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된장찌개, 청국장 마음껏 먹고 싶어 돌아왔다" 호주 이민을 감행했던 최양락 팽현숙 부부는 아는 사람 한 명 없는 곳에서 더 큰 좌절감을 맛보며 1년을 보냈다. 방송 복귀 후 애착을 가진 '최양락의 재미있는 라디오'에서 전격 하차한 최양락은 충격을 받아 술과 주차관리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남양주=배정한 기자 |
[더팩트|강일홍 기자] 성격상 최양락은 매우 단순하다. 여자처럼 순진하고 새침한 구석도 있다. 그런데 주변사람들을 잘 웃긴다. 사소한 행동이나 단순한 말 한마디로 사람을 포복절도시키는 재주가 있다. 장난놀이처럼 비치던 '알까기'는 대표적인 예다. 바둑알을 튕겨내 살아남는 단순 생존게임이 훌륭한 개그소재로 둔갑한 건 최양락이기에 가능했다.
심형래, 임하룡, 고 김형곤 등과 함께 7080 개그맨 대표주자로 80~90년대 최고 전성기를 누린 그가 위기를 맞은 것은 90년대 말 코미디 침체기 때다. 가요계에 아이돌이 대체된 것과 맞물려 콩트 코미디 대신 스탠딩 개그 중심의 이른바 '개콘세대'의 후배 개그맨들이 뒤를 이었다. 변하는 방송 트렌드와 시대의 흐름에 순응하고 적응하기엔 그 물결이 너무 거셌다.
와중에 스스로 개국공신이라고 믿었던 SBS 프로그램에서 퇴출되는 수모를 겪는다. 그에겐 치욕이고 모욕이었다. 아내 팽현숙은 당시 상황을 이렇게 증언한다. "SBS로 이적한 뒤 한동안 잘 나갔어요. 그런데 어느날 프로그램 하차통보로 갈 곳이 없어졌죠. 그것도 SBS로 양락씨를 스카우트해간 PD한테 말이죠. 남편은 믿은 도끼에 찍혔다고 하더라. 그래서 다 버리고 이민을 가자고 나를 졸랐다."
"개그는 파격 시사풍자가 매력인데!" 최양락은 자신의 이름을 내건 라디오에서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 등의 성대모사로 현실을 풍자한 '3김 퀴즈'를 비롯해 '대충토론' '대통퀴즈' 등 시사풍자 코너를 꾸준히 진행해왔다. 마이크를 놓은 이후론 아내가 운영하는 식당에서 주차장 관리를 하며 인고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남양주=배정한 기자 |
◆ 변하는 방송 트렌드와 흐름에 순응하고 적응하기엔 너무 거센 물결
팽현숙과 오랜 고민 끝에 이민을 결심한 최양락은 무작정 짐을 싸들고 호주로 떠난다. 큰딸 하나양이 초등학교 4학년때였다. 가족을 모두 이끌고 정착한 곳은 그러나 만만치 않았다. 아는 사람 한 명 없는 곳에서 집을 구하는 일조차 쉽지 않았고, 더 큰 좌절감 속에 1년을 보냈다.
최양락은 훗날 호주 이민생활에 대해 "술마시고 어울리기 좋아하는 저와 달리 경제관념이 분명한 아내와 극단적으로 반대이니 다툴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거의 결별 직전까지 간 적도 있었다. 한국에서 가져간 돈이 바닥 날 즈음 최양락은 깨달았다. 슬픔은 더한 슬픔으로, 고통은 더한 고통으로 치유된다는 사실을 경험으로 터득했다.
"아마 그날도 할 일 없이 둘이 소주 마시고 있을 때인데 아내가 '아무래도 나는 한국에 가야 될 것 같다'고 하더라. 나는 '죽어도 안 간다'고 했다. 한국에는 절대 안 갈 거고 '가려면 당신 혼자 가라'고 했다. 혼자 술을 많이 마셔서 아침까지 술이 덜깬 상태였는데 갑자기 '그래 나도 한국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 된장찌개, 청국장을 마음껏 먹고 싶었다."
자존심 강한 것이 죄라면 죄. 최양락은 잘나가던 90년대 후반 믿었던 SBS로부터 퇴출되는 수모를 겪는다. 이후 호주로 이민을 떠나는 모험을 감행한다. 방송인으로 무난히 입지를 굳힌 최양락 팽현숙 부부는 평소 바쁜 시간을 쪼개 종종 골프 라운드를 다니며 금실을 자랑했다. /팽현숙 제공 |
◆ 외압 의혹 속, "얼마나 분통 터졌으면 해외 이민카드 또 꺼냈을까"
최양락은 SBS 측의 하차 권고를 받게 되자 1998년 10월18일 방송을 끝으로 후배 개그맨 박수홍에게 바통을 넘겨주고 물러난다. 김미화와 함께 진행을 맡았던 KBS 2TV '코미디 세상만사'도 자진 사퇴형식으로 그만 뒀다. 그리고 가족들과 함께 호주 이민을 감행한다. 후에 그는 '짧았지만 낯선 이민생활의 고통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고 털어놓은 바 있다.
1년 만인 99년 8월12일 SBS '코미디 살리기'로 컴백하고, 이후에 다시 MBC로 옮겨 와 바둑 대국을 패러디한 '알까기 대국' 붐을 일으킨다. 이를 계기로 그의 입지는 다시 탄탄해졌고, KBS와 SBS를 돌고 돌아 처음 데뷔 무대였던 친정 MBC에 터를 잡았다. 2002년 4월부터 MBC 라디오 표준FM '최양락의 재미있는 라디오'의 마이크를 잡은 뒤 날카로운 시사풍자로 청취자들을 웃기고 울리며 사랑받았다.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 등의 성대모사로 현실을 풍자한 '3김 퀴즈'를 비롯해 '대충토론' '대통퀴즈' 등 시사풍자 코너를 꾸준히 진행했다. 그런데 2008년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부터 시사풍자 프로그램이 하나 둘씩 사라졌고, '재미있는 라디오' 역시 외풍을 피하지 못했다. 음악을 바탕으로 한 사연과 퀴즈를 다룬 코너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보이지 않는 정치권의 묘한 기류와 MBC의 내부 사정이 혼재한 가운데 제작진의 교체가 잇달아 이어졌다. 그리고 14년을 지킨 마지막 보루 최양락까지 영문도 모른 채 사라졌다. 형식적으로는 프로그램 폐지였지만 누가 봐도 외압 등의 의혹이 제기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최양락이 얼마나 억울하고 분통이 터졌으면 기억하기도 싫을 만큼 고통스러운 해외 이민카드를 또 다시 꺼냈을까. 아마도 그가 외부와 단절한 채 술로 지새우는 이유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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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인터넷 신문은 지난 7월 19일자 「'외압 하차 논란' 최양락, 술과 주차관리 '인고의 세월'」 제하의 기사 및 7월 20일자「'외압논란' 최양락, 배신에 우는 속사정」 제하의 기사 등에서 최양락 씨가 라디오 방송에서 하차하게 된 데에 외압 의혹이 있고, 최양락 씨는 애청자들에게 마지막 인사조차 하지 못한 채 라디오 방송에서 하차하였다고 보도했습니다. 그러나 사실 확인 결과 최양락 씨는 방송국 내부의 정기 라디오 개편 절차에 따라 방송에서 하차하게 된 것이었고, 최양락 씨의 개인적인 사정으로 마지막 인사를 하지 못한 것으로 밝혀졌기에 이를 바로잡습니다. 이 보도는 언론중재위원회의 조정에 따른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