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인터뷰] "왜?"에 대한 '아수라' 김성수 감독의 명쾌한 변(辨)
입력: 2016.10.08 05:00 / 수정: 2016.10.07 06:30
영화 아수라 김성수 감독. 영화 아수라를 연출한 김성수 감독은 지난달 30일 서울 종로구 팔판길 한 카페에서 <더팩트>와 인터뷰를 가졌다. /이새롬 기자
영화 '아수라' 김성수 감독. 영화 '아수라'를 연출한 김성수 감독은 지난달 30일 서울 종로구 팔판길 한 카페에서 <더팩트>와 인터뷰를 가졌다. /이새롬 기자

영화 '아수라'로 '폭력 도시'를 그린 김성수 감독

[더팩트ㅣ강수지 인턴기자] 영화 팬들은 '아수라'(감독 김성수, 제작 사나이픽처스)를 궁금해했고, 영화는 지난달 28일 개봉돼 청소년 관람불가 작품 오프닝 스코어 신기록을 세웠다. 관람 후 관객들의 평가는 극과 극으로 극명히 갈렸다.

'아수라'는 '지옥 같은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싸우는 악인들의 이야기를 그린 범죄 액션 영화로 '비트' '태양은 없다' '감기' 등을 연출한 김성수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으며, 배우 정우성 황정민 주지훈 곽도원 정만식 등이 출연해 활약했다.

영화를 보기 전에도 궁금한 것이 많았지만, 영화를 보고나니 궁금한 것이 더 많아졌다. <더팩트>가 지난달 30일 서울 종로구 팔판길 한 카페에서 '아수라'의 메가폰을 잡은 김성수 감독을 만났다. 김성수 감독은 쏟아지는 질문에 시원한 답변을 내놨다.

카메라를 응시하는 김성수 감독. 김성수 감독의 영화 아수라는 지난달 28일 개봉됐다. /이새롬 기자
카메라를 응시하는 김성수 감독. 김성수 감독의 영화 '아수라'는 지난달 28일 개봉됐다. /이새롬 기자

- 왜 작품을 만들게 됐나.

영화가 세상에 나온 것 자체에 대한 감회가 남다르다. 재밌는 얘기가 아니다 보니 아이디어를 구상하고 시나리오를 작성하면서 주위 사람들에게 보여줄 때 용기가 필요했다.

저는 필름 누아르 장르를 너무 좋아한다. '시커먼 영화' '나쁜 놈들의 영화'. 이 장르를 너무 하고 싶어서 현대를 배경으로 어떻게 풀어내야 할지 고민을 많이 했다. 뻔한 내용으로 만들고 싶지 않았다. 시대상을 어떻게 반영할지에 대해서도 고민이 많았다. 판타지이지만 '어떤 세계를 그려내야 할까' '나만의 변별력은 무엇일까' 이런 고민을 많이 했다. 또 그런 생각의 기저에는 '짙은 어둠이 드리워지면 누가 착할 수 있을까' '누가 선한 사람의 목소리에 기울일까'라는 생각을 하다가 악만 존재하는 사회를 만들어보자고 마음먹었다. 악한 사회는 악한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다. 스토리가 있기보다는 폭력적인 관계가 있는 거다. 착취와 폭력을 화폐처럼 사용하는 사회. 폭력이 지불 수단이고 거래수단이고 보상수단인 그런 '폭력 도시'를 만고 싶었다.

다들 영화화를 반대했는데 '사나이픽처스' 한재덕 대표는 영화 마지막 부분이 마음에 든다고 했다. 제 의도를 정확히 이해하고 있었다. 이 영화는 착한 사람들이 살아남는 희망적인 영화가 아니다. 모든 인물이 악과 함께 소멸해버리고 거대한 허무만 남는다. 대표가 그 허무한 감정에 대해 "이런 장르 영화에서 느껴보지 못했던 느낌"이라고 하더라.

- 왜 그렇게 악을 표현했나.

사실 실질적으로 싸울 수 있으면 악이 아니다.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이 악이지 않나. 악이라는 것은 '나를 지배하고 나를 짓누르는 거대한 천장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저는 이 시대가 사람들에게 악행을 조장하는 사회라고 생각한다. 어느 쪽의 길로 걸어가느냐의 문제다.

또 누구나 맨 밑바닥에는 악이 있다고 생각한다. 누구든지 손을 깊숙이 넣어서 휘저으면 흙탕물이 나온다고 생각한다. 그런 상황을 만나면 안 되니까 심연을 흔들지 않는 것이다. 본의 아니게 화가 나는 일이 생기면 사람은 흙탕물이 올라오면서 시커멓고 탁한 기운이 나온다. 사회가 선한 분위기로 흘러가면 사람들은 그렇게 사는 거고, 악의 기운이 만연하고 욕망을 지나치게 자극하는 시대를 살게 되면 사람들은 사악한 기운을 내뿜으며 살아간다.

