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기의 연예필담] PPL 자연스레 녹이는 작가님 어디 없나요?
입력: 2016.05.06 08:36 / 수정: 2016.05.06 08:36

PPL의 좋은 예와 나쁜 예를 모두 보여주는 영화 트루먼 쇼. 짐 캐리 주연의 수작으로 꼽히는 트루먼 쇼는 지난 1998년 작품이다. /영화 트루먼 쇼 포스터
PPL의 좋은 예와 나쁜 예를 모두 보여주는 영화 '트루먼 쇼'. 짐 캐리 주연의 수작으로 꼽히는 '트루먼 쇼'는 지난 1998년 작품이다. /영화 '트루먼 쇼' 포스터

시청자들은 60분짜리 광고를 보고 싶은 게 아닙니다

[더팩트|권혁기 기자] 피터 위어 감독이 연출한 영화 '트루먼 쇼'(1998)는 수작으로 손꼽힙니다. 개인적으로는 '천의 얼굴'이란 수식어에 가장 부합한 배우는 짐 캐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영화를 더욱 재미있게 봤던 기억이 있습니다.

영화 속 시청자들은, 평범한 샐러리맨 트루먼 버뱅크(짐 캐리 분)가 태어나는 장면부터 그가 살아온 일거수일투족을 생방송으로 지켜봤습니다. 트루먼 자신만 모르는 상황입니다. 방송 PD 크리스토프(에드 해리스 분)는 모든 것을 통제하고 드라마틱한 연출을 위해 연구합니다. '빅 브라더'인 셈이죠.

트루먼의 생활 24시간이 생방송 되기 때문에 광고가 없습니다. 트루먼을 뺀 나머지 모든 등장인물들은 방송국에 고용된 사람들로, 이들이 PPL(product placement, 간접광고)을 적시 적소에 연기합니다.

예를 들자면 고민이 많은 트루먼에게, 죽마고우 말론(노아 에머리히 분)이 "맥주나 마시자"라면서 단추 크기의 소형 카메라 앞에서 캔을 따서 맛있게 마시는 장면이 자연스레 들어갑니다. 와이프 메릴 버뱅크(로라 린니 분)는 주방기구 PPL을 맡았습니다. 예컨대 가위나 칼을 쓰면서 "얼마 전에 샀는데 그렇게 잘 들 수가 없다. 가격도 1.99달러밖에 안된다"고 말하는 겁니다. 그러자 트루먼은 "자기는 가끔 누구한테 얘기하는건지 모르겠다"고 합니다. PPL이 제대로 녹아들지 않았기 때문이죠.

태양의 후예에 등장한 태양광 사업과 자동차, 화장품, 홍삼 등 PPL. 다양한 제품들이 간접광고로 등장한 태양의 후예는 인기만큼이나 논란도 많았다. /KBS2 태양의 후예 방송 캡처
'태양의 후예'에 등장한 태양광 사업과 자동차, 화장품, 홍삼 등 PPL. 다양한 제품들이 간접광고로 등장한 '태양의 후예'는 인기만큼이나 논란도 많았다. /KBS2 '태양의 후예' 방송 캡처

최근 KBS2 '태양의 후예'가 과도한 PPL로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소환됐습니다. 자동차부터 홍삼, 중탕기, 목걸이, 샌드위치, 틴트, 홍삼, 호텔예약 앱까지 다양했습니다. 송혜교와 제이에스티나(로만손), 제작사 NEW 사이에는 초상권, 저작권 침해 논란이 일어나 소송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과거 MBC '더킹 투하츠'도 PPL 때문에 몸살을 앓았죠. 테이블 위에는 항상 D사의 도넛이 자리했습니다. 이승기가 하지원에게 손으로 하트를 날릴 때도 하트모양 도넛을 손에 쥐고 했을 정도였습니다. '더킹 투하츠'는 드라마 제목을 몇 차례 바꿨는데 '00 도너츠'와 발음이 비슷하게 하려고 수정됐다는 웃지 못할 얘기도 들렸습니다. 남한에서는 도넛만 먹고 사느냐는 비아냥도 있었죠.

