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일홍의 연예가클로즈업] 대박영화 '관상'의 소송시비, 누구 책임인가?
입력: 2016.01.25 11:16 / 수정: 2016.01.25 11:17
관상 제작사, 흥행 감독의 법적 분쟁 진짜 이유는? 마케팅비 포함해 총 100억 원 가량  투자된  관상은 지난 2013년 913만 관객을 동원하며 그 해 최고의 흥행작으로 꼽혔다. /영화 관상 스틸
'관상' 제작사, 흥행 감독의 법적 분쟁 진짜 이유는? 마케팅비 포함해 총 100억 원 가량 투자된 '관상'은 지난 2013년 913만 관객을 동원하며 그 해 최고의 흥행작으로 꼽혔다. /영화 '관상' 스틸

[더팩트|강일홍 기자] 영화 '실미도'는 2003년 개봉돼 한국영화 사상 최초로 1000만 관객을 돌파했다. 말 그대로 한국 영화사에 한 획을 그은 작품이다. 내용은 1971년 북한 김일성 주석궁 폭파를 목적으로 창설된 특수부대 요원들의 얘기로, 섬을 탈출해 청와대로 향하던 중 죽음을 맞은 비극적인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충무로 대표감독 강우석이 메가폰을 잡고 설경구 안성기 정재영 허준호 등이 주연했다. 당시까지 전대미문의 고지였던 1000만 관객(1108만)을 넘은 '실미도'의 의미는 크다. 그 어떤 설명과 논리로도 폄하될 수 없는 이유다.

'실미도'는 85억원의 순제작비를 썼고 마케팅를 포함해 총 100억원 가량의 제작비가 투입됐다. 각종 기록을 갈아치우며 제작비 대비 216%의 수익률(315억)을 냈다. '실미도'가 1000만 물꼬를 튼 이후 한국영화는 전성기를 맞는다. '태극기 휘날리며'(2004년 1175만), '왕의 남자'(2005년 1230만), '괴물'(2006년 1302만), '해운대'(2009년1145만), '도둑들'(2012년 1298만), '광해:왕이 된 남자'(2012년 1232만), '7번방의 선물'(2013년 1281만), '변호인'(2013년 1130만), '명량'(2014년 1761만), '국제시장'(2014년 1426만), '암살'(2015년 1270만), '베테랑'(2015년 1341만) 등이 뒤를 이었다.

'1년 관객 1억명 시대'가 도래한 한국 영화계에 최근 매우 이례적이면서도 의미 있는 분쟁이 주목을 받고 있다. '관상'의 제작사 주피터 필름(대표 주필호)이 이 영화의 메가폰을 잡은 한재림 감독을 의무 불이행을 이유로 고소한 사건이 수면에 올라오면서다. 마케팅비 포함해 총 100억 원 가량 투자된 '관상'은 지난 2013년 913만 관객을 동원하며 그 해 최고의 흥행작으로 꼽혔다. 제작자인 주필호 대표는 손예진 주연의 '내 아내가 결혼했다'(2008년)에 이어 '관상'으로 잇단 대박을 낸 충무로의 신(新) 미다스손이다.

한국 영화 1000만 고지의 물꼬를 튼 작품 실미도는 2003년 개봉돼 한국영화 사상 최초로 1000만 관객을 돌파했다. 한국 영화에 여러가지 의미를 부여한 이 작품은 제작비 대비 무려 216%의 수익률(315억)을 냈다. /영화 실미도 스틸
"한국 영화 1000만 고지의 물꼬를 튼 작품" '실미도'는 2003년 개봉돼 한국영화 사상 최초로 1000만 관객을 돌파했다. 한국 영화에 여러가지 의미를 부여한 이 작품은 제작비 대비 무려 216%의 수익률(315억)을 냈다. /영화 '실미도' 스틸

◆ '관상' 제작사 "감독의 의무불이행에 막대한 손실" 주장

그는 다음 달 새 영화 '순정' 개봉을 앞두고 있고, '관상'의 히트에 이어 올가을과 내년에 잇달아 '궁합' '명당' 등의 관상 시리즈를 준비 중이다. 기성 감독들로부터 미운털이 박힐 수도 있는 상황을 감수하며 굳이 소송으로 맞서게 된 진짜 속내는 무엇일까. 한재림 감독과는 2011년 감독 고용계약을 체결할 당시 영화 수익 중 제작사 지분의 5%를 감독에게 흥행수익으로 지급할 것을 약속했다. 그리고 3년 가까이 지난 지금 주피터 필름은 한재림 감독을 의무 불이행을 이유로 고소했고, 한 감독 역시 수익분 지급을 요청하며 소를 제기했다.

