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기의 연예필담] 中 '한한령'에 '맞다'고 못하는 연예 관계자들
입력: 2016.11.25 08:26 / 수정: 2016.11.25 08:26
우리가 바로 태양의 후예. KBS2 태양의 후예로 중국에서 큰 인기를 끈 배우 송중기와 송혜교 역시 한한령을 피할 수 없었다. 송중기와 송혜교는 각각 중국 내 휴대폰과 화장품 모델이었지만 어찌된 일인지 최근 교체됐다. /더팩트 DB
우리가 바로 '태양의 후예'. KBS2 '태양의 후예'로 중국에서 큰 인기를 끈 배우 송중기와 송혜교 역시 한한령을 피할 수 없었다. 송중기와 송혜교는 각각 중국 내 휴대폰과 화장품 모델이었지만 어찌된 일인지 최근 교체됐다. /더팩트 DB

[더팩트|권혁기 기자] 역사적으로 우리한테는 사대주의(事大主義)란 단어가 익숙합니다. 작고 약한 나라가 크고 강한 나라를 섬기고 그에 의지해 자기 나라의 존립을 유지하려는 입장이나 태도를 의미하는데요. '사대'란 본래 큰 것을 섬긴다는 뜻이지만, 대외의존적 성향을 지칭하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과거 동아시아 세계질서에는 중국이 중심에 있었습니다. 가슴 아픈 역사이지만, 조선왕조는 대국인 중국에 조공을 바쳤고, 중국 황제가 조선의 왕을 책봉했습니다. 조선의 왕이 자신의 아들을 볼모로 보내기도 했죠.

이후 서양 열강들이 동아시아로 진출하면서, 대소국간 의례적 교환을 강요하는 봉조제도(封朝制度)는 무너졌습니다. 개인주의사상에 입각한 서양에서는 국가간에도 위계서열적인 관계가 아니라 대등한 외교관계로 봤기 때문이죠.

우리나라에는 분명 중국에 대한 사대주의가 있었지만 역사학자들은 그것이 한국의 국민성이나 민족성이 아닌, 대외관계 인식의 한 특성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대주의가 아직도 남아 있는 것 같아 씁쓸합니다.

한류(韓流)가 활성화되면서 문화적인 측면에서 한국은 우위에 있었습니다. 일본으로 드라마를 수출하고, 연예인들이 방문할 때마다 '국빈대우'를 받았습니다. 현지 국민들이 열광했기 때문이죠. 중국, 일본 할 것 없이 아시아에서 한국 드라마와 배우, 가수들에게 열광했습니다. 이제는 유럽과 중남미에도 한류의 손길이 뻗쳐 있습니다.

국민들이 반대하는 사드. 중국 내에서 한한령이 내려졌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에 연예계가 직격탄을 맞고 있지만, 중국에 진출한 연예 관계자 중 어느 누구도 한한령에 대한 언급을 꺼리고 있다. /남윤호 기자
국민들이 반대하는 사드. 중국 내에서 한한령이 내려졌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에 연예계가 직격탄을 맞고 있지만, 중국에 진출한 연예 관계자 중 어느 누구도 '한한령'에 대한 언급을 꺼리고 있다. /남윤호 기자

중국 시진핑 주석의 '제1부인' 펑리위안이 공식석상에서 "'별에서 온 그대' 속 도민준(김수현 분)이 시진핑 주석과 똑같다"고 말할 정도로 대륙에서의 한류는 승승장구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지난 8월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사드(THAAD)'가 한국에 배치된다는 소식이 전해진 이후 중국 내에서 '한한령(限韓令)'이 불거졌습니다. 중국 당국에서 각 방송사에 '한류금지령'을 내렸다는 것입니다. 이에 중국을 겨냥한 드라마가 편성을 받지 못했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배우들은 각종 프로그램에서 하차하거나 출연이 불발됐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중국에 진출한 한국 관계자들이 모두 '한한령'에 대해 입을 다물고 있습니다. 다들 손사래를 칩니다. 맞는데 아니라고 하는 것입니다. 한 익명의 관계자는 필자에게 "중국에서 한국발 연예 기사들을 전부 보고 있다고 보면 된다"면서 "우리가 중국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거나, 중국 활동과 관련해 '상관 없다'는 식으로 얘기한 게 보도될 경우 곧바로 '그럼 너희 하지마'라는 연락이 온다"고 귀띔했습니다.

이어 "분명 사드와 관련해 중국 당국의 '한한령' 지시가 있는 것은 맞다. 다만 이를 문서화할 경우 '대국'의 이미지가 나빠질 것을 우려해 공문을 내려보내지는 않는 것 같다. 그래도 구두로든 유선상으로든 한류에 대한 경계령이 내려진 것은 확실하다. 여러가지가 복합적으로 작용해 한국 스타들의 활동이 제한되고 드라마가 방송되지 못하는 게 사실"이라고 덧붙였습니다.

SBS 푸른 바다의 전설은 중국 수출이 확정적이었지만 어찌된 일인지 최종 현지 편성이 불발됐다. /SBS 제공
SBS '푸른 바다의 전설'은 중국 수출이 확정적이었지만 어찌된 일인지 최종 현지 편성이 불발됐다. /SBS 제공

SBS '푸른 바다의 전설'은 '별에서 온 그대'로 큰 인기를 끌었던 전지현과, 중국 정서에 맞게 결말을 바꿔 현지 개봉된 '강남 1970'의 이민호의 만남으로도 큰 화제를 모았습니다. 회당 70만달러까지 얘기가 나왔다는 게 업계 관계자의 말입니다. 하지만 결국, '푸른 바다의 전설'은 지난 16일 한국에서 단독 방송을 시작했습니다.

여러 관계자의 말을 종합해 보면 꼭 사드 때문은 아니지만 우리가 간과했던 '자국우선주의'(또는 자국보호주의)가 팽배해지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차기 대통령이 강조한 미국의 '자국우선주의'와 충돌하면서 문화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한류에 제한을 두고 있습니다. 이미 여러 뷰티·패션 업계가 휘청이고 있습니다. 중국 시장을 노리던 중소형 뷰티·패션 브랜드들의 주가가 크게 떨어졌습니다. 실제로 중국 보따리상으로 붐비던 서울 화곡동 화장품 도매유통단지가 한산해졌다는 후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대한민국이 너무 중국에 의존해왔다는 점입니다. 일본에서 큰 성공을 거두고, 수많은 관광객을 유치하던 한류가 중국으로 건너가자 우르르 몰려갔던 게 역효과가 나기 시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중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국 방송 작가협회 최대웅 이사는 "한중합작을 우려할 시기인 것 같다. 중국에서 돈이 된다고 넘어 갔다가 한국인끼리 경쟁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사실 우리가 일본에서 중국으로 편향된, 올인하는 경향이 있었다. 동남아시아와 중동, 유럽, 남미까지 한류가 있으니 다변화를 꾀해 일희일비하지 않았으면 하는 게 개인적인 바람"이라고 말했습니다.

또 최 이사는 "한국은 언제나 퀄리티가 높은 콘텐츠를 생산해 왔다. 꼭 중국 자본이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다시 우리 콘텐츠가 활발하게 수출하는 날이 올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중국의 눈치를 보지 않고 속시원하게 '중국이 왕조시대처럼 갑질을 한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는 그런 연예 관계자 어디 없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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