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씨네리뷰] '곡성', 가장 한국적인 소재와 천재 나홍진의 만남
입력: 2016.05.09 09:00 / 수정: 2016.05.08 20:07

나홍진 감독의 신작 곡성. 칸영화제의 선택을 받은 영화 곡성이 11일 전야개봉된다. /영화 곡성 포스터
나홍진 감독의 신작 '곡성'. 칸영화제의 선택을 받은 영화 '곡성'이 11일 전야개봉된다. /영화 '곡성' 포스터

종교적 색채 강해, 소재에 대한 거부감 없어야 제대로 즐길 수 있을 것

[더팩트|권혁기 기자] 한국예술종합학교(이하 한예종) 영상원에 두 천재가 있다는 얘기는 영화인들 사이에서 회자되는 내용 중 하나다. 장동건부터가 인정한 '아저씨' '우는 남자'의 이정범 감독과 바로 나홍진 감독이다.

나홍진 감독은 2007년 '추격자'와 2010년 '황해'로 대한민국 대표 감독이 됐다. 두 작품에서 보듯 완벽한 스토리텔러로 평가받는 나홍진 감독이 '곡성'(제작 사이드미러, 폭스 인터내셔널 프러덕션 코리아)을 들고 돌아왔다.

'총 121회차 촬영'이라는 점만 놓고 봐도 나홍진 감독이 '곡성'에 기울인 심혈이 느껴진다. 러닝타임도 156분이다. 천재 감독이라 불리는 나홍진 감독은 '곡성'에 가장 한국적인 소재인 굿과 귀신에 천주교의 악마를 접목시켜 칸 영화제 심사위원들의 마음을 훔쳤다.

'곡성'(谷城)은 실제 지명이다. 한자 표기만 다르다. 영화에서는 소리 내어 울 '곡'인 哭자에 소리 '성' 聲자를 썼다. 한마디로 곡소리를 뜻한다. 전라남도 곡성은 옆집 숟가락이 몇 개인지도 알 수 있는 작은 마을이다. 그 작은 마을에 낯선 외지인(쿠니무라 준 분)이 들어온 이후 마을에는 흉흉한 일들이 끊이질 않았다.

한 집안의 가장이 일가족을 살해하고 온몸에 수포성 피부질환이 생긴 사건은 모두의 관심을 끌었다. 범죄 현장 보존이 어려울 만큼 훼손된 그곳에서, 경찰관 종구(곽도원 분)는 눈을 뒤집은 채 덜덜 떨고 있는 가장의 모습을 쉽사리 잊지 못했다.

곽도원의 재발견. 영화 곡성은 곽도원의 첫 주연작이다. /영화 곡성 스틸컷
곽도원의 재발견. 영화 '곡성'은 곽도원의 첫 주연작이다. /영화 '곡성' 스틸컷

그런가 하면 야근 도중 전기가 끊기자 '전라'의 여성이 파출소 앞에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일도 있었다. 종구는 일련의 사건들에 대한 제보를 주변 사람들로부터 듣게 됐다. 사건 현장을 지키고 있던 중 만난 무명(천우희 분)은 특히 심했다. 현장을 직접 목격한듯 사건 당시를 묘사하는 모습이 심상치가 않았다. 그러면서 "외지인을 조심혀. 자꾸 보이면 또 찾아온다"고 경고했다.

보약을 짓는 사철탕집 주인이 사슴을 잡으러 산에 올라갔다가 우연히 비탈길에 낙상을 당하고 일어났을 때의 섬뜩한 경험이었다.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떠보니 일본 '훈도시'만을 입은 외지인이 사슴의 뱃가죽 사이로 얼굴을 들이밀고 내장을 뜯어 먹는 장면을 목격했다는 증언이었다.

아내(장소연 분)와 장모(허진 분), 딸 효진(김환희 분)과 함께 살고 있는 종구는 체질적으로 새가슴이다. 그래서 사철탕집 주인의 증언에 귀가 솔깃했다. 무서움이 많다 보니 "웃기는 소리 하지 말라"고 핀잔을 주지 못하고 경청을 했다. 사건 현장을 제대로 보기 싫어 지각하기가 일쑤인 종구는 사철탕집 주인과 함께 외지인의 거처를 찾아갔다.

