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 작가에 매달리는 드라마 제작시스템의 구조적 병폐. 한때 방송드라마 작가로 활동한 적이 있는 P씨는 최근 방송가 지인들을 이용해 방송 편성을 따낸 뒤 제작비를 받아 잠적했다. 사진은 tvN 드라마 '시그널'(기사내용과 관련없음). /tvN '시그널' 스틸 |
[더팩트|강일홍 기자] 한동안 시청자들이 인식하는 드라마 왕국 타이틀은 당연히 지상파 몫이었다. KBS와 MBC, SBS가 번갈아 가며 드라마의 자존심을 지켰다. 지금도 그럴까. 아니다. 종편 채널과 케이블 채널의 꾸준한 반격으로 지상파의 '철옹성 드라마 왕국' 울타리는 이미 무너진 지 오래다. 특히 tvN의 상승세는 무서울 정도다. 향후 수년 내 모든 드라마를 케이블 채널이 장악할 수 있다는 분석이 빈말처럼 들리지 않는다.
모든 분야가 다를 게 없지만 방송은 철저하게 자본싸움이다. 같은 종편 채널 중에서도 JTBC의 콘텐츠가 강세를 보이는 이유는 다름 아닌 투자다. tvN의 위력은 바로 거대자본으로 무장한 CJ의 든든한 울타리 덕분이다. tvN이 향후 100명에 가까운 작가진을 대거 영입한다는 얘기이고 보면 방송가 판도가 또 한번 요동칠 가능성이 크다.
영화는 어떤 배우가 주연으로 캐스팅됐느냐에 따라 대체로 히트의 성패가 달려있고 희비도 엇갈린다. 하지만 스크린과 달리 브라운관의 상황은 오롯이 작가의 손에 달려 있다. 그래서 일부 마니아 시청자들은 출연 연기자 보다는 작가를 보고 작품을 고르기도 한다. 그만큼 드라마는 유독 작가의 힘이 거세다. '별에서 온 그대'의 스타작가 박지은의 행보가 화제가 됐지만 드라마는 '작가놀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드라마 경쟁력, 스타 배우와 스타 작가 필수. 외주제작사들의 첫번째 관문은 방송 편성이고, 이를 위해 경쟁력있는 배우를 캐스팅하고, 히트작가를 영입하는 일은 필수다. 사진은 올해 가장 경쟁력 있는 드라마 배우로 꼽히는 김혜수 고현정 전도연(왼쪽부터). /더팩트 DB |
◆ 커진 드라마 작가의 권력, 방송가 판도 뒤바꿀 만큼 막강
드라마 작가들의 위상이 절대적으로 커지면서 이를 빙자한 불미스런 일도 종종 생긴다. 최근 발생한 한 드라마 작가의 사기사건이 대표적인 사례다. 한때 방송드라마 작가로 활동한 적이 있는 P씨는 '히트작'을 앞세워 방송가 지인들을 이용했다. 과거 자신의 명성을 앞세워 후배 작가들을 무더기로 영입하고 방송 편성까지 따내게 한뒤 이를 미끼로 거액의 투자금을 받은 웃지못할 사건이다.
시청률과 히트작에 목마른 드라마 제작자는 P씨의 '그럴듯한 시높시스'에 속아 수십억 원의 빚더미를 떠안고 말았다. 외주제작사들의 첫번째 관문은 방송 편성이다. 물론 이를 위해 경쟁력 있는 배우를 캐스팅하고, 히트작가를 영입하는 일은 필수다. 이를 바탕으로 투자자들은 제작사의 규모나 역량을 최종 평가해 제작비를 댄다. 그런데 방송계 지인들의 추천만으로 돈을 투자했다가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히고 좌절과 절망에 빠진 안타까운 일도 있다.
'믿고 투자했다가 편성 불발로 낭패' 거대기획사 대표 C씨는 평소 알고지내던 한 드라마 작가로부터 투자 권유에 속아 거액을 날렸다. 사진은 SBS 드라마 '그래, 그런거야' 제작발표회 당시 모습(기사내용과 관련없음). /더팩트 DB |
◆ 모 중앙일간지 기자 출신 은퇴자 '거액 사기 피해' 사건
#1=은퇴한 한 중앙지 신문 기자 A씨는 평소 알고 지내던 드라마 작가 B씨에게 전 재산을 날리고 빈털털이가 됐다. 과거 금전거래로 A씨에게 채무를 지고 있던 B씨가 수년 만에 나타나 빚진 돈의 일부를 갚았다. 알고 보니 이게 미끼였다. 얼마 후 B씨는 A씨에게 "방송 드라마에 투자하면 나머지 못 갚은 돈은 물론 거액을 받을 수 있다"고 속여 5억원을 투자금 명목으로 받은 뒤 잠적했다. A씨는 이 일로 스트레스를 받아 뇌출혈로 쓰러져 반신불수가 되고 말았다.
#2=이름만 대면 알만한 거대기획사 대표 C씨는 평소 알고지내던 한 드라마 작가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그는 자신이 집필하고 모 외주제작사가 준비중인 드라마라며 투자를 권유했다. 이 작가는 C씨가 평소 형님 동생으로 알고 지낸 방송관계자까지 동원해 확인전화를 받게 했다. 그 바람에 철썩같이 믿고 투자했다가 그만 낭패를 봤다. 편성불발로 투자금 회수는커녕 오랜 인간적 관계까지 어긋나고 지금은 소송을 고심해야하는 처지에 놓였다.
방송사가 드라마를 직접 제작하던 시절 드라마 PD의 힘은 막강했다. 그래서 PD를 사칭해 연예인 지망생들을 울린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지금도 연예기획사 매니저를 빙자한 잡음은 빈발하게 발생한다. 작가의 위상을 앞세운 각종 사기사건 역시 방송가의 달라진 위상과 무관하지 않다. PD나 매니저가 한방에 뭔가를 줄 수 있다고 믿는 순진함이 빚은 해프닝이라고 할 수 있지만, 드라마 작가의 권력이 방송가의 판도를 바꿀만큼 막강해진 것만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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