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연의 무비무브] 전도연, 이 여자가 '여배우'로 사는 법
입력: 2016.01.21 10:01 / 수정: 2016.01.21 10:01

칸의 여왕이란 수식어로 불리는 여배우 전도연. 배우 전도연이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활발한 행보를 예고하며 다음 달 개봉하는 영화 남과 여로 스크린에 돌아온다. /이새롬 기자
'칸의 여왕'이란 수식어로 불리는 여배우 전도연. 배우 전도연이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활발한 행보를 예고하며 다음 달 개봉하는 영화 '남과 여'로 스크린에 돌아온다. /이새롬 기자

'칸의 여왕' 전도연, 현장에선 여장부 vs 관객에겐 한없이 약자인 여배우

[더팩트ㅣ성지연 기자] 여배우 전도연(42)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수식어는 '칸의 여왕'이다. 그는 세계 3대 영화제 가운데서 가장 화려하고 권위 있다는 칸영화제에 3번이나 초청받았다. '밀양'으로 한국 배우 최초로 여우주연상을 받은데 이어 다음 해엔 공식 심사위원으로, 그리고 지난해 '무뢰한'으로 다시 한번 칸을 찾았다.

'칸의 여왕' 전도연이 다음 달 개봉하는 멜로영화 '남과 여'로 스크린에 컴백한다. 배우 공유와 호흡을 맞추는 정통멜로물 '남과 여'는 지난해 다양한 장르에서 종횡무진 했던 전도연의 또다른 행보의 연장선이다. 무엇보다 불혹을 넘어선 여배우의 새해 첫 작품이 연하의 남자배우와 호흡한 사랑영화라는 점이 눈길을 끈다. 다른 배우들은 따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전도연이라면 자연스럽게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그리고 지난 19일, '남과 여' 제작보고회에서 오랜만에 마주한 전도연의 미소는 언제나 그렇듯 여유로웠다.

공유와 호흡한 멜로물 남과 여로 새로운 시작을 알린 전도연. 영화 남과 여는 눈덮인 핀란드에서 우연히 만난 남녀의 겉잡을 수 없는 사랑을 담은 작품으로 개봉 전부터 기대작으로 꼽힌다. /문병희 기자
공유와 호흡한 멜로물 '남과 여'로 새로운 시작을 알린 전도연. 영화 '남과 여'는 눈덮인 핀란드에서 우연히 만난 남녀의 겉잡을 수 없는 사랑을 담은 작품으로 개봉 전부터 기대작으로 꼽힌다. /문병희 기자

오랜만에 본 전도연의 기분좋은 미소가 문득 지난해 프랑스 칸에서의 만남을 떠오르게 했다. 그간 '배우 전도연'이란 존재는 영화적 식견이나 배경지식이 부족한 20대 기자에겐 어려운 선배와 같았다. 영화 하나를 놓고 이야기를 시작해도 출발지점부터 다르니 보이지 않는 간극이 적나라게 느껴졌다. 깊이와 배경지식도 달라서 그를 인터뷰이(interviewee)로 만나는 것 만큼 부담스러운 일이 없었다.

취재 현장에서 만난 선배에게 들은 전도연의 촬영장 뒷 이야기도 그를 어렵게 만드는 것 중 하나였다. '메가폰을 잡은 감독한테 지지않고 제 주장을 한다더라' '후배가 연기를 못하면 독설을 마다하지 않는다더라' 등의 이야기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카더라'를 증명하듯 공식 석상에서 만난 전도연는 솔직했다. 자신의 모습을 숨기지 않고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그래서 더 기자에겐 '어려운 배우'로 여겨지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영화 무뢰한으로 세 번째 칸의 부름을 받았던 칸의 여왕 전도연. 영화 무뢰한은 살인자의 여자가 살인자를 찾는 형사와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를 담았고 전도연 외에 박성웅 김남길이 출연한다. /CGV 아트하우스 제공
영화 '무뢰한'으로 세 번째 칸의 부름을 받았던 '칸의 여왕' 전도연. 영화 '무뢰한'은 살인자의 여자가 살인자를 찾는 형사와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를 담았고 전도연 외에 박성웅 김남길이 출연한다. /CGV 아트하우스 제공

'어려운 배우' 전도연을 가장 가까이서 본 건 지난해, 그것도 칸영화제가 한창이던 프랑스 니스에서다. 지난 5월 제68회 칸국제영화제 주최 측은 비공식 경쟁부문인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전도연 주연작 '무뢰한'을 공식 초청했고 그는 해당 작품으로 3년 연속 칸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영화제가 한창이던 당시, 전도연은 첫 스케줄로 '무뢰한' 월드프리미어에 참석하며 '여왕의 귀환'을 알렸다.

