진이 일어날 수 있겠다는 문제제기 차원에서 넣은 것"이라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그는 "진짜 올해 지진이 일어났다. 누군가는 영화 홍보에 도움을 줬다고 하는데, 제 입장에서는 벌어지지 않길 바란 설정이 사실이 되면서 영화 속 뒷이야기가 현실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니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겁이 났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다음은 박정우 감독과 나눈 일문일답이다.

-영화를 본 주변 반응이 어땠나?

걱정보다 괜찮았어요. 개인적으로는 완성이 돼 정상적으로 개봉되는 것만으로도 제 목적은 달성했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런 마음에 비해 좋은 반응이 많아 엄청나게 좋아하며 고마워하고 있죠. 이제 겨우 4번째 연출작인데도 괜찮은 반응이니까요. 언론배급시사회가 변곡점인데, 어떤 평가를 받느냐가 중요한데 좋은 쪽으로 봐주시는 분들이 많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좀 더 후하게 봐주시는 분들이 있다고도 생각하고요.

박정우 감독은 연가시를 촬영하던 도중 판도라를 계획했다. /임세준 인턴기자
박정우 감독은 '연가시'를 촬영하던 도중 '판도라'를 계획했다. /임세준 인턴기자

-'연가시' 촬영 중 기획했다고 들었다. 계기가 있다면?

아무래도 '연가시'가 재난영화이다보니 아이템 차원에서 재난영화 레퍼런스(참조 사항)를 취합하고 접할 때였어요. 한국에 남은 재난영화라고 한다면 블랙아웃이랑 원전 문제 정도라고 생각했죠. '연가시' 작업 중에 후쿠시마 원전이 터졌는데, 그때 전 원전에 대해 조금 더 알고 있었기에 상식선에서 우리나라도 난리가 났어야 맞다고 생각합니다. 논쟁이 붙고 대책이 세워져야 하는데 아무일 없다는 듯 묻히는 상황이었죠. 그게 큰 문제라고 생각했어요. 영화를 촬영하면서 녹녹치가 않았죠. 예산도 그랬고, 힘들게 촬영했습니다. 현장에서 욕구불많이 많았어요. 이 영화가 잘되면 더 좋은 재난영화를 마음껏 연출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죠. 영화 속 문제가 실제로 생겼을 때 시나리오를 꺼내는 게 아니라 그 시점에서 가장 눈에 들어오는 얘기를 하고 싶었어요. '연가시'가 마무리되고 원전 문제가 저한테는 제일 큰 이슈고 문제였습니다.

-제목이 '판도라'인 이유가 궁금하다.

'판도라'라는 단어에 대한 지식이 대부분 제 수준이었을 것 같아요. 열지 말라는 상자를 열었더니 재앙이 밀려오고 불행이 닥친다. 딱 그 수준으로 원전을 봤죠. 누군가 '판도라'에 대해 물었을 때, 지었던 사람의 입장에서 구체적으로 설명을 하기 위해 찾아봤더니 재앙뿐만 아니라 희망이 있었다는 내용이 와 닿더라고요. 이런 현실이 있는데, 아직 우리에게는 시간이 남아있다는, 이제 곧 닥칠테니 앞으로 일을 대비하자는 내용 말이죠. 제목과 걸맞는 영화가 된 것 같아 뿌듯합니다.

-영화를 보면 무능력한 대통령이 나오고 총리가 나라 정책을 좌지우지하는 모습이 나온다. 현실을 제대로 반영했다는 평가도 있는데.

의도적으로 정권을 비판하거나 사회 부조리를 비판하는 내용이 아니라 원전에 대한 내용입니다. 이 이야기를 진행하기 위해 전국적 재난이 되는 것은 당연했고요, 컨트롤 타워가 청와대일 수밖에 없었쬬. 그냥 재난본부 정도로 설정했다면 피하는 느낌을 줬을 것 같아요. 제가 어떻게 4년 전에 비선실세나 청와대를 예측했겠습니까. 오히려 지금 해도 이상하지 않을 대사들을 조금 뺐어요.

-영화가 정말 사실적이었다. 특히나 원전 내부 모습이 현실감 있게 다가왔다.