가령 길을 가다가 어떤 할머니께서 오르막길에서 손수레를 끌고 올라가고 계시는데 아무도 안 도와줘 제가 직접 도와주게 되는 상황을 생각해보자. 같이 손수레를 밀고 가는데 생각보다 한참을 밀고 가게 된다. 어느 정도만 밀면 될 줄 알았는데 도와줘야 하는 시간이 길어지면 속에서 '괜히 도와줬나?'하는 생각이 밀려온다. 그런데 또 다 도와주고 나면 뿌듯하다. '좋은 일 했다'는 생각이 들면 '다음 날은 못된 짓을 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저는 그렇다. (웃음)

필름 누아르 장르를 좋아하는 김성수 감독. 영화 아수라를 연출한 김성수 감독은 <더팩트>와 인터뷰에서 자신의 평소 생각을 솔직하게 피력했다. /이새롬 기자
필름 누아르 장르를 좋아하는 김성수 감독. 영화 '아수라'를 연출한 김성수 감독은 <더팩트>와 인터뷰에서 자신의 평소 생각을 솔직하게 피력했다. /이새롬 기자

- 어떻게 한도경(정우성 분)이 탄생하게 됐나.

범죄 액션 영화를 보면 항상 악당의 끄나풀이 등장하지 않나. 저는 영화를 보면서 '저 사람들은 왜 저렇게 살까'라는 의문이 있었다. 좋은 차를 타고 좋은 옷을 입는 것도 아니고, 열심히 나쁜 짓을 일삼는데 그렇게도 보상을 많이 받는 것도 아니다. 두목에게 매일 구박 받는데, 착한 주인공이 공격하면 한방에 죽는다. 그런 끄나풀이 들장하는 필름 누아르 작품을 만들어보자는 생각이 들었고, 끄나풀 이미지를 한도경에 투영했다. '지질한' 악당이지만 악귀 같은 인간들만 등장하는 '아수라'에서 한도경만은 조금 자의성이 적은 악당, 후회도 할 줄 알고 반성도 할 줄 아는 인간의 향기가 느껴지는 인간으로 그리고 싶었다.

- 왜 정우성인가.

정우성 씨와 친분이 있다. 정우성 씨가 연기하면 '나쁜 놈'이지만 '완전히 나쁜 놈'은 아닌 것 처럼 보일 것 같았다. (웃음)

- 어떻게 박성배(황정민 분)를 그렇게도 지독한 사이코패스로 표현할 수 있었나.

황정민 씨의 힘이 크다. 안남시는 인구 48만 명의 작은 도시다. 박성배는 좋은 대학교 졸업해서 탄탄대로를 걸은 사람 아니라 윗선에 부탁하는 방식으로 성장한 악인의 끄나풀이라고 생각했다. 시나리오를 쓰면서 어둠의 세계를 표현해 나가다 보니 안남시라는 가상 도시에 집중하고 그 피라미드 정점에 절대 악인, 박성배를 올려놓는 구조를 만들게 됐다.

황정민 씨에게 캐릭터 설명을 해드렸는데 그 이상을 표현하셨다. 같이 일하면서 놀란 게, 이 사람은 훌륭한 배우면서 훌륭한 연출자고 훌륭한 해석력을 가진 뛰어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편집하면서도 이 사람의 연기에 너무 놀랐다. 다 황정민 씨의 힘이다.

- 영화 마지막 부분에서 김차인(곽도원 분)의 비열한 성격이 드러나는 장면이 기억에 크게 남는다. 아, 정말 김차인만은 마지막에 착하게 남을 줄 알았다. 왜 그렇게까지 그렸나.

자신들만의 세계에서 살아가면서 자신의 지위보다 낮으면 열등하다고 생각하고 자신들만 존중하는 그런 권력자의 민낯을 보여주고 싶었다.

유쾌한 김성수 감독. 김성수 감독은 관객들을 흔드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밝혔다. /이새롬 기자
유쾌한 김성수 감독. 김성수 감독은 "관객들을 흔드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밝혔다. /이새롬 기자

- 어떻게 필름 누아르라는 장르를 좋아하게 됐나.

영화 연출을 시작하기 전부터 필름 누아르 작품을 재밌게 봤다. 저는 유신 시대에 중, 고등학교에 다녔는데 그 시대에는 '남자는 울면 안 된다' '남자는 힘이 세야 한다'는 그런 남성 주의적이고 가부장적인 분위기였고, 그런 시대 교육을 받아서 그런지 저 자신도 그런 문화에 휩쓸려 있었다. 그런데 점점 남자들이 몰려다니면서 바보 같은 짓도 많이 하고, 뭔가 쓸데없는 행동도 많이 하고 짐승들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더라. (웃음)

영화 연출 시작하고 나서 필름 누아르에 더 깊이 빠져들었다. 살면서 인간의 내면에는 악의 본능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인간들의 강렬한 면모가 표출되는 작품을 굉장히 좋아하게 됐다.

- 관객들에게 앞으로 어떤 감독으로 남고 싶은가.

영화도 그렇고 감독도 그렇고 자신의 마음을 크게 흔들고 인상을 준 영화나 감독이 기억되는데, 하물며 그런 영화나 감독도 잊히는데, 제가 기억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없다.

감독을 계속할 수 있는 한 제 영화가 사람들을 어떻게든 흔들 수 있기를 바란다. 제 영화에는 '항상 왜 관객들을 편안하게 하지 않는가'는 질문이 온다. 저는 그게 좋다. 관객들을 흔드는 영화를 만들고 싶고, 제가 뛰어난 감독은 아니지만 장르 영화 안에서 항상 변화를 추구하고 상투적이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감독이 되고 싶다. 그렇게 기억되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고, 제가 그런 감독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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