필자 또한 '무뢰한'을 관람하고자 월드프리미어가 열리는 팔레 데 페스티발 드뷔시 극장을 찾았다. 당시 작은 체구의 전도연이 검은색 드레스를 입고 극장에 들어섰을 때 모습을 생생히 기억한다. 자신과 눈을 마주치는 사람마다 특유의 '코 찡긋' 눈짓을 하며 소리 내 웃던 전도연은 로봇처럼 경직된 김남길 오승욱 감독과는 판이할 정도로 다른 분위기를 풍겼다. 극장에서 만났던 미국 영화전문 매체 할리우드 리포터 취재진 또한 전도연의 여유로운 자태를 흐뭇하게 지켜보더니 "지난해 영화제 심사위원으로 섰던 전도연이라 새로운 작품은 그만큼 의미가 있다"며 기대감을 보였다.

제68회 칸국제영화제 포토콜에서 여유로운 미소를 보이는 전도연. 그는 특유의 애교있는 미소로 무뢰한 월드프리어를 찾은 이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임영무 기자
제68회 칸국제영화제 포토콜에서 여유로운 미소를 보이는 전도연. 그는 특유의 애교있는 미소로 '무뢰한' 월드프리어를 찾은 이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임영무 기자

전도연의 미소는 완벽에 가까웠지만, 사실 그 미소 안에 숨은 부담도 컸을법하다. '무뢰한'은 한국식 위트와 신파가 곳곳에서 엿보이는 하드보일드 멜로다. '무뢰한'을 본 각국의 관객들은 0부터 100까지 각기 다른 평가를 내놨고, 호불호가 갈린 관객들을 분간하는 건 너무나 쉬운 일이었다. 영화 상영 중간에 자리를 박차고 밖으로 나가며 야유섞인 한 마디를 남기고 떠나는 이들도 있었다.

국내작품이 상영되는 만큼 기자 또한 마음 편히 영화를 즐길 수 없어 자리를 뜨는 몇몇을 따라 시선이 움직였다. 그리고 그 순간, 기자 뒷자리에 앉은 전도연의 '찰나의 표정'을 목격할 수 있었다. 장면이 바뀌며 암전되는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떠나는 관객을 바라보는 전도연의 처연한 눈빛은 감춰지지 않았다. 연기가 아닌 진짜 모습, 거기엔 간절함과 미안함, 부끄러움 등이 복잡하게 섞여 그간 어떤 취재현장에서도 보지 못했던 전도연의 또 다른 모습을 보는듯 했다.

칸영화제에서 이뤄진 무뢰한 인터뷰 당시 전도연과 김남길. 전도연 특유의 여유로운 미소와 언행은 칸에서도 당당하게 돋보였다. /임영무 기자
칸영화제에서 이뤄진 '무뢰한' 인터뷰 당시 전도연과 김남길. 전도연 특유의 여유로운 미소와 언행은 칸에서도 당당하게 돋보였다. /임영무 기자

하지만 영화가 끝난 뒤, 극장 안에 하나 둘 불이 켜지자 전도연은 180도 다르게 변신했고 박수를 치는 관객들의 환호에 영화 시작 전과 같은 여유로운 미소를 보이며 화답했다. 다음 날 이뤄진 국내매체 인터뷰에서도 전도연은 옆에서 쩔쩔매는 후배 김남길을 쥐락펴락했고 자신감과 겸손함이 적절히 묻어나 경험많은 여배우의 노련함을 엿보게 했다.

영화 '밀양' 속, 가슴을 치며 통곡하던 전도연의 연기를 기억한다. 땅바닥에 주저앉아 엉엉 울다가 갑자기 흐리멍텅한 하늘을 향해 증오와 조소섞인 눈빛을 보내던 전도연의 눈빛은 영화를 본 뒤 한참이 지났음에도 강렬하게 남아있다. 그 안엔 그냥 딸을 잃은 여자 이신애가 있었고 동시에 배우로서 철저하게 모든 것을 쏟아내는 열정적인 여배우 전도연이 있었다.

영화 밀양 속 전도연. 그는 이 영화로 칸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거머쥐었다. /밀양 스틸
영화 '밀양' 속 전도연. 그는 이 영화로 칸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거머쥐었다. /'밀양' 스틸

평소 영화 현장에서 감독에게 가감없이 자기 주장을 펼치고, 10명이 넘는 기자들의 질문이 여기저기서 날아와도 당당하고 태연한 전도연이다. 우스갯 소리로 '대중이 몰라서 그래요'라고 말하는 배우에게 현장감독이 '배우란 현장에서 강하고 관객에게 약해야 한다'고 꼬집었다는 일화가 있다. 설마 전도연을 두고 하는 말은 아니지 싶다.

오는 5월이면 다시 제69회 칸국제영화제가 열린다. 뜨거운 니스 해변에서 전도연과 다시 마주할 기회가 생긴다면 당당한 그 미소에 꼭 한번 화답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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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팀ㅣ ssent@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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