남한에서는 도넛만 먹고 삽네까? 과거 MBC 더킹 투하츠는 과도한 도넛 PPL로 논란이 일어났다. /MBC 더킹 투하츠 방송 캡처
남한에서는 도넛만 먹고 삽네까? 과거 MBC '더킹 투하츠'는 과도한 도넛 PPL로 논란이 일어났다. /MBC '더킹 투하츠' 방송 캡처

그런가 하면 '최고의 사랑'과 같은 드라마도 있었습니다. 극 중 등장한 비타민 음료는 공효진이 차승원의 마음을 훔치기 전까지 '충전제'였습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국민 캐릭터 뽀로로가 수없이 등장했는데 실제로는 PPL 업체가 아니었다는 거죠. 손 안 대고 코를 푼 격입니다.

예능으로 보자면 SBS '런닝맨'이 대표적입니다. 유재석 지석진 김종국 하하 개리 이광수 송지효 등이 뛰는 장소부터가 PPL입니다. 3~4년 전 기준으로, 업체는 '런닝맨' 측에 5000만 원 가량을 지원했습니다. '우리 회사를 배경으로 뛰어 주세요'라면서 주는 돈이죠. 회당 제작비가 5000만 원 정도임을 감안하면 시작부터 제작비를 충당하고 들어가기 때문에 SBS 입장에서는 효자 프로그램입니다.

출연진이 입는 옷 역시 PPL입니다. 의상 PPL을 하기 위한 문의가 빗발친다고 하는데, 리듬체조 손연재와 수영 박태환 선수가 게스트로 출연했을 때는 자연스럽게 스포츠 의류 전문 업체 F사가 지원했습니다. N사 R사 등 '런닝맨'에 줄 선 메이커들이 허다합니다.

출연진의 깔맞춤 트레이닝복도 PPL. 배우 손연재가 모델인 F사는, 런닝맨에 PPL을 했다. /SBS 런닝맨 방송 캡처
출연진의 깔맞춤 트레이닝복도 PPL. 배우 손연재가 모델인 F사는, '런닝맨'에 PPL을 했다. /SBS '런닝맨' 방송 캡처

드라마 제작사들은 작품 시놉시스 등을 토대로 광고주를 모집합니다. 이런 내용의 드라마를 000방송사에서 편성을 받았는데 캐스팅은 누가 됐고, 작가는 이분이며 메가폰은 000 PD가 잡는다고 설명한 뒤 광고 얘기를 하죠. PPL과 관련해서는 아주 세부적인 내용이 오가고 계약서상 명시됩니다. '00제품을 회당 1분30초씩 노출해 줘야 하며 긍정적인 이미지로 보여야 한다'는 식입니다. 그래서 민감한 내용의 제품 또는 회사 등은 실명이 아닌 경우가 많죠. 이런 내용은 드라마 작가한테 전달됩니다.

PPL을 좋아하는 작가도 있지만 대부분 싫어하는 편입니다. 왜냐하면, 생뚱맞은 제품이 갑자기 툭 튀어나오게 할 수는 없으니 최대한 드라마 내용에 녹여내야 하는데 그게 쉽지만은 않기 때문이죠. 작가한테도 스트레스입니다. "이번에는 그 제품이에요? 제가 한번 제대로 녹여볼게요"라는 몇몇 작가들도 있다고 하는데 많지는 않습니다.

제작사들이 PPL을 하는 이유는 간단명료합니다. 제작비의 충당이죠. 회당 1~2억 정도였던 드라마 제작비는 요즘 높아지는 추세입니다. '태양의 후예'의 경우 그리스 로케이션도 그랬지만 스케일이 컸기 때문에 130억 원이라는 제작비가 들었습니다. 16부작이니 계산하면 회당 8억1250만 원입니다. 중국 동영상 업체 아이치이가 '태양의 후예' 판권을 사들이며 48억원을 지원했습니다. 나머지는 PPL과 방영권 등으로 충당했습니다.

이제 PPL은 한국 드라마계에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됐습니다. 출연진의 연기력은 기본이라는 전제하에, 자본이 많다면 완성도가 높은 작품이 나올 확률이 높기 때문이죠. 이제는 PPL을 자연스레 녹여내는 게 중요하다고 봅니다. '그 드라마 주인공은 자동차야'라는 소리를 들어서야 되겠습니까?

시청자들은 60분짜리 광고를 보려고 평일 또는 주말 늦은 시간 TV 앞에 앉는 게 아닙니다. 좋은 드라마를 보고 웃고 울면서 카타르시스를 느끼기 위해 리모컨을 손에 쥡니다. CF 전문 감독들을 평가절하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광고를 보면서 흘릴 눈물은 없습니다. 공익광고라면 모를까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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