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대호'의 주연배우 최민식. 지난해 '대호' 개봉 직후 서울 종로구 서울미술관에서 최민식을 만났다. <더팩트>와의 인터뷰는 영화 '명량' 이후 1년 만이다. /이새롬 기자 |
34년차 배우 최민식, 그가 말하는 '첫 마음'
[더팩트ㅣ성지연 기자] "초심을 지키려 노력하는데 나도 많이 변했죠. 하하하."
34년 차 배우 최민식(53)에게 '초심'에 대한 생각과 자세에 대해 질문하는 것은 매우 난감한 일이다. 데뷔시절을 떠올려 첫 마음에 관해 이야기하기엔 너무 오랜 시간 연기자로 살아온 때문이다. 하지만 최민식은 여전히 '초심'을 이야기하고 그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솔직함을 가졌다.
지난해 12월 16일 개봉한 영화 '대호'(감독 박훈정, 제작 사나이픽처스, 배급 NEW)로 '명량' 이후 1년 만에 돌아온 그를 최근 서울 종로구 서울미술관 내 카페에서 마주했다. 언제나 그렇듯 소탈한 차림새로 문앞에서 취재진을 맞이하는 최민식은 올해도 변함없을 것 같다.
조선 최고의 포수 천만덕으로 분한 배우 최민식. '대호' 속 최민식은 명포수 천만덕을 완벽에 가깝게 녹여내며 영화의 흡인력을 배가 시킨다. /NEW제공 |
최민식이 출연한 '대호'는 조선의 마지막 명포수 천만덕(최민식 분)와 조선의 마지막 호랑이의 이야기를 다뤘다. '신세계'의 박훈정 감독이 메가폰을 잡아 개봉 전부터 두 사람의 재회로 관심을 끈 바 있다. 영화의 표면만 보자면 '명량'과 비슷한 항일영화 같지만, '대호'는 지금은 사라져버린 것들에 관해 이야기하고자 했다.
'대호'의 시나리오에 매료돼 영화 출연을 결심한 최민식. 그는 '대호'의 연출을 맡은 박훈정 감독을 '이야기 꾼'이라고 설명했다. /이새롬 기자 |
- '대호'에 출연한 이유가 궁금하다. 회차도 길고 지리산에서 오랜시간 고생한 걸로 아는데
박훈정 감독은 천생 이야기꾼이다. 박 감독의 이야기 보따리에 끌려서 출연했다(웃음). '대호' 시나리오를 처음 읽어보라고 건넸을 땐 '심심하다'는 느낌도 있었는데 각색을 하니까 달라지더라. 우리 민족 고유의 정서, 전통적인 종교개념, 산을 대하는 태도, 한 마디로 민족 고유의 가치관이 묻어나는 부분이 흥미로웠고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마음에 들었다.
- CG로 호랑이를 만든다는 부분에서 부담은 없었나
모든 제작진의 걱정이 바로 그 부분이었다. 영화의 절반을 차지하는 주인공이 대호인데 CG로 만들어 낸다는 게 적지 않은 부담감이었다. 호랑이가 제대로 살지 못하면 '말짱 꽝'이니까. 그런데 이야기를 포기하자니 아깝더라. 하지만 영화를 보니 마음이 놓이더라. 굉장히 흡족하다.
'동물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공부했어요' 최민식은 '대호'촬영에 앞서 자료조사 차 봤던 동물 다큐멘터리의 내용을 자세히 설명하며 공존과 교감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새롬 기자 |
- 영화를 준비하며 따로 공부한 부분도 있었나
시베리아 호랑이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뒤져보곤 했다. 그러면서 동물 다큐멘터리를 많이 봤는데 매번 눈물이 났다. 동물과 인간이 교감하는 게 가능하다는 걸 이번 기회로 느꼈다.
- 최민식이 생각하는 '대호'는
내가 출연하고 일본군이 나오니까 다들 '대호'를 항일영화로 생각하더라. 아니다. 물론 항일의 관점에서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데 인간, 생명 존중, 공존 등에 관련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리고 다음 작품부터는 상투를 그만 틀어야겠다(웃음). 너무 역사극만 한 거 같아서 현실 속으로 돌아오고 싶다. 하긴 현실도 영화보다 영화 같은 이야기가 수없이 펼쳐지고 있는 요즘 아닌가.
- '대호'가 상업영화임은 분명하지만, 흥행영화로 가기엔 무거운 요소가 있다
나도 사람이라 흥행 여부에 신경을 안 쓴다고 말하면 거짓말이다. 소속사 눈치도 있고(웃음). 다만 소박한 소신이 있는데 그 소신은 '카메라 앞에서 어떻게 연기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서 시작한다. 제작을 시작하고 출연하기로 했다면 그때부터는 대중의 취향에 너무 의존해선 안 된다. 창작을 하는 데는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거니까. 오롯이 스스로에게 집중한다.
연기경력 30년이 넘는 최민식이 이야기하는 초심. 최민식은 연기를 대하는 스스로가 일정 부분 변화했다고 솔직히 토로했지만, 여전히 초심을 지키고자 노력 중이라고 말했다. /이새롬 기자 |
- 배우 개인의 '초심'에 관해서도 묻고 싶다
나도 많이 변했다. 하지만 항상 자신을 다그치고 질문을 던진다. '최민식, 이게 네가 원하는 거냐?'라고. 하지만 돈 인기 명성에 상당 부분 굴절된 지금의 내 모습 또한 인정한다. 그렇다고 내버려두진 않는다. 티끌이 보일 때마다 세제로 박박 닦아내야지. 닦을 수 있을 때까지 닦아야 한다(웃음). 남들이 알아주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자기만족이니까.
- 꾸준히, 그리고 다양한 작품에 출연하는 이유도 배우 개인의 소신과 연관이 있나
일정 부분 그렇다. '초심'을 지키려 노력한다. 꾸준히 영화를 하는 것은 내 인생도 인생이지만, 작업 자체가 단단해지지 않을까 싶어서다. 다른 일 해봤자 허망하고 상처 뿐이더라(웃음). 카메라와 내가 오롯이 남았을 때 그 고독함은 이루 말할 수 없지만, 나는 여전히 좋은 배우를 꿈꾼다. 세상의 평가에 자유롭고 싶고 남들을 의식하지 않고 '미친 연기'를 하고 싶은 욕심이 있다.