흥행수입 지급 논란은 종종 법정 공방으로 번졌던 사례가 있지만, 제작사 측이 감독에게 손해가 난 제작비에 대해 손해배상을 청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1심 법원은 제작사가 한재림 감독에게 극장 기준 수익 중 5%만 지급하라고 판결, 감독 요구(총 흥행수익 기준)는 인정되지 않았다. 제작사가 감독의 촬영 지연으로 인해 발생한 손실분 중 8억원 부분은 판단이 보류돼 항소심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제작사는 '한재림 감독이 감독 고용계약을 할 당시 제작 일정과 예산에 손해를 입힐 경우 이에 대해 배상하기로 서명했다'는 사실을 명백한 근거로 제시했다.

제작사 측은 "당초 예상했던 4~5개월의 촬영 기간을 뛰어 넘는 7개월의 시간이 소요됐고, 결과적으로 제작비가 늘어나 15억 5000만원 상당의 손해가 발생했다"면서 "한재림 감독이 의무를 불이행해 발생한 것이므로 배상액 여하를 떠나, 감독의 계약 위반 행위가 금전적 손실에서 어느 정도 비율의 책임이 있는지 법률적으로 평가 받고 싶다"고 밝혔다. 이 부분에 대해 한재림 감독 측은 "촬영 기간을 넘긴 것은 결과적으로 영화의 완성도를 위한 일이었다"고 맞서는 입장이다.

건강한 영화 생태계를 위한 필수 규약 vs 작품의 완성도를 위한 어쩔수 없는 선택 영화 관상의 제작사가 감독을 상대로 법적다툼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최근에는 제작사들이 제작기간을 포함한 감독의 의무위반 규정 등을 사전에 서면계약으로 약정해 책임소재를 따지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영화 관상 포스터
"건강한 영화 생태계를 위한 필수 규약 vs 작품의 완성도를 위한 어쩔수 없는 선택" 영화 '관상'의 제작사가 감독을 상대로 법적다툼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최근에는 제작사들이 제작기간을 포함한 감독의 의무위반 규정 등을 사전에 서면계약으로 약정해 책임소재를 따지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영화 '관상' 포스터

◆ "작품성과 예술성만 고집하려면 저예산이라도 자기 자본으로 찍어야"

이번 사건을 바라보는 영화계 시각은 분분하다. 그동안 한국영화는 감독의 절대적인 재량에 맡겨져 촬영 기간이 늘어나는 경우가 많았고, 이에 따른 손실은 제작사가 고스란히 떠안는 게 관행이었다. 배우들의 스케줄부터 날씨, 장소 섭외 등 수많은 변수 중에서도 감독이 작품성과 예술성을 고집할 경우 제작사는 투자사와 감독의 중간에서 애를 태울 수밖에 없다. 영화계에선 이런 불합리를 개선하고 보완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고, 최근에는 제작사들이 제작기간을 포함한 감독의 의무위반 규정 등을 사전에 서면으로 약정해 책임소재를 따지는 추세다.

주피터필름의 주필호 대표는 "감독과의 법적 다툼은 건강한 영화생태계를 만들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했다. 그는 "한국 영화의 고질적인 문제점은 정해진 매뉴얼이 없다는 것이고, 감독의 결정에 따라 모든 것이 바뀐다"면서 "사전 계약서 형태로 책임소재를 명백히 규정했음에도 이에 따른 모든 경제적 손실과 책임을 제작사가 떠안는 구조"라고 말했다. 이번 경우도 제작사는 '감독의 스토리텔링과 연출력은 인정하지만 번번이 정해진 예산을 지키지 못한다는 업계의 평판'이 염려돼 사전에 고용계약서를 썼다는 후문이다.

영화는 대중문화콘텐츠의 특징 중 하나인 전형적인 경험재다. 보지 않고서는 느낌을 알 수 없고, 관객들 사이에 입소문이 나면 그 욕구와 호기심은 한층 배가 된다. 흔히 영화의 3요소를 '시나리오-배우-관객'으로 꼽지만, 소위 흥행영화의 기준은 따로 있다. 무엇보다 자본(투자 및 배급)과 제작(기획 홍보 마케팅)의 역할과 중요성이다.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현대 상업 영화의 속성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대목이고, '실미도' 이후 꾸준하게 1000만 관객을 이끌어온 한국 영화의 저력이자 현주소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영화는 더이상 감독 혼자만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갖는다. 작품이 히트하면 감독은 스타배우 못지않은 명성과 금전적 보상을 받지만, 실패에 대한 책임과 손실은 투자사와 제작사 몫이다. 실제 충무로에는 엄청난 빚을 떠안은 채 자살로 생을 마감한 영화제작자들이 많고, 일부 감독들은 예술성과 작품성을 지나치게 고집해 투자사와 제작자들이 기피하는 인물로 꼽히기도 한다. 영화는 수많은 스태프가 참여하는 협업의 종합예술이다. 진정한 프로 직업의식을 가진 감독이라면 더이상 자신의 명성만 고집해서 될 일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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