그러나 사철탕집 주인이 일생에 한 번 약 60만 분의 1의 확률로 맞는다는 번개에 맞아 병원으로 가게 된다. 함께 병원으로 간 종구는 거기서 일가족 살인 사건의 범인이 온몸을 뒤틀어 스스로 뼈를 부러뜨리며 죽는 모습을 보자 두려움에 휩싸이게 된다.

자신의 딸인 효진이가 갑자기 먹지 않던 생선을 무섭게 먹고 평소 하지 않던 행동들을 하자 종구는 "효진이가 이상허네. 젤로 용하다는 무당을 불러야 쓰겄네. 그리 알게"라는 장모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던 중 동료 경찰 오성복(손강국 분)과 그가 잘 아는 천주교 부사제 양이삼(김도윤)을 대동해 외지인의 거처를 찾아간 종구는 그곳에서 섬뜩한 조형물들과 '무언가를 빌었을' 제단을 보고 기겁을 한다. 갑자기 돌아온 외지인은 안광을 빛내며 세 사람을 뚫어져라 쳐다보자 "죄송하다"며 그 자리를 피했다.

나홍진스럽지 않은 코믹도 있어요. 영화 곡성은 나홍진 감독이 선언한 것처럼 코믹이 가미된 상업영화다. /영화 곡성 스틸컷
나홍진스럽지 않은 코믹도 있어요. 영화 '곡성'은 나홍진 감독이 선언한 것처럼 코믹이 가미된 상업영화다. /영화 '곡성' 스틸컷

마을로 돌아오던 중 오성복은 "그 넘이 범인이여. 내가 싹 다 봐부렀당께. 피해자들을 골라 사진을 찍고 물건을 갖고 있었당께"라면서 효진이의 이름이 적힌 실내화를 내밀었다.

자고 있던 효진이의 방에서 온갖 욕설과 함께 성적인 행위가 그려진 일기장을 보자 아연실색한 종구는 양이삼을 데리고 다시 외지인의 거처로 쳐들어갔다. 종구는 이미 증거들을 다 태워버렸다는 외지인에게 "내가 경고하는데 사흘 준다. 그 때까지 이 마을을 떠나라"고 경고한다.

이후 장모가 부른 박수(薄數, 남자 만신(萬神)) 일광(황정민 분)이 집을 찾아오고, 종구에게 "건드리질 말아야 할 것을 건드렸구먼. 그건 사람이 아니여. 귀신이여"라고 귀띔한다.

'곡성'은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두려워하며 어찌하여 마음에 의심이 일어나느냐.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 또 나를 만져 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가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누가복음 24장 37절-39절)라는 문구로 시작한다.

황정민은 역시나 황정민. 혼신의 연기가 무엇인지 영화 곡성의 황정민을 보면 알 수 있다. /영화 곡성 스틸컷
황정민은 역시나 황정민. 혼신의 연기가 무엇인지 영화 '곡성'의 황정민을 보면 알 수 있다. /영화 '곡성' 스틸컷

천주교로 시작해 가장 한국적인 '굿', 그리고 일본의 밀교(密敎)가 접목된 영화는 삶과 영계(靈界)의 경계선을 넘나든다.

나홍진 감독은 156분이라는 긴 러닝타임을 오로지 결말을 향해 달려가도록 연출했다. 나 감독의 말처럼 '상업적인 코믹 영화' 코드가 곳곳에 배치돼 있지만 엔딩크레딧이 올라갈 때쯤이면 그런 코드들은 모조리 잊어버리게 된다. 특히 후반 30여 분은 관객을 흔들어댄다. 이리저리 끌려다니다 충격적인 결말에 소름이 돋는다.

