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인터뷰-김기덕 감독] "국가 이미지, 그물 아닌 편안한 의자였으면"①
입력: 2016.10.18 05:00 / 수정: 2016.10.18 05:00

그물 김기덕 감독 인터뷰. 김기덕 감독이 영화 그물로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를 이야기했다. /NEW 제공
'그물' 김기덕 감독 인터뷰. 김기덕 감독이 영화 '그물'로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를 이야기했다. /NEW 제공

'그물' 김기덕 감독 "마음 아픈 결론 내리면서도 다음 페이지에 희망을 걸었다"

[더팩트 | 김경민 기자] 김기덕 감독의 영화는 시리도록 냉혹하다. 주로 개인의 욕망과 억압, 사회의 부조리 단면을 낯설만큼 적나라하게 표현해왔다. 불편하게 생각돼 알고 싶지 않은 부분까지 들춰내기 일쑤이니 영화계의 문제적 이슈메이커인 동시에 비대중적이라는 편견도 갖고 있다.

하지만 김 감독의 시선은 따뜻하다. 영화 속 냉정한 메시지도 결국 출발점은 관심이다. 누구나 쉽게 외면할 수 있는 부분을 들여다보는 시도 자체가 애정에서 비롯된다. 그것이 칼날처럼 날카롭고 잔인하게 비치더라도 칼자루를 쥔 의도는 오히려 그 반대다.

영화 '그물'에는 김 감독만의 극과 극의 온도가 잘 묻어난다. 개인이 체제의 압박에 의해 얼마나 처참하게 일그러질 수 있는지, 바닥을 치는 인간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물'의 마지막 장 그 다음엔 희망이 있다. 머리는 차갑고 가슴은 뜨거운, 철학자이자 현실주의자인 김 감독의 입으로 직접 '그물' 이야기를 들었다.

김기덕 감독의 경험담. 김기덕 감독은 가족사와 개인사로 얻은 느낌을 그물에 투영했다. /NEW 제공
김기덕 감독의 경험담. 김기덕 감독은 가족사와 개인사로 얻은 느낌을 '그물'에 투영했다. /NEW 제공

※ 이 기사에는 영화 '그물'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그물'은 북한 어부 철우(류승범 분)가 배 고장으로 어쩔 수 없이 홀로 남북의 경계선을 넘게 됐다가,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기 위해 견뎌야만 했던 치열한 일주일을 그린 영화다.

'그물'과 김 감독은 작품과 연출자 그 이상으로 끈끈하게 얽매여 있다. 김 감독은 남북관계를 실체로 느낄 수 있는 경기도 파주에 살고 있다. 먼 전경에서 북을 찾아볼 수 있는 통일전망대와 강 경계선 부근 지역은 실제 영화에 등장한다. 뿐만 아니라 한국전쟁에서 총탄을 맞고 평생 후유증을 앓은 아버지 밑에서 공산주의에 대한 적대감과 분노를 키웠다.

'그물'에는 김기덕 개인으로서 그리고 감독으로서 주관적이고도 객관적인 감정이 함께 담겼다. 전작에 비해 덜 잔인하고 덜 어려운 묘사 덕분에 '대중화' 또는 '김기덕스럽지 않다'는 평을 들으며 청소년 관람가를 받기도 했다.

"청소년 관람가를 상상하지 않았다. 애국주의나 민족주의를 깔지 않고 냉정하게 가해자를 보여주니까 청소년들에게 유해한 부분이 있다고 볼 수 있는데 이런 결정을 내려준 건 의외다. 한편으로는 이러한 문제만큼은 청소년들에게도 공유해야 한다고 판단한 게 아닐까. 오히려 영화 폭이 넓어질 수도 있겠다. 청소년들은 성인들의 영화를 못봐서 난리인데 노출도 있고(웃음). 남한과 북한 사이를 냉정하고 충격적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정말 이런가' 두려움이나 공포를 가질 수도 있고 자신들의 미래니까 문제로 인식할 수 있겠지. 이런 점들이 의미 있지 않나.

애초에 18세 이상 관람가를 생각했기 때문에 근본적인 초점을 청소년에게 맞추진 않았다. 기성세대, 정치인들이 이 영화를 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정치를 잘못했을 때 (결과를)정확하게 볼 필요가 있다. 각자 체제를 유지하고자 기본을 두고 의심하고 비난하는 것들이 반복됐다. 국가 이미지가 그물이 아니라 편안한 의자거나 어머니의 품이었으면 좋겠다. 그물이라는 극단적인 이미지를 정한 건, 현재 국가라는 것은 개인에게 그런 애정이 있지 않은 것 같아서다.

김기덕스럽다? 나름대로 영화를 만들 때마다 포인트가 있어야 한다. 현실적으로 그런 공간, 에피소드는 없지만 영화에 숙명적으로 넣어야 하고 그 아이디어가 있어야 영화를 만든다. 그런 의미에서 '그물'에는 '눈을 감는다'는 게 있다. 체제에 대한 공포심, 명동에 풀어줬을 때 눈을 감고 아무것도 보지 않는다는 것, 억지로 보게 만들고 사람을 체제로 이동시키려는 것이다.

작품에 경험을 투영한다. 모든 작가는 그들이 살았던 시간과 공간, 경험한 인간으로부터 제도를 얻는다. 근본적으로 내 유전자 성질이 재료가 된다. 세월이 지나 감독이란 직업을 가지면서 객관적인 시선을 가지려고 했다. 어떤 사람들은 '김기덕이 바뀌었다, 안 바뀌었다' 하는데 변수가 있는 거다. 여러 개의 방이 있어서 이 방 들어갔다가 저 방 들어갔다가 하는 거지."