스태프들에게 '무조건 현장감, 사실감이 확보돼야 한다'고 강조했어요. 관객이 '원전을 빌려서 찍었네?'라고 생각할 정도로, '이거 어떻게 터트렸지?'라고 느낄 정도로 사실감이 있어야 한다고 주문했죠. 저희가 취할 수 있는 정보와 소스를 다 모으고 영화 속 내용과 비슷한 생각을 가진 분들한테서 구체적인 정보를 받았어요. 그리고 원전 내부는 우리 고리 원전을 지은 사람들이 건너가 지은 필리핀 원전을 방문했죠.

영화 자체가 어려웠다. 박정우 감독은 판도라 연출 중 가장 어려웠던 점을 묻자 이 이야기를 화면에 담아내는 것 부터가 어려웠다고 털어놨다. /임세준 인턴기자
"영화 자체가 어려웠다." 박정우 감독은 '판도라' 연출 중 가장 어려웠던 점을 묻자 "이 이야기를 화면에 담아내는 것 부터가 어려웠다"고 털어놨다. /임세준 인턴기자

-특히 김남길의 연기가 압권이었다.

그 장면을 위해 달려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재혁(김남길 분)이란 인물이 나일 수 있다는 감정이입을 하길 바랐어요. 현실적으로 재난을 겪었는데, 국가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국가는 왜 우리를 지켜주지 못했는가. 왜 매일 우리만 희생하나, 지키는 것으 왜 우리인가. 이번에는 내가 겪지 않아서 다행인가? 그런 고뇌를 느낄 수 있기를 바랐어요. 다른 사람들도 살기 힘들어 애써 외면했던 부분들이죠. 인간적인 모습이 있었죠. 김남길도 그걸 찍기 위해 이틀을 굶었다고 하더라고요.(이하는 스포일러성이라 생략)

-'판도라'를 연출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무엇인가?

이 이야기를 화면에 담아내는 게 제일 어려줬죠. 원전 재난영화가, 우리나라도 그렇지만 외국에도 없었으니까요. 현장부터가 아비규환이었습니다. 그러나 최고의 배우와 스태프가 모였기 때문에 별탈없이 잘 된 것 같아요. 초반에는 당황했죠. 아비규환 속에서 다 담아내야하는 것들이 좀 힘든 과정이었어요.

-CG가 매우 훌륭했다.

개봉까지 시간이 오래 걸렸으니까요. 짧았으면 핑계라도 있겠지만, CG에만 1년 반을 투자했기 때문에 완벽해야 했죠. 난이도가 높았기 때문에 수백 수천 컷이 들어갔죠. 속도가 정말 느리게 되더라고요. '나는 절대로 그러지 말자'고 다짐했지만 점점 '그래, 이 정도면 됐다'고 스스로 타협하게 되더라고요.(웃음) 마무리만 잘하면 되겠다고 생각했는데 예고편에 들어간 CG 때문에 댓글이 좋지 않게 걸렸어요. CG팀에 '댓글 좀 봐라'라고 했죠. 저도 그랬지만 CG팀도 열정을 불태우기 시작했죠. 마지막까지 몇개 남은 고난이도 작업 중 일부를 보고 악플이 달린 것인데, 그걸 계기로 CG팀에서 그 이전 작업들까지 전부 다시 체크했죠. 저한테는 도움이 된거죠.(웃음)

-관객들에게 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면?

폐연료봉을 보관하는 장소는 모두 원전 옆에 붙어 있는 시멘트로 만들어진 부속건물입니다. 핵연료봉이 1년 반마다 순차적으로 교체가 되는데, 안전한 외딴 곳에 따로 몇 십만년을 보관할 장소가 없어요. 전세계적으로도 없죠. 임시적으로 옆에 공간을 만들어 몇 십년동안 쌓아 놓고만 있는 겁니다. 1년에 몇 백톤씩 나온다는데, 2~3년 뒤에는 가득 찬다는 거죠. 일본도 지진으로 인해 저장수조가 폭발한 게 심각했다고 합니다. 연료봉 멜다운(녹는 현상) 후 핵분열과 함께 플루토늄 등이 나오는데 이게 공기 중에 노출되면 몇 천년, 아니 몇 만년 이어질 수 있다는 것, 더 늦기 전에 대책을 논의하고 얘기해야 한다는 거죠. 지금부터 시작해도, 낡은 원자로를 폐로하고 해체 후 보관하는 것 모두 엄청난 기술과 돈을 필요로 하기에 한참 후에나 시행할 수 있다는 점을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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