개인적으로 '첫 주연작'이라는 말이 어색한 곽도원의 코믹 연기와 페이소스가 영화 전반에 깔렸다. 딸과 가족을 생각하는 마음이 더 큰 종구의, 불법적인 일을 저질러서라도 그들을 지키려는 마음이 곽도원의 연기에 담겨 있다. 종반부, 마을 골목길에 서서 선택을 강요받는 장면은 거창하지 않게 종구의 마음을 제대로 표현했다.

관객이 사랑하는 배우 황정민의 첫 등장은 '관상'의 이정재와는 다른 존재감을 드러냈다. 웅장하지 않지만, 등장만으로 영화에 대한 기대치를 한껏 높였다. 그가 굿을 하는 장면은(무녀 역할이면 '만신'의 문소리를 추천하겠지만) 이후 모든 박수 무당 역할을 하게 될 배우들의 표본으로 삼아도 좋을 정도다.

존재만으로도 소름끼치는 쿠니무라 준. 일본배우 쿠니무라 준의 연기는 곡성을 곡성스럽게 만들었다. /영화 곡성 스틸컷
존재만으로도 소름끼치는 쿠니무라 준. 일본배우 쿠니무라 준의 연기는 '곡성'을 '곡성'스럽게 만들었다. /영화 '곡성' 스틸컷

기타노 타케시만큼 유명한 일본의 국민배우 쿠니무라 준은, 그가 없었다면 '곡성'도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연기를 선사했다. 그가 보여준 육중한 연기는 관객들에게 천근만근 다가온다. 매우 짧지만, 2003년 작품 '킬빌'에서 그가 맡은 '보스 다나카'만 봐도 그가 천생 배우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천우희 역시 영화에 있어 큰 역할을 했다. 짧은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천우희가 아닌 '무명'은 상상하기 어렵다. 천우희의 연기는 '즐기는 연기'가 분명하다.

김환희는 이미 이경규의 영화 '전국노래자랑'에서 검증받은 아역이다. 송해 앞에서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던 그 작던 아이가 부쩍 커서 '곡성'이라는 대작에서 빛을 발했다. 연기를 보고 있노라면 트라우마라도 겪으면 어떡하느냐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김환희의 성장. 아역 김환희의 신들린 연기는 주연인 곽도원은 물론이고 황정민, 쿠니무라 준, 천우희와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었다. /영화 곡성 스틸컷
김환희의 성장. 아역 김환희의 신들린 연기는 주연인 곽도원은 물론이고 황정민, 쿠니무라 준, 천우희와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었다. /영화 '곡성' 스틸컷

나홍진은 영화에 있어 사람을 매우 중요시하는 감독이다. 나 감독은 영화 프리프로덕션 때부터 대학로에 숨겨진 원석과 같은 배우들을 찾기로 유명하다. 조한철 장소연 허진 최귀화 김기천 황석정 이정은 등 스크린을 통해 익히 봐왔던 배우들 외에 손강국 김도윤 박성연 길창규 백승철 권혁준 박채익 유순웅 서태성 최교식 김송일 배용근 임재일 이인철 조선주 이용녀 문창길 김춘기 배용근 이선희 홍리걸 정도원 이혁 이창훈 김지원 김은해 박소정 성수정 김아라 안수연 조지훈 윤미영 이동길 이현호 김지호 송치호 임효정 이수진 이연 신재현 이연경 우재만 이진성 선호삼 권귀덕 송민석 현정애 신재영 김현경 이명자 성정선 신정섭 김보경 송원용 강에이미 이연경 이승모 송훈 이수빈까지 모두가 자신이 맡은 역할을 완벽하게 소화했다. 잠깐 얼굴을 비추는 간호사에 시체 역할까지 이들이 있었기에 '곡성'이 완성됐다. 쿠니무라 준이 기르는 개마저도 완벽했다.

하지만 '곡성'은 호불호가 명확하게 갈릴 영화임에는 분명하다. 평단과 언론의 평가와 대중의 선택은 다르기 때문. 종교적 색채가 강해, 소재에 대한 거부감이 없어야 '곡성'을 제대로 즐길 수 있을 전망이다.

제69회 칸영화제 비경쟁부문에 공식 초청된 '곡성'은 15세 이상 관람가로 오는 11일 전야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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