김기덕 감독의 고민. 김기덕 감독은 그물에서 캐릭터들이 전체 기관 이미지를 대표할 것을 걱정했다. /NEW 제공
김기덕 감독의 고민. 김기덕 감독은 '그물'에서 캐릭터들이 전체 기관 이미지를 대표할 것을 걱정했다. /NEW 제공

김 감독은 민감하지만 눈앞에 직면한 남북문제를 다루면서 조심스럽게 고민하는 부분도 많았다. 정확한 정부기관 표기 대신 남측과 북측 조사관으로 표현했지만, 아무래도 극적인 캐릭터가 전체를 단정 짓는 일반화의 오류를 걱정했다.

"상상으로만 이뤄진 공간과 인물이라고 보면 되는데 누구나 그게 무엇인지 알고 있다. 국가정보원이라고 모든 사람이 그렇진 않다. 그게 딜레마다. 성실한 애국자가 있을 텐데 전체가 오해를 받게 된다. (영화에서)부정부패 비리 간첩 같은 사건의 현상을 다룰 땐 총칭될 수밖에 없다. 과격한 한 인물이 대표성을 띄는 것에 항상 좀 미안하다. 메시지를 전해야 하니까 그걸 피하기도 어렵다.

영화라는 게 과연 뭘까. 시나리오를 쓰다보면 피할 수 없는 구성이 있다. 강조하기 위해 생략하고 생략하기 위해 강조한다. 시나리오 작법 원리이기도 한데 누군가 피해자를 만들기 위해 가해자가 필요하다. 단 어느 개인을 이기적인 가해자로 만들면 안 된다. 국가라는 탈을 쓴 가해자가 필요하다. (우리가)알고 있는 뉴스와 사건들을 통해 가해자의 태도가 만들어진다. 진우(이원근 분)는 환상적인 캐릭터는 상상일 수도, 희망을 가지기 위한 내 마음일 수도, 정말 국정원에 그런 인물이 있을 수도 있다. 온화한 인물을 개입시켜서 균형을 잡아줬다. 인물들 모두 나쁘지 않다. 어떻게 보면 모두 각자의 관념 안에 자기 인생을 구조적으로 성립시켜놓고 주장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물'은 가해자, 피해자, 대립, 폭력 등 모든 갈등을 시각적으로 명확하게 전달한다. 생각을 거스르는 물음표 없이 화면을 따라 볼 수 있어서 가끔 뭔가 숨어 있는 트릭이 있는 게 아닐까 의문점까지 들게 한다. 그래서 김 감독에게 단순명료하게 '그물'과 그물의 의미를 물었다.

"1970~80년대 표류 어선들이 많았다. 북한 어부들이 고기를 잡다가 하류로 흘러와서 조사를 받곤 했다. 군사 보안 지역이니까 필수적으로 조사를 받는데 북으로 돌려보내 줄 때 모든 걸 버리고 가는 모습을 신문으로 봤다. 충격이었다. 영화에서는 속옷은 입고 갔지만 자본주의 것은 하나도 가져가지 않겠다는 생각인 거지. 뭔가 빌미가 될까 봐 두려운 거다.

그러면 그들을 어디서 어떤 유령이 이런 감시를 하고 있느냐. 오랫동안 강박적으로 감시하는 유령이 있는 거지. 거대한 실체를 찾아보면 국정원이나 정부인 것 같지만 정체를 찾고자 하면 주체는 없다. 우리 의식 안에 날카롭게 있는 유령들이다. 그게 체제다. 스스로 감시받고 있고, 증명해야 하는 상황에 노출돼 있다. 유럽 자유국가들이 그런 게 있겠나. 국가를 더 멋지게 말할 수 있겠지. 아름다운 침대일 수도 있고 어머니일 수도 있지만 현실은 그물이다. 포획돼 걸려들면 움직일수록 아가미가 찢어지는, 국가에 저런 이미지를 빌려오고 싶지 않았다."

그물이 던진 희망. 김기덕 감독은 그물의 새드 엔딩으로 희망을 제시했다. /NEW 제공
'그물'이 던진 희망. 김기덕 감독은 '그물'의 새드 엔딩으로 희망을 제시했다. /NEW 제공

'그물'은 완벽하게 닫힌 암울한 결말이다. 모호하고 묘한 마지막 장면으로 생각의 여지를 남겼던 다른 작품의 엔딩과는 확실히 다르다. 시나리오 작업을 하면서 운명적으로 바뀐 결말이다. 그렇지만 김 감독은 이 새드 엔딩으로 희망을 제시했다.

"시나리오는 수년 동안 썼다. 류승범이라는 배우가 의사를 전해오면서 상상하고 영화라는 생물이 된 거다. 결말은 정확하진 않았다. 여러 가지 엔딩이 있었다. 남한으로 오는 것도 있었는데 북쪽 체제를 거부하고 자본주의를 찾아오는 건 이기잖아. 어부를 포기하고 살아갈 수도 있었겠지. 또 다른 분열의 양상이다. '피에타' 엔딩도 원래 시나리오와 다르다. 엔딩은 한 순간에 촬영 직전 운명적으로 결정된다.

'그물'은 불행, 절망으로 끝난다. 우리가 직접 직면한 현재 문제다. 국가가 한 개인을 이해하지 않으면 굉장한 불행이다. 물고기가 그물에 걸리면 끝이다. 스스로 마음 아픈 결론을 내리면서도 다음 페이지에 희망을 걸었다. 불행한 페이지를 마무리하면 다음 페이지는 질문이다. '이렇게 되기를 원하는가?'. 개인적인 욕망이나 비밀스러운 목적을 가진 영화와는 또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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