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최악의 하루'는 소소하지만 웃음과 의미가 있는 로맨스다. /영화 '최악의 하루' 포스터 |
해외에서 먼저 알아본 '최악의 하루', 모스크바 국제영화제 경쟁부문 진출
[더팩트|권혁기 기자] '최악의 하루'(감독 김종관, 제작 인디스토리)는 서울 종로구 통의동 서촌과 남산을 배경으로 소소한 로맨스 영화다. 귀에 찰싹 붙는 찰진 대사를 배우들이 메소드 연기로 풀어냈고, 김종관 감독은 한치도 버릴 게 없는 매끄러운 연출로 영화를 완성했다.
멋진 배우를 꿈꾸는 단역 은희(한예리 분)는 서촌에서 길을 찾는 일본인 소설가 료헤이(이와세 료 분)를 만나 도움을 주고 대신 맛있는 커피를 얻어 마신다. '운수 좋은 날'이라고, 연극 연습이 일찍 끝나 아침드라마에 출연 중인 남자친구 현오(권율 분)를 만나러 남산으로 가는 길이었다.
료헤이에게 흑심이 있었다기 보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길을 안내했던 은희는 소설가라는 말에 관심을 보이지만, 늦게나마 현오를 만나기 위해 남산으로 향했다. 남산 산책로를 걷던 은희는 햇살이 좋아 사진 한 장을 찍어 트위터에 올리고, 은희의 트윗을 본 이혼남 운철(이희준 분)은 그길로 남산으로 향한다. 운철은 은희와 만났던 사이.
먼저 선글라스에 마스크를 쓰고 나타난 현오를 만난 은희는 짜증이 났다. 오히려 더 튀어 보이는 모습이 못마땅한 것인데, 그러면서도 "네가 왜 일본인을 도와주느냐. 일본인 변태 많으니까 조심하라"는 말에 "나 잘생긴 사람 좋아하잖아"라면서 현오의 외모를 칭찬한다. 하지만 은희를 "유경아"라고 부르면서 일은 틀어진다. "촬영 끝나고 맥주마시고 호텔에서 놀자"라고 말했던 현오의 말실수에 은희는 선글라스를 빼앗아 밟아버리고 남산을 천천히 내려갔다.
그러다 운철을 만난 은희는 카페에서 진솔한 대화를 나눈다. 그러나 운철은 은희에게 충격적인 소식을 전하고, 은희는 한바탕 눈물을 쏟아낸다.
은희가 만난 남자들. '최악의 하루'에서 한예리는 매우 매력적이고 인기있는 여성으로 등장한다. /영화 '최악의 하루' 스틸컷 |
그렇게 최악의 하루를 보낸 은희 앞에 다시 료헤이가 등장하고 '최악의 하루'는 소설 '운수좋은 날'처럼 반전 결말로 치닫는다.
'최악의 하루'는 위트 있는 대사들이 압권이다. 예컨대 현오는 "그런 드라마 누가 본다고 변장을 하느냐"는 은희의 핀잔에 "아침 드라마 몰라? 여기 남산에 아줌마들 많아. 가파른 시청률 상승 중이라고"라고 말해 웃음을 유발한다. 완벽한 '연예인병'에 걸린 배우 그 자체였다. '명량'에서 이순신 장군 아들 이회를 연기한 그 배우가 맞나 의심이 갈 정도로 자연스러웠다.
이희준은 존재 자체가 웃음이다. 관객들에게 웃음과 함께 '화'를 유발하는 캐릭터를 완벽하게 연기했다. 관객은 이희준이 등장할 때마다 은희와 함께 분노한다.
한예리와 이와세 료도 메소드 연기를 펼쳤다. 특히 두 사람은 영화 후반부 두 번의 신(scene)을 롱테이크로 촬영하는데 매우 매끄럽다. 일본어와 영어가 섞인 대화인데, 일본어를 못하는 한국인과 한국어를 못하는 일본인이 서로 호감을 갖기 시작하면서 나눌 수 있는 대화였다.
때로는 몸으로 하는 대화가 백마디 말보다 나은 것. 은희는 의사소통이 어려운 료헤이와 몸으로 대화를 나눈다. /영화 '최악의 하루' 스틸컷 |
김종관 감독은 남산을 표현할 수 있는 최대한으로 아름답게 담아냈다. 그리고 배우들이 자연스럽게 연기할 수 있는 카메라 워크로 관객의 몰입도를 높였다. 캐릭터의 감정이 흔들릴 때 아주 미묘한 클로즈업, 관객이 살짝 눈치챌 수 있을 정도로만 들어가 그 배우의 감정을 그대로 느낄 수 있게 했다. 관객이 머리로 생각하지 않아도 그 캐릭터의 감정을 따라갈 수 있게 했다.
신들린 연출과 배우들의 메소드 연기, 그리고 아름다운 영상미까지 합쳐져 제17회 전주국제영화제 '한국경제' 본선 진출, 제38회 모스크바 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한 '최악의 하루'는 놓치면 후회할 영화다. 25일 15세 이상 관람가로 개봉된다. 러닝타